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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원형(Archetype), 브랜드의 컨셉이 되다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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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한성대학교 미디어컨텐츠학부 교수 지상현

 

태고적 이미지(primordial images). 1912년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은 ‘집단적 무의식’을 설명하며 이 단어를 꺼내 들었다. 집단에게는 공통적으로 저장된 심상인 원형이 있다고 얘기하며, 그것을 태고적 이미지라고 말한 것이다. 보디랭귀지. 해외 어디를 가든,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작은 몸짓 하나로도 몇 마디 말보다 아주 쉽게 의사가 전달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어떤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원형이란 이런 것이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지만, 의식보다 무의식에 깊게 자리 잡아 분명 경험적으로는 처음 맞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친밀한 것 말이다. 지상현 교수는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이 ‘원형’이란 말을 내려놓지 않았다. 디자인과 심리학이라는 언뜻 보기에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학문을 연구하며, 그가 요즘 관심 있게 바라보는 화두는 원형이라고 했다.


“심리적인 욕구에서 출발했죠. 사람들이 어떤 현상에 대해 반응할 때는 그에 대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욕구를 쫓아가다 보니 각각의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원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 거죠.”


하지만 결국 이 원형의 뒤에 자리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근원을 보지 않으면 그것은 껍데기를 아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상현 교수를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디자인이든 심리학이든 아니면 디자인 심리학이든 그 출발선상에 ‘인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브랜딩이란 인간의 심리, 그 마음속 원형에 거스르지 않고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순리를 따라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더들이 갖춰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란 사소한 것에서 현재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랜드, 
소비자의 
심리적 욕구를 찾아라

 

UnitasBRAND 시각디자인과 심리학이라는 두 가지 학문을 모두 전공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창이 두 개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두 개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교수님이 정의하시는 브랜드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상현(이하 '지') 한마디로 말하면, 브랜드는 ‘문화’, 좀 더 정확히 말해 ‘기업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의 문화가 다르고, 구글의 문화가 다르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카레 느와르(Carre Noir)의 설립자인 제라르 카롱(Gérard Caron)이 이런 말을 했어요. 

“개인의 인상은 그 사람의 생각, 행동, 외모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이 말을 빌려 와서 기업을 살펴보면 기업의 경영 철학 및 전략, 제품의 속성, 시각적 이미지가 모여서 기업의 총체적인 이미지, 그러니까 인상을 만든다고 할 수 있죠. 이 기업의 인상을 다른 말로 하면 기업이 지향하는 문화죠. 브랜드는 바로 이 기업의 문화가 응축되어서 탄생한 것이 아닙니까. 

 

디자인 기업 카레 느와르(Carre Noir)의 설립자인 제라르 카롱(Gerard Caron)

 

소비자가 어떤 브랜드를 소비할 때는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속성은 물론, 그 브랜드에 담긴 기업의 철학도 살펴보고, 디자인도 찬찬히 느껴 보며 이것이 총체적으로 마음에 흡족했을 때 소비하게 되죠. 그러니까 소비자가 브랜드를 접할 때는 바로 총체적인 그 기업의 문화를 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문화라는 관점에서 브랜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접할 때는 바로 총체적인 그 기업의 문화를 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문화라는 관점에서 브랜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UnitasBRAND 그렇습니다. 브랜드는 단순하게 제품이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철학, 혹은 기업의 스피릿,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디자인 등이 응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가 이번 특집에서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온 이유도 이것입니다. 브랜드가 더 이상 제품이 아니라, 기업이 지향하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 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경영학이나 경제학이 아니라 인문학에서 브랜딩의 방법론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질문부터 드려 보고 싶군요. 만약 ‘브랜드 인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좌가 개설된다면 교수님은 어떤 강의를 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사실 가장 관심 있게 다루고 있는 화두 중  하나가 ‘욕구’입니다. 심리적 욕구를 말하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질문하셨다시피 더 이상 사람들은 제품이 가진 본연의 성격, 그러니까 사용가치 때문에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 제품을 소비하는 걸까요? 거기에는 바로 그 사람만이 가진 혹은 그 집단만이 가진 어떤 심리적인 욕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작은 여기서부터 풀어가야겠지요. 심리적인 욕구는 어떻게 생기는가,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 제품을 소비하는 걸까요?
거기에는 바로 그 사람만이 가진 혹은 그 집단만이 가진 어떤 심리적인 욕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 가지 재미있는 예부터 들어 볼까요. 일본의 안리츠(Anritsu)라는 정밀측정기기 전문 회사에서 한 신문에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언뜻 보면 별로 특이할 것이 없는 광고였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설문 조사를 해본 결과 응답자의 70%가 이 광고를 보았다고 답했다는 겁니다. 이 수치가 놀라운 것은 같은 날 신문의 더 좋은 지면에 실린 유명 브랜드인 소니와 후지쯔 광고를 보았다는 응답자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광고를 ‘확실히 보았다’고 응답한 사람이 24.6%이었고, ‘광고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답한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34.1%였다는 사실입니다. 뭔가 오류가 있는 결과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에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각 개인들은 마음속에 하나의 공통된 심상인 ‘원형(archetype)’인
원(圓), 늙은 현자, 태모(太母), 영웅, 모녀, 아동, 그림자, 아니마(여성성)와
아니무스(남성성)을 모티브로 광고를 했다는 겁니다. 

 

 

일본의 안리츠(Anritsu)는 과거 무의식적으로 공유된 개인들의 공통된 심상을 이용해 광고해서 큰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 기업의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면 다름 아닌 스위스의 정신 심리학자인 칼 융이 말한 ‘*원형(archetype)’을 모티브로 광고를 했다는 겁니다. 융은 인간에게는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심상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주 오랜 경험들이 누적되어서 각 개인들은 마음속에 하나의 공통된 심상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것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얘기했는데, 원(圓), 늙은 현자, 태모(太母), 영웅, 모녀, 아동, 그림자, 아니마(여성성)와 아니무스(남성성)가 그것이에요. 앞서 말한 일본 회사는 이중 늙은 현자와 태모를 모티브로 한 광고를 게재했던 겁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소비할 때 그 심리적 욕구의 근원을 바로 이 원형을 가지고 설명해 볼 수 있다는 거거든요. 

 

 

원형을 알면 
인간이 보인다

 

UnitasBRAND 브랜더들이라면 필독서 중의 하나인 《컬처 코드》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G. Clotaire Rapaille)는 이 책을 통해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문화적 차이가 어떻게 브랜드를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어요. 지프를 예로 들어 보면,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적인 경험이 달라 프랑스인에게는 ‘해방’으로, 미국인에게는 ‘자유로움’으로 지프가 인식된다는 거죠. 교수님이 말한 ‘원형’도 바로 라파이유가 말한 이 컬처 코드와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맞습니다. 융이 말한 여덟 가지 원형은 인류 전체를 통합하여 분류한 것이지만, 그것을 국가, 집단, 그리고 개인으로 쪼개서 나가면 그 원형은 훨씬 더 많아질 수 있는 거죠. 라파이유(G. Clotaire Rapaille)는 국가마다 특정한 브랜드를 바라볼 때 어떻게 다른 원형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하여 같은 브랜드라 할지라도 그것에 반응하는 각 나라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여 주었죠.

 

클로테르 라파이유(G. Clotaire Rapaille)

 

앞서 예로 든 것처럼 지프의 경우, 미국인들은 말을 타고 산과 들, 심지어 강까지 건너며 서부를 개척했기에 지프의 전천후 기동성에서 말과 같은 자유로운 원형을 보죠. 그에 반해 프랑스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지프를 타고 파리로 입성해 어린이들에게 초콜릿을 뿌리는 미군을 보았던 경험이 각인되어 있어 그들에게 지프는 해방자의 원형으로 전달됩니다.

 

지프라는 브랜드도 각각의 니라나 집단들에게 심어진 원형(코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처럼 각각의 집단들에게 심어진 원형은 조금씩 달라요. 커피를 예로 들어 볼까요? 저에게 있어 커피는 ‘사색’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어린 시절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과학자나 교수가 홀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장면이 저에게는 굉장히 깊게 각인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제 친구는 커피를 ‘친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커피는 항상 두세 사람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마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죠. 커피에 대한 원형이 이처럼 다르기 때문에, 제가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그 친구는 항상 “무슨 일이 있어?”라고 저에게 묻습니다.

 

커피에 대한 원형조차도 각 사람의 원형에 따라 다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구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동일한 욕구라 할지라도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릅니다. 만약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형을 알게 된다면, 그 욕구를 브랜드가 어떻게 해소해 줄 수 있는지 또한 알 수 있겠죠. 그저 제품을 만들어서 돈만 벌려하는 브랜드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욕구를 해소시켜 주려고 하는 브랜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제품을 만들어서 돈만 벌려하는 브랜드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욕구를 해소시켜 주려고 하는 브랜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UnitasBRAND 교수님이 쓴 《아이폰 성공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아이폰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로 ‘노마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욕구를 디자인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의 욕구를 어떻게 브랜드화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은데요.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욕구를 보이는 브랜드로 만들어 준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결국, 제품을 만들어 돈만 벌려고 하는 브랜드와는 차이를 넘어 아예 차별을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심리적인 욕구가 가장 많이 발현되어 있는 것이 SF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SF영화를 보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바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세상, 그러니까 디지털 라이프입니다. 단적으로 ‘매트릭스’라는 영화만 봐도 전화 한 통화로 실제 세계와 허구의 세계를 왔다갔다하지 않습니까. SF영화에서 이런 것이 자주 비춰진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욕구가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는 거죠.

 

아이폰은 제품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를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통찰력이 있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 욕구에 불쏘시개를 꽂아 불을 지핀 겁니다. 애플은 원래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아이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가 제품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를 보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저 컴퓨터를 만드는 것에 충실했다면 맥북의 다음 버전을 고민했겠죠. 그렇다면 애플에서 선보일 다음 제품은 더 얇은 맥북이나 혹은 더 작은 맥북이 출시되었겠지요.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디지털 라이프를 더 즐겁게, 더 풍족하게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라는 기발한 휴대폰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디지털 라이프를 더 즐겁게, 
더 풍족하게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UnitasBRAND 하지만 소비자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욕구를 발견하는 것이 사실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가 추앙받는 이유도 그가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숨어 있는 그 욕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하신 SF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한데요. 

 

얼마 전 TV에서 한 모델로 나왔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는 애니메이션 특수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데요, 왜 이러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어렸을 때 동네 벽에 붙어 있는 스타워즈 포스터를 보면서 매일매일 꿈꿨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인 욕구 중의 하나는 바로 미래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미래 세상이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지고 있는 어떤 불편한 것들을 없애 주는, 그런 세상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죠.

 

 그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불러내어 먼저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인문학자들입니다.

 

‘유토피아’가 무슨 뜻입니까. 이상향, 그러니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인간은 언제나 유토피아를 욕망하죠. 그렇기 때문에 SF영화는 인간이 가진 심리적인 욕망, 그리고 그 원형까지도 알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스타워즈 포스터를 보며 꿈을 키웠던 사람이 비단 저 사람뿐이겠습니까. 하지만 누구나 그 꿈을 이루지는 않죠. 그렇다고 그 꿈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이라고 하잖아요. 그 무의식 어딘가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불러내어 먼저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인문학자들입니다. 지금 인터뷰의 주제가 브랜드 인문학인데, 요점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 같네요.

 

 

인문학, 
욕구를 보는 창을 열다

 

UnitasBRAND 브랜더들이 현재 왜 인문학에 대해 이토록 갈급해하는지 또 하나의 실마리를 푼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들은 어떤 눈을 가졌기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욕구를 누구보다 잘 볼 수 있는 걸까요? 그들의 남다른 눈썰미를 브랜더들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에밀 졸라가 1883년에 쓴 *《부인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이 책은 ‘쇼핑’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문학에서 다룬 작품이에요. 이 책에서 쇼핑을 무엇이라고 얘기하냐면 “쇼핑은 우월한 위치에서 안전하게 세상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말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아마도 남성 분들은 도통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보일 겁니다. 쇼핑에 대한 원형이 전혀 다르니까요.

 

에밀 졸라가 1883년에 쓴 《부인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에서 쇼핑은 우월한 위치에서 안전하게 세상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서술되어 있다.

 

주부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고 합니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일상에서 떠났던 주부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어느 때냐고 했더니 다름 아닌 쇼핑 카트를 밀 때라고 했답니다. 즉 주부들에게 있어 쇼핑 카트를 미는 것은 시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던 겁니다. 그런 것 같지 않나요? 주부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점점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죠. 이러한 불안감을 어떻게 하든 해결해야 하는 욕구가 밀려옵니다. 그 욕구를 해결하는 수단이 바로 쇼핑 카트를 미는 순간인 거예요.

 

 

 

인문학자들은 이처럼 관찰력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사건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들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것들을 들추어내어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고 속성이야,라고 말해 줍니다. 

 

 

에밀 졸라가 1800~1900년대에 생존한 작가인데, 당시 그가 문학작품 속에 녹여 놓은 쇼핑에 대한 정의가 지금도 전혀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 인문학자들은 이처럼 관찰력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건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가령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 전쟁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면밀히 관찰하며 그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살펴서 문학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죠. 그들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것들을 들추어내어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고 속성이야,라고 말해 줍니다. 저는 결국 이런 이유로 모든 학문은 인문학을 동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부인들의 천국》

1883년, 에밀 졸라가 파리의 봉마르셰, 루브르 백화점 등을 모델로 구상하여 발표한 소설로, ‘부인들의 천국 백화점’을 경영하는 옥타브 무레와 여직원도니즈 보듀의 사랑 이야기다. 에밀 졸라는 19세기 후반의 사회상을 그리기 위한 배경으로 백화점을 선택했다. 백화점은 살롱 문화로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과거의 풍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당시 여성의 욕망 분출구였으며, 인사(人事)의 새 시대를 열었다.

 

 

 

UnitasBRAND 과거 구글의 부사장 머리사  마이어(Marissa Ann Mayer)도 전체 채용 인원 6,000명 중 4,000~5,000명을 IT 분야가 아닌 인문분야 전공자로 뽑겠다고 할 정도로 기업에서 인문학에 대한 동경을 아예 적극적으로 표하는 것도 인문학이 바로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것을 밝혀 주기 때문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인문학을 동경하는 브랜더들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다면 교수님은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제가 강의할 때면 항상 소개하는 웹툰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것만큼 인문학적인 웹툰, 거기에 심리적 욕구의 원형을 잘 포착해 낸 웹툰이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잘 아실 텐데요, ‘생활의 참견’이라는 웹툰입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실린 적이 있어요. 웹툰 속 주인공이 어느 날 노트북을 하나 장만하죠. 그리고는 이런 대사를 내뱉습니다. “이제 빵빵한 노트북 하나 샀으니,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만 마시만 되겠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노트북을 가지고 싶은 진짜 이유 중의 하나가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노트북을 펼쳐 놓고 싶은 동경을 정확하게 짚어 낸 거죠. 

 

 

우리의 삶 자체가 인문학이라는 겁니다. 모든 학문이 인문학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을 발견해 주기 때문이죠. 


 

이 웹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네덜란드의 사회학자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실험이 말해 줍니다. 그는 각 나라마다 개인성 지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실험해 보았는데요, 실험 결과 서구 사회는 대부분 50점을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46점으로 가장 높을 뿐, 우리나라가 18점, 중국은 15점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낮아요. 이 지수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개인성 지수가 낮을수록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한다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노트북이 스타벅스에서 써야 하는 도구가 되어 버린 것을 방증해 주는 겁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웹툰이에요. 

 

 

좋은 브랜딩이란 이 웹툰처럼, 인간의 심리, 그 마음속 원형에 거스르지 않고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순리를 따라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문학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이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인문학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학문이 인문학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을 발견해 주기 때문이죠. 기업에서는 브랜딩을 한다고 하면서 수천만 원의 광고료를 지불하죠. 

 

하지만 정말 좋은 브랜딩이란 이 웹툰처럼, 인간의 심리, 그 마음속 원형에 거스르지 않고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순리를 따라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더들이 갖춰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란 사소한 것에서 현재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 홉스테드 Geert Hofstede (1928~)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다. 통계적 프레임워크로 국가 간 문화 차이의 실증적 연구를 시도했다. 1980년에는 글로벌 기업 IBM이 진출한 40여 국의 10만 명이 넘는 직원을 대상으로 문화 차이 조사를 실시했고,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가 문화 차이를 고려하여 어떠한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를 제안했다. 이연구를 토대로 홉스테드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적 수용의 적극성 정도를 나타내는 권력 간 거리, 불확실성 회피 성향, 남성 혹은 여성적 문화 등의 네 가지 차원으로 문화 차이를 비교, 분석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원형(RAW)을 이용한 브랜드가 시장에서의 원형(Archetype) 브랜드가 된다. 

‘원형’에 관한 이야기는 늘 브랜딩 솔루션의 중심에 있다.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 전에 ‘원형’에 대한 두 가지 정의(동음이의어)부터 알아보자.

첫째 원형(原形), RAW은 ‘본디의 꼴,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기 이전의 모습’이며, 둘째 원형(元型), Archetype은 ‘어느 민족이나 인종이 같은 유형의 경험을 반복해 생긴 집단적·무의식적 경향 혹은 보편적 상징’이다.
쉽게 말해, “설날 음식은?”이란 질문에 “떡국!”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많으면 떡국은 한국인에게 설날의 원형(Archetype)적 이미지 중심에 서 있다는 의미다(참고로 원형 연구에 매진한 하버드대학교 제럴드 잘트먼 교수에 따르면 서구인에게 야채의 원형은 ‘당근’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상추’가 아닐까?).

어찌되었건 브랜딩에서 원형(RAW, Archetype 모두)의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원형(RAW)을 이용한 브랜드가 시장에서의 원형(Archetype) 브랜드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의 원형(RAW, 예를 들면 펜의 원형인 깃털 펜)이 지닌 속성은 그것이 생기기 전, 인간에게 잠재된 욕구(주로 불만)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기에 그만큼 인간의 본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원형(RAW)에 담긴 스토리를 브랜딩에 활용할 수 있다면 당신의 브랜드를 원형(Archetype)브랜드(예를 들면 펜 하면 떠오르는 몽블랑?)로 만드는 데도 효과적이다. 무의식적 이끌림에 풍부한 스토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 당신 브랜드가 다루고 있는 재화의 태초의 것, 즉 원형(RAW)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지상현 홍익대학교 산업도안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지각 및 인지를 전공하고 심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산업공학과 디자인전공 교환교수, 한국 감성과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디자인학회 학술담당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이자 한성대학교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시각 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한국인의 마음》 《호모 데지그난스》 등의 저서를 비롯, 「시각디자인에서 비인지적 정보처리 외 문화적 원형의 문제」를 비롯한 다수 논문을 저술하였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П. Philosophy) 아름다움의 힘, 브랜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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