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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브랜드, 소설 쓰는 브랜드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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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역경을 이겨 낸 소설 속의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경쟁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면 된다. 브랜드 안에 궁극의 가치를 구축하려고 하면
소비자들도 기꺼이 당신 브랜드의 소설에 동조하고, 출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전 세계 연인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한다. 누가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이날이 되면 전 세계 연인들은 행복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밸런타인도 오기 전에 거의 명절 수준에 맞먹는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또 있는데 바로 빼빼로데이다. 2011년 11월 11일은 유난히 심했다. 왜냐하면 롯데 빼빼로가 이 날을 숫자 1이 6개가 겹친다는 이유로 성일聖日(?)로 선포하고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라 명명하며 대대적인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이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 소설의 해적판도 나왔는데 그것은 20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에 사랑을 고백받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는 11월 11일에 빼빼로를 마트에서 왕창 사서 주변에 나눠 주는 것이 이벤트였지만 11시 11분 11초에 빼빼로를 받는다면 그것은 오직 한 명에게 고백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이날이 성인(成人)들의 성일(性日)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 열풍이면 나중에는 여의도에 11자로 서 있는 LG트윈타워가 사랑 고백의 성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LG 마케터들은 빌딩 앞을 어떻게 만들어 놓을까? 

 

빼빼로를 전달하고 싶은 소비자 한 명이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추가하면서
주변에서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1월 11일은 성(聖)빼빼로데이가 되었다. 이 과정이 상징화다.

 

 

빼빼로는 1년에 한 번씩 빼빼로를 통해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날을 정했다. 

 

혹자들은 이런 마케팅을 장사치들의 상술이라고 비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귀엽다 여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집단 히스테리는 11월 1일에도 일어나지 않고 11월 12일에도 일어나지 않고, 오직 11월 11일 딱 하루에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빼빼로데이 때문에 짜장면데이, 삼겹살데이, 사과데이와 같은 무슨무슨 날 마케팅이 나오지만, 빼빼로데이만큼 위력적이지는 않다. 그야말로 빼빼로데이는 특정 집단의 특별한 취향을 따르는 현상인 트렌드를 넘어서 조직의 생체 리듬처럼 사회 리듬이 되어 버린 트랜스 현상이 되었다.

 

 

상품에 의미를 부여하면 아이덴티티가 생기고,
그 아이덴티티에 문화를 투영하면 가치가 만들어져서 결국 상징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현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브랜딩 법칙 첫 번째는 상품에 의미를 부여하면 아이덴티티가 생기고, 그 아이덴티티에 문화를 투영하면 가치가 만들어져서 결국 상징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상품으로는 초콜릿, 사탕,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것 중에 브랜드로 다시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 있다면 바로 티파니다. 티파니는 사랑의 상징이 되기까지 수많은 자원과 시간을 압축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티파니에 비해서 ‘초콜릿으로 덧칠한 롯데 빼빼로’는 소비자에 의해서 자연 발생된 상징화가 갖는 시장의 힘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티파니는 사랑의 상징이 되기까지 수많은 자원과 시간을 압축해서 사용했고,
빼빼로’는 소비자에 의해서 자연 발생된 상징화가 갖는 시장의 힘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상징에서 브랜딩,
브랜딩에서 상징  

 

브랜드의 상징화를 보여 주는 장치는 심벌(Symbol, 이미지화된 상징)과 로고(Logo, 기호의 상징)가 있다. 먼저 빼빼로를 보면서 어떻게 심벌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1월 11일이 빼빼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은 아니다. 사실 아무 날도 아니다. 평균 온도 8~10℃를 넘나드는, 큰 변화가 없는 그저 평범한 날이다. 하지만 빼빼로를 전달하고 싶은 소비자 한 명이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추가하면서 주변에서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1월 11일은 성(聖) 빼빼로데이가 되었다. 이 과정이 상징화다.

 

한자어로 상징(象徵)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추상적인 사물을 구체화하는 것, 또는 그와 같이 나타내는 것’이다.

ⅠⅠⅠⅠ혹은 1111. 숫자건 막대기 4개 건 간에 이것은 빼빼로데이라는 상징이 되었고 우리는 그날 무엇을 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문화로 ‘약속’해 버렸다. 


브랜드에서는 한자보다 영어식 해석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심벌(Symbol)의 어원은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도형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원래 이 단어는 고대에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Symballein(혹은 Symbolon)

 

첫 번째는 어려서 정혼하는 경우 거울을 깨뜨려 조각내고 미래에 다시 조각들을 맞춰 혼인을 완성하겠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 Symballein(혹은 Symbolon)이다. 두 번째는 부서진 진흙 명판 조각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 조각을 그룹의 구성원들이 나눠 갖고 회의 때마다 그 조각을 다시 맞추며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래서 심벌의 어원은 ‘모으다, 조립하다, 혹은 짜 맞추다’이다. 

 

빼빼로는 1년에 한 번씩 빼빼로를 통해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날을 정했다. 
브랜드가 심벌의 첫 번째 의미인 ‘사랑의 확인’으로 사용되며 심벌이 되었다. 

 


티파니는 일생의 하루인 청혼일을 ‘연인’의 날로 정했지만 빼빼로는 1년에 한 번씩 빼빼로를 통해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날을 정했다. 브랜드가 심벌의 첫 번째 의미인 ‘사랑의 확인’으로 사용되며 심벌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빼빼로가 티파니보다 더 강한 마케팅으로 소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가벼운 사랑 혹은 관심을 나누고 싶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다. 아직까지 빼빼로를 공동체에서 나눌 때 행복 절정의 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이 분비되는지 확인된 바 없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전 국민이 11월 11일을 절기처럼 지키고 있다면 뭔가 분비되는 게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버진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총체적인 이미지 혹은
가치들이 제품 등을 통해 육화(로고화)되는 것이다. 

 

 

브랜드에서 회사 및 조직, 특정 제품을 나타내는 상징을 로고(Logo)라고 한다. 로고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logos는 철학에서는 이성을,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단어) 혹은 그것이 육화 된 그리스도를 뜻한다. 이 단어가 오늘날 보편화된 로고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비가시적)이 육화 된 것이 그리스도(가시적)다’가 같은 맥락을 띠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진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총체적인 이미지 혹은 가치들이 제품 등을 통해 육화(로고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로고스라고 한다면 인간이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화된 것은 로고다.


가장 흔한 이름과 성으로 만들어진 폴 스미스는 영국의 대표적 브랜드가 되었고, 루이뷔통, 페라가모, 까스텔바작, 아르마니 등은 자신의 이름과 스타일, 그리고 철학이 브랜드가 되어 버린 전형적인 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로고스라고 한다면 인간이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화된 것은 로고다.

 

가장 흔한 이름과 성으로 만들어진 폴 스미스는 영국의 대표적 브랜드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과 스타일, 그리고 철학이 브랜드가 된 브랜드.

 

빼빼로는 더 이상 가늘고 얇은 과자 빼빼로가 아니라 사랑 고백이라는 의미의 로고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빼빼로는 11월 11일이라는 절기, 사랑 고백, 유대감 강화라는 의미에 가치를 부여해 상징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경험과 미래의 꿈으로 쓴 브랜드 소설이다.

 

여기까지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경험과 미래의 꿈으로 쓴 브랜드 소설이다.

 

 

소설이 만드는
브랜드

 

한때 ‘대장금’라는 TV프로그램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전역에 한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드라마가 종영되기 전 중국에 갔을 때 엄청나게 큰 ‘대장금’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장금’의 로고 타입과 똑같은 것을 대문에 붙였고, 무엇보다도 이영애의 장금이 사진도 붙어 있기에 MBC에서 직영하는 대장금 한식당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의 힘을 실감하면서 오랜만에 중식 때문에 더부룩해진 속과 미각을 살리려 김치찌개를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한식당이 아니라 정통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무늬만 대장금 식당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대장금’이 방영되자 MBC가 아닌 제삼자가 대장금을 중국에 상표 등록했고 그곳은 대장금을 먼저 등록한 사람의 식당이라는 것이다.

 

의도와 전략과 달리 실행이 좋아서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브랜드로 된 것은 주변에 많다. ⓒMBC

 

의도와 전략과 달리 실행이 좋아서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브랜드로 된 것은 주변에 많다.

 

 

MBC는 이런 실수를 만회하고자 ‘커피 프린스 1호점’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스타벅스와 같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먼저 상표 등록을 한 것은 물론이고 브랜드 라인 확장을 위한 제반 사항을 준비해 두고 방영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1호점을 런칭하고 오프라인에서 2, 3, 4호점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의도는 좋았지만 항상 문제는 실행이다. 의도와 전략과 달리 실행이 좋아서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브랜드로 된 것은 주변에 많다.

 

어린왕자는 고유명사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 브랜드가 되어 버린 전형적인 예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직접 상표권을 관리하기 때문에 뜸해졌지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는 90년대만 해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상호였다.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나 헬로키티보다 더 많은 수익을 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어린왕자라는 고유명사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 브랜드가 되어 버린 전형적인 예다.

 

아마 ‘노르웨이의 숲’을 검색하면 간판 가게를 비롯해 소소한 상호들이 눈에 걸린다. ‘노르웨이의 숲’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의 원제였다. 비틀스의 광팬이던 그가 비틀스 노래에서 가져온 것이다. 비틀스와 하루키도 자신이 붙인 제목들이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비틀스와 하루키도 자신이 붙인 제목들이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소설에서 컨셉을 잡아서 브랜드를 런칭해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를 소개하겠다.

 

먼저 6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소설 중에 한 부분을 보도록 하자.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인 그는 낸터킷 출신이고 대대로 내려온 퀘이커 교도였다. 키가 큰 열성 있는 인물로 한랭한 해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살은 두 번 구운 비스킷처럼 단단하고 열대에도 적합한 사람으로 보였다. 인도 제국에 보내더라도 그 발랄한 피는 병에 담긴 맥주같이 썩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큰 가뭄이나 큰 기근이 있었을 때나 그렇지 않으면 그 고향의 명물인 단식제가 있을 때 태어난 게 틀림없다. 무미건조한 3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육체의 군살은 말라빠져 버렸다. 그러나 이 말라빠진 몸은 결코 병마 때문도, 근심 걱정 때문도 아닌 것 같았다. 긴축이라고 해야 가장 적절할 표현일 것이다. 절대 추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맑고 탄탄한 피부는 훌륭한 옷이었고 더구나 몸에 꼭 맞게 싸여서 내적인 건강과 힘이 되살아난 이집트 사람처럼 향기를 피우며 그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금과 조금도 변함없이 극지의 눈에도 열대의 태양에도 특허 측시기처럼 견디며, 그 내부의 활력은 어떤 기후에도 훌륭한 보증부로서 일을 할 것이다. 

 

그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은 그가 여태까지 태연히 상대해 온 헤아릴 수 없는 위난의 그림자가 아직도 그곳에 어리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침착하고 확실한 이 사람의 대부분의 생애는 웅변적으로 말하는 행동의 판토마임이지 소리로만 단조로이 이루어진 막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토록 끈기 있게 참고 굳세면서도 때로는 그 속에 다감한 자질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모든 성질을 다 흘려버리고 말 것처럼 되기도 했다. 선원으로서는 드물게 볼 정도로 양심적이고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감을 품고 있는 그는 황량하고 고독한 해상 생활 때문에 몹시 미신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미신은 어떤 특수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지한 데서 생긴다기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지혜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외계의 징조와 내부의 예감을 그는 지니고 있었다.’

 

 

소설에 나오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소설가의 묘사만으로 본다면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장면에 나온 사람은 주인공은 아니다.

만약 이 사람이 브랜드를 만든다면 어떤 브랜드가 될까?

이 브랜드의 품질은 어느 정도일까?

이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당장 이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면 어디로 장소를 옮겨야 할까? 

그곳에서 어떤 음식을 주문할 수 있을까?


스타벅스 창업자인 고든 보커(Gordon Bowker), 제럴드 제리 볼드윈(Gerald Jerry Baldwin), 지브 시글(Zev Siegl)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 항해사의 이름에 착안해 만든 브랜드가 바로 ‘스타벅스’다.

(당시 하워드 슐츠는 직원이었다) 

 

고든 보커(Gordon Bowker), 제럴드 제리 볼드윈(Gerald Jerry Baldwin), 지브 시글(Zev Siegl). 1971년

 

대부분의 사람이 일등 항해사 스타벅이 커피를 무척 좋아한 점에서 힌트를 얻어 브랜드명을 스타벅스로 지었다고 생각하겠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소설에서는 그 누구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창업자들은 스타벅을 좋아했을까?

 

먼저 창업자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제리 볼드윈은 영어 교사이고 고든 보커는 작가, 제브 시글은 역사 교사다.

아마 스티브 잡스가 즐겨 먹던 사과가 회사의 이름이 되었듯이 스타벅스를 창업한 세 명이 재미있게 보았던 책이 《모비딕》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모비딕》의 주인공 이름으로 브랜드명을 정하지 않고 왜 일등 항해사의 이름으로 정했을까?

 

먼저 위에 작가가 묘사한 스타벅의 대사를 살펴보자.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놈은 내 배에 태우지 않는다.” 

 

고래잡이를 위한 포경선임에도 스타벅은 용감보다는 겸손을 선원들에게 요구했다. 

결정적으로 스타벅이 고래를 찾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에이허브와 충돌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스타벅은 배 밑창에 기름이 새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을 선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선장은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 전진해 목표 지점으로 향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선주와 선원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스타벅은 갈등하고 있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갈등의 상황에서 아주 명확하게 스타벅을 묘사했고, 이것은 121년 후에 브랜드의 정신이 되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갈등의 상황에서 아주 명확하게 스타벅을 묘사했고, 
이것은 121년 후에 브랜드의 정신이 되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가 쓴 《모비딕》

 

스타벅과 선장의 대화를 들어 보자. 

 

“에이허브 선장.” 

스타벅은 얼굴을 붉히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대담함은 이상할 만큼 외경과 사려에 싸여 있었고,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대담함이 바깥에 조금이라도 나타나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어서는 거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젊은, 좀 더 행복한 에이허브 선장에 대해서라면, 내가 화를 냈다 하더라도 지금의 당신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악마! 그럼 자네는 감히 나를 비난할 생각을 갖고 있단 말이지, 나가라!” “아니오, 선장, 잠깐 기다리십시오. 부탁입니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선장, 참기로 합니다. 에이허브 선장, 우리는 여태까지 보다도 좀 더 서로를 잘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에이허브는 총가, 즉 대부분의 남양 항해선 선실의 가구의 일부를 이루는 것에서 총알을 잰 머스킷 총을 꺼내서 스타벅을 향해 겨누면서 외쳤다. 
“단 한 분의 신만이 지상을 주재하신다. 단 한 사람의 선장이 피쿼드를 주재한다. 갑판으로 나가!”

순간 스타벅의 눈은 번쩍 섬광을 발하고, 뺨은 불처럼 타올랐다. 그것을 본 사람은 정말로 그가 겨누어진 충구로부터 불꽃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격정을 누르고 조용히 일어서서 방을 나서려고 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추고는 말했다. 

“선장, 당신은 나에게 화를 냈지만 나를 모욕한 것은 아니오. 그러니 이런 일로 스타벅을 경계할 필요는 없소. 그저 웃고 계시면 됩니다. 그러나 에이허브 씨는 에이허브 씨를 경계하시오. 선장, 자신을 두려워하시오.”

“용감하군 그래, 그래도 복종했어. 흥, 몹시 신중한 용감이야!” 

스타벅이 사라지자 에이허브는 중얼거렸다. 

 

 

문을 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상징화(끌어모으기) 단계가 시작된다. 
이와 정반대로 스타벅스 카페를 먼저 안 다음 이 소설을 읽었다면 로고화(말의 육화) 작업이 된다.

 

 

《모비딕》을 읽은 사람이라면 길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했을 때 고래와 선장의 싸움에서 균형점 역할을 하며 멋지게 소설을 끌고 가는 조연 스타벅을 떠올렸을 것이다. 스타벅이 죽지 않고 살아서 커피점을 차린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면서 아마 소설을 보며 상상한 이미지와 느낌들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릴지도 모른다. 

 

문을 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상징화(끌어모으기) 단계가 시작된다. 

이와 정반대로 스타벅스 카페를 먼저 안 다음 이 소설을 읽었다면 로고화(말의 육화) 작업이 된다.

 

 

 

 ‘우리는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피플 비즈니스를 합니다’라는 
스타벅스의 슬로건을 기억해 낸다면 과연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계승답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각종 매체를 통해서 들었던 ‘우리는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피플 비즈니스를 합니다’라는 스타벅스의 슬로건을 기억해 낸다면 과연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계승답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스타벅이 항상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스타벅스가 임시 고용직도 의료보험을 들어주었는지를 이해하고 이 브랜드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될 것이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갑자기 항해사처럼 보이고 카페가 조타실 앞에 있는 베란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를 위해 한 분의 고객, 한 잔의 음료, 하나의 이웃에 정성을 다한다.” 
-스타벅의 인간성 혹은 스타벅스의 사명선언서

 

스타벅스의 창업자 세 명과 지금의 스타벅스의 회장인 하워드 슐츠가 과연 소설 속 스타벅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존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비딕》을 읽고 스타벅스에 앉으면 왠지 스타벅이 만든 커피 전문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모비딕》을 읽은 사람이라면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갑자기 항해사처럼 보이고 카페가 조타실 앞에 있는 베란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brandness.co.kr

 

소설 쓰는 애플,
애플의 소설  

 

아이폰 4S가 출시되었을 때는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모두들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며칠 후 스티브 잡스가 죽자 4S는 그의 유작이라며 역대 예약 판매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람들이 아이폰 4S를 For(4)  Steve(S)라고 해석하면서 또 한 번 소설이 쓰이게 되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상징하는 바에 대해 잡스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이와 관련된 수많은 소설이 있었다.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의 로고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첨가된다. 

 

 

그중에 가장 드라마틱했던 소설은 영국의 컴퓨터 천재 앨런 튜링이 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화학적 거세를 당하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백설공주처럼 죽었고, 잡스가 이 컴퓨터 천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심벌로 사용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사과는 채식주의자였던 잡스가 즐겨 먹던 과일 중 하나였고 그것을 로고로 사용하려 보니 그 모양이 체리 같아서 옆에 한입 베어 문 표식을 더한 것이라 한다.

 

한 입 베어 먹은 모양을 Byte(정보 단위)와 Bite(한 입 베어 먹다)가 같다고 하여 이 사과를 지식의 사과 혹은 선악과로 말하는 작가(마니아)들도 있었다.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의 로고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첨가된다. 

빼빼로와 올해 천 년에 한 번 온다는 11월 11일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사과는 채식주의자였던 잡스가 즐겨 먹던 과일 중 하나였고
그것을 로고로 사용하려 보니 그 모양이 체리 같아서 옆에 한입 베어 문 표식을 더한 것이라 한다.

 

 

다시 돌아가서 아이폰 4S의 S가 Siri의 S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Siri는 일명 음성 지원 시스템 혹은 The Service Interface for Real Time Information이라고도 불린다. 

어떤 소비자들은 이 S가 스티브 잡스의 유작으로, 그의 부활을 뜻한다고도 해석한다. 

 

Steve is revived in Siri. 스티브는 Siri에서 부활된다.
Steve is revived infinitely by Siri. 스티브는 Siri에 의해 무한 회생된다.
Steve’s identity revived in Siri. 스티브의 아이덴티티는 Siri 안에서 부활했다.

 

 

스티브의 아이덴티티는 Siri 안에서 부활했다.

 

 

 

S 하면 떠오르는 것? 아마 Superman, Style, Sport, Sex, System 등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름만 떠올리라고 한다면 제일 처음 Steve Jobs가 떠오를 것이다. S는 이제 Steve Jobs가 상징화된 로고가 되었다.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현재 Siri에 나오는 여자 음성을 스티브 잡스의 목소리로 변환시키는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잡스와의 재회도 가능할지 모른다. 만약 애플이 시장에서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소비자들 중 몇몇은 잡스가 즐겨 입던 청바지와 검은 터틀넥을 입고 매장에 등장할 것도 같다. 그렇게 잡스는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전기 작가에게 고백한 심경을 들어 보자.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브랜드, 
소설의 주인공이 되려면 

 

1851년에 발표된 《모비딕》 속 조연인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160년 전에는 바다에서 고래를 쫓는 에이허브 선장의 충실한 안내자였지만, 지금은 도시에서 ‘성공’이라는 고래를 좇는 우리를 자신의 응접실로 불러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있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비딕》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스타벅은 지금은 도시에서 ‘성공’이라는 고래를 좇는
우리를 자신의 응접실로 불러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100일이 지났을때, 그의 자서전은 아마 《해리포터》만큼 많이 팔렸을 것이다. 만약《모비딕》을 읽었다면 우리는 그의 자서전에서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아닌 디지털 세상을 항해하는 선장 스티브 잡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주의와 비밀주의자의 포상으로 여겨진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에 준비한 담백한 자서전으로 인해 애플은 ‘소설 쓰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야기는 영속성을 가진 생명체다. 5,000년 전 신화나 160년 전 소설이 시대를 초월해 읽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이야기는 이론적으로 몇 천 년 동안 이어지는 그런 브랜드 스토리가 될 것 같다. 

 

만약에 많은 브랜드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처럼 영생하는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겠다. 

 

만약 소비자를 소비자가 아니라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브랜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기업에서 소설가를 취업시켰다면 어떤 임무를 줄 것인가?
아마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야기는 영속성을 가진 생명체다. 
5,000년 전 신화나 160년 전 소설이 시대를 초월해 읽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브랜드에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 양 소설로 쓰면 그것은 최악의 브랜딩이다. 그야말로 막장 브랜드의 막장 드라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브랜더가 아니라 소비자인 우리 이웃이어야 한다. 마케팅에서 우리의 이웃을 소비자 혹은 타깃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용어 자체가 우리의 이웃을 단지 소비만 하는 박테리아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웃들은 우리가 만든 브랜드를 통해 단순히 소비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경험은 문법이고 브랜드는 단어일 뿐이다.

 

 

브랜드에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 양 소설로 쓰면 그것은 최악의 브랜딩이다. 
그야말로 막장 브랜드의 막장 드라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브랜더가 아니라 소비자인 우리 이웃이어야 한다. 

 

 

한때 스토리텔링을 통한 마케팅이 지금의 인문학처럼 붐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때보다 조용한 이유는 브랜더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너무나 강요해서 그야말로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딩에 있어 스토리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그러면 브랜드의 풍부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세상은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면 된다.
돈은 결과이고 사람이 목적이라고 인문학적 결론을 마음에 품으면 된다. 

 

그런 이야기들은 주로 주인공의 미션이 넘어설 수 없는 운명과 정면 대치된다. 적들이 강력하다. 위기는 심화될수록 흥미진진하다. 이는 모든 상황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투철한 가치관 때문이다. 그래야만 갈등이 증폭되면서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독자는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감정이입이 되어 소설 속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브랜드 안에 궁극의 가치를 구축하려고 하면 소비자들도 기꺼이 당신 브랜드의 소설에 동조하고, 출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이런 환경과 역경을 이겨 낸 소설 속의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경쟁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면 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세상은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면 된다. 돈은 결과이고 사람이 목적이라고 인문학적 결론을 마음에 품으면 된다.

 

더는 ‘무슨 데이’를 만들어 소비만 조장하고 값싼 상징물을 팔지 말고 브랜드 안에 궁극의 가치를 구축하려고 하면 소비자들도 기꺼이 당신 브랜드의 소설에 동조하고, 출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下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소설 속에 브랜드, 소설 쓰는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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