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저는 요즘 제 실력과 조직 안에서의 신뢰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사장님께 같은 프로젝트 보고서를 여러 차례 올렸는데, 그때마다 방향은 크게 틀리지 않다고 하시면서도 계속 다시 검토해 보자는 말씀만 하십니다. 처음에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제 보고서의 문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에 대한 판단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임자였다면 이미 통과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이 제 아이디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저를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고서를 수정하는 일보다, 왜 나는 아직 이 조직에서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조직은 결과물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고서보다 사람이 먼저 판단받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저는 제 부족함을 더 점검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 관계 안에서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지 기다려야 할까요. 실력과 신뢰 사이에서, 사람도 결국 브랜드가 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두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아직 통과해야 할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편집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박 차장에게
자네 편지를 읽고 한참 생각했네.
32일이라고 했지. 자신감 넘치는 보고서를 사장님께 올리고, 결국 사표를 내기까지 걸린 시간이 말일세. 숫자로 들으면 짧아 보이지만, 마음으로 지나간 시간은 아마 훨씬 길었을 걸세. 나는 그분과 처음 만나고 7일 만에 첫 사표를 냈었네. 그러니 자네는 나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더 오래 버틴 셈이군. 그 점은 먼저 인정해야겠네. 자네가 약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일세.
자네 편지를 읽으며 내가 이해한 사실은 이렇네.
자네는 사장님께 보고서를 세 번 올렸고, 사장님은 계속 검토하라고 하셨지. 자네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네. “이걸 전무님이 들고 갔으면 벌써 통과됐을 텐데.” 그 생각이 쌓이다 보니 결국 자네는 사장님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이것이 자네가 말한 팩트 아닌가.
그런데 박 차장, 나는 자네가 사실을 정리하는 데는 능하지만, 그 사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읽는 데는 아직 조금 이르다고 보네. 자네는 분명 패기가 있네. 아이디어도 있고, 추진력도 있지.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나도 생각하네. 하지만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조금 다른 문제일세.
이 말이 자네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겠군.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게. 자네는 내가 자네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나.
자네는 아직 전임자의 그늘 안에 있네.
그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네.
사장님은 나와 10년을 함께 일하셨지. 그분은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을 걸세. 보고서를 보기 전에 사람을 읽을 수 있었다는 뜻이네. 하지만 자네는 어떤가. 자네와 사장님의 관계는 아직 그만큼의 시간이 쌓이지 않았지 않나.
그러니 아무리 훌륭한 보고서를 만든다고 해도, 결정권자는 결국 그것을 만든 사람까지 함께 보고 판단하게 되네. 이건 자네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네.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사람들은 흔히 보고서가 좋으면 통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물론 맞는 말일세. 하지만 실제 조직은 그렇게만 움직이지 않네. 보고서의 완성도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들고 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실패했을 때 어떤 얼굴로 다시 들어올 사람인지까지 함께 보게 되지.
자네는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결국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는 말 아닙니까?”
맞네. 결국은 사람을 보지.
그런데 이 말을 단순히 감정이나 충성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말게. 나는 이것을 오히려 브랜드의 문제라고 보네. 우리가 브랜드의 구성 요소를 이야기할 때 네 가지를 말하지 않나. 인지도, 선호도, 연상 이미지, 그리고 품질. 그런데 박 차장,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품질이 아니네. 소비자가 지각하는 품질일세. 우리 스스로 품질이 좋다고 말하는 것보다 상대가 그것을 그렇게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지.
자네의 품질이 나쁘다는 말이 아닐세. 소비자인 사장님이 아직 자네의 품질을 충분히 지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 자네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라기보다 아직 인정받는 과정 안에 있는 상태라고 보는 편이 더 맞네. 나는 오히려 사장님이 지금 자네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네.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판단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일세.
자네는 결과만 보고 마음이 먼저 결론으로 달려가 버린 것 같네. 물론 나는 자네가 나에게 쓴 편지 안에 다 담지 못한 일들이 더 많으리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차마 적지 못한 말도 있었겠지. 오죽하면 나에게 이런 편지를 썼을까 싶네. 내가 모르는 고통스러운 일이 분명 있었을 걸세. 그 점은 내가 가볍게 보지 않네.
하지만 그럼에도 자네가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네. 사람의 품질은 보고서가 결정하지 않네.
사귀어 봐야 알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품질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드러나네. 위기 속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억울할 때 어떤 말을 하는지, 자기 판단이 통과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오래 중심을 지키는지. 바로 그런 것들이 사람의 진가를 말해주지.
타인을 알면 지혜이고, 자신을 알면 현명이라고 하지 않나. 말은 달려봐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는 말도 있지. 자네는 지금 보고서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지만, 사장님은 아마 자네라는 사람의 시간을 보고 계셨을 걸세.
박 차장, 브랜드가 론칭 직전에 있다고 생각해 보게.
그 시점에 정말 중요한 것은 상사의 즉각적인 인정이 아닐 때가 있네. 결과가 좋으면 어려운 과정은 나중에 스토리가 되고, 결과가 나쁘면 좋았던 과정조차 징조로 읽히지 않던가.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자네가 붙들어야 할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시간일세. 조금 더 시간을 통과해야 보이는 것이 있네. 자네의 판단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네. 어느 정도는 인정하네. 자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었을 걸세. 하지만 어떤 부분은 내가 끝내 동의할 수 없네. 왜냐하면 자네가 아직 경험 전에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너무 빨리 결론 내려버렸기 때문일세.
이건 책으로도, 보고서로도, 누가 대신 설명해 줘도 다 알 수 없는 종류의 지식일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축적되는 지식이지. 관계의 시간 속에서만 드러나는 종류의 것이네.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하나일세. 지금 이 일을 자네 자리에서만 보지 말게. 조금만 더 다른 위치에서 다시 보게.
사장님은 무엇을 보고 계셨는지, 자네는 무엇을 너무 빨리 확신했는지, 그리고 자네가 정말 원했던 것이 통과였는지, 아니면 신뢰였는지를 다시 물어보게. 아마 그 질문 앞에서 자네도 자네 자신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될 걸세. 참고로 자네 사표 이야기는 이미 들었네. 사장님께서 김 부장을 통해 그 사실을 아셨고, 그 자리에서 반려하셨다고 하더군. 나는 그 결정을 단지 절차를 멈춘 것으로 보지 않네. 자네에 대한 판단을 아직 끝내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리네.
그러니 자네도 너무 서둘러 마음을 닫지 말게. 아직 끝난 일이 아니라면 자네 쪽에서도 한 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네. 그것이 남기 위한 결정이든 떠나기 위한 결정이든, 이번에는 감정이 아니라 시간 위에서 내리는 판단이어야 하네.
그럼 수고하게.
P.S.
한 가지만 덧붙이겠네.
자네는 지금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 하네. 그렇게 말하면 상황은 단순해지지. 상대가 문제이고, 자네는 피해자가 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네. 신뢰는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보고서 한 장으로 입증되는 것도 아니야. 같이 시간을 보내고, 몇 번의 판단을 통과하고, 기대와 실망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쌓이네. 그러니 자네가 이번 일에서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보고서의 통과 여부가 아닐세. 자네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는가 하는 문제지. 사람도 결국 브랜드가 되니까.

여기서 브랜드는 로고나 슬로건이 아닙니다.
같이 일한 사람들이 나와 우리 부서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워크숍은 누가 맞고 틀린지를 가리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팀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을 아직 준비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확인하기 위한 점검 도구입니다.
각 문항에 대해 1점부터 5점까지 표시합니다.
나는 결과가 보류될 때 어떻게 해석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내 실력과, 상대가 느끼는 내 실력은 같은가
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읽히고 있는가
우리 부서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시간을 통과하며 어떤 사람으로 드러나는가
나는 조직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읽히고 있는가
내 품질과 상대가 느끼는 품질은 같은가
나는 보고서 이전에 사람으로 읽히고 있는가
우리 부서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시간을 통과하며 어떤 사람으로 드러나는가
오늘 워크숍은 실력을 평가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실력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를 함께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두 칸을 나눠 작성합니다.
A. 내가 생각하는 나의 품질
B. 타인이 지각하는 나의 품질
각자 아래 3가지를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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