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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행하다. 새벽 나라로 여행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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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것은 떠오르는 태양이 아니라 새벽의 단잠을 흔들어 깨울 만한 감동의 그 무엇이다. 바로 그 감동이 새벽 거인이 되는 유전자이며 자기다움의 중심축이다. 

 

 

위대한 성인과 성공한 경영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새벽에 깨어 있었다는 점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 성공하는지 아니면 성공하는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는지를 연구했지만, 분명한 것은 성공한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벽을 깨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새벽 거인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과연 새벽 거인은 누구일까?

 

나는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위대한 성인부터 탁월한 경영자까지 모두 찾아보았지만 정작 그들이 새벽에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새벽 거인들이 가진 몇 가지 패턴은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신 주변에 이 같은 새벽 거인이 있다면 내가 뽑은 공통점들에 대입해 보라.

 


 

여기서 말하는 새벽 거인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은 사람들이다. 즉 과거와 미래, 생각과 행동이 일치된 사람들이다. 목표(무엇)와 목적(왜)을 일치시킨 사람들이다. 가치와 하나 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새벽에 일어나 목적이 있는 한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치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만의 가치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벽에 품었던 놀라운 아이디어와 비전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자신이 발견한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나누어 준다. 

 

가치가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초라한 일이라도 달려갈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기사명선언서를 통해 날마다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침묵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감동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삶을 단순하게 살아간다. ‘생각’의 범위를 넘어 ‘기도와 명상’으로 내면의 깊이를 조절할 줄 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새벽 거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새벽에 관한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새벽은 미래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새벽 시간은 미래의 시간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 내게 일어날 사건들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루의 새벽은 하루의 미래라고 말할 수 있으며, 한 달의 새벽은 1년의 미래이고, 1년의 새벽은 10년의 미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10년의 새벽을 통해서 평생의 일들을 조정할 수 있고 ‘나’를 만들 수 있다.

 

‘조정 가능한 나의 인생’이라는 인생의 이벤트 차원에서 새벽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새벽 시간 자체가 그런 에너지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새벽에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새벽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새벽에 일어나서 오전에 할 일들을 앞당겨 하는 사람들이 갖는 부지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에게 새벽이란 단지 ‘발 빠른 업무 연장’일 뿐이다. ‘미래’를 논할 새벽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새벽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2상한(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의 일들을 하는 시간으로 하루의 목표와 결과를 상상하는 일, 관심 분야의 책을 읽고 명상하는 일, 그리고 나를 만나는 일이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원하는가? 성장하기 원하는가? 성숙하기 원하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새벽에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의 핵심에는 ‘숙성’이 있다. 탁월한 상품의 핵심에는 ‘완성’이 있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반성’이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습관적인 반성을 하는 사람은 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어제의 반성을 하는 사람은 인격이 완성된다. 반성을 통해서 완성되는 과정에는 ‘침묵’이 필요하고 그 침묵의 시간은 바로 새벽이 가장 좋다.

 


 

쇼펜하우어는 시간의 비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비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시간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생각이다. 만약 새벽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든다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질 70% 혹은 90%의 시간을 비범하게 만드는 마술의 시간이 된다. 인간이라면 지금도 계속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간을 그대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사용할 것인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폴 데이비스도 그의 저서인 《시간의 패러독스》에서 “똑같은 시간이라도 사용자에 따라 길거나 짧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위한 시간’으로서 새벽 시간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

 


 

예를 들어 새벽을 대하는 자세를 바꿀 때 일상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새벽 시간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밤에 일찍 자야 한다. 따라서 늦은 밤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프로그램들과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텔레비전을 끄고 과감히 잠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잠자기 전의 1시간 정도는 다음날 새벽에 묵상할 책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숙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잠들기 직전 5분은 새벽을 위한 준비의 마음을 갖는 시간이다. 

 

아주 단순한 변화이지만 새벽 시간을 기준으로 맞춰진 저녁 시간은 남들보다 안정적이고 균형감을 가지도록 한다. 이렇듯 새벽을 소중히 여긴다면 새벽도 당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렇게 해서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안에서 이미 기적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새벽 거인이 되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거나 새벽과 같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시작(Begin)이다. 그러나 새벽 거인의 기원(Origin)은 새벽에 맞춰 놓은 자명종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새벽을 여는 것은 떠오르는 태양이 아니라 새벽의 단잠을 흔들어 깨울 만한 감동의 그 무엇이다. 바로 그 감동이 새벽 거인이 되는 유전자이며 자기다움의 중심축이다. 새벽에 떨리는 가슴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처음부터 새벽을 깨우는 그것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출발은 새벽 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새벽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매우 무겁고 느리게 진행된다. 한마디로 침묵의 시간이다. 토머스 무어는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장 깊은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가치와 목적이 없는 상황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진다면 좌절의 늪에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침묵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순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슬픔,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 자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침묵은 갑자기 절대 고독으로 변질된다. 이런 새벽 침묵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감동을 품고 있는 가치’가 필요하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빠지지 않게 하는 하나의 정지선 역할을 한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4. 자기다워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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