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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이 필요한 이유,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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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자신을 보여 주기 위한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보여 주는 ‘자기다움’을 적어 보면 자신이 얼마나 빈약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외 명품들의 이름은 대부분 창업자의 이름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기다움을 상품으로 보여 주려 했고, 그 상품이 품질(신뢰)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면서 결국 자기다움으로 완성되었다. 비록 그들은 죽었지만(end), 그들의 이름과 상품은 브랜드로 계속되고(endless) 있다. 바로 ‘자기 부활’이다.

 

 

수많은 구직 이력서에 해괴한 자기소개 문장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장점은 일에 너무 집중하는 것이며, 단점은 너무 집중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이다. 이것은 장단점을 나름 교묘하게 강점으로 부각시키려는 말장난이다. 이런 기술적 문구의 진실을 확인하는 질문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나친 집중으로 인한 장점과 그것 때문에 단점이 된 사례를 세 가지만 이야기해 주세요.” 

이것이 진실이라면 3개가 아니라 30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 질문에 대해 3문장을 잇지 못한다.

 


 

간혹 나는 브랜드의 임원 선발을 위해서 면접관이 되어 인터뷰를 할 때가 있다. 그들을 위해서 준비한 질문은 세 개다. 첫 번째는 지원하려는 브랜드에 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특히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3차 면접까지 오게 된 신입 사원들의 진정성을 알아보는 질문이다.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로 대답할 수 없고, 진심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말하면서도 스스로 궁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을 예상해서 준비했거나, 입사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 질문은 충분히 대답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두 번째 질문을 한다.

 

“이곳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수업료를 내면서 다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업이 주는 근로복지 혜택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이곳에서 뭔가를 확실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은 더욱 까다롭다. 예상했겠지만 ‘자기다움’에 대해서 물어본다. 

“자신의 자기다움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처음부터 이 질문을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해하지 못해서 질문의 의도를 물으면 이렇게 설명해 준다.

 

“지금까지 가장 자기다운 결정과 일을 했다면 무엇이 있나요?” 

그래도 이해를 못하면 이렇게 질문을 한다.


“당신의 이름을 대신할 만한 단어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사실 이 질문은 다음 질문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면접자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비로소 자신을 ‘스마트’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

 

“자기다움이 스마트라고 한다면 최근 일주일 동안 스마트했던 자기다움의 사례를 말해 주세요.” 

진짜 듣고 싶은 대답은 따로 있다. 

“지금 이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왜 자기다운 결정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직장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직장을 통해서 자신을 완성하려는 사람이다. 

이들은 성격, 태도, 능력, 그리고 인간관계의 완성을 자신의 업을 통해서 이루려고 한다. 진부한 관찰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직장에서의 삶을 행복해하며 자기 일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직장을 돈을 받아 가며 지식을 배우는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액 장학금을 받는 장학생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런 사람을 보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핑크색 하마를 보는 것처럼 매우 드문 일이다.

 

두 번째는 가장 많은 유형의 사람으로서 생존형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샐러리맨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업무도 있지만, 휴식과 오락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안전한 생존이 보장되는  시간만큼 일하고 회사에서 정리되지 않을 만큼 성과를 낸다. 조직의 생리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들로서 자연(조직)의 순리대로 살아간다. 생존의 욕구가 강해서 직장도 본능에 따라 쉽게 옮긴다. 생존의 완성이 돈이기 때문에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서 돈을 많이 주는 쪽으로 열심히 옮겨 다닌다. 이들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 번째는 잔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완성을 위해서 직장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이들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도 삶의 방식이며 진화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들 나름대로 ‘기술적으로’ 조직에 붙어 있다. 조직에서 이런 사람들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당신은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장인을 이렇게 멋대로 분류하고,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말할까? 사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던 나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 매우 불쾌한 채로 퇴근을 해야 했다. 

나는 대답을 위한 대답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지만, 이 질문에 간절히 대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직장(삶)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렇게 쟁취하면서 만족했던 모든 것들이 불만족스러워졌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애쓰면서 내 생각과 생활에 치명적인 불균형이 있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말 그대로 ‘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자기다움이 필요한 이유는 입사와 전직을 할 때 어떤 날카로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입사를 왜 하고 전직을 왜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다. 구직을 위한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보여 주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고 읽을 때 쑥스럽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만약에 입사 당시에 쓴 입사 원서를 지금 읽는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쓴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자신의 입사원서를 자녀, 아내 그리고 친구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에게 자신을 보여 주기 위한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보여 주는 ‘자기다움’을 적어 보면 자신이 얼마나 빈약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고무줄처럼 사실을 늘려 허위로 쓴 경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한 내용을 A4 용지 한 장에 빼곡히 쓸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100문 100답처럼 시시콜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쓴다면 페이지는 쉽게 채울 수 있겠지만, 자기다움은 그런 취미와 취향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쓰는 자기다움에 관한 내용은 다음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만 보는 것은 무엇일까?
나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가?
나는 최근에 어떤 질문을 많이 했는가?
나는 최근에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장 많이 했는가?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것은 무엇일까?나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내가 최근에 선택하고 결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이 일반적인 교육을 받았고 무난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면, 예상컨대 ‘자기다움’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갈 때 ‘자기다움’은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개념은 열심히 사는 당신을 귀찮게 하는 불온한 생각일 수도 있다. 긁어 부스럼을 유발하는 그런 비생산적인 생각,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생각이 모두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된다고 모두 중요한 생각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다움’을 묻는 이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알게 된다.

이 질문에 화답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게 된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직장을 선택하고 일한다면 결국 어떤 사람이 될까? 이 질문의 대답으로 진로, 입사, 전직에서 ‘자기다움’의 명분을 세워야 한다. 이 자기다움은 전성기에 완공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완성이라는 목표로 구축되는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바치면서 완성하는 ‘자기다움’은 후대에서는 브랜드로 살아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외 명품들의 이름은 대부분 창업자의 이름이다. 명품 브랜드가 처음부터 명품은 아니었다. 그들이 처음에 만든 것은 여행용 백, 말안장, 무희들의 모자처럼 평범한 상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기다움을 상품으로 보여 주려 했고, 그 상품이 품질(신뢰)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면서 결국 자기다움으로 완성되었다. 비록 그들은 죽었지만(end), 그들의 이름과 상품은 브랜드로 계속되고(endless) 있다. 바로 ‘자기 부활’이다.

 

자신에 대한 지식인 ‘자기다움’을 알게 되면 연봉, 근무 조건과 대우, 사업 비전, 안전성과 같은 기준이 사라진다. 다른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다. 자신이 평생 구축해야 할 대상이 자기다움이기 때문에 ‘돈’이 기준이 아니라 ‘왜’가 기준이 된다.

 

자기다움을 알고 있다면 내가 왜 취직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기업을 지원할지, 취업이 아닌 창업을 해야 하는지, 창업한다면 어떤 분야로 창업할지, 이직은 어떤 기업으로 할지를 알게 된다. ‘기업은 왜 당신을 입사시켜야 하나?’와 ‘나는 여기에 왜 입사해야 하는가?’의 대답을 찾는 것이 자기다움이 필요한 이유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2. 자기다움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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