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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자기를 알아가는 것, 자기다움에서 우리다움으로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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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다. 또한 ‘자기다움’을 구축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자기 일을 돈으로 한 달마다 환전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일로 닳게 하는 사람이다. ‘자기다움’은 ‘우리다움’을 지향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자기다움’을 ‘우리다움’의 반대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업의 ‘우리다움’이라는 커다란 방향성을 ‘자기다움’으로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조직에서 구축하는 ‘자기다움’이다.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입사 희망자들의 최종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당돌한 질문을 한다. 

 

“입사하면 얼마를 내고 회사에 다니겠습니까?”

 

이런 제안에 대부분 황당한 얼굴로 웃기만 한다.
나는 장난이 아니므로 진지한 얼굴로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한다.

 

“한 달에 100만 원씩만 내고 6개월만 일해보세요. 배울 것이 없다면 3개월 안에 그만두셔도 좋은데 수업료는 돌려 드리지 않습니다.”

 

이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인 사람은 지금까지 100명 중에 단 한 명 있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정말 그 사람이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는지를 서로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진짜로 그 사람이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면 월급쟁이 경영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을 당신에게도 하고 싶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월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수업료를 내고 일해도 좋을 만큼 가치가 있는가?” 

“그럴 가치도 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가치의 기준에 의해서 직장을 택하지 않았다. 학교가 직장 선택의 가치 기준을 가르쳐 준 적도 없다. 일반적으로 취업 시장에서 기업을 선발하는 기준은 ‘월급이 안정된 대기업’이다. 하지만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 대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실은 가장 불안한 삶이라는 것은 대기업에서 퇴사한 사람들만 알고 있다. 불안한 인생을 사는 것은 기업의 정년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년을 목표로 사는 사람은 이후의 삶을 불안하게 살게 된다.

 


 

제대로 된 직장을 찾고 싶다면 그 기준을 ‘안정’이 아닌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도전’에서 찾아야 한다. 

일은 ‘자기다움’을 찾고 구축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 자체가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떤 일이 가치 있게 되는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자기다움에 달려 있다.

 

‘자기다움’으로 일하는 것과 일을 통해서 ‘자기다움’을 완성하는 것은 ‘특권층’의 권리다. 

여기서 말하는 특권층이란 자신이 하는 일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에게 이 일은 특권인가?” 

 

이 질문의 대답이 어려우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이 일은 당신의 ‘자기다움’이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가?” 

“돈과 관계없어도 당신은 이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헌신적으로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기준으로 일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대체할 수 없다. 

아무나 당신의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일이 당신만의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권(privilege)이라는 단어를 쪼개 보면 Priv(개인, 분리된)와 lege(합법적인 Legal)로 구성되어 있다. 특권이라는 단어의 원뜻에 따라 ‘일의 특권’을 해석해 보면 자기만의 법으로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이들의 간섭, 지시, 경쟁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이 제멋대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적인 일에서도 탁월함을 뛰어넘어 일하는 사람의 ‘자기다움’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브랜드에서는 이것을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이라고 말하며, 차별화의 기원이라고 한다.

일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다. 또한 ‘자기다움’을 구축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자기 일을 돈으로 한 달마다 환전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일로 닳게 하는 사람이다.

 

 

‘자기다움’은 ‘우리다움’을 지향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자기다움’을 ‘우리다움’의 반대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업의 ‘우리다움’이라는 커다란 방향성을 ‘자기다움’으로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조직에서 구축하는 ‘자기다움’이다.

 

이것을 브랜드에서는 ‘브랜드십’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애플에서는 구글다운 직원을 뽑을까? 아니면 IBM과 같은 직원을 뽑을까?

만약에 구글과 IBM스러운 직원이 애플에 다니면 둘 다 행복할까? 

‘우리다움’이라는 전체에서 ‘자기다움’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고, ‘자기다움’이라는 전체에서 ‘우리다움’이라는 부분(전체가 아니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은 기업 외부에 있다. 기업도 사회의 한 기관이기 때문에 기업의 목적은 사회에 있어야 한다. 

기업의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에 빗대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의 목적은 자기 밖에 있다. 사람도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사람의 목적은 사회에 있어야 한다. 사람의 목적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관계’에 의해서 ‘자기다움’이 결정된다고 말하면 지금까지 말한 내용과 다른 것 같아서 잠시 혼돈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다움’을 통해 ‘자기다움’을 완성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예를 든다면 프로 축구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기량을 앞세워서 자신의 가치를 올리지만 일단 게임에 들어가면 협력하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조직원으로 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다움과 자기다움이 극대화된다.

 

 

오직 자기 의지, 성향 그리고 계획만으로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것은 같은 인간이지만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생떼를 쓰는 자기다움(본능에 가까운)만이 존재한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완성된다. 따라서 자기다움은 우리다움으로 완성해야 한다.

 


 

마케팅의 구루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최근 자신의 저서 «마켓 3.0»에서 영혼이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한 기업의 세 번째 신조로서 “가치를 명확히 천명하고 그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왜 그럴까? 그것을 포기하면 기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인데 가치를 천명한다면 도대체 그것은 기업일까, 종교단체일까?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를 위해 이웃에 정성을 다한다.’

 

이 말은 누가 한 것일까? 한국에 런칭한 지 10년이 넘은 ‘스타벅스’의 사명이다. 

 

ⓒhttps://www.starbucks.com/about-us/

 

이들의 사명에서 자기다움과 우리다움이 이루는 가치의 합일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자기다움’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외부에 있는 ‘우리다움’을 이루는 데 있다. 

따라서 ‘자기다움’을 구축하려는 사람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나의 자기다움은 우리다움을 이루는 어떤 가치로 구축돼야 하는가? 우리다움의 구축으로 나의 자기다움은 어떻게 완성되어야 하는가?’ 

 

자기다움의 시작과 수정은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4. 자기다워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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