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1996년 12월 28일 결혼식은 최고의 날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5개월 뒤, 신혼부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고난이 시작되었다. 1997년 초부터 감지되던 이상 징후는 가을이 되자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고, 11월 21일 마침내 IMF 사태가 터졌다.
그 뒤로도 불황은 이름만 바꾼 채 집요하게 반복되었다.
2000년 IT 버블이 꺼지던 해, 나는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던 날, 나는 세 번째 마감을 하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봄, 나는 창업학교를 오픈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황은 언제나 내가 무언가를 치열하게 만들고 있을 때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2026년 지금,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 급등하는 유가라는 또 다른 불안이 다시 우리 앞에 서 있다.
30년 가까이 이 사이클 속에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무감각해진 면도 있었다. 호황이 무엇인지 실감할 틈도 없이 달려오다 보니, 세상이 원래 이런 곳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10년 전 유니타스브랜드를 만들 때도 나는 불황의 해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저자와 인터뷰이를 만났다. 이번 엔텔러키 브랜드 특집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불황에 대한 대처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유령 앞에서 주술처럼 반복되는 모호한 말들만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예전 원고와 인터뷰를 들춰보았다. 30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는지 찾고 싶었다.
결국 그것은 브랜드였다.
뻔한 결론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제대로 붙잡지 못한 해답이기도 하다. 내가 겪어본 불황의 맛은 늘 ‘단짠’이었다. 모두에게 ‘짠’ 불황처럼 보이지만, 어딘가에는 늘 또 다른 ‘단’ 호황이 자라고 있다. 불황은 비대칭적으로 오고 비선형적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곳이 있으면, 그 곁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곳도 있다. 이번 특집에서 만난 브랜드들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앞으로의 불황은 IMF 때보다, 코로나 때보다 더 길고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30년의 파도를 견디며 내가 끝내 붙들게 된 결론은 하나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브랜드는 더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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