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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화 사회, 브랜드가 인문학적 상상에 빠지다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1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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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 설립자 임정택 교수

 

‘과연 모든 사람들이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정말 올까?

학창 시절 미래과학관으로 견학을 가본 적이 있다면 당시의 추억을 떠올려 보자. 그곳은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 사회에 대한 온갖 유토피아적 상상이 미니어처나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첨단 과학기술로 구현되어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가시화해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그 후 불과 20~30년 만에 우리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미래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이 상상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현실화되는 디지털이라는 신세계에 살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상상하는 것을 현실화시키는 첨단 과학기술이 아닌 당신이 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상상하고 있는 그 무엇’의 중요성은 인간을 향해 있는 미래를 모색하고자 하는 시대적 필요성과 맞닿아 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본질을 이렇게 규정한 이가 있다.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의 설립자 임정택 교수다. 미디어아트연구소는 21세기판 미래과학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문화 현상들을 과학기술뿐만이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의 초학제적 연구를 통해 테크놀로지와 상상력, 인간과 기계의 조화를 이루는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이다.

임정택 교수는 바로 인문학과 상상의 교차점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새로운 미래에 대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상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드림소사이어티가 다가왔습니다. 더 창조적이고 더 역동적인 미래를 꿈꾸는 자만이 미래를 혁명할 수 있어요. 상상력은 미래를 향한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상상력은 브랜딩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치 있다
짚어 내어 브랜드의 일부로 녹이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힘이다. 


상상력, 
인문학을 부활시키다 

 

UnitasBRAND 요즘 서점에 가보면 하루에도 몇 권씩 인문학과 관련된 책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책이 있습니다. 인문학적 소재와 상상력의 통섭을 시도해 ‘상상에 빠진 인문학’이라는 재미난 주제의 책들이 시리즈로 나와 있더군요.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바로 교수님의《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이었습니다. 인문학과 상상력은 그동안 함께 쓰이던 단어라기보다 오히려 이성과 감성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단어였는데,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인문학과 상상력은 어떤 관계입니까?

 

임정택(이하 '임')  인문학과 상상력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인문학과 상상력을 서로 반대편에 두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능력으로 이해해 왔죠. 그래서 상상력은 흔히 불가능한 것,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것,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것, 그리고 때로는 아주 엉뚱하고 기이한 것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인문학과 전혀 다른 것으로 취급해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장본인들이 다름 아닌 철학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임무가 세상의 이치와 사물의 본성, 존재를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이성적인 상상은 그들에겐 무척이나 낯선 단어였을 겁니다.

상상력이라는 단어는 세상의 이치와 사물의 본성, 존재를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철학자들에게는 상상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낮선 단어였다.

 

 플라톤의 이성주의가 추구했던 극치의 세상인 이데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진리인 원형의 세상이었죠.

 

 

그렇게 서구 사회를 2,000년 이상 지배해 온 이성주의와 합리주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였죠.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의 이성적 사유가 오늘날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상상적 사유의 극치였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의 이성주의가 추구했던 극치의 세상인 이데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진리인 원형의 세상이었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임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이데아를 생각하는 것 자체를 이성으로 규정해 버리며 상상이라는 것을 배제시켰던 거죠. 결국 인문학과 상상력은 동일한 사유의 다른 이름일 뿐이지 전혀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임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이데아를 생각하는 것 자체를 이성으로 규정해 버리며 상상이라는 것을 배제시켰던 거죠. 

 

플라톤이 주장한 우주론은 정다면체는 오직 5종류고 이는 세상을 구성하는 5원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UnitasBRAND 감성이 중요해진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기업은 이제 창의적인 발상으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로자베스 칸터(Rosabeth Kantor) 교수는 21세기 시대의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상상력(power of imagination)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교수님의 말처럼 ‘상상력’을 원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상력의 힘을 교수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거, 보이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던 세상이 이제 보이지 않는 것에 엄청난 가치를 매기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어요. 때문에 브랜드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임에도 현대 시대에 이르러 어마어마한 기업의 자산으로서 인정받고 있지요. 코카콜라만 보더라도 그 브랜드에 들어가 있는 즐거움, 스토리, 사랑 같은 이미지나 감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의 가격이 수조 억 원에 이르지 않습니까. 상상력 역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상상력이 가미된 기계, 의복, 제품 등에 사람들은 반응하며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요.

 

 

상상력 역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상상력이 가미된 기계, 의복, 제품 등에 사람들은 반응하며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요. 

 

 

문제는 세상이 비물질주의 사회로 바뀌고 있음에도 경영학자들은 여전히 제품의 효율성을 중시하던 과거의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는 거죠.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지 못해 기업은 현재 위기를 맞게 된 겁니다. 설사 비물질주의 세상의 도래를 감지했다 하더라도 그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당황해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들 가치를 말하는 학문인 인문학에서 뭘 찾아보려고 야단들인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안타깝게 인문학 역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문학이 사회, 경제 구조 속으로 들어가 쌍방향 소통을 이룰 때 리드하고 가치를 줄 수 있으나,
인문학 역시 다른 분야와 소통하기 좋은 재료가 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인문학자, 브랜더 역시 세상 변화의 이치를 수용하며 살아있는 지식이 되기위해서는 상상력의 시대인 현재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인문학이 사회, 경제 구조 속으로 들어가 이것들과 쌍방향 소통을 이룰 때 인문학이 사회를 제대로 리드할 수 있고 사회에 가치를 줄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인문학자들이 다른 분야와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가공 처리를 해야 인문학이 다른 분야와 소통하기 좋은 재료가 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인문학자들이야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도 학문의 상아탑에 갇혀 세상과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적인 이론만을 최고로 고집하고 있어요. 인문학도 세상 변화의 이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브랜드나 기업 경영에 있어 인문학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선 살아 있는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죽은 인문학에 혼을 불어넣어 살려 내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상상력이죠. 

 

 

인문학자들이야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도 학문의 상아탑에 갇혀 세상과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적인 이론만을 최고로 고집하고 있어요. 인문학도 세상 변화의 이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컨대 지금 브랜더에게 칸트의 철학을 가르친다고 한들 이런 인문학적 지식이 브랜드에 당장 적용될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죽은 인문학적 지식이 돼 버리는 거예요. 

 

브랜드나 기업 경영에 있어 인문학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선 살아 있는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죽은 인문학에 혼을 불어넣어 다시 살려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상상력이죠. 저는 상상력의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UnitasBRAND 그렇다면 기업이 인문학의 힘을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하신 대로 칸트를 읽는 것이 인문학이 아니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얻기 위해, 기업에게 필요한 상상력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이제 경영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시각을 바꾸면 놀랍게도 이 인문학적 상상력이 무엇인지 쉽게 알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기업은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능에만 충실한 제품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목마른 사람들을 이해한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제품을 죽어 있는 단순한 물건이나 기계로 보는 것이 아닌 이들을 인간화해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거죠.

 

시대 자체가 변해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물건을 통해 편리함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활이 나아지면서 제품은 원초적 형태로부터 고차원적이고 미학적인 형태로 발전하며 마침내 인간화에 이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품을 단순한 물건으로만, 기계를 계속 기계로만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인 거죠. 기계 역시도 인간화되어 생명체처럼 대우받고 싶어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이 나아지면서 제품은 원초적 형태로부터
고차원적이고 미학적인 형태로 발전하며 마침내 인간화에 이르고 있어요. 

 

 

기계를 인간하고 아주 밀접하게 결합된 유기체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현대인들의 뇌 구조는 이미 기계를 유기체로 인지하게끔 변화되고 있어요.

현대인들의 뇌 구조는 이미 기계를 유기체로 인지하게끔 변화되고 있어요. 따라서 누가 기계를 더 인간처럼 볼 수 있고, 기계를 인간하고 아주 밀접하게 결합된 유기체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분명 달라질 겁니다. 추측하건대, 앞으론 이런 상상력을 두고 기업들이 경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기업의 상상력 경쟁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현재 애플과 삼성의 싸움도 실제로는 상상력 싸움이라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두 기업의 상상력을 한번 비교해보세요. 삼성은 기술개발도 잘하고 특허도 많이 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반면 애플은 어떤가요?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은 테크놀로지와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도 인문학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제품 개발에 적용시킴으로써 인간 중심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상상력 전투에서 애플이 삼성보다 앞서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이제 상상력은 필수입니다.

 

이제는 욕망(wants)과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desires)이라는 새로운 손의 등장을 맞이하게 되었죠.


액체적 시대,
인문학적 상상력이 답이다

 

UnitasBRAND 이제까지 브랜드는 필요(needs)라는 보이지 않는 소비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왔습니다. 이제는 욕망(wants)과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desires)이라는 새로운 손의 등장을 맞이하게 되었죠. 그래서 소비자들은 브랜드에게 이제껏 누구도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심지어 예상할 수도 없는 것들을 상상해 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님이 브랜더라면 상상력의 출발점을 어디로 삼으시겠습니까?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드는 시대죠. 따라서 21세기의 상상력은 과거의 상상력과는 다르며, 이로 인한 사람들의 욕망 역시 달라졌어요. 고전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능력이었지만, 지식의 무한한 생산과 유통이 진행되는 현재의 지식 정보 사회에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과 지식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상상력이 더 중요합니다. 아마도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상력과 결합되지 않는 지식은 한낱 죽어 있는 정보에 불과하거든요.

 

고전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능력이었으나, 
현재는 지식과 지식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상상력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죽어 있는 정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은 과거와는 달리 네트워크적 상상력이에요. 특히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이죠. 예전에는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했던 인간과 기계, 자연과 과학 같은 축들이 사회의 복잡성으로 인해 서로 교차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질적인 것들의 융합이 일어나는 겁니다. 브랜드도 예전에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을 융합시켜서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숙제를 받지 않았습니까. 이것 역시 고도의 네트워크적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인 것입니다.

 

브랜드도 예전에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을 융합시켜서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숙제를 받지 않았습니까. 

 

 

UnitasBRAND 융합, 통섭, 통합 등은 21세기를 가장 명확하게 말해주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 상상력에도 이러한 단어들이 필요한 것 같은데, 고도의 네트워크적 상상력을 정의 내린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도의 네트워크적 상상력이 필요해진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언제나 접속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전달의 최소 단위인 비트는 그 자체가 흐르는 액체와 같기 때문에 디지털의 가장 큰 특성은 언제 어디서든지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한번 보세요. 텍스트도 이미지도 그밖에 모든 것들도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수정 변형이 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세상은 고체가 아닌 액체가 돼 버린 것입니다. 

 

언제나 접속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전달의 최소 단위인 비트는 그 자체가 흐르는 액체와 같다.

 

네트워크적 상상력은 고체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사고가 아닌 
각 분야를 넘나드는 유동성 넘치는 이른바 ‘액체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모든 것이 멈춰진 평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3차원 영상의 시대가 된 것은 이것의 또 다른 증거죠. 영상은 수많은 평면의 이미지들이 흘러서 만들어지는 액체의 유동성(흐름) 원리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에요. 네트워크적 상상력은 고체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사고가 아닌 각 분야를 넘나드는 유동성 넘치는 이른바 ‘액체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디테일한 것에만 집중하여 지난 수백 년간 각자 세부적인 자신의 영역에만 갇혀 연구하며 문명을 발전시켜왔죠.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장벽이 깨어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이질적인 것들의 엉뚱한 조합을 통해 사회 전체를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그래야만 딱딱하고 정체된 고체가 아닌 디지털이라는 유동적인 액체적 세상에 적응해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액체성(유동성) Liquidity

폴란드 태생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의 속성을 ‘액체성’이라는 유체역학적인 용어에 빗대어 설명한다. 액체성을 띠는 근대는 국가의견고한 울타리 내에서 국민의 안전을 꾀하던 시대에 대비되며, 예측과 통제가 어려운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는 책에서 ‘근대의 무거운 단계에서 자본은 견고하게 바닥에 고정’되어 있으나 ‘오늘날 자본은 여행가방에 서류 케이스, 휴대폰, 노트북만 담고 가볍게 이동’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모두스 비벤디 Modus Vivendi》에서는 유동하는 세계에서 개인은 이상을 향해 전진할 힘이 없으며, 유동하는 특징 때문에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는 순간들의 모음’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질적인 것들의 엉뚱한 조합을 통해 사회 전체를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디지털이라는 유동적인 액체적 세상에 적응해 살 수 있기 때문이죠. 

 

 

UnitasBRAND 폴란드 출신의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 역시 근대의 속성으로 *액체성을 들고 있습니다. 유체는 쉽게 이동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흐르고 엎어지고 바닥나고 튀고 들이부어지는 등 고체와는 다르게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장애물을 녹이거나 그 주변을 통과하면서 흠집 하나 없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또한 일정한 형태를 오래 유지하는 일이 없어 지속적으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디지털 사회는 이와 같은 액체성을 가진 사회인 듯싶습니다. 

 

 이런 디지털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영웅이 되려면 액체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영원히 방랑하는 여행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군요. 오늘날의 디지털 영웅과 같은 사람이 바로 칭기즈칸입니다. 그 역시 굉장히 액체적인 세계를 살아왔기 때문에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어요. 몽골에 직접 가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때 전 세계를 제패한 칭기즈칸이 살았던 몽골에는 그 흔한 궁전 하나 없으며 이외에도 남아있는 유적이 별로 없어요. 도처에 보이는 거라곤 2시간 만에 조립이 가능한 천막집이 다예요. 

 

 

 

 고체적 인간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죠. 우수한 브랜더가 되려면
이런 액체적 사고를 해야 하며 곧 자기 스스로 액체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군요.

 

 

칭기즈칸은 그 넓은 대륙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전 세계를 제패한 것입니다. 한때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매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어요.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한 대면 세상 어딜 가든 생존이 가능하죠. 왜냐하면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언제든지 모두에게 접속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디지털 사회를 리드하는 영웅은 그 어떤 고체도 인정하지 않아요. 심지어 나 자신이 액체이기 때문에 어떤 그릇에 들어가든지 유연하게 변화된 상황에 맞춰 혁신적이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체적 인간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죠. 우수한 브랜더가 되려면 이런 액체적 사고를 해야 하며 곧 자기 스스로 액체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군요.

 

 

호모이마기난스, 
상상은 인간의 운명이다

 

UnitasBRAND 디지털 사회에서 굳어진 고체적 사고를 녹이는 액체적 사고야말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브랜드가 얻어야 할 통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유연한 사고를 가능케 하는 것은 상상력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아야 하므로 다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속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상상력은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인간의 삶에 항상 수반된 본질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새로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욕망함으로써 상상이라는 날갯짓을 통해 그 욕망을 현실화시켰죠. 라이트 형제의 발명품이 인간이 날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어 과학기술이 이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지금의 비행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상상을 현실화시키며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그래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상력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과학은 인간의 상상력을 없애며, 이로 인해 상상력을 통해 조명할 수 있는 신비의 영역들을 아예 해명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멈추지 않고 상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의 존재 방식이며 끊임없는 욕망을 통해 상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즉 상상(Homo Imaginans)하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오히려 과학은 인간의 상상력을 해명해 버림으로써 인간은 또 다른 세계를 갈망하고 동경하며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결국 스스로가 상상력의 영역을 고갈시켜 온 거죠. 하지만 저는 이런 시각이 교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과학은 인간의 상상력을 해명해 버림으로써 인간은 또 다른 세계를 갈망하고 동경하며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거예요.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과학이 아무리 그것을 해체시키더라도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우주를 상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무한한 존재 방식이며 끊임없는 욕망을 통해 상상하며 살 수밖에 없는 호모이마기난스(Homo Imaginans), 즉 상상하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상상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이 세계를 해체시키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세계에 대해 욕망해야 하며 혁신적이며 혁명적인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UnitasBRAND 유니타스브랜드에서는 상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구현시키며 진화하는 현대인들을 일컬어 ‘호모판타지쿠스’라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상상의 산물인 판타지는 곧 그들의 문화이자 생활이 됩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는 것이 브랜더의 운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브랜더에게 호모이마기난스로 사는 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모두가 상상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의 DNA를 더 단단히 키워야만 더 창조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세계가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이지는 않지만 또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면 이 세계가 마지막이 아닌 것이죠. 그리고 상상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이 세계를 해체시키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세계에 대해 욕망해야 하며 혁신적이며 혁명적인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브랜더 역시 새로운 시대에 대해 욕망하고 상상하며
현재를 부수는 혁명적 생각을 하지 않고는 새로운  단계로 올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해체시켜 하나하나 뜯어고쳐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이 세계를 부수고 파괴시켜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도 있죠.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원리이자, 상상력의 DNA를 키우는 방법입니다. 브랜더 역시 새로운 시대에 대해 욕망하고 상상하며  현재를 부수는 혁명적 생각을 하지 않고는 새로운  단계로 올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 상하는 인간,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상상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치 있다 짚어 내어
브랜드의 일부로 녹이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힘이다.

플라톤이 상상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원형을 이데아로 떠올린 것처럼, 상상력은 브랜딩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치 있다 짚어 내어 브랜드의 일부로 녹이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힘이다. 노동자들의 튼튼한 의복이던 청바지가 ‘섹시함’의 아이콘으로 특정 브랜드에 녹아든 것도, 편리한 이동수단이던 모터사이클이 야성과 남성성의 상징으로 브랜드화된 것도 모두 다 상상력 넘치는 브랜더들의 업적이다. 기업은 이제 제품의 원형과 특성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가치를 상상력으로 자신의 브랜드와 연결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인문학자들이 되고 있고, 또 되고 싶어 한다. 이런 기업이 바로 소비자들이 가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판타퍼니(Fantasy + Company, 판타지를 제공하는 기업)다. 사회의 액체성이 강해질수록, 액체적 사고가 점점 더 요구될수록, 그래서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사고의 지계를 넓힐수록 브랜더들의 이런 상상력은 빛을 발할 것이다. 지금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 브랜드에 새로운 가치를 연결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려 보라. 그러면 브랜드 철학, 런칭, 혁신, 리뉴얼, 재활성화, 전략, 커뮤니케이션 등 딱딱한 단어들이 모두 사실 상상력에 몰래 숨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임정택 연세대학교 독문학과 졸업 후, 독일의 콘스탄츠대학교에서 독문학과 매체 사회학을 연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미디어아트연구소를 설립하여 2016년까지 연세대 미디어아트 연구소장으로서 영화, 디자인, 문화 컨텐츠, 디지털 미학, 문화정책 및 기획,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지평을 폭넓게 확장하는 프로젝트들을 주도하며 오늘날 세계정신의 원리로 작동하는 ‘지식의 대통합과 융합’을 연구하고 실천 중이며 현재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시각 기계의 문명사》 등이 있으며 《소통 기계와 네트워크 인문학》을 비롯, 다수의 공저가 있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브랜드, 인문학적 상상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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