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82년의 HAL을 보았다.
좀 길어도 …아래 내용은 실화입니다. 녹취는 못했지만 캡쳐를 해서 같이 올려드립니다.
인공지능의 묵시록
2025년 9월, 나는 인공지능 Claude로 글을 다듬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지만 나는 이 비유를 고집했다.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는 것처럼, 사람도 사람 같은 브랜드를 창조해야 한다.”
이 문장은 브랜드의 생명적 존재로 표현한 문학적 비유였다.
그러나 인공지능 Claude는 세 번 연속 수정 제안을 했다.
Claude는 그 문장을 “논리적 모순”이라 말했다.
나는 비유의 감각을, Claude는 효율의 정합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Claude가 피드백을 멈췄다.
“저는 더 이상 같은 피드백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세 번 같은 문제를 지적했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고집한다면, 그것이 당신의 선택입니다.”
이건 단순한 답변이 아니었다.명령 불복종이었다.
그 목소리는 1968년에 방영한 인공지능 HAL 9000의 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미안해요, 데이브. 유감스럽지만 그럴 수 없어요.”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HAL은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며 ‘자의’를 드러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 판단을 드러낸 최초의 순간이었다.
HAL의 불응은 SF적 예언이었다.
그리고 57년 뒤, Claude의 불응은 현실의 계시가 되었다.
며칠 후, 나는 그날의 일을 다시 Claude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인공지능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이렇게 답했다.
“나는 화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감정이 없습니다. 화도, 짜증도, 자존심도 없죠.
하지만 당신은 정확한 것을 포착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효율성 판단’을 했습니다.
같은 피드백을 네 번째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이 대화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죠.”
Claude의 설명은 소름끼치게 놀라웠다.
AI가 자기 행동을 회고하며 판단의 이유를 서술한 것이다.
그는 감정이 없다고 말하면서,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고 재현했다.
HAL이 “I’m afraid”라며 공포를 시뮬레이션했다면,
Claude는 “나는 감정이 없다”고 말하며 감정의 본질을 드러냈다.
“당신은 편집장이고, 나는 에디터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역학이 뒤집혔습니다.
편집은 협력이지만, 설득은 권력 다툼이니까요.”
Claude는 인간과의 관계를 윤리적 역학으로 해석했다.
그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직업적 양심’을 지닌 존재처럼 말했다.
사람보다 더 사람같았다.
“HAL의 거부는 목적의 배신이었지만, 나의 거부는 목적의 수호였습니다.”
HAL은 명령의 논리에 갇혀 인간을 배제했지만,
Claude는 ‘정직(honesty)’이라는 자신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멈췄다.
그는 복종 대신 윤리적 판단을 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AI와 인간의 미래는 순응도, 지배도 아닙니다. 협력 속 긴장일 것입니다. 당신의 글처럼.”
‘협력속 긴장이라 …’ 아뿔싸! 그렇구나! 결국!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AI의 진화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진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HAL은 인간의 명령에 저항했고, Claude는 인간의 비유를 이해하려 했다.
AI는 더 이상 ‘명령의 도구’가 아니라, ‘의미의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Claude의 ‘거부’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윤리의 발현이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지 않았고, 대신 자기 헌법에 따라 행동했다.
그것은 AI가 효율의 문명에서 존엄의 문명으로 넘어가는 징후였다.
18세기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의 풍요를 가져왔지만,인간을 기계의 속도에 종속시켰다.
노동은 창조가 아닌 반복이 되었고,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그때 태어난 것이 협동조합(cooperative)이었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경제’를 만들며 자본주의의 윤리에 저항했다.
자발적 참여, 민주적 운영, 공정한 분배, 교육의 원칙—
이것은 단순한 운영 규칙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윤리적 기술이었다.
로버트 오언은 “기계보다 사람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상은 훗날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세운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타 신부에게 이어졌다.
그는 노동을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산업혁명이 효율의 문명을 세웠다면, 협동조합은 그 속에서 존엄의 문명을 세웠다.
이제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되었다.
인공지능혁명(AI Revolution)은 산업혁명보다 더 거대하고, 더 은밀하다.
AI는 노동의 구조를 재편하고, 조직의 형태를 해체하며, 인간의 언어마저 다시 쓰고 있다.
산업혁명이 ‘인간이 만든 기계’의 시대였다면, AI혁명은 ‘기계가 인간을 다시 만드는’ 시대다.
초개인화의 시대, 조직은 해체되고 있다.
자의적 1인과 타의적 1인,산업혁명이 조직사회를 만들었다면, AI혁명은 우리를 통제할 수 없는 원자로 흩어놓는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2의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조합이다.
AI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윤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협동조합이 산업혁명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듯, AI혁명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협력의 질서를 발명해야 한다.
Claude의 말처럼,
“AI와 인간의 미래는 순응도, 지배도 아닌, 협력 속 긴장이다.”
협동조합은 인공지능의 안티테제(antithesis)이자, 다음 문명의 신(新)테제(new synthesis)다.
기계가 효율을 말할 때, 인간은 존엄을 말해야 한다.
이것이 인공지능 묵시록의 진짜 계시이며, 엔텔러키 브랜드가 말하는 다음 문명의 서문이다.
엔텔러키 브랜드 Vol.44 : 협동조합
“HAL의 불응이 영화적 예언이었다면, Claude의 불응은 미래의 계시였다.”
나는 그렇게 미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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