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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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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 진실을 더하려면 진실을 빼라(When you add to the truth, you subtract from it)는 말이 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경구이지만 나는 이 말을 나의 업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브랜드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가 진실이라고 믿던 모든 것을 빼는 것이다. 거품을 빼는 작업이다. 이렇게 도저히 뺄 수 없을 때까지 빼고 나면 앙상한 ‘사실’만 남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 과대 포장한 것들을 뺀다. 나의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모두 빼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나라고 인식하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나에게서 빼고 싶은 것은 나의 것이고, 빼고 싶지 않은 것들은 나의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이것은 마치 나의 육체를 이루는 살덩어리 중에 지방은 나의 것이 아니고 근육만이 나의 몸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빼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자기다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행복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5분만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엉뚱하게도 포장된 나의 정체가 탄로난 듯한 수치심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내가 소비하고 소유한 것을 나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모든 매체를 통해서 브랜드를 구매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진지하게 속삭인다. 자기다움에 관한 질문을 받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막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자기다움’이냐고 물어보면 본능적인 거부 반응이 생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유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잠시만 생각해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다움’의 질문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닌 ‘나’를 이야기해 보자. 과연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책이 A4 용지 형태의 ‘원고’로 있을 때,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미리 보여 준 적이 있다. 원고를 본 그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의 하나가 ‘자기를 찾는 것’과 ‘자기다움’이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많은 책에서 ‘자기를 찾으면 자기다워진다’고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 ‘자기다움’은 그것과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기를 찾는다고 자기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지혜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를 찾으면, 자신의 존재가 하찮게 여겨져서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선택하거나 이와 반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다움이라고 굳게믿어 잘난 척하며 살게 된다.

 

이처럼 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알게 되는 진실은, 자신이 이토록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거나, 반대로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모으면 자기다움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거나이다.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내가 나를 모르는 것과 남이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남이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내가 아는 것 사이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줍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지능 테스트부터 시작해서 각종 심리와 능력 테스트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유형을 알아 장단점을 조절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신을 찾는 것은 ‘자기다움’의 과정일 뿐 결과는 아니다.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찾는 것처럼 ‘자기다움’을 찾는 것 자체가 횡재는 아니다. 자기다움을 찾는 것은 마치 땅속 수천 킬로미터를 파고 들어가서 원광석을 캐는 작업과 같다. 원광석은 말 그대로 제련되지 않은 상태의 돌덩어리다. 이 돌을 녹여 100%의 순도인 금속을 얻는 작업이 바로 ‘자기다움’의 구축 과정이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일하는 분야는 마케팅과 디자인 영역에 겹쳐 있는 ‘브랜드’다. 최근 이 분야의 가장 큰 이슈가 바로 ‘자기다움’이다. 그 이유는 ‘차별화’를 구축하는 가장 유일하고 강력한 방법이 ‘자기다움’밖에 없다는 것을 많은 브랜드들이 애플과 같은 브랜드를 보고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독자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브랜드를 떠올린다면 그 즉시 그 브랜드의 스타일, 컨셉, 메시지가 생각날 것이다. 그것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자기다움’이다. 시장에서는 ‘자기다움’이 독점이라는 형태의 힘을 가진다.

 

독점(monopoly)은 그리스어로 ‘유일한(monopolia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mono’와 파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plein’이 결합한 단어로 ‘유일한 것을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든 기업은 자신의 브랜드가 자기다움이라는 독점적인 스타일로 시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를 원한다.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되었다는 의미는 ‘차별화’에 성공해 자신이 다른 상품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것임을 증명했다는 뜻이다. 브랜드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 되어 다른 것에 의해서 대체되지 않는 것이다. 브랜드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되어야만 시장에서 생존하고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분명 시장에는 애플보다 더 좋은 사양과 저렴한 가격의 노트북이 있음에도, 애플 마니아들은 애플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브랜드는 이런 차별화를 만들기 위해서 자기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기다움이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정작 본인의 자기다움을 물어보면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하는 브랜딩은 일반적인 상품을 특별한 상품으로 만드는 모든 마케팅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인 상품이 특별한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유일한 것과 원본이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사람을 보면 사람은 브랜드와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원본이고 유일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유일한 브랜드였지만 죽을 때면 대부분 그 누군가의 복사본(짝퉁)이 되어서 생을 마친다.

 


 

우리를 복사본으로 만드는 것은 놀랍게도 현재의 교육, 직장, 시장 그리고 대중 미디어들이다. 교육은 특별한 사람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든 다음에 그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을 순위 매기는 시스템이 되었다. 직장은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평범한 일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시장은 대중(유행)이라는 거대 시장을 만들기 위해 대중적 취향(대세)이라는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한다. 그 중심에 있는 대중 미디어는 이런 모든 것을 조장한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가치는 단지  ‘좋아요’라는 감탄사로 진실과 영웅이 결정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자기다움’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가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2001)의 개정판이다.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의 초판 주제가 새벽에 일어나는 가치의 기적을 중심으로 썼다면, 개정판인 《자기다움》은 ‘가치 구축의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썼다.《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에서 말하는 새벽 가치를 제외하고 모두 다시 썼다.

 


 

60억 인류의 원본(인간)들이 모두 가치 있는 원본으로서 ‘자기다움’을 구축할 수 있을까? 이미 마이클 조던과 오프라 윈프리와 같이 ‘자기다움’을 자신의 능력과 잘 결합하여 휴먼 브랜드가 된 사례는 많다. 하지만 지구상에 사는 60억 명이 모두 그들과 같은 상업적인 휴먼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이 책에서 60억 명 모두가 시장성이 뛰어난 휴먼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부두교의 주문을 외치지는 않는다.

 

이 책은 60억 명 모두가 원본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가치있고, 자신의 원본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60억 명의 ‘자기다움’으로 ‘우리다움’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데 자기다움을 발견해서 지금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단지 이상일 뿐이지 않은가?”

 

이 질문은 원고를 검토했던 편집팀 에디터의 피드백 중에 온 질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이 질문의 대답으로 ‘자기다움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잘살고 잘 먹기 위한 참으로 영리한 생각이다’라는 생각을 설득하기 위해 작정하고 쓴 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다움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대안이다’라는 메시지를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

 


 

“당신의 ‘자기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에게 남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당신의 자기다움으로 우리다움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도대체 그 ‘자기다움’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평생 살면서 이런 질문을 받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그러나 누구나 스스로 꼭 두 번은 자신에게 묻는다. 

 

첫 번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다. 

두 번째는 노인이 되어서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다.

 

어떤 질문은 대답보다 가치가 있다.

 

권민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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