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상 속에서의 실전 창업 연습

창업/창업 입문

by Content director 2022. 11. 14. 17:58

본문

반응형
직장인으로서
창업주처럼 일하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
물론 오너처럼 일하면 안 된다. 

 

나는 1990년 중반 당시 패션의 사관학교라는 곳에 근무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성공한 선배의 출근 시간이었다. 동료들은 9시에 출근했지만 선배는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에 출근했다.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일을 시작하려면 4시간 정도를 혼자 보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뭘 할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분명 책이나 신문, 아니면 관심 분야의 일을 정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을 지켜보다가 선배의 그 기분을 알고 싶어서 나도 새벽에 출근해 봤다. 어제 밀린 일을 정리하고 관심 분야의 책을 읽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10시간의 업무를 준비하기 위해서 1시간을 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잡생각을 하거나 10분 동안 잠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골치 아픈 문제를 풀기 위한 나만의 솔루션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창업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시간과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컨설팅, 출판사, 잡지사, 교육회사를 차례대로 창업할 수 있었다. 

 

 

생각하는 습관이 들자 습관대로 일하기보다 먼저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과 또 다른 면을 살피면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1997년 9월 10일에 나는 나의 철학을 세우게 됐는데 그것은 ‘남을 돕기 위해서 전문가가 되자’였다. 그때부터 창업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시간과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컨설팅, 출판사, 잡지사, 교육회사를 차례대로 창업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 훈련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역할극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게 했다.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는 ‘오너처럼 일하자’였다. 지금은 오너가 아니면 절대로 오너처럼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간혹 오너보다 더 오너 같은 직원들도 있기에 이 판단은 보류 중에 있다. 여하튼 당시에는 오너처럼 일하고 싶어도 오너가 아니어서 도대체 오너처럼 일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1991년 3월에 직장인으로서 첫 월급을 받던 내가 2001년 5월 25일 첫 월급을 주는 창업주가 되었다. 10년은 직원으로서 10년은 사장으로 일했기에 나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과 오너처럼 일하는 직원을 구분할 수 있다. 오너처럼 일하는 직원은 오너밖에 없다. 열심히 일하면 좋은 오너가 될 수는 있지만 오히려 직원들의 성장을 뺏는 오너일 수도 있다. 따라서 ‘오너처럼 일하라’는 ‘열심히 일하라’와는 다른 말이다.

 

우리는 현재 직장에서 어떤 역할로 일을 하고 있는가? 창업을 준비한다면 어떤 역할로 일해야 할까?

 

대체로 직원들은 월급보다 많이 일하면 화를 내고 적게 일하면 기뻐한다. 그래서 신의 직장은 월급은 많이 받고 일은 적게 하는 회사다. 가장 위험한 인생은 모험을 하지 않는 인생이다. 대기업이 주는 가장 안전한 시스템에서 살던 사람이 가장 불안한 인생을 맞이하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다. 따라서 직장인으로서 창업주처럼 일하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 물론 오너처럼 일하면 안 된다. 바로 ‘위장 취업자’처럼 일해야 한다. 

 

 

바로 ‘위장 취업자’처럼 일해야 한다. 위장 취업자의 목적은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만이 발견한 ‘핵심가치’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장 취업자는 직원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핵심 정보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혹시 오해할까봐 첨언하자면 위장 취업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단순히 자기의 경력 관리용으로 다니면 나중에 자신의 이력서가 걸레처럼 너덜거리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창업자가 모두 도맡아 한다.

 

위장 취업자처럼 일한 다음에 핵심을 알았다면 사장처럼 일해야 한다.

창업자는 그 일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고 일을 분배한다. 따라서 창업자가 홀로 겪은 위험하며 바닥 같은 일은 웬만한 직원의 정서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위장 취업자라면 기꺼이 창업자의 지혜를 얻고 싶어서 가장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위장 취업자의 목적은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만이 발견한 ‘핵심가치’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장 취업자처럼 일한 다음에 핵심을 알았다면 사장처럼 일해야 한다. 

 

 


 

 

당시 영업부였던 내가 맡은 매장은 미금, 구리 그리고 마석에 있었다. 서울에서 떨어진 상권이었고 그리 큰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매장이었다. 이 세 개의 매장주들은 신입사원인 내가 자신의 매장을 맡게 되자 영업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담당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브랜드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영업팀장은 이참에 다른 매장주를 찾아보자고 했다.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6개월 후에 내가 맡은 매장은 성장률 5위 안에 드는 매장이 되었다.

내가 한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출퇴근을 매장으로 했고 판매사가 되어 그들의 매출을 올려 주었다. 결국 매출은 안정권에 올랐고 매장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태도는 돌변(?)했다. 당시 영업부는 소사장제도라고 해서 자신이 3~5개의 매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나는 세 분의 매장주를 모시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장님, 우리 회사가 소사장제도를 도입했으니 이제부터 저를 사장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럼 우리는 뭐지?” 매장주가 물었다.
“미금 이사님, 마석 이사님 그리고 구리 이사님이 되는 거죠. 제가 소사장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사장처럼 대우해 주세요.”

 

 

그들의 불편은 보고였고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내가 사장이 된 후부터 매장주들의 전화가 두렵지 않았다. 그들의 불편은 보고였고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프로젝트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로 사장이 되어서 월 매출 3,000만 원짜리 매장 3개를 경영하게 되었다. 물론 매출도 올랐고 그 해 나는 신입사원으로서 영업부 교육을 맡게 되었다.

 

 

이런 패턴은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동일했다. 나는 그룹의 회장이고 클라이언트는 갑이 아니라 나의 계열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계약이 끝난 뒤에도 나는 클라이언트의 회사를 방문해 돈을 받지 않고 전략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계약 종료 이후에도 클라이언트사가 성장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익혔다. 만약 내가 을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내가 32세에 창업한 모라비안바젤컨설팅은 브랜드 및 마케팅 컨설팅회사로서 기존의 패션회사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바젤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광고대행사도 기존에 하던 일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홍보대행사인 EMC도 과거 일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조닉스 프로덕션이라는 회사는 드라마 제작회사로서 처음 해본 일이었다. 3개 회사는 어느 정도 운영을 했지만 조닉스 프로덕션은 창업한 지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전문 잡지의 편집장과 노트 제조업체 사장은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롤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창업한 회사는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와 ‘유니타스매트릭스’라는 플래너 및 노트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전문 잡지의 편집장과 노트 제조업체 사장은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롤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엉뚱하게 내가 선택한 롤 모델은 미국 드라마 CSI의 길 그리섬 반장이었다. 법의학자이며, 곤충 전문가인 그는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도로에 버려진 시체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매우 전문가답게 냉철하게 파악하는 주인공이다. 

 

 

내가 이처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 사람의 느낌을 따라서 나의 일을 한다면 창업이 즐거워진다. 

 

 

생뚱맞게 CSI의 법의학 반장과 〈유니타스브랜드〉 편집장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말을 하지 않는 시체(브랜드도 말하지 않는다)를 보고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어떻게 죽었는지(브랜드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파악한다. 길 그리섬의 극중 성격은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를 만난 것 같았다.

 

 

내가 이처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 사람의 느낌을 따라서 나의 일을 한다면 창업이 즐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창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존경하고 닮고 싶은 창업주의 전기를 자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성공 이유를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이 헤쳐 나갔던 방법과 의지를 닮아 가야 한다. 그들을 창업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창업주의 롤 모델을 설정하고 이름까지 바꾸는 예도 있다. 바로 내가 그랬다. 

본래 나의 이름은 조태현이고 창업과 동시에 바꾼 이름은 권민이다. 2000년에 나는 패션회사를 퇴사하고 문화 사역 및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패션인사이트라는 패션 전문지로부터 패션 마케팅에 관한 원고를 청탁 받았다. 마감 전날까지 원고를 써 보냈지만 편집부장이 전화를 걸어서 매우 난처한 입장을 설명했다. 

 

패션 전문지 기사를 패션과 관계없는 출판사 편집장이 쓰는 것은 모양새가 우습다는 것이다. 나는 원고를 고치지 않는 대신 패션인사이트의 객원기자로 설정하고 이름을 ‘권민’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2년 동안 연재를 했다. 그 연재를 보고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컨설팅 의뢰가 있었고 모라비안바젤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일종에 휴먼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일종에 휴먼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서 나에게 스스로 붙여 주었던 ‘권민’이라는 이름이 좋아서 나의 아들 이름을 조권민이라고 지었다. 32세에 창업한 이 브랜드컨설팅회사를 글로벌 회사로 만들고 싶었지만 문제는 나의 학력, 경력 그리고 능력이었다. 기존에 조태현으로는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브랜드에 관해서 매우 통찰력이 있으며 다방면의 브랜드 케이스 지식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목표는 브랜드로서 ‘권민’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창업 스토리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주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창업을 했다고 창업주의 정신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또한 창업주의 창업일이 무조건 원년(元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창업주라고 해도 창업 자체로는 존경 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창업주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을 때만이다. 아버지라고 모두 아버지가 아니며 창업주라고 모두 창업주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당신의 창업 스토리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주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출처 : 아내가 창업을 한다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1. 창업이란 무엇인가?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