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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 앎음다음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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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3개의 원료인 ‘알다+앓음+나’로 구성되었다. 이것을 연결해 보면 ‘아픔을 통하여 나다워지는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의미는 ‘자신을 알아 가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알아 간다는 것은 내가 나인 이유를 아는 것이다. 자기다움이란 자신을 세상에서 오직 하나만 있는 원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기다워지는 것은 약점을 극복해 강점을 구축하는 ‘강화 인간’의 완성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통해서 자신의 완전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최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10년 동안 이 단어를 범하려고 한 추한 단어들에는 ‘죽인다, 간지, 장난 아니야, 대박, 쩐다, 헐, 시크’ 등이 있다. 이런 단어들의 범람 탓에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조만간 사전에서만 볼 수 있는 고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 말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의미와는 차원이 다른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 중에 ‘자기다움’에서 접붙이기를 할 수 있는 정의를 먼저 살펴보자.

먼저 ‘아름다움’의 ‘아름’은 안다, 알다, 아름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동음이의어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의미를 ‘알고 있음’ 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15세기 문헌에는 ‘아’가 여러 문헌에 명사로 나타나는데 나(我)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나다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원래 표기는 ‘앓음다움’이라고 한다. 여기서 ‘앓음’은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쓰는 상태’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운 사람’이란 ‘아픔과 고난을 이겨 낸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여하튼 많은 해석이 있지만 모두 자기다움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자기다움은 아름다움이다’라는 뜻을 여러 학자의 해석에 의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바로 ‘나답기 위해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여 자기다워지는 지혜로 충만한 상태’ 혹은 ‘자신의 약점과 결핍을 극복하여 자기다워지는 지혜로 나다워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의 자기다움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해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 가며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구권 자기경영 학문에서 일관성 있게 주장하는 것은 ‘강점 경영’이다.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약점을 굳이 살펴보지도 말고, 묶여 있지도 말고, 기억하지도 말라고 경고한다. 자신의 약점 따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만을 발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점을 고민할 시간에 오히려 강점을 강화하여 약점을 덮어 버리라는 것이다. 매우 논리적이고 그럴싸하다. 바로 이것이 전형적인 긍정의 자세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마쓰시다 고노스케 같은 사람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강점으로 성공했다. 우리 주변에도 성숙(성공과 성장)한 사람을 살펴보면 강점을 강화한 사람보다는 약점을 극복하면서 강화된 강점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

 

아마 독자는 자기다움을 구축하기 위해 강점을 강화하기보다 약점을 극복하라는 말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처세 상식과 달라서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강점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강점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남과 비교해서 획득한 강점을 자기다움의 완성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기다움에서 최악의 역기능인 ‘잘난 척’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2000년 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주님은 내가 교만해질까 봐 내 몸에 가시(약한 부분, 불치병)를 주셨습니다. 나는 이것이 사라지기를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주님은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약한 것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랑합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30% 이상을 쓴 사람으로 기독교 전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의 완전함을 위해 그에게 약한 점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자기다움을 완성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자신을 아는 방법으로서 강점만 연구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약점을 아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 쓴소리를 하거나 입바른 소리를 하면 몹시 견디기 어려워한다. 아마도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숨기고 싶던 약점을 타인에게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원래 뜻은 자신의 부족하고 약한 모습을 알아 가는 것과 그것을 극복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약점 대신 강점을 드러낼 때, 진정한 강점을 드러낸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과장된 강점이라면 자기다움이 아니라 허세에 불과하다. 이런 잘난 척을 경계하지 못할 때 자기 파멸이 따른다. 우리는 우리가 드러내 보여 줄 만한 강점보다는 숨기고 싶은 약점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강점도 사실은 사소한 약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를 아는 지식 없이 강점과 약점을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다움을 분해하는 해악적인 이분법일 수 있다.

 

자기다워지는 것은 약점을 극복해 강점을 구축하는 ‘강화 인간’의 완성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통해서 자신의 완전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만약에 독자가 기혼자라면 방금 말한 모순적 진실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지금 결혼한 사람은 당신과 똑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정반대의 사람일까? 

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이 이혼할 때는 성격 차이라고 말할까? 

왜 결혼하면 사람이 변했다고 말할까? 

간혹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불리는 원앙부부도 있지만, 그들 역시 모든 면에서 서로 같으냐고 물어보면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단지 다르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서로가 보완하며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마 결혼한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할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부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자신을 완성시키는 ‘진정한 짝’이다. 

 


 

그렇다면 이런 결혼의 섭리를 따라 약점의 반대인 강점을 외부에서 찾는 것으로 자기다움을 구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친밀도에 따라서 약점과 강점의 관점이 달라진다. 부부가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식어 버리면 강점도 약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부 관계가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 같은 행동이라도 우유부단함과 신중함, 예민함과 까칠함, 덜렁댐과 호탕함으로 평가된다. 원앙과 원수는 그야말로 동전의 앞뒷면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감정, 기능, 관계, 필요에 따라서 달라지는 약점과 강점을 애써 분리할 필요가 없다. 

 

나의 약점은 상황, 직업, 목표 그리고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의 약점이 미래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앓음다움'이란 말처럼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기다움이 구축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다움’을 구축할 수 있는 지식이다.

 

 


척 보면 알 수 있는 
잘난 척

 

원래 남 앞에서 말수가 적었던 후배가 유난히 말이 많아졌다. 미국에 있는 한 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온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상대방의 말을 자르는 것은 기본이고, 회의 내내 목소리 톤이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기괴할 정도로 달라진 후배의 모습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후 조용한 곳에서 녹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행히(?) 그는 괴물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며 부끄러워했다. 후배는 말없이 잠시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자신이 그렇게 변화된 이유가 MBA 과정 중 했던 팀 스터디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 앞에서 서툰 영어로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도 키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 후배는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주도적(Proactive)인 프로의 자세’라고 믿었다고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매우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자랑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상 모든 사람은 그가 매우 잘난 척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남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과 이룬 것을 자랑하는 것은 아름다워(자기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지는 것이다.

자기다움을 자기 본능, 개성, 취향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여과 없이 자신의 의견을 발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들짐승이 소변으로 영역 표시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강점이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기다움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더 이상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겠다. 위에서 살펴본 ‘아름다움’의 정의가 여러 개였던 것처럼, 나만의 정의로 자기다움을 설명하고 싶다. 서문의 집필 동기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자기다움을 브랜드라는 관점으로 정의하려 한다. 브랜드 관점에서 자신이 보여 주고 싶은 것을 드러냄으로써 남과 다르게 보이려는 것은 자기다움이 아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살아남으려면 고객이 수많은 상품 중에 굳이 이 상품을 사야 하는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경쟁 상품)과 다르기 위해서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것을 ‘마케팅’이라고 한다. 이것은 시장 지향적인 생각이고 경쟁 구도의 관점에서 차별화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브랜딩은 차별화를 ‘자기다움으로 인한 남과 다름’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스타일 구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리딩 브랜드를 살펴보면 자기 스타일이 있다. 이것은 남과 다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차별화를 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방향과 생각이 그렇게 표현될 뿐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까칠하다는 것을 멋스러움으로 착각하여 무조건 큰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대안 없는 비판을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것을 마케팅에서는 ‘판촉’이라고 한다. 판촉은 말 그대로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현란한 이미지와 문구로 시선을 낚는 행위다. 반면에 브랜딩은 소리 없이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시장에 흘려보내 사람을 이끈다.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 매장과 동네 가게 매장을 떠올리면 쉽게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2. 자기다움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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