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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을 구축하는 생각, 용광로 사유(思惟)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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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특화된 ‘자기다움’의 구축 방법은 ‘평범한 일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자기다운 생각)으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촉매라고 할 수 있는 ‘자기다운 생각’이다. 이 촉매를 어떤 것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용광로처럼 정련(精練)된 생각에서 순도 높은 자기다움을 뽑아낼 수 있다.  고민의 용광로에서 들끓던 무수한 답변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 둘 녹아 버리고 결국 오랜 시간 그 온도를 견딘 것들만 남게 된다.

 

 

 

주변 사람에게 ‘당신의 자기다움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이 드물다(거의 없다). 오히려 질문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상대방이 우울해한다. 아마도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로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혀 버려 일시적인 쇼크(black out)를 경험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당신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 때문에 지금쯤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의도대로 잘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다가 마음이 불편해지면 바로 덮어 버린다. 그래서 잘 팔리는 책은 마치 박하사탕처럼 입에 넣는 순간 바로 반응하게 되는 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을 기획한 것은 그만큼 대가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기다움’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생각하지 않을 주제다. 생각할수록 피곤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굳이 돈이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자기 고민 없이 살다가 평안히 죽게 해주는 현대 사회의 안락사라고 본다.

 


 

누구나 한 번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의심하는 데서 지식이 출발하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할 때 학문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을 명증성의 규칙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데카르트를 만나면 그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머뭇거리면 “당신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나요?”라고 물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있는 내가 화난 줄 알고 불편해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런 질문을 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존재해야 할 당위성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지금 우리의 상태를 의심해 보자. 왜 우리는 ‘존재 이유와 방법 그리고 목적’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무념(無念)으로 인해 무뇌(無腦)가 된 우리는 뇌사(腦死) 상태의 코마가 아닐까? 왜 우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다움을 찾는 사람, 자기다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 어떤기준을 가지고 자기다움을 항상 확인하는 사람, 새로운 일을 통해서 잠재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생각을 끌어내어 자기다움을 완성하는 사람 등 사람마다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자기를 ‘발견’ 하기 위한 여행을 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의도적으로 혼자가 되어 자신과 만나는 방법이다. 이것은 매우 유용한 방법이지만, 내가 하는 일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이고 내 기질에도 맞지 않는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경 쓰이는 것이 많고, 볼거리도 많아서 나를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푹신한 소파에서 하루 종일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에서 자기다움을 찾는다. 데카르트를 모방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은 비슷하다.

 


 

나에게 특화된 ‘자기다움’ 의 구축 방법은 ‘평범한 일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자기다운 생각)으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촉매라고 할 수 있는 ‘자기다운 생각’이다. 이 촉매를 어떤 것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용광로처럼 정련(精練)된 생각에서 순도 높은 자기다움을 뽑아낼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경험상 이런 질문은 ‘자기다움’을 알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책과 끊임없는 연민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자기다움’을 알게(찾게, 구축하게) 하는 나의 촉매 질문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래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이다.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일상의 모든 것들이 고민의 용광로로 밀려 들어온다. 그리고 이 고민의 용광로에서 들끓던 무수한 답변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 둘 녹아 버리고 결국 오랜 시간 그 온도를 견딘 것들만 남게 된다.

 

반짝인다고 모두 다이아몬드가 아닌 것처럼, 멋진 개념이라고 해서 다 내 것이 되진 않는다. 자기다움을 묻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루 만에 나오지 않는다. 5년 어쩌면 10년이 걸려서 나올 수도 있다. 내 경우는 11년이 걸렸다. 설사 나왔더라도 그것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용광로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도 기껏 찾았다고 생각해서 글로 써서 달력에 붙여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단어들은 작년 달력보다 가치 없을 때가 많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나는 행사기획 간사, 영업부 직원, 광고 AE, 카피라이터, 문화기획 본부장, 패션 전문지 에디터, 브랜드 컨설턴트 그리고 브랜드 전문지 편집장으로 일했다. 얼핏 보면 매우 다양한 경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직 하나의 질문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창의성이란 무엇일까’이다. 처음에는 ‘창의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창조의 기쁨’으로 넘어왔으며, 지금은 ‘브랜드 창조와 창조의 시장’을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창조’라는 묘한 상상력에 이끌렸다. 그 후 인간 사회에서 창조의 결과물이 브랜드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순도 높은 생각이 필요했다. 브랜드라는 현상과 학문을 연구하면서 나의 용광로(생각)의 끓는 점은 점점 올라갔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밝히는 것이 나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일까? 목숨보다는 가치가 없겠지만, 목숨을 걸고 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목숨을 걸고 북극 바다 밑에 있는 고래들을 찾아다니거나, 심해 동굴에서 생명의 신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숨은 걸지 않지만, 광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1초처럼 쓰는 물리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우주를 연구하거나 우주 최초의 신비인 빅뱅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에 이끌려 그렇게 살까?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을 할까?

 

만약 영업사원이 매장을 돌아다니고 새로운 매장을 개설하는 일을 혹등고래 학자처럼 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패션 전문지 에디터가 우리나라에 있는 3,000여 개의 브랜드를 취재할 때, 공룡화석을 찾는 고고학자처럼 시장 뒷골목까지 샅샅이 뒤진다면 어떤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시장에 존재하는 수백만 개가 넘는 브랜드의 기원을 빅뱅의 관점에서 연구한다면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기다움을 구축하려는 생각, 그것은 자기다움으로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생각을 말한다.

 


 

‘자기다움’을 특이한 개성이나 취향쯤으로 생각하면 어릿광대가 된다. 앞부분에서 아름다움과 자기다움의 정의를 ‘나를 나답게 하는 지식과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기다움은 자기의 생명을 걸 만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자신의 생명이다. 자신의 생명만큼 가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바로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자기다움은 자신의 생명과 동일한 것을 찾는 것이다.

 

돈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돈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 누가 100억 원을 위해서 죽을까? 그러나 우리는 100억 원을 얻기 위해서는 죽도록 달려간다. 결국 100억 원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되고 만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2. 자기다움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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