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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고 이끄는 훈련, Reading과 Leading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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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은 아름다운 시, 그럴듯한 이름 그리고 스마트한 아이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알고 깨달았다고 해서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게 없는 가치를 ‘자기다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자기다움’이 ‘자기답게’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세계다.

 

 

나의 이름과 아이디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와 ‘자기다움’을 이루는 단어들이 과연 나의 것인지 아니면 흉내만 내고 있는지를 검증하고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나는 ‘협력과 연합’이라는 주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30대 이후에 갖게 될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개미의 협력부터 시작해서 촌충의 기생까지 생물학에서 다루는 ‘협력과 연합’을 공부했다. 여기에 관련된 책을 읽고, 영화도 보고 멘토를 만나면서 또 다른 ‘협력과 연합’의 형태가 ‘경쟁과 조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좀 더 많은 책을 읽게 된다면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 ‘감상의 마음’에 ‘가치’를 품게 되면 ‘묵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묵상 가운데 새벽 지혜를 얻게 된다. 물론 새벽 지혜가 IQ의 향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넓고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말한다.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나의 ‘자기다움’으로 얻어진 새로운 개념과 지식을 집어넣어 새로운 형태의 지식 창조를 시도했다. ‘협력과 연합’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에 전혀 없는 개념인 Helpership, Brandship, On Branding, Brandsync 등 신조어를 만들면서 지식을 구축했다.

 

그렇게 자기다움을 통한 지식을 추구하면서, 50세에 쓰게 될 책 제목으로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다(Good Brand  is  Good Ecosystem)’를 미리 뽑아 놓았다. 제목만 만들었지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가치와 ‘자기다움’으로 이것에 관해서 써야 한다는 소명을 깨달았다. 내 운명의 창조자에게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되었다.

 


 

‘자기다움’은 아름다운 시, 그럴듯한 이름 그리고 스마트한 아이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알고 깨달았다고 해서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반응할 수 있을 뿐이다. 

내게 없는 가치를 나의 ‘자기다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새벽을 보내고 아침부터 현장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자기다움’이 자신의 일터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자기다움’이 ‘자기답게’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세계다.

 

 

앞 장에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글을 읽었다. 

두 시를 읽었을 때 당신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이 두 시를 읽었을(Reading) 때 당신을 이끌어(leading) 가는 시는 어떤 시인가? 

마틴 루터 킹이 꿈꾸는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로버트 프로스트가 갔던 낯선 길로 갈 것인가? 

우리는 마틴 루터 킹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는 어떻게 사망했는지 잘 모른다. 

내가 쓴 진실한 시는 내가 어떻게 죽을까를 미리 알려 준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까를 결정하면 삶은 명확해진다. 단순해진다. 

무엇보다도 나머지의 인생이 자기다워지며, 자기답게 죽을 수 있다. 

이것은 삶의 지혜다. 자극적이지만 더욱 강도를 높여 보자.

 


 

동그라미 안에 있는 3개의 바늘은 계속 돌아간다.

1, 2, 3, 4, …21, 22, 23, 24 그리고 다시 1, 2, 3, 4, …21, 22, 23, 24 그리고 또다시 1, 2, 3, …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것이 시곗바늘처럼 돌고 돌아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돌고 돌아 그 자리에 오지 않는 것이 시간이다. 

 

 

혹시 시간이 있다면 1년부터 시작해서 70년까지의 시계를 만들어 보라. 그러면 시계가 주는 환상에서 금방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반복되는 ‘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직선 운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것을 알고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살게 된다.

 


 

그렇다면 왜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구축하며 완성하는 데 새벽 시간이 좋은가? 새벽 시간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우리에게 시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만약 직장인이라면 9시부터 시작되는 회사의 시간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만약 새벽 시간의 연장선에서 근무 시간에 짬짬이 다른 여가 생활을 즐기려 한다면 그 자체로 ‘자기다움’을 썩게 하는 것이다.

 

 

새벽 시간과 일상 시간은 ‘생각과 실행’의 자웅동체가 되어야 한다.

시간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하나는 흘러가는 시간이고 또 하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헬라어로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한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연대기를 말할 때 영어로 ‘크로니클(chronicle)’ 또는 ‘크러놀로지(chronology)’라고 한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해진 시간을 말한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시간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이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어떤 일이 수행되기 위한 시간 또는 특정한 시간을 가리킨다.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실행되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을 크로노스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 일찍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사람들, 스포츠 신문부터 시작해서 4대 일간지를 모두 읽어 버리는 사람들, 어제 미뤄 둔 일을 새벽부터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새벽 시간은 추가된 ‘냉면 사리’처럼 2시간을 덤으로 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거인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거인들은 하루의 30%에 해당하는 새벽 시간을 카이로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새벽 시간에 ‘자기다움’을 위해서 읽었던(Reading) 것으로 나의 일상에서 모든 일을 주도(Leading) 해야 한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4. 자기다워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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