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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판 내셔널지오그래픽 만들기

시즌2 엔텔러키브랜드/엔텔러키브랜드

by chief-editor 2025. 10. 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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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도 2012년 무렵이었다.

그날, 광고대행사 직원 두 명과 대기업 마케팅 팀장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평소에는 인터뷰를 받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회장님께 보여드릴 영상을 찍는다고 했다.

회장은 브랜드에 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들이 내게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브랜드 임원을 뽑을 때, 어떻게 그 사람이 브랜드 전문가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는 회장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A4용지 두 장에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손글씨로 써보게 하십시오.

그 글을 읽었을 때, 복잡한 용어보다 감동이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브랜드 전문가입니다.”

 

나는 왜 ‘감동’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그 감동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그의 글을 누구에게 읽혀 검증해야 하는지를 차근히 설명했다.

 

이 방식은 사실, 내가 신입 에디터를 선발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지원자들에게 짧은 에세이를 쓰게 하고,

그 자리에서 읽지 않은 채 봉투에 넣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당신이 퇴사할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이 글이 부끄럽다면 성장한 것이고,

여전히 잘 썼다고 느껴진다면 성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과거에 쓴 글은 오늘의 자신을 통역해준다.

그 통역이 부끄러울수록, 인간은 진화한다.

 

그래서 나는 유니타스브랜드를 다시 읽기로 했다.

엔텔러키 브랜드는 유니타스브랜드의 연장선 위에 있다.

복간을 앞두고 나는 10년, 길게는 17년 전의 유니타스브랜드를 다시 펼쳤다.

 

총 44권의 책 중 세 번씩 다루었던 주제가 있었다 —

브랜드십, 휴먼브랜드, 그리고 브랜드 인문학.

그래서 복간 후의 첫 세 권은 자연스럽게 이 세 축을 잇게 되었다.

 

창간호는 ‘목적’, 두 번째는 ‘브랜드십’,

그리고 지금 마감 중인 세 번째 호는 ‘휴먼브랜드’다.

 

나는 늘 이런 질문으로 특집을 정한다.

“만약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편집장이 브랜드 잡지의 편집장이 된다면, 어떤 주제를 다룰까?”

그 질문 끝에서 선택한 첫 번째 복간 주제는‘영속 가능한 브랜드십’이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성장하는 브랜드의 비밀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입이 퇴화되어 먹지도 못한 채

하루(혹은 몇 시간)만 살다 죽는 하루살이는

200년을 사는 북극고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처럼, 평균 수명 10년 남짓의 기업이

200년을 살아온 브랜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 호에서 다룬 브랜드십은,

그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 브랜드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날 회장의 또 다른 질문 —

“브랜드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까?” — 에 이렇게 답했다.

 

“브랜드 임원이 브랜드 의사결정을 하지 않게 하고,

브랜드 가치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게 해야 합니다.”

 

과연 그 말이 설득력을 가졌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대기업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브랜드십이라는 개념은 결국,

나만 감동을 받은 이야기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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