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도 2012년 무렵이었다.
그날, 광고대행사 직원 두 명과 대기업 마케팅 팀장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평소에는 인터뷰를 받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회장님께 보여드릴 영상을 찍는다고 했다.
회장은 브랜드에 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들이 내게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브랜드 임원을 뽑을 때, 어떻게 그 사람이 브랜드 전문가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는 회장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A4용지 두 장에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손글씨로 써보게 하십시오.
그 글을 읽었을 때, 복잡한 용어보다 감동이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브랜드 전문가입니다.”
나는 왜 ‘감동’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그 감동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그의 글을 누구에게 읽혀 검증해야 하는지를 차근히 설명했다.
이 방식은 사실, 내가 신입 에디터를 선발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지원자들에게 짧은 에세이를 쓰게 하고,
그 자리에서 읽지 않은 채 봉투에 넣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당신이 퇴사할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이 글이 부끄럽다면 성장한 것이고,
여전히 잘 썼다고 느껴진다면 성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과거에 쓴 글은 오늘의 자신을 통역해준다.
그 통역이 부끄러울수록, 인간은 진화한다.
그래서 나는 유니타스브랜드를 다시 읽기로 했다.
엔텔러키 브랜드는 유니타스브랜드의 연장선 위에 있다.
복간을 앞두고 나는 10년, 길게는 17년 전의 유니타스브랜드를 다시 펼쳤다.
총 44권의 책 중 세 번씩 다루었던 주제가 있었다 —
브랜드십, 휴먼브랜드, 그리고 브랜드 인문학.
그래서 복간 후의 첫 세 권은 자연스럽게 이 세 축을 잇게 되었다.
창간호는 ‘목적’, 두 번째는 ‘브랜드십’,
그리고 지금 마감 중인 세 번째 호는 ‘휴먼브랜드’다.
나는 늘 이런 질문으로 특집을 정한다.
“만약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편집장이 브랜드 잡지의 편집장이 된다면, 어떤 주제를 다룰까?”
그 질문 끝에서 선택한 첫 번째 복간 주제는‘영속 가능한 브랜드십’이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성장하는 브랜드의 비밀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입이 퇴화되어 먹지도 못한 채
하루(혹은 몇 시간)만 살다 죽는 하루살이는
200년을 사는 북극고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처럼, 평균 수명 10년 남짓의 기업이
200년을 살아온 브랜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 호에서 다룬 브랜드십은,
그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 브랜드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날 회장의 또 다른 질문 —
“브랜드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까?” — 에 이렇게 답했다.
“브랜드 임원이 브랜드 의사결정을 하지 않게 하고,
브랜드 가치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게 해야 합니다.”
과연 그 말이 설득력을 가졌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대기업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브랜드십이라는 개념은 결국,
나만 감동을 받은 이야기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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