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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지극히 사적인 스토리, 이야기

브랜딩/브랜딩의 연금술, 판타지

by Content director 2021. 12.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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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ness.co.kr

 

랜딩 스토리의 시작은 바로 사람(창업자, 브랜드 생산자)에서 시작해서 사람(소비자)으로 끝나며 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구성된 합창곡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가장 성공적인 아이디어는 마케터와 소비자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소비자와 다른 소비자와의 관계를 통해 퍼져 나간다”고 말했다. 그 관계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바로 스토리다. 여전히 사랑받으며 오래도록 회자되는 브랜드의 사적인 스토리들을 이야기해본다.

 

1. 
기억의 
이야기

 

사진은 크게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기록인가? 상상인가? 

라이카(Leica:유니타스브랜드 Vol.12 p198)로 찍은 사진들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그 무엇을 보여 준다. 라이카로 찍으면 사진이 달라지는가? 아니면 라이카를 가진 사람들은 사진을 다르게 찍고 있는가?

사진의 구루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카메라가 라이카였다. 그는 자신의 사진 철학인 ‘결정적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는 라이카 카메라를 통해 또다른 스토리를 느끼게 했다. 

 

“결정적 순간이란, 렌즈가 맺는 상(像)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다.” 그래서 브레송의 사진을 보면 ‘결정적 순간’의 사진들이 많다.

 

우리 눈으로 보는 사진의 ‘순간’ 장면은 셔터에 의해서 잡을 수 있지만, ‘결정적’ 장면은 순간에 의해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또 다른 시각의 해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진 작가들은 렌즈를 통해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찍으려 한다. 하지만 라이카를 가진 사람들은 간절함, 고뇌, 기다림, 자비, 존재감, 침묵… 무의미의 의미들을 찍으려 한다. 그래서 라이카로 찍은 사진들을 보면 현실은 왜곡되어 보여진다.

참고로 필자는 아직도 라이카를 사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은 사용후기가 아니라 ‘사모곡’이다. 사진의 구루들은 ‘사진기보다는 사진’에 더 관심을 가지라고 했지만, 아직도 사진보다는 사진기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진기의 스토리 때문이다.  

 

사진 : 생 라자르 역 뒤에서, 이제 막 물엉덩이를 뛰어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포학한 '생 라자르 역 뒤에서'는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보도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반영한 순간을 절묘하게 잡아 내는 ‘결정적 순간’으로 알려진 그의 작품들은 매우 유명하며, 1947년 헝가리의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등과 함께 보도사진 작가그룹인 매그넘 포토스를 세웠다. 

 

 

2. 
사랑의 
이야기

 

‘티파니’라는 브랜드를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각색한 영화에서 처음 들었다.

블랑쉬(비비안 리) 여동생의 남편인 스탠리(말론 브란도)는 블랑쉬의 값싼 유리 왕관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 한장면

 

“이거 티파니의 다이아몬드인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에서는 홀리(오드리 헵번)는 티파니 보석 가게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판타지를 보았다.

“티파니에 가면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그 고요함과 고고함, 나쁜 일은 없을 것 같다.”

비비안 리와 오드리 헵번의 연기 중에 나온 티파니.

 

이처럼 티파니는 수많은 영화에서 다이아몬드 하면 티파니, 티파니 하면 다이아몬드라는 포지셔닝을 구축했다. 이런 영화들이 만든 또다른 티파니 브랜드의 판타지 알고리즘은 ‘진실한 사랑=판타지적인 청혼=다이아몬드=티파니=판타지적인 결혼’이라는 사랑의 주문(呪文)이다.

 

 

물론, 필자는 티파니 반지를 한 번도 구매한 적이 없다. 시장 조사 차원에서 2003년에 명동 롯데 백화점에 있는 티파니 매장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에 금은 한 돈에 6만 원이고 은은 한 돈에 2,500원이었다. 은의 원가를 알고 있기에 티파니 매장에서 ‘은 목걸이’를 구매하려고 했다. 

 

“이거 얼마죠?” 약간 긴장했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물었다.

“250만 원입니다.”(너무 당황하여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비슷한 가격대였다) 

“백금인가요?” 비싸다고 말하기 전에 뭔가 착오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오. 실버입니다.” 은이 아니고 실버(?)라고 한다.
“이거 은인데 왜 이렇게 비싸요?” 가격에 놀라 당황한 내가 반격에 나섰다.
“티파니입니다.” 

“…… .”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돌아 나왔다. 점원은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말했지만 ‘또 오지 마라’라고 들렸다. 

결혼 20주년에는 티파니 반지로….

 

 

3. 
희망의 
이야기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캠페인은 스타가 되기까지의 어려움과 좌절 그리고 포기의 순간에 쓰러지지 않았던 그들만의 마지막 선택을 용기라는 ‘환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불가능은 없다. 그래서 너의 꿈은 곧 이루어질 현실의 미래야. 아디다스가 우리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didas

 

아디다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이야기 좀 들어 볼래?” 

그리고 마지막 말을 이렇게 끝낸다. 

“그러니까 불가능은 없어…. 너에게도 불가능은 없어.” 

 

불가능은 없다. 그래서 너의 꿈은 곧 이루어질 현실의 미래야. 아디다스가 우리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불가능이 없어진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

 

불가능이 현실을 가로막을 때 (아디다스가 말하기 전까지) 우리는 조건반사적으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 나폴레옹’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솔직히 가능한 일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우리 앞을 막으면 우리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아디다스의 주문을 외우게 될 것이다. 결국 아디다스는 불가능이 가득 찬 세계에서 ‘불가능이 없다’라는 환상을 팔면서 머릿속에 상품을 슬쩍 끼워 놓은 것이다. 아디다스는 최고 스타들의 ‘불가능했던 도전’이라는 갈등을 15초의 드라마 같은 광고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불가능은 없다’라는 캠페인은 아디다스가 자신들에게 스스로 하는 칭찬이다. 

 

아디다스는 1948년에 회사를 차리고 1980년대까지는 무리 없는 성장을 했다. 그러나 나이키와 리복의 출현으로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90년에는 결국 프랑스의 기업가 베르나르 타피에게 매각을 당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베르나르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다시 1993년에 회사를 판 것이다. 그러다 1995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어서 나이키와의 전쟁에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러니까 아디다스의 부활은 불과 15년 전의 일이다. 

 

아디다스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어느 조직에나 갑자기 밀어닥치는 어려운 일에 대해서 손도 쓰지 않고 머리만 쓰면서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항상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연약한 자의 자기 변명일 뿐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불가능을 ‘미래의 적’이라고 말한다. 과연 스티브 잡스답다. 

브랜더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은 드라마 최고의 기술이라고 일컬어지는 ‘반전 효과’가 가능한 시기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브랜드의 생명력이 이것을 뚫고 나아가면서 얻게 되는 것도 알아야 한다. 브랜더에게는 불가능이라는 진통은 브랜드를 낳기 위한 산통일 뿐이다.

 

 

4. 
남자들의 
이야기

 

남자들은 거의 ‘뻥’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평균 30년 동안 한다. 군대 이야기와 자동차 이야기다. 남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천재적인 편집 능력이 있어 자신의 스토리에 남의 이야기를 첨가, 수정하면서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이야기한다. 심각한 것은 자신이 과장한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군대 이야기는 군대의 보편적 특성으로 인해서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지만, 자동차 이야기는 심각할 정도로 날조된다. 특히 상대방이 특정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어진다.

 

1916년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회사로 시작한 BMW는 히틀러의 비행기 심장을 만든 일종의 군수업체였다.

 

전쟁이 끝나고 BMW는 더 이상 비행기를 만들 수가 없어서 결국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5년 전 BMW의 조수석에 앉은 적이 있었다. 바퀴가 바닥에 닿는 느낌과 소음을 들었다. “소음이 심한데?” 의외의 소음으로 나는 약간 실망했다는 듯이 슬며시 BMW를 폄하했다.

 

운전자(거래처 기사)는 나를 슬쩍 쳐다본 다음 5초 정도 침묵으로 긴장을 유지했다.

 

“원래 소음에 민감한 민족은 한국인과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차와 일본차의 기술은 소음을 잡는 데 집중하죠. BMW는 비행기 엔진을 만들었던 회사입니다. 소음 없는 비행기가 있나요? 소리는 자동차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BMW의 기술은 엔진에 있습니다. 그래서 BMW를 운전하는 것은 땅에서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음이 운전에 방해가 된다면 렉서스를 타세요.”

 

&amp;nbsp;BMW i, 전기자동차 ⓒBMW

 

BMW는 자동차가 된 비행기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순간 기분이 상해야 할지 아니면 성찰의 감동으로 머리를 숙여야 할지 몰랐다. 그저 ‘5년 돼서 그래요’라는 말이면 그만이었는데, 운전자는 BMW의 역사, 배경, 철학, 생산의 방향, 그리고 운전자의 자세에 대해서 늘어 놓았다. 어렸을 적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남자라면 누구나 대답했던 직업 중 하나가 ‘비행사’다. ‘하늘을 날고 싶다’라는 환상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BMW를 몰고 싶은 것은 날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5. 
진짜
판타지 
이야기

 

달력에서나 보았던 알프스 산맥의 맑은 시냇물은 ‘에비앙’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157개국의 물 시장을 명품 물로서 주도 하고 있다. 무색, 무취, 무미.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물. 마케팅 용어로 말한다면 상품으로써는 도저히 차별화를 할 수 없는 그저 ‘물’에 불과한 ‘물’이다. 하지만 에비앙을 물로 보면 안 된다. 그들이 외치는 캠페인은 단지 칼슘과 미네랄이 풍부한 속성만을 말하지 않는다. 에비앙은 물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말한다. 시간을 내 피트니스센터 카페에 앉아 누가 어떤 물을 마시는지 관찰하면 재미있는 현상을 한 가지 볼 수 있다. 정말로 부단한 노력으로 몸매를 예술로 만든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의 물을 마신다. 

 

왜 그럴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에비앙은 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물의 환상을 파는 것이다. 깨끗한 물을 통해서 완벽한 건강과 몸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한마디로 물을 술처럼 팔고 있는 Evian을 뒤로 읽으면 당황스럽고 재미있는 의미를 가진 naive다.

 

*naive 

1. (사람이) 순진한, 소박한, 천진난만한, 숫된 

2. (미술) 소박한, 원시적인 

3. (특정 분야에) 경험이 없는; 선입적 지식이 없는 

4. (동물 등이) 실험(투약)을 당하지 않은.

 

Evian을 향한 음모론은 아니지만 여하튼 우리는 석유보다 비싼 무색, 무미, 무취의 물을 마시면서 술보다 더 빨리 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에비앙은 물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말한다. @evianwater instagram

 

6. 
산 이야기

 

글은 원래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이후에 우리에게는 필체가 사라졌다. 40세가 넘으면 누구나 인생의 깊이를 볼 수 있는 글씨체를 가진다는데 20년 동안 자판만 두드렸던 나의 글씨는 우리 딸처럼 쓰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글자마다 모양이 다르다. 원래 실력 있는 무인은 칼을 자랑하지 않고 진정한 문인은 붓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옛 높으신 분들의 가르침도 있었지만 몽블랑을 굳이 구매하고 자랑하는 것은 어느 밥집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한 상 거하게 먹고 결제 용지에 사인을 하려는데 점장이 사인을 위해 내게 몽블랑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송아지 가죽 패널에 놓인 영수증에 얄타 회담과 정상 회담에나 쓰일 만한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몽블랑 만년필로 쓰는 사인은 예전에 사용하던 빅볼이 주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약간 굳어 있어서 처음에는 종이를 긁었지만 곧 다크 블루의 강한 잉크가 14k 펜촉을 따라서 흘러나왔고 굵게 타고 내려오는 잉크는 사인을 그림으로 만들었다. 음식을 대접한 사람과 음식을 만든 사람 간의 마지막 순서인 품격 있는 디저트라고 할 수 있었다. 자칫 비싼 음식값으로 인해서 후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사인을 하는 동안 잔치를 베푼 백작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후 당장 몽블랑을 샀다.

 

 

개인적 구매 이유는 간혹 책에다가 사인을 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유성펜과 빅볼로 사인을 할 때는 말 그대로 사인이 아니라 이름을 날려 쓰는 것이다. 하지만 몽블랑으로 사인을 할 때는 ‘그린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몽블랑의 판타지는 시인이 되고 싶거나, 연애편지를 쓰고 싶거나 아니면 자서전을 쓰고 싶은 충동이다. 아니면 손 위로 솟아오른 4,810m의 만년설을 보면서 등산을 하고 싶은 것이거나. 


이제부터 독자도 사적인 브랜드 스토리를 적어 보자.

사적인 브랜드 스토리








 

위에 적은 브랜드의 스토리 중에서

 

1) 독자만 알고 있는 브랜드의 이야기(정보와 자료)는 무엇인가?

2) 독자가 지어 낸 이야기는 무엇인가?

3) 독자가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4) 주변 사람들에게 독자의 스토리를 읽혔을 때 상대방은 어떻게 공감하고 있는가?

(최고의 찬사는 ‘글 잘 썼다가 아니라 나도 사고 싶다’이다.)

 

브랜더들은 반드시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 번째는 자신의 브랜드에 관한 글을 쓰는 능력과 두 번째는 글을 잘 보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마케터와 홍보실 책임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브랜드 업계에서는 이미 폐기된 재래식 사고를 쓰레기통을 뒤져서 끼워 맞추는 것이다. 

 

마케팅의 구루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현재는 ‘마케팅 5.0'을 이야기하는 시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케팅 1.0은 상품의 장점, 품질을 이야기하는 시대이고, 마케팅 2.0시대는 장점보다는 감성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그리고 (시장별로 다르지만) 앞으로 오거나 이미 온 마케팅 3.0 시대는 인간 중심의 영혼(spirit)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대였다. 이제는 온오프라인의 통합 마케팅을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그 통합이 이루어진 '휴머니티'를 중시하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마케팅 5.0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브랜딩의 방법인 스토리에 관한 것은 ‘전략’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휴머니티는 결국 그것을 어떻게 보이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랜드는 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이 거한다는 휴머니티, 곧 ‘마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켓 1.0 : 제품 중심 마케팅, 품질 관리 집중
마켓 2.0 : 소비자 중심 마케팅, 경쟁 불가피, 포지셔닝 도입 
마켓 3.0 : 인간 중심 마케팅, 가치와 스토리 강조 
마켓 4.0 : 하이테크+하이터치의 융복합 전략, 온-오프라인 통합 마케팅 
마켓 5.0 : '휴머니티'를 중시하는 디지털 사회, 애자일 마케팅 

 

이번에는 좀 다른 브랜드의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사람이며 브랜드이며, 브랜드이며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7. 
승리의 변주곡, 
우승에서 존경으로, 
존경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브랜드로


잭 니클라우스라는 골퍼가 있다.

지금은 타이거 우즈가 필드에서 으르렁거리지만 우즈 이전에는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가 골퍼들의 우상이었다.

 

ⓒdanwintersphoto.com

 

“그는 맹렬하고, 완고할 정도로 정직하고, 결코 허식을 부리지 않는다. 그는 승리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패배를 맞았을 때는 기품이 있으며 스포츠맨십을 몸소 보여 준다. 그는 그를 표현하는 이와 같은 말을 전적으로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언제나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골프 경기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경기와 그의 커리어 자체에서 빛나는 장식과 같은 존재다.”

- Tribute during 1984 ceremony at which Jack was named Honorary Doctor of Law by the University of St. Andrews, Scotland 

 

1940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그는 10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가진 9홀 경기에서 51타를 기록하여 이미 천부적인 골프 실력을 발휘했다. 1959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래 1961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제패함으로써 더 이상 아마 무대에서 경쟁자가 없음을 만천하에 알린다. 이듬해인 1962년 프로골퍼로 화려한 골프 인생을 시작한 그는 데뷔 첫해인 1962년 US 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그 후  3번의 브리티쉬 오픈 우승, 6번의 마스터즈 우승, 5번의 PGA 챔피언십, 3번의 US 오픈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이루게 된다. 1990년부터는 시니어 투어에도 참여해 현재 10번의 시니어 투어 우승 기록도 가지고 있다.

 

데뷔 후 지금까지 약 150회 이상 메이저 대회에 참여했다는 경이적인 기록과 함께 현재까지 공식적인 상금액이 메이저 대회에서의 550만 달러와 시니어 투어의 250만 달러를 합쳐 약 8백만 달러를 상회한다. 이러한 업적으로 골프계에서의 그는 1999년 AP 통신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잭 니클라우스가 필드에서 걸어온 길은 바로 골프 역사를 새로 쓰는 이정표였고 그의 위대한 기록은 US Open 공식 홈페이지에 ‘Jack’s Legacy’라는 제목의 메인 메뉴로 헌정되기까지 했다.

 

천부적인 골프 실력을 발휘하며 의미있는 경기를 펼쳤던 잭니클라우드 

 

앞에서 읽었던 잭에 관한 5개의 멘트를 통해 우리는 그의 가치가 무엇이고 그의 힘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그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잭은 이후 골프장 설계를 비롯해서 골프웨어 브랜드를 만들었다. 

 

실제로 그가 골프장에서 상금과 광고 모델 수익으로 모은 돈보다 은퇴 후에 그의 가치를 활용한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더 많다. 그의 가치는 페어 플레이였다. 그가 필드에서 보여 주었던 ‘정직’과 ‘최선’ 그리고 ‘성실성’이라는 가치는 그의 사업에서도 이어졌다. 

 

첫 번째는 골프장 코스 설계자로서의 그의 행보다. 참고로 골프장과 환경 운동가들은 항상 앙숙이다. 그러나 잭 니클라우스는 달랐다. 잭 니클라우스는 실제로 환경 의식도 투철했고 잭이 설계한 골프 코스는 친환경 골프 코스를 수상하기도 했다. 1998년에 애너콘다, 몬태나의 ‘Old Works Golf Course’가 <골프 다이제스트 Golf Digest>에서 ‘Environmental Leaders in Golf Award’를 수상했다. <골프 다이제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골프 코스 중 하나’라고 찬사를 보냈다. 참고로 그 땅은 20세기 초에 구리 제련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이후 수십 년 동안 버려져 있던 땅이었다. 버려진 땅을 골프장으로 개발해서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코스 설계회사인 니클라우스디자인(NICKLAUS DESIGN)

 

1996년에도 이미 친환경 골프코스 TPC(Michigan)로 ‘LINKS magazine Special Recognition Award’상을 받았었고 그 외에도 잭이 디자인한 여러 개의 골프 코스가 ‘야생 동물 보호 코스’로 지정될 정도였다. 무엇이 그를 골프의 제왕 이상의 가치로 만들었을까? 

잭 니클라우스는 기능적으로는 최고를 넘어서는 신에 가까운 골퍼였다. 총 우승 100번, 공식 PGA 우승 71번, 메이저 우승 18번 중에 마스터스 6번, PGA챔피언십 6번, US오픈 4번, 브리티시 오픈 3번, 그 중에 2위는 58번, 선수 기간은 25년, 초기 6년간 메이저 우승은 7번이다. 그래서 골프를 하는 사람에게 그는 거의 ‘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가 진정 우승만을 했던 신일까? 

 

경기 때 노란색 셔츠를 즐겨 입었던 그를 우리는 ‘황금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의 심볼은 황금곰인데 그것은 성공을 해서 얻어진 상징이 아니라 가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존경의 상징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잭 니클라우스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점인 것이다.

 

잭니클라우스 박물관에 가면 그가 왜 노란 옷을 즐겨 입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이렇게 적혀 있다.

*Yellow 골프 셔츠
1969년에서 1971년까지, 잭은 일요일에 방송되는 모든 경기마다 노란 셔츠를 입고 출전했다. 그것은 중병을 앓는 열두 살짜리 소년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소년은 잭의 집사의 아들 크레이그 스미스(Craig Smith)였다. 노란색이 그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에, 잭은 그들 사이에 통하는 신호로서 노란색을 입은 것이다. 소년은 투병 끝에 결국 1971년에 사망하였다. 15년 뒤에 부인 바바라는 크레이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토너먼트 마지막 일요일 경기에 노란 셔츠를 입고 나가 보라고 권유했다. 잭은 노란 셔츠를 입고 우승했다. 그의 마지막 영광의 우승으로, 1986년 마스터스 우승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그의 가치를 계승하고자 한국의 패션 브랜드인 잭 니클라우스는 골드 필드 펀드(Gold Field Fund)라는 이름으로 펀드를 만들어 매출의 일정액과 직원들의 후원금을 모아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고 한다. 이 자선 펀드가 잭 니클라우스의 페어플레이라는 가치를 확장하는 두 번째 행보인 것이다. 물론 잭 니클라우스는 아직도 노란 셔츠를 입는다. 필드가 아닌 병원에서 그의 상징과 가치를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잭 니클라우스는 각종 어린이 병원 후원 활동을 진행 중이며, 니클라우스어린이병원을 건립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니클라우스 어린이 건강 재단을 만들었고, 콜럼버스 어린이병원에 기부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는 2007년 4월에 방한하여 자선 골프 경기를 할 때 골프장에 참가한 골퍼들이 모두 노란색 옷을 입고 잭 니클라우스의 가치에 동참했다고 한다. 

 

최경주 프로골퍼에게 잭 니클라우스는 어떤 사람인지 들어 보자.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잭 니클라우스의 《골프와 나의 인생Golf My Way》이라는 책을 읽고 독학을 했다. 이 책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최경주가 없었을 것이다.” 

골퍼로서, 자선활동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잭 니클라우스는 가정에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정에서의 성공이 그가 페어플레이로서의 가치를 보여 주는 세 번째 행보다. 그는 바바라와 40년 결혼 생활 중에 다섯 자녀를 두었으며, 골프 실력만큼이나 두터운 가족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연중 몇 달씩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 프로 골퍼의 생활. 제대로 가정을 꾸려 갈 수 있을까 싶은 게 주변의 시선이지만, 니클라우스는 “메이저 대회 14승을 넘어 18승을 달성하기까지 나를 이끈 힘은 가족”이라며 인생에서 안정되고 화목한 가정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아주 유명한 실화가 있는데 196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골프 대회에 남편을 응원하러 온 부인 바바라가 밤 사이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는 최종 라운드를 남긴 남편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침 8시까지 이 사실을 숨겼다. 니클라우스는 아내를 병원에 옮긴 뒤 골프장으로 갔고, 그날 저녁 우승컵을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잭을 어떻게 말할까? 이렇게 잭 니클라우스는 자신의 핵심 가치인 페어플레이를 골프장에서, 자선활동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모범적으로 보여 주면서 그 가치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사업가로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잘 활용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잭 니클라우스가 2021년 6월 1일 화요일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 클럽에서 열린 이번 주 메모리얼 토너먼트를 앞두고 연설하는 장면(니클라우스는 16년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도 골프와 관련성 있는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있다)

 

1966년 첫 번째 브리티시 오픈을 제패하기 일주일 전, 유명한 골프 코스 설계자인 딕 윌슨(Dick Wilson)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가 앞으로 골프 선수 이상의 명성을 떨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계기였다. 잭의 고향인 오하이오 주의 한 골프 코스를 리뉴얼하기 위해 온 윌슨은 그를 조수로 채용했고 이후 그의 천부적인 코스 디자인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코스 설계회사인 니클라우스디자인(NICKLAUS DESIGN)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로 코스 설계자로서 그는 지금까지 약 150개 정도의 코스를 직접 디자인하거나 공동 디자인했으며, 이러한 코스들 중 18개가 <골프 매거진>과 <골프 다이제스트> 세계 TOP 100 코스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최근의 시장 조사에서 니클라우스가 디자인한 코스들이 골퍼들에게 가치 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발표된 바 있다.

 

니클라우스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디자인 회사 중 하나로 그의 대표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골프웨어, 골프 용품 등 골프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는데, 의류 사업의 경우 미국 유수의 의류 메이커인 하트막스(HARTMARX)와 손잡고 잭 니클라우스 브랜드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 호주,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11개국이 잭니클라우스 브랜드 영업을 펼치고 있으며, 국내에는 FnC코오롱이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현재까지 11개의 회원사 중 가장 경쟁력 있고, 매출이 큰 회원사로 알려져 있다. 한편 그는 1992년 미국 웨스트 팜 비치에 공장을 설립하고 다양한 골프 용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잭니클라우스가 필드에서 보여 주었던 정직과 최선 그리고 성실성이라는 가치는 그의 사업에서도 이어져 브랜드 사업을 통해 그 스토리를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필드에서의 잭 니클라우스의 명성과 카리스마를 반영할 수 있는 최상급의 용품을 생산, 공급한다’라는 모토 아래 발전을 거듭해 8년이 지난 지금 최상급 골프 용품으로서 마켓 리더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브랜딩 스토리의 시작은 바로 사람(창업자, 브랜드 생산자)에서 시작해서 사람(소비자)으로 끝나며 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구성된 합창곡이다. 《티핑 포인트》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가장 성공적인 아이디어는 마케터와 소비자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소비자와 다른 소비자와의 관계를 통해 퍼져 나간다”고 말했다. 그 관계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바로 스토리다.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토론토 대학교와 트리니티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경제부/과학부 기자, 뉴욕 지부장을 지냈으며 <뉴요커>의 기고 작가로 일했다. 2005년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으며, 저서 《티핑 포인트》 《블링크-첫 2초의 힘》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13 브랜딩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2장 브랜딩의 연금술, 판타지 2막 지극히 사적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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