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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인문학, 겹창을 통한 브랜더의 창조적 시선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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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겹창을 무엇인가?

The interview with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

 

“인문학은 가치를 다루고, 과학은 사실을 다룬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고수한다면 인문학과 과학은 모두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어요.”
홍성욱 교수를 만난 이유는, 과학자임에도 과학과 인문학의 민주적 결합을 주장하며 과학과 인문학의 학문적 경계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일명 ‘잡종 학문’의 필요성을 지난 10년간 외쳐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신을 일컬어 ‘잡종적 지식인’이라고 한다. 잡종은 이종 간의 결합으로 생긴 개체를 뜻하는 말이지만 흔히 순종의 반대되는 의미로 낮추어 말할 때 쓰곤 한다. 그런데 왜 그는 스스로를 잡종적 지식인이라고 지칭하며, 지금의 시대에는 이런 잡종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지난 10년 동안 순종성에 집착하여 학문의 장벽을 너무 두껍게 만들어 버린 우리의 학문 풍토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므로 좀 더 유연하고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잡종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인문학과 과학이 각각의 창이 아닌 한데 포개진 겹창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겹창의 시선이란 무엇일까? 

일명 ‘오드아이(odd-eye)’라고 불리는 홍채 이색증이라는 것이 있다. 홍채 세포의 DNA 이상으로 인해 멜라닌 색소의 농도에 차이가 나면서 양쪽의 눈이 서로 다른 색을 띠는 현상을 일컫는 의학 용어다. 겹창의 시선이란 마치 오드아이와 같이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학문을 양쪽 눈에 담아 한 세상을 바라보는 창조적 시선이 아닐까 싶다. 

 


겹창적 사고는 제품 및 서비스가 가져야 할 본질적 기능에서 시작해 
하나의 주체로서 그것이 (Thing) 지녀야 할 태도와 역할까지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복잡성의 시대, 
융합의 코드로 
풀어내다 

 

UnitasBRAND 애플이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심플’이 아닐까 합니다. 애플은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필요한 기능들이 너무 많아져 복잡해진 기계를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인간 중심으로 심플하게 디자인하여 복잡한 기능과 사용자의 편의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복잡해진 것은 비단 제품뿐만이 아닙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회 전체가 복잡해져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홍성욱 교수(이하 '홍') 말씀하신대로 현재 우리는 굉장히 복잡해진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 자체가 복잡성을 높이면서 발전해 왔죠.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사회의 복잡성이 매우 높아져 누구도 사회 전체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가 돼 버렸습니다. 이제 사회는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예측 자체가 불허한 상황이 된 겁니다. 이렇게 사회의 복잡성이 높아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급속한 산업화 때문이죠.

 

 기술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이루면서
세상을 오히려 몇백 배 더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인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융합이라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전 인류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던 농업 사회가 불과 160여 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전 인류의 90% 이상을 농업 외의 일을 하는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사회의 복잡성이 크게 증가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사회의 복잡성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들을 적용했는데, 그 기술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이루면서 세상을 오히려 몇백 배 더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사회의 복잡성은 한계점을 넘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만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연관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해진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기후변화 같은 문제죠. 이것은 모든 국가가 합의해서 다루어야 할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수십 년을 예측해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전문 분야만으로는 다룰 수가 없게 된 거죠. 인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능력이 필요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융합’입니다. 여전히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만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연관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해진 겁니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융합을 몸에 비유해 보자면 관절로 표현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UnitasBRAND 교수님은 철학, 사회, 역사와 같은 인문학과의 융합을 시도하며 과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 방향성을 연구해 오신 분입니다. 융합적 사고를 하는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 연관을 생각하는 능력’이란 과연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사회가 복잡해지다 보니 최근 통섭(consilience)이나 융합의 필요성을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섭이나 융합이 낯선 개념이나 단어는 아닐 겁니다. 융합적 사고는 과학적 창의성과 그 맥을 함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과학은 창의성을 광기(madness)와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간주했죠. 즉, 창의성은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학문의 주제, 특히 과학의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창의적인 사람들은 예술가나 시인, 음악가 같은 사람들이었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법칙을 찾아내는 사람들로 간주되던 과학자들을 창의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나타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창의성의 핵심은 이미 존재하는 개념들을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연결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인 겁니다. 

 

창의는 영어로 creation인데,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 자체의 모순을 지적하며 창의성에 대한 다른 의견들이 나오게 됩니다. 가령 시인이 창조적인 시를 써도 그 시를 이루는 단어들은 이미 존재하는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창의성은 시인이 만들어 내는 언어의 조합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즉, 창의성의 핵심은 이미 존재하는 개념들을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연결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인 겁니다. 이런 인식이 생기면서 과학에서는 창의성을 ‘연관(association)’이라는 관점으로 보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융합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과학적 창의성이 된 거죠. 이런 의미에서 과학자의 시선으로 융합을 몸에 비유해 보자면 ‘관절’로 표현할 수 있어요. 서로 다른 것을 이어 궁극적으로 하나의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과학에서는 창의성을 ‘연관(association)’이라는 관점으로 보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융합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과학적 창의성이 된 거죠.


 

겹창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다 

 

UnitasBRAND 융합과 과학적 창의성이라는 것이 지난 10여 년간 교수님이 주장하신 바로 ‘잡종’의 또 다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수님은 앞서도 말했지만 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분야와 교류하고 교감하는 잡종적 지식을 추구하고 계십니다. 

‘잡종’ 의 정의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저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적 지식을 가능케 하는 잡종의 필요성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해왔죠. 잡종은 각각의 학문이 지향하는 세상의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이어 주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시대를 사는데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볼 수 있죠. 제가 말하는 잡종적 지식은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통섭과는 좀 다릅니다.

 

잡종은 각각의 학문이 지향하는 세상의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이어 주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시대를 사는데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볼 수 있죠. 

 

학문 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 사이의 위계질서와 환원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통섭과는 다르게 잡종은 학문 간의 상하위 개념을 두지 않고 수평적인 방법, 그러니까 보다 민주적 방식으로 융합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잡종적 지식은 자신의 연구 주제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특히 특정 학문의 구속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학문의 소통과 상호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저 역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이런 잡종적 태도를 통해 학제적 연구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과학기술에도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잡종은 학문 간의 상하위 개념을 두지 않고 수평적인 방법,
그러니까 보다 민주적 방식으로 융합을 지향합니다. 


 

물론 과학이 철학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과학이 이야기하는 세계관이 있고 인간상이 있으며, 과학에서도 충분히 합리성과 도덕에 대한 함의도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과학 안에 이런 철학적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찾아내 진짜 뜻하는 바를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을 철학과는 무관한, 그저 우주에 대한 신비를 밝히는 학문이나 궁극적인 물질 입자를  밝히는 학문으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에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문학의 명제를 바꾸고 인문학의 성찰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바꾸게 됩니다. 

 

 

UnitasBRAND 요즘 대학에서 ‘융합’이라는 이름을 붙인 학위 과정이 나타나는 이유가 이 때문이군요. 그러면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적 시각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교수님처럼 잡종적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과학과 인문학을 ‘상보적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학은 사실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서로 만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과 인문학의 대화가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학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겹창’의 시각입니다.

 

과학과 인문학을 하나하나의 따로 된 창으로 보는 것이 아닌 겹쳐진 창처럼 함께 놓고 
이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봐야 한다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공유하고 있는 측면이 많아 겹치는 접점이 많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집합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 접점들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서로를 바꿔 놓는 역동적인 접점입니다. 그 결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문학의 명제를 바꾸고 인문학의 성찰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과 인문학을 하나하나의 따로 된 창으로 보는 것이 아닌 겹쳐진 창처럼 함께 놓고 이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봐야 한다는 것이 필요합니다. 

 

 

브랜더에게 연관성과 비연관성을 통해 사물의 보이지 않는 혹은
미세한 부분까지 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UnitasBRAND 유니타스브랜드는 브랜더에게 ‘겹눈’의 시각을 가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겹눈은 곤충의 눈으로, 모자이크처럼 생겨서 주변을 과장되게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눈에 보이는 바를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브랜더에게 연관성과 비연관성을 통해 사물의 보이지 않는 혹은 미세한 부분까지 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겹창도 일종의 겹눈이 아닐까 합니다. 과학은 인문학이라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는 거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듯 학문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과학과 인문학을 겹창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원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겹창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문제의 해결 방법과 결과가 달라지며, 심지어 문제 자체가 가지는 함의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겹창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가부장제 현상을 봅시다.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볼 건가요? 이것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회 문화적인 산물(product)로 볼 수 있으며 위계구조라는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로써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가 서로의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는 거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겹창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인문학, 두 학문을 보는 새로운 시각. 그것이 바로 브랜드가 가져야 할 겹창의 시각이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과학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인간이 지닌 주관, 직관, 상상력, 편견과 같은 인지적 요소와 야망, 경쟁, 질투, 권위, 권력 같은 사회적 요소가 과학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개입함으로써 과학은 더욱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과학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인간이 지닌 인지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가 과학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개입함으로써 과학은 더욱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인문학 역시 인간의 본성, 취향, 성향, 선호 등을 분석할 때, 이런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 과학적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사람에 대해 훨씬 풍부한 이해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과학과 인문학을 합치는 것이 아닌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겹창의 방법론입니다. 그래야만 사람과 세상에 관한 온전한 이해를 넘어 새로운 이해들이 가능하며, 이것은 좀 전에 말한 창의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어요. 

 

인문학 역시 인간의 본성, 취향, 성향, 선호 등을 분석할 때,
이런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 과학적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Brand is 
Thing

 

UnitasBRAND 요즘 경영학 쪽에서 인문학 열풍이 거셉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경영학과 인문학의 겹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영학에서 인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겹창적 방법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인문학이 인간의 이해에 대한 학문이라 할지라도 이것만으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부족합니다. 최근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접근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과학기술철학자인 부르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네트워크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입니다. 이 이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자연·도구 등 비인간도 인간의 행위를 바꿀 수있는 행위 능력을 가진 대칭적 행위자(actor)로 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총을 쏘는 행위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총도 사람도 아닌 총과 사람의 합체인 ‘총을 쥔 사람’이라는 ‘새 행위자’가 하는 것입니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ANT, Actor-Network Theory)는 자연, 도구 등 비인간도 인간의 행위를 바꿀 수있는 행위 능력을 가진 대칭적 행위자(actor)로 본다

 

 

인문학이 인간의 이해에 대한 학문이라 할지라도 이것만으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부족합니다.  

 

사람과 총이 만남으로써 인해 사람도 바뀌고 총도 바뀐다는 것이지요. 총을 가진 사람이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며, 총 역시도 사람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옷장 속에 있는 총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총을 쥔 인간이라는 새 행위자가 등장하면 그 이전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됩니다. 겁만 주려고 했는데 총을 손에 쥐게 되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거죠.

 

라투르는 ‘사물’을 의미하는 단어인 ‘Thing’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적 대상이 아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새로운 액티브한 존재로 이야기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 생각해 보세요. 사람을 죽인 것은 인간일까요, 아니면 총일까요? 이것이 과연 인문학적 관점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라투르는 ‘사물’을 의미하는 단어인 ‘Thing’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적 대상이 아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새로운 액티브한 존재로 이야기합니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 ANT(Actor-Network Theory)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은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등 근대의 이원론적인식 체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객체object나 조직organization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다른 네트워크 이론과 구분된다. 홍성욱 교수는 브루노 라투르의 저서 《인간ㆍ사물ㆍ동맹》을 통해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네트워크’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 네트워크는 위계질서를 갖지 않으며, 오히려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들의 결합, 즉 이질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들만의 사회가 아닌 실제 세계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연구한다.

 

인류는 도구적 존재라고 불릴 만큼 도구를 만들고 이용해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UnitasBRAND 사실 인류는 도구적 존재라고 불릴 만큼 도구를 만들고 이용해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현대판 도구인 제품 역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행위의 목적에 의해 단순히 대상으로 간주되어 왔죠.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의 행위 목적만을 위해서 제품을 만드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이제 관점을 달리해 제품 자체를 Thing으로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관점을 달리해 보면 Thing 없이는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런 Thing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행위가 생기며, 그것이 곧 나를 규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런 Thing을 그저 단순한 보조수단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Thing 자체가 나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Thing으로 인해 나의 행위가 바뀌기 때문에 Thing이 곧 새로운 행위자를 만들며 그 새로운 행위자가 또다시 내가 되는 것입니다. 

 

Thing 자체가 나 자신이 되면서 생긴 재미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Thing을 customize하는 현상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변형해서 쓰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이 똑같은 기술과 디자인을 가진 아이패드라는 기계를 쓰지만 누구 하나 같은 화면과 같은 어플 구성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모두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최적화합니다. 

 

Thing으로 인해 나의 행위가 바뀌기 때문에 Thing이 곧 새로운 행위자를 만들며 그 새로운 행위자가 또다시 내가 되기도 한다.

 

Thing 자체가 나 자신이 되면서 생긴 재미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Thing을 customize하는 현상입니다. 

 

 

UnitasBRAND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액티브한 존재가 Thing이라면 브랜드 역시 Thing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사람들과 혹은 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죠. 브랜드를 단순히 소비되는 대상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낳고 사람의 행위를 변화시키며 사람을 표현하는 액티브한 존재인 Thing으로 본다면 브랜드에 대한 창의적인 발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랜더에게 Thing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휴대폰으로 인해 현재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휴대폰이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휴대폰 그 자체가 사람 간의 관계나 행복, 애정 같은 감정 등을 낳으며 이전에 없던 인간의 감정과 관계들을 만들어 내고 있죠. 그리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의 소통방식까지 변화되고 있어요. 

 

Thing은 이처럼 굉장히 액티브한 존재로서 사람을 이해하는데 훨씬 적극적인 존재이며,
어떻게 보면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로도 볼 수 있습니다. 

 

 

Thing은 이처럼 굉장히 액티브한 존재로서 사람을 이해하는 데 훨씬 적극적인 존재이며, 어떻게 보면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Thing이 우리를 이어주는 애정, 혹은 그로 인해  생겨난 관계, 변화된 우리 자신 그 자체로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브랜드를 통해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것들을 형성한다면 브랜드 역시 Thing이라고 볼 수 있죠. 브랜더가 Thing을 바라보는 관점은  또다시 겹창으로 돌아갑니다. 겹창적 시각을 통해  바라봐야 Thing 속에서 사람들의 행위에 영향을 주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브랜더가 Thing을 바라보는 관점은  또다시 겹창으로 돌아갑니다.
겹창적 시각을 통해 바라봐야 Thing 속에서
사람들의 행위에 영향을 주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품을 제품으로 보지 않고 Thing(사용자의 행동 유발자)으로 본다는 것. 

겹창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홍 교수의 피력에 힘을 싣고 싶은 이유는 브랜더와 마케터가 이러한 사고 방법을 체화했을 때 가질 수 있는 막강한 힘 때문이다. 만약 브랜더가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을 제품으로 보지 않고 홍 교수가 말한 Thing(사용자의 행동 유발자)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면 과연 휴대폰을 의사소통 도구로, 음식을 위를 채우는 물질로, 옷을 신체 가리개 용으로만 인지하고 제작할까? 아마도 그 제품 및 서비스가 가져야 할 본질적 기능에서 시작해 하나의 주체로서 그것이 (Thing) 지녀야 할 태도와 역할까지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곧 브랜드가 행할 수 있는 넛지(nudge,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의미로 상대방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선택 설계’로까지 의미가 확장된 단어)를 무한히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는 당연히 경쟁자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뿐인가. 날로 발전해 가는 과학과 기술을 발판 삼아 브랜드의 미래를 상상하며 다양한 방식으로의 ‘제품 의인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기계가 사용자를, 사용자가 기계를 서로 알아보는 요즘, 그리고 그런 현상이 더욱 도드라질 미래에, 서로 다른 두 영역을 겹쳐 볼 수 있는 겹창적 사고는 그래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성욱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1994년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 토론토대학교 과학기술사철학과 조교수가 되었다. 2000년 테뉴어를 받아 종신교수가 되었다.《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등 10여 권의 저서와 20여 권의 공저, 편저, 역서를 출간했다. 현재 미국기술사학회 운영위원, ‘East Asian STS: An International Journal’의 부편집인이자, 2003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식의 융합, 신경윤리, 적정기술, 과학기술자의 창의성과 리더십, 백남준의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통해 본 기술과 예술의 관계 등을 연구 중이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下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브랜드 인문학, 겹창을 통한 창조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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