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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과 머리에똥, 철학자가 브랜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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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인 브랜드는 단순히 고가가 아니라
명품(名品)이 가진 의미처럼 명예(名譽)로운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생산과 소비 자체가 명예가 되는 브랜드가 인문학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진짜 가짜를 사는 사람과 
가짜 진짜를 사는 사람

 

2011년 10월,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가짜를 만드는 대규모 짝퉁 브랜드 제조업자 일당이 검거되었다. 이들의 수준 높은(?) 짝퉁은 그 품질을 인정받아 국내 판매는 물론이고 해외 수출도 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던 중 유독 머리에 남는 구절이 있었다. 검거된 일당 중에는 22년 동안 가죽 제품을 만든 ‘기술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일생 동안 피혁 제품을 만든 ‘장인’이었지만 생활고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신세를 한탄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한다. 하지만 모든 언론 매체들은 그를 22년 동안 피혁 제품을 제작한, ‘장인’이 아닌 ‘기술자’라고 했다. 


짝퉁 일당이 검거된 2011년 10월 아이러니하게도 제4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1등을 했다는 낭보가 들어왔다. 1967년 제16회부터 출전한 우리나라는 1977년(23회) 대회부터 2009년(40회)까지 대만과 스위스에 한 차례씩 우승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고 17차례 이 대회를 석권했다. 현재까지 우승 17번, 준우승 3번, 3위 2번의 성적이다. 그래서인지 기능올림픽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은 태권도대회에서 1등 했다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기술로 진품에 능가하는 짝퉁을 만들거나 세계가 인정하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우리에게는 기술을 가진 장인과 장인과 같은 기술자가 이토록 많음에도 왜 제대로 된 명품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글의 주제다.

먼저 중국과 함께 세계 짝퉁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2011년에 발표된 특허청 보고서에 의하면 2008년 이후 3년간 국내 위조상품(짝퉁)으로 압수된 물건은 20만 점(196,670점)에 이르고, 총 적발금액은 약 5조 원(4조 8,71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적발된 위조상품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연간 1조 4,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위조상품 적발로 인해 형사 입건된 위조사범은 총 312명으로 연평균 70~80명에 이른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단일 지하경제로서는 최고다.

 

 

그렇다면 지상 명품 브랜드 시장은 어떨까? 구찌, 이브 생 로랑 등을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패션 유통 업체 PPR그룹은 지난 6월 2011년 상반기 총매출액이 72억 2,000만 유로(10조 87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순이익은 4억 6,600만 유로로 23.8% 증가했으며 주당 순이익은 16.3% 오른 3.56유로로 집계됐다. PPR의 대표 브랜드인 구찌와 이브 생 로랑이 이 같은 실적 호조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로 창업 90주년인 구찌의 상반기 총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 늘어난 14억 7,000만 유로를 넘었고, 이브 생 로랑의 매출액은 30%나 증가했다. 
도대체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있고 유럽은 들썩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고객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고객이고, 짝퉁 상품을 만드는 것도 고객이다.

 

PPR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명품업체들이 호황을 누리는 것은 아시아 시장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고 이 같은 성장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명품 브랜드 업계의 리더 격인 LVMH그룹도 호황이다. 같은 날에 발표한 상반기 실적 보고서에서 LVMH의 총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 오른 103억 유로로 집계됐다. 이 기간 동안 순이익은 22% 늘어나 22억 유로를 달성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것 또한 너무 간단한 대답이지만 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고객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고객이고, 짝퉁 상품을 만드는 것도 고객이다.


여기서 잠깐 명품 브랜드를 명품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 짝퉁 기술자도 만들 수 있는 가방을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수백만 원 혹은 수천만 원을 들여 구매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상품의 기술을 초월한 브랜드의 마술에 걸렸기 때문이다. 루이뷔통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비싼 가방을 샀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간단하다.
“루이뷔통이니까!”
짝퉁 루이뷔통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가짜 가방을 샀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도 의외로 간단하다.
“루이뷔통이니까!” 

 

이처럼 진품 루이뷔통을 구매한 사람들은 가짜 루이뷔통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양심을 팔았기에 천박하다고 해서 ‘머리에 똥’이라고 놀리지만, 진품 루이뷔통을 사기 위해서 자기 몸을 파는 사람들도 머리에 똥 이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아시아 소비자들은 명품 브랜드에 눈이 멀어 짝퉁과 진품을 사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다닐까? 사실 서구 명품의 실재를 그대로 이해만 한다면 시장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원래 명품(名品, Masterpiece)이라는 호칭은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명품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축적된 기술의 결정체이고 어떤 기술자도 이 전통과 정통이 하나 된 기술을 쉽게 베낄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생활고에 찌들어 짝퉁 조직에 합류한 기술자가 진품과 진배없는 짝퉁을 만들었을까? 그것을 한국에서는 구별할 수 없어 유럽 본사에 그 진위 여부를 의뢰할 정도였다고 한다. 

 

 

브랜드에서도 가품에 대한 경종을 일으키는 컬렉션을 발표하기도 했다.  ⓒGucci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은 인도와 중국도 수준급이다. 그런데 왜 아시아는 명품은 만들면서도 제대로 된 명품 브랜드는 나오지 않을까? 혹시 나올 수 있다면 언제쯤일까? 분명 역사와 전통을 따진다면 아시아의 기술은 서구권과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는데 말이다. 물론 아시아에서 명품 브랜드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극단적으로 아시아의 서구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져 명품 브랜드 매장은 마치 유럽의 성당이 관광 명소가 된 것처럼 유럽 역사의 기념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왜 아시아는 명품은 만들면서도 제대로 된 명품 브랜드는 나오지 않을까? 
혹시 나올 수 있다면 언제쯤일까?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휴대폰, 가전제품, 그리고 자동차가 세계의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는 아니고 치열하게)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을까? 불과 10년도 안 되었다. 10년 전 한국은 금융위기로 파산 일보 직전이었고 온 국민이 금을 팔아 해외로 수출해 어려운 시기를 뚫고 나갔다. 언제부터 중국의 한국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을까? 1998년부터다. 언제부터 명동은 일본인들로 북적였는가? 정작 우리는 변화 속도를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금을 보면 아찔할 정도로 바뀌었다. 

 

 

 

짝퉁을 만드는 기술자나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이 명품 브랜드에 관한 제대로 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 명품 브랜드 시장은 그 판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요즘 프랑스의 명품 거리에서 줄을 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인이고 10년 전에는 한국인이었고 또 그 전에는 일본인이었다. 이렇게 잠깐 시간을 뒤로 돌려 세계 경제를 살펴보면 서구 명품 브랜드의 수명 주기를 파악할 수 있다. 몇 개를 제외하고 수많은 서구 명품 브랜드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이유는 아시아 라이선스 사업의 실패와 미국 시장에서의 완패다. 특히 인터넷으로 인해 세계 문화와 구매행태는 더욱 평평해질 것이고 그간 신비로워 보인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매출이 늘겠지만 그만큼 가치는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만약 아시아의 소비자가 브랜드(특히 명품 브랜드)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짝퉁을 만드는 기술자나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이 명품 브랜드에 관한 제대로 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 명품 브랜드 시장은 그 판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명품은 기술과 
예술의 상업적 통합

 

특정 매체에서 애플과 경쟁하려는(?) 기업의 제품 성능의 탁월함만으로 애플보다 월등히 좋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기능에 관한 이야기다. 브랜드는 탁월한 기술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소비자가 만들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브랜딩 할 수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루이뷔통도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지금의 루이뷔통이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한 귀족이라는 특별한 사회 소비 계층 때문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여행과 휴가는 오직 귀족과 왕족들만 누리는 사치였다. 

 

상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소비자가 만들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브랜딩할 수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그런 사치의 향유에서 루이뷔통이 처음부터 ‘사치품’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많은 물건을 제대로 정리 정돈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왕실과 귀족들에게 납품하는 튼튼한 ‘상품’으로서 존재했다. 귀족 계층이 산업혁명과 함께 유명무실해지고 이런 사치스러운 여행과 휴가가 전 계층으로 일반화되면서 루이뷔통도 위기를 맞을 듯이 보였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렀다.

 

 

사치의 향유에서 루이뷔통이 처음부터 ‘사치품’이었던 것은 아니다.
귀족이 누린 호사였던 여행과 휴가를 즐기고 싶어 했고
이런 욕구는 거대한 럭셔리(luxury) 시장을 열었다. 

 

 

신흥 계층은 귀족은 될 수 없어도 옛 귀족이 누린 호사였던 여행과 휴가를 즐기고 싶어 했고 이런 욕구는 거대한 럭셔리(luxury) 시장을 열었다. 루이뷔통처럼 귀족을 대상으로 상품을 만들며 이어지던 ‘가업’은 ‘기업’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귀족들의 문화를 선망하던 신흥 부자들에게 ‘여행가방’이라는 소품은 귀족 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루이뷔통이 되었다.

 

루이뷔통처럼 귀족을 대상으로 상품을 만들며 이어지던 ‘가업’은 ‘기업’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귀족들의 문화를 선망하던 신흥부자들에게 ‘여행가방’이라는 소품은 귀족 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루이뷔통이 되었다.

 

 

“Volez, Voguez, Voyagez – Louis Vuitton” Exhibit  ⓒWWD

 

귀족 계층의 몰락과 더불어 또 다른 사람들이 지각 변동을 겪었는데 그것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하던 예술가들이다. 귀족이 몰락하면서 예술가들은 자리를 잃었고 후원자를 잃은 예술가들은 귀족을 위한 순수 작품에서 산업혁명 이후에 새롭게 일어난 신흥부자 계층들이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상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술가의 후원자들이 귀족에서 상인으로 바뀐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작품과 상품의 오묘한 융합과 진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가 말하는 명품 브랜드의 빅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귀족이 몰락하면서 예술가들은 자리를 잃었고 산업혁명 이후에
신흥부자 계층들이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상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신흥부자 계층들은 돈을 쓰면서 자신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 했다. 말 그대로 귀족처럼 살고 싶은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럭셔리의 어원이 ‘풍요함’인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제품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알리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계급을 만들려 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팽창으로 인해 수많은 신흥 부자들이 만들어지면서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부족해졌고 미래에 브랜드의 주인이 될 장인들도 새로운 신흥부자 세력에 합류하게 되었다. 신흥 부자들 중에도 진정한 귀족처럼 예술가들을 진심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이용할 뿐이었다. 명예와 가치를 중요하시는 진정한 귀족들의 예술가 후원과 신흥 부자들의 예술가 후원은 근본부터가 달랐다. 신흥부자들은 순수 예술보다는 상품 가치를 올리는 쪽으로 더 많은 지원을 했다. 

 

명예와 가치를 중요하시 하는 귀족들과 달리, 신흥부자들의 예술가 후원은 
순수 예술보다는 상품 가치를 올리는 쪽으로 더 많은 지원을 했다. 

 


후원을 받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더욱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영특한 계층, 즉 예술과 문화를 디자인하여 상품을 만든 예술가들은 암묵적인 계층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예술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런 브랜드는 신흥 부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가치, 즉 소유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브랜드를 팔기 시작했다. 

 

 

그런 브랜드는 신흥부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가치, 즉 소유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브랜드를 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루이뷔통을 가지고 있는 LVMH그룹이 말하는 그들의 비전을 살펴보자.“LVMH 그룹의 미션은 서구 ‘Art de Vivre(생활 예술 사조)’의 가장 세련된 품질을 전 세계에 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아함과 창의성의 동의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제품, 그리고 문화적인 가치는 전통과 혁신을 통합하고 꿈과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만약 루이뷔통의 제품을 들고 있다면 그것은 가방이 아니라 생활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셈이다.  

 

 

“LVMH 그룹의 미션은 서구 ‘Art de Vivre(생활 예술 사조)’의 
가장 세련된 품질을 전 세계에 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아함과 창의성의 동의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제품, 그리고 문화적인 가치는 전통과 혁신을 통합하고 꿈과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어찌 되었든 이 한 구절에는 LVMH가 수백 년 동안 상품을 팔아 오면서 이해하게 된 브랜드의 정체성과 미래 시장에서 명품 브랜드가 가져야 할 방향성, 그리고 누가 자신의 상품을 살 것인지를 정확히 보여 주고 있다. 예술은 종교 지도자, 왕, 그리고 귀족들의 독점영역이었다. LVMH는 그 독점을 생활 예술, (쉽게 말하면) 브랜드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게 하는 꿈과 판타지를 체험시키겠다는 것이다. 

 

단지 손가방 하나만으로 귀족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더 고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이 실제로 믿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1910년 루이 비통 제품 카탈로그의 속표지를 장식했던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의 드로잉 /  루이 비통의 예술, 건축, 패션 여정을 다룬 책  ⓒLouis Vuitton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사람과 짝퉁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명품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가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쯤에서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사람과 짝퉁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명품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가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것을 꿈과 판타지라고 표현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욕망과 망상에 불과하다. 그들이 만든 것이 진정한 예술일까?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귀족(貴族, Nobility, 말 그대로 존귀한 계층)이 될 수 있을까? 

분명 아니지만 현실 시장에서는 브랜드를 예술로 감상하면서 구매한다. 브랜드만큼 자신의 상품에 예술성을 보여 주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예술이 귀족의 감상품이었다면 이제 귀족이 없는 예술은 브랜드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대중 예술이라는 필수품이 되었다. 

 

예술이 귀족의 감상품이었다면 이제 귀족이 없는 예술은 
브랜드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대중 예술이라는 필수품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신흥 부자가 많고 서양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명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59년이 흐른 2012년까지 세계가 놀랄 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었고, 그만큼 신흥 부자들도 많지만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하는 신진 귀족 계층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최근 들어서 신흥 부자들과 경영인들이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고 서점의 인문학 코너를 뷔페 즐기듯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이것 또한 사업에 이용하고 격을 높이기 위한 흉내일 뿐이지 예술, 문화, 그리고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가치를 올리는 방법은 소위 스펙 쌓기와 돈 외에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개처럼 버는 것은 배웠어도 정승(귀족)처럼 쓰는 문화는 이제 착상 단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가치를 올리는 방법은 소위 스펙 쌓기와 돈 외에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예술을 후원하는 기업들과 사람을 살펴보면 대부분 마케팅의 일환일 뿐(심한 경우는 재테크)이고 문화에 대한 가치 보존과 헌신을 위한 경우는 역시 극소수다. 

 

 명품 브랜드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을 비롯한 전 분야에 이는 인문학 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것이 단지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명품 브랜드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자양분은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무조건 서양 명품 브랜드 구매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명품 브랜드를 찾는 안목을 주기 때문이다.

 

ⓒLouis Vuitton

 

명품 브랜드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브랜드를 뿌리부터 살펴보면 한 사람의 장인이 보여 준 몰입에서 시작한다. 그의 일생을 통해 상품이 작품의 수준까지 다다라야 그때 비로소 명품으로서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된다. 이런 숙성과 제련의 과정에서 예술이 상품에 결합되거나 상품을 작품처럼 만드는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되어 명품 브랜드의 뿌리가 된다.

 

 

뿌리 없이 화려함과 뉴스로 꾸미고 명품 브랜드를 카피하거나 흉내 내는 ‘고가 브랜드’는
그저 화려한 꽃병에 꽂아 놓은 꽃꽂이에 불과하다.

 

 

그 뿌리를 통해 꽃에 해당하는 가치(LVMH는 이것을 ‘생활 예술 사조’라고 말한다)가 피어나 명품 브랜드란 열매를 맺는다. 이런 뿌리 없이 화려함과 뉴스로 꾸미고 명품 브랜드를 카피하거나 흉내 내는 ‘고가 브랜드’는 그저 화려한 꽃병에 꽂아 놓은 꽃꽂이에 불과하다. 물론 짝퉁은 생화(生花)를 흉내 낸 조화(造花) 일뿐이다. 여기서 인문학적 교양은 이것을 알아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소비자는 루이뷔통과 머리에똥을 구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양 고가 브랜드와 진정한 의미의 명품 브랜드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똥과 된장을 구별하게 된다.  

 

 

물론 짝퉁은 생화(生花)를 흉내 낸 조화(造花) 일뿐이다. 
여기서 인문학적 교양은 이것을 알아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 세계의 어두운 곳, 
공생과 
기생의 법칙

 

명품 브랜드라고 불리는 브랜드라고 무조건 처음부터 혈통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출발은 품질 좋은 상품에서 시작했다. 명품 브랜드도 어떤 가치(실체)의 상징이 된 상품이고 시쳇말로 존재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진짜처럼 보여 주는 가짜(진짜 가짜, 명품) 일뿐이다. 에르메스 가방에 에르메스 심벌이 없다면 누가 1,000만 원짜리 소가죽 가방(한우 한 마리 가격은 평균 400만 원이다)을 들고 다니겠는가?  

 

ⓒHermes

 

명품 브랜드라고 불리는 브랜드라고 무조건 처음부터 혈통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출발은 품질 좋은 상품에서 시작했다. 

 

 

성공한 자신이 진짜 명품 인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진짜 가짜인 명품을 사는 사람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자신도 명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짜 진짜를 사는 사람들 간에 묘한 공생의 관계가 있고, 진품과 짝퉁에는 묘한 기생 관계가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관계를 이루는 법칙도 브랜드의 법칙에서 나온 변칙에서 만들어졌다.

 

 

놀라운 것은 이 두 관계를 이루는 법칙도 브랜드의 법칙에서 나온 변칙에서 만들어졌다.

 

 

 

브랜드는 두 개의 브랜딩 법칙에 의해서 구축되는데 첫 번째 법칙은 ‘다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이 브랜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품질과 전통이 뛰어난 상품에 불과하다면 누가 살까? 이것이 기준이라면 이미 아시아에서도 수천 개의 명품 브랜드가 나왔을 것이다. 상품의 품질이 명품이라고 명품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품질과 혁신만으로 명품을 만들 수 없다. 여기서 필요 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식별할 수 있는 ‘브랜드’다.

 

 

첫 번째 법칙은 ‘다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이다. 
여기서 필요 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식별할 수 있는 ‘브랜드’다.

 

 

 

결국 명품이 여기서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차별화 방향은 100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소가죽을 찾는 것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현재 명품 브랜딩의 중심축은 첫 번째 법칙보다 지금 소개할 두 번째 브랜딩 법칙에 가깝다. ‘남들이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에 천만 원이 넘는 명품 백을 들고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면 그것을 도대체 누가 살까? 명품 브랜드의 특성 중 하나는 인지도에서 비교우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들고 있는 브랜드를 알아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현재의 명품 브랜드는 수백 만 원하는 상품 광고를 정상적인 수입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20대 혹은 주부들이 보는 매체에 노출한다.

 

명품 브랜딩의 중심축은 첫 번째 법칙보다
두 번째 브랜딩 법칙에 가깝다. ‘남들이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현재의 명품 브랜드들은 광고를 통해서 상품의 정보가 아닌 부러움과 욕망의 대상을 보여준다. 비록 지금 당장은 구매력이 없는 예비 고객일지라도 이것을 들고 있는 자신들의 타깃 고객들을 모델화하여 찬사를 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브랜드들의 광고 목적은 달성된다. 제아무리 최고의 명품 브랜드라고 스스로 우겨도 브랜드 제2법칙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물론 명품 시장 주변에 기생하는 짝퉁도 아무도 모르는 명품 브랜드는 절대 짝퉁으로 만들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들은 브랜드를 넘어 귀족을 결정하는 훈장이 되어 사람들에게 구매는 곧 신분 상승이라는 환상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으로 자신의 가치(귀한 존재)에 관한 결핍을 메우고자 명품 브랜드를 구매한다. 돈으로 그것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은 극단적인 두 가지 방법을 택한다. 하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뒷골목이나 카페에서 은밀하게 짝퉁을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관계 대가로 명품을 사주는 중년 남자인 슈가 대디(일본에서 원조 교제를 하는 중년 남자의 통칭)를 만나는 것이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오늘날 명품 브랜드 바로 밑도 이처럼 어둡다.

 

명품 브랜드는 그 자체가 가치의 실재가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의 복제다.  

 

 

앞서 언급했듯이 명품 브랜드는 그 자체가 가치의 실재가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의 복제다. 그런 복제를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짝퉁을 진짜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느껴야 하는 것은 창피함과 혐오감이다. 우리나라에 짝퉁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계층이 많다는 것이고 또한 그런 탐욕과 욕망에 찬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을 가지게 되면 당연히 짝퉁을 사지 않을 것이고 진품을 사게 된다. 

 

 

우리나라에 짝퉁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계층이 많다는 것이고
또한 그런 탐욕과 욕망에 찬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모방은 최고의 아첨이고, 위조품은 악이 선에게 표하는 경외감이라는 말이 있다. 귀족이 확실히 귀족의 위치를 누리려면 평민과 천민이 있어야 하듯이 브랜드는 사회적인 신분과 계층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가 원하는 짝퉁은 누구나 판별할 수 있는 짝퉁이다. 이런 짝퉁은 일반인들이 진품을 구매하기까지의 밑밥이 된다. 이런 짝퉁을 사는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를 살 수 없기에 신경도 쓰지 않지만, 명품 브랜드들은 짝퉁이 도를 넘어서 거의 진품처럼 만들어 자신의 고객을 빼가는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어 2011년 10월처럼 짝퉁 소탕을 감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 이 짝퉁을 만들어 파는 사람보다 더 악한 암적인 존재들이 있다. 명품 브랜드를 똑같이 만들어 팔지 않고 법적으로 문제 없는 선에서 비슷하고 싸게 만들어서 정상적인 유통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브랜드 장사치들이다. 

 

에르메스의 켈리백과 이른바 눈알 가방이라 불리는 플레이노모어는 디자인 모방으로 법적공방을 가지기도 했다.

 

양아치는 거지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고 파렴치는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칭한다. 장사치는 장사하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인데 브랜드 장사치는 이 세 가지의 ‘치’들을 결합한 사람이다. 그들은 벤치마킹이라는 면죄부를 들고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부끄러움 없이 거지 근성으로 카피한 브랜드를 운영한다. 요리에 비교한다면 맛을 내기 위해 먹는 사람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고 조미료를 쏟아붓는 사람이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나온 상품들이 최신 트렌드와 멋진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훔친 창조품을 걸치게끔 하며 자신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번듯하게 성공 모델 브랜드가 되고자 브랜드 장사치들은 ‘창조적 모방’이라는 경영 용어를 쓴다. 그러나 실상은 ‘적절한 카피’다. 창조적 모방과 벤치마킹이라는 단어는 진짜 의미를 상실한 채 순진하고 창조적인 디자이너와 마케터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최면술이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나온 상품들이 최신 트렌드와 멋진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훔친 창조품을 걸치게끔 하며 자신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기업인들이 경영학을 몰라서가 아니라 
인문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장에서 공생하는지 아니면 기생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런 부끄러운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기업인들이 경영학을 몰라서가 아니라 인문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자들이 명품 브랜드의 품질 수준을 못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적 수준이 따라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시장에서 공생하는지 아니면 기생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원본과 원형은 숭고한 창조의 가치를 지닌 개념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상품을 만든 것이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 브랜드다. 

 

 

브랜드 입문학은 
브랜드 인문학 

 

대부분의 인간은 원본으로 태어나 살면서 점차 비슷비슷한 군상 중 하나가 되어 복제본이 되어 죽는다. 복제품 인간들은 비슷한 성격, 비슷한 취향, 비슷한 브랜드,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꿈, 그리고 비슷한 복지 수준을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원본이었기에 사물의 원형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원본과 원형은 숭고한 창조의 가치를 지닌 개념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상품을 만든 것이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 브랜드다. 

 

 

원본과 원형은 숭고한 창조의 가치를 지닌 개념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상품을 만든 것이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 브랜드다. 

 

 

더 나아가 ‘명품’ ‘럭셔리’ 브랜드는 그 원형을 추구함을 넘어서 원형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에르메스는 에르메스가 되고자 하지 다른 명품이나 루이뷔통처럼 되려고 하지 않는다). 명품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 자체가 원형은 아니다. 만약 5,000 년 전에 죽은 미라 옆에 있는 가방을 원형으로 여기고 그와 똑같이 만든다고 해서 그 가방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원형은 보이지 않는 가치이고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브랜드다. 그래서 브랜드는 지적인 설계다.

 

인간이 추구하는 원형은 보이지 않는 가치이고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브랜드다.
그래서 브랜드는 지적인 설계다.

 


브랜드, 그중에서도 명품 럭셔리 브랜드가 되려면 상품(Product)보다는 오브제(Objet)가 되어야 한다. 오브제란 꽃꽂이에서 꽃 이외의 재료를 말하며 초현실주의 미술에서는 작품에 새로운 느낌, 보이지 않는 욕망과 환상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적인 물체를 이르기도 한다. 꽃병에 아름다운 꽃이 꽂혀 있지만 주변에는 칼, 머리카락, 생선 머리, 구슬이 있다면 그 그림은 우리가 느껴야 하는 아름다움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명품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은 단순히 물건을 넣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 ‘오브제’ 다. 

 

초현실주의 미술 오브제 아트(Objet)의 시작이 된 마르셀 뒤샹의 샘(1917년도 작)

 

명품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은 단순히 물건을 넣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 ‘오브제’ 다. 


럭셔리의 어원이 ‘고가’가 아니라 ‘풍요함’이듯 럭셔리 브랜드는 ‘풍요함’을 지닌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풍요로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고가 상품이 럭셔리 브랜드라 불리는 오늘날의 의미를 넘어 은유와 상징이 풍부한 브랜드가 진짜 럭셔리 브랜드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할리데이비슨, BMW 모터사이클, 그리고 야마하 모터사이클 브랜드를 가지고 연상 게임을 할 경우 어떤 브랜드가 더 많은 연상 단어를 가지고 있을까? 

연상 게임을 할 경우 어떤 브랜드가 더 많은 연상 단어를 가지고 있을까? 

 

오늘날의 의미를 넘어 은유와 상징이 풍부한 브랜드가 진짜 럭셔리 브랜드라는 말이다. 


만약에 이 세 개의 브랜드를 보여 준 다음 ‘젊음의 향연’이라는 키워드를 말했을 때 눈은 어떤 브랜드를 가리키고 있을까? 죽기 전에 꼭 타 보고 싶은 모터사이클이라는 말을 했을 때 가슴은 어떤 브랜드를 향해 뛰고 있을까? 이 질문에 반응하는 브랜드가 의미와 상징으로 점철된 명품 럭셔리 브랜드다. 셰익스피어는 브랜드를 몰랐지만 인간을 알았기에 “인간은 꿈의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꿈의 재료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은유와 상징이다. 

 

셰익스피어는 브랜드를 몰랐지만 인간을 알았기에 “인간은 꿈의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꿈의 재료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은유와 상징이다. 



‘가격이 높을수록 좋은 브랜드다’는 정의는 브랜드 업계에 몸담고 있다면 뻔히 알고 있는 거짓이지만 그 실상을 모르는 일반 소비자들은 오직 브랜드의 가치를 가격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과 FTA가 체결될 때 일부 유럽 고가 브랜드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올려서 자신들만의 지위와 마진을 누리려고 했다. 단지 서구권 고가 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럭셔리 브랜드라 여기는 것은 마치 서양이 제국주의 시대 때 타국에 배를 끌고 가서 몇 알의 유리구슬로 순진한 이들을 속여 그들의 금궤를 탈취해 가는 것과 같다. 이것은 브랜드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받게 되는 상인 농락(籠絡)이다. 

 

 

 

인간은 허영과 부러움이라는 나약한 감정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격상시키고 남들을 굴복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파리와 밀라노의 명품 브랜드 가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은 무엇을 사려는 것일까? 그들이 사려는 브랜드의 가치와 역사 혹은 상술을 이해할까? 무조건 비싸야만 좋다고 우기는 것은 반인문학적인 브랜드들이다. 브랜드 폭력이다. 인간은 허영과 부러움이라는 나약한 감정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격상시키고 남들을 굴복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이런 상술이 그대로 고가 시장에 존재한다. 이런 폭군 브랜드를 이겨 내는 방법은 브랜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뿐이다. 가장 좋은 브랜드가 무엇일까?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다. 그래서 진짜 브랜드를 알기 위해서는 경영학 책이 아니라 지겹게 주장하는 이야기이지만 인문학 책을 보아야 한다. 

 

 

가장 좋은 브랜드가 무엇일까?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다. 

 

 

인문학적인 성배, 
인문학적인 브랜드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철학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실재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재현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재현을 예술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도 한 번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도 단 하나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디지털 복사기가 구현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많은 그림을 본다. 이것은 복제다. 이런 복제품들이 범람하면 다음 단계에서 기호가 생긴다. 어떤 실재를 대신해서 상징하는 것이 기호인데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죽기 전에 인간들과 나눈 마지막 사랑의 향연이다. 

 

 

최후의 만찬(Ultima Cena, 영어: The Last Supper)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실재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재현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재현을 예술이라고 한다. 

 

 

 

복제품들이 범람하면 다음 단계에서 기호가 생긴다. 
어떤 실재를 대신해서 상징하는 것이 기호인데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죽기 전에 인간들과 나눈 마지막 사랑의 향연이다. 

 

 

이런 상징을 대변하는 실재는 성배, 즉 (영화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시고 그의 피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덧입혀진) 성스러운 컵으로 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제 최후의 만찬에서 그 성만찬은 사라지고 성배만이 상징으로 남는다. 그 성배는 기호화되어서 성공의 열쇠, 능력의 본질로 변이 된다. 성배는 ‘인디아나 존스’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지전능한 힘의 상징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핵심적인 가치와 힘을 설명할 때 우리는 ‘성배’라는 기호를 사용한다. 최후의 만찬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성배가 더 상업적인 가치와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에 성배는 최후의 만찬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이제 최후의 만찬에서 그 성만찬은 사라지고 성배만이 상징으로 남는다. 
그 성배는 기호화 되어서 성공의 열쇠, 능력의 본질로 변이된다. 


명품 브랜드는 귀족 가치(명예, 존귀함, 구별됨 등)의 재현을 복제한 것이다. 그 복제품이 기호와 상징이 되어 브랜드가 된 것이고 급기야 ‘명품 브랜드’가 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는 실재보다는 기호와 이미지가 더 실재와 같은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갈망하는 것이 바로 이 성배와 같은 기호가 되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명품 브랜드란 가짜인데 이제는 진짜가 되어 버린 초과 실재라고 하는 시뮬라크르일 뿐이다. 

 

 

명품 브랜드는 귀족 가치(명예, 존귀함, 구별됨 등)의 재현을 복제한 것이다. 
그 복제품이 기호와 상징이 되어 브랜드가 된 것이고 급기야 ‘명품 브랜드’가 되었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은 상징을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통상적인 의미 외에 함축된 특별한 뜻을 갖고 있는 말, 이름, 혹은 심지어 그림들’로 규정했다. 그리고는 “그것은 뭔가 막연하고 숨겨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는 실재보다는
기호와 이미지가 더 실재와 같은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갈망하는 것이 바로 이 성배와 같은 기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브랜드에 대해서 인간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조작된 기호와 이미지 혹은 복제품 정도로 치부한다. 인간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꾸면 낸 이야기, 그저 ‘성배’ 일뿐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 때문에 수많은 성배들이 있는 이 시장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브랜드가 자신의 실체가 꾸며 낸 이야기인 성배에 불과하다고 해서 그것을 파헤치는 철학을 회피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 반대다. 철학 용어들을 자기식 표현으로 사용함으로써 나름의 성배 철학, 곧 명품 철학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명품 브랜드가 제대로 된 명품 브랜드일까? 지금 우리에게는 명품 브랜드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브랜드가 자신의 실체가 꾸며 낸 이야기인 성배에 불과하다고 해서 
그것을 파헤치는 철학을 회피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철학 용어들을 자기식 표현으로 사용함으로써 나름의 성배 철학, 곧 명품 철학을 구축하고 있다. 

 


인문학적인 브랜드는 새로운 개념이다. 그것이 사회적 기업이 만든 브랜드인지 아니면 예술과 장인의 정신을 이해하는 브랜드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깊은 이해에서 출발하여 시대적 가치를 시대 정신으로 표현한 브랜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고가가 아니라 명품(名品)이 가진 의미처럼 명예(名譽)로운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생산과 소비 자체가 명예가 되는 브랜드가 인문학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생산과 소비 자체가 명예가 되는 브랜드가 인문학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고가’ 브랜드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짝퉁 시장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과시하기 위해서 단순히 고가 브랜드를 사거나 자신이 이런 명품 가방을 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짝퉁 명품을 구매한다. 
마지막으로 갑작스러운 질문이 되겠지만 왜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를 사야 할까? 이 질문에 명품 대답을 하는 사람은 명품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시 짝퉁이 나올 수 없는 명품 브랜드는 없을까?

짝퉁이 있어도 그것을 사는 것은 명예롭지 않기 때문에 짝퉁이 없는 브랜드.

 

 

“이 브랜드가 당신 삶의 그 무엇을 말해 주나요?”

 


고가 명품이 아니라 저가 명품이기에 짝퉁을 만드는 가격이 높아 짝퉁이 없는 브랜드.
어디에선가 짝퉁이 나오면 소비자가 신고해서 도저히 짝퉁을 만들 수 없는 브랜드.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짝퉁이라고 놀려대서 아무나 쉽게 사지 못하는 브랜드.
자신의 부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겸손함과 단순한 삶을 보여 주는 브랜드.  
만약에 이런 브랜드가 진짜 명품 브랜드 대접을 받는다면 세상의 모든 사치 시장은 붕괴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인문학이 필요하다. 

 

“이 브랜드가 당신 삶의 그 무엇을 말해 주나요?”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루이뷔통과 머리에똥, 철학자가 브랜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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