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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브랜딩, 살아남은 자의 법칙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5. 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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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역사학자 공원국

 

 “공자 81대손입니다.”
공원국 작가와의 인터뷰는 공자 81대손답게(?) 진행되었다. 질문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생각할수록 복잡한 생각들이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대답이 ‘공자왈 맹자왈’처럼 들렸지만 인터뷰가 끝난 후 다시 한번 그의 말을 곱씹어 보니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것이 마치 서당에서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브랜더라면 중국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단지 시장으로서의 중국이 아니라 브랜드 원천으로서의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브랜드 관점에서 세계의 시장을 주도할 브랜드가 나올 곳이 있다면 분명 중국이다. 그 이유는 중국은 시장, 역사, 이야기, 철학, 제품 그리고 그것을 세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장에 이르기까지 브랜드가 최적화될 만한 모든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 시장이 될 것이다.

 

“진나라는 무려 550년간 계속되던 춘추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제대로 찍으며, 통일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 준 것이죠.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통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나라는 20년 만에 망하고 맙니다. 왜일까요? 바로, ‘품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품격이란 일종의 명분, 그러니까 ‘이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분명한 표현일 것 같은데요, 작은 나라의 경우 힘만 있어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가 커지면 그때부터는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명분이나 이념을 제시해야만 나라가 존속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는 힘을 기르는 방법에는 지혜로웠을지 모르나, 결국 나라의 이념을 만들지 못해서 힘겹게 일궈 낸 통일국가를 한(漢) 나라에게 내주고 맙니다.” 

 

진나라의 멸망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남긴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휴대폰을 가장 많이 팔고 싶은 기업의 이념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TV를 가장 많이 팔고 싶은 기업의 이념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팔고 싶어하는 기업의 이념은 무엇일까?

 


결국 살아남는 브랜드란 처음에는 강력한 힘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품격, 예(禮)를 지키는 
그러니까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춘추전국시대,
인간의 원형을 담다 

 

UnitasBRAND 경영학자들이 ‘중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바로 역사 속에서 중국이 보여 준 ‘위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동양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의 근원을 쫓아가 보면 대부분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선생님은 중국의 역사 중에서도 유독 ‘춘추전국시대’를 주목하고 있는데요, 몇천 년의 중국 역사에서 왜 유독 ‘춘추전국시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공원국(이하 '공') 중국을 여행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참 넓다, 어떻게 조그마한 부족 국가가 이렇게 거대한 나라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중국을 제대로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동서남북으로 자연이 허락하는 경계까지 모두 뻗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절감하실 겁니다. 알다시피 중국은 황하 유역에서 시작한 아주 조그만 부족 국가였잖아요. 대부분 나라들의 시작이 이러한 작은 부족에서 시작했지만, 수많은 시간을 지나서 거대한 나라로 성장한 것은 또 다른 얘기니까요.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중국은 어떻게 거대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저의 관심이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가 *융족에게 밀려 동쪽 낙양, 혹은 낙읍이라 불리던 곳으로 옮겨 온 시대부터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그러니까 대략 550년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춘추전국시대는 잘 알려져 있듯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수백 개의 국가들이 패권 다툼을 하던 시대였지요. 하극상은 기본이고, 약육강식이 그야말로 문화라 불리던 난세(亂世)중의 난세였습니다. 이렇게 극심한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가 왜 중요할까요?

 

 

바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진나라가 통일을 이루고,
그 후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오늘날 우리가 ‘중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몸체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진나라가 통일을 이루고, 그 후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오늘날 우리가  ‘중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몸체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황하를 중심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뒤엉켜 싸우는 이 550년이란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 보면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춘추전국시대를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550년 동안 있었던 수많은 갈등과 화합 등을 살펴보며 중국뿐 아니라 한 나라의 뼈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주요 요인들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죠. 거기에 난세에는 영웅이 태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 맹자, 한비자 등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모두 이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철학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어떻습니까, 춘추전국시대가 달리 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관심만은 아닙니다. 역사학자에게 춘추전국시대를 본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원형을 비롯하여 한 나라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융족

융족은 중국의 서북 지역에 거주하던 소수민족들을 통칭하는 말로 ‘서융(西戎)’이라고도 불린다. 융족과 신나라는 연합하여 주나라의 수도 호경을 순식간에 빼앗는다. 한때 주나라는 은나라를 치며 제후국들에게 ‘주나라는 강하다’라는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 주었지만 수도를 점령당하는 일을 계기로 현격히 떨어진 주나라의 실력이 만천하에 알려지며 제후국들로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이 전쟁으로 인해 주나라의 주유왕은 융족에게 붙들려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수도 호경의 빼앗김과 왕의 죽음, 이 두 사건은 당시 봉건 지배 체제의 정점에 있던 주나라 왕실의 권위와 통제력 상실로 이어졌고 고대 중국의 봉건 사회를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천하는 왕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는 약육강식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었다.

 

BRAND Think 
*
춘추전국시대

융족은 중국의 서북 지역에 거주하던 소수민족들을통칭하는 말로 ‘서융(西戎)’이라고도 불린다. 융족과 신나라는 연합하여 주나라의 수도 호경을 순식간에 빼앗는다. 한때 주나라는 은나라를 치며 제후국들에게 ‘주나라는 강하다’라는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 주었지만 수도를 점령당하는 일을 계기로 현격히 떨어진 주나라의 실력이 만천하에 알려지며 제후국들로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이 전쟁으로 인해 주나라의 주유왕은 융족에게 붙들려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수도 호경의 빼앗김과 왕의 죽음, 이 두 사건은 당시 봉건 지배 체제의 정점에 있던 주나라 왕실의 권위와 통제력 상실로 이어졌고 고대 중국의 봉건 사회를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천하는 왕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는 약육강식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인물

제자백가가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농업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재산을 축적한 서민층의 성장을 통한 계급 이동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당시 군주가 원하는 치국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면서 신분상승의 욕구를 가진 계층이었다. 이러한 욕구와 맞물려 당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도시국가에서 군현제적 영토국가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일반 서민 계급과 오랑캐 지역까지 사상과 지식이 보급되면서 폭발적인 지식인 계급이 성장하게 된다.  또한 당시 나라들은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백가는 주로 이에 관련된 지배층의 정치 문제(윤리, 정치 방식 등)를 다루게 된다. 사상과 학문의 황금시대라 불리며 중국의 여러 사상들의 기초를 이루는 시기로 묵자, 노자, 공자, 장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 중국을 대표하는 동양사상가들의 탄생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역사학자에게 춘추전국시대를 본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원형을 비롯하여 한 나라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UnitasBRAND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진나라와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결국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가 중국의 뼈대를 만드는 소위,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겠네요. 말씀하셨다시피 춘추전국시대는 엄청난 혼란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 속에서 무언가의 원형을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인지는 언뜻 공감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만약 우리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국가에서 지정한 법에 저촉을 받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법에 의해 처벌 받지 않도록 도망갈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에는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당시는 국경의 경계가 모호해서 도망가는 일이 가능했으니까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때만 해도 국가와 인간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때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책임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국가의 통제권이 약했기 때문에 개인들이 무척이나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국가보다 오히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았어요.

 

 

오늘날의 사회처럼 사회가 주는 다양한 제약들이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에서는 인간의 날 것이 그대로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처럼 사회가 주는 다양한 제약들이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에서는 인간의 날 것이 그대로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제약들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명료하게 드러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원형들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입니다. 인간이 어떤 것의 제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본능과 본성을 드러내는지를 본다면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과 이해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결국, 인간은 사회적인 제도를 만듭니다. 작은 부족 국가에서 점점 그 규모가 커지면서 인간들은 통치의 수단이 필요함을 느끼겠지요. 그러면 법과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가 가지는 두 번째 매력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 그리고 한나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러니까 국가와 인간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차 분리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국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지 혹은 필요하지 않은지를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제도를 만듭니다.
작은 부족 국가에서 점점 그 규모가 커지면서 인간들은 통치의 수단이 필요함을 느끼겠지요. 

 

 

왜 누구는 남고, 
누구는 사라졌는가?

 

UnitasBRAND 춘추전국시대를 단순히 난세라고 보기에는 그것에 숨어 있는 비밀들이 무척이나 많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춘추전국시대에는 주나라가 망한 후 수백 개의 나라들이 패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던 그 유명한 진시황제에 의해 진(秦)나라가 통일을 이루면서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리죠. 수많은 나라가 패권 다툼을 벌였는데, 왜 진(秦)나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우리는 결과론적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요. 개개의 사건 속에 얽히고 설킨 관계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이 만들어 낸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드리면, 첫 번째 이유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진(秦)나라뿐만 아니라 550년 동안 패권 다툼을 벌이던 수많은 나라 중에서 살아남은 나라들의 공통점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습니다. 진(秦)나라의 경우 처음 생겨났을 당시는 작은 나라였지요. 그래서 나라의 힘을 키워 나가는 데 아주 전략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해 볼 것이 귀족들을 없앴다는 점이죠. 진나라는 귀족들이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했어요. 왕과 백성 사이에 있는 것이 귀족이잖아요. 그런데 이 귀족 계급이 중간에서 백성들을 착취하고 괴롭히기 때문에 나라의 기강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본 거죠. 그래서 과감히 이 귀족 계급을 없애고 왕과 백성이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어요.

 

 

진(秦)나라의 경우 처음 생겨났을 당시는 작은 나라였지요.
가장 먼저 주목해 볼 것이 귀족들을 없앴다는 점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이나 유럽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노예 제도가 깨졌다고 볼 수 있어요. 중간의 착취 계급을 없앴으니 백성들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더욱 왕권에 복종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왕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질서가 잡히면서 나라가 힘을 가지게 되는 거죠. 게다가 진나라는 전체 사회가 군인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병영 사회였습니다.

 

진시황제

 

진나라는 힘을 기르는 방법에서는 지혜로웠을지 모르나,
결국 나라의 이념을 만들지 못해서 힘겹게 일궈 낸
통일국가를 한(漢)나라에게 내어 주고 맙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언제나 전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국가들이 많긴 했죠. 어쨌든, 이러한 병영 사회에서 진나라는 전쟁에 나가서 적을 베면 후한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전쟁 중에 획득한 것은 무조건 왕이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분배해 주었죠. 그것이 재물이든, 땅이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한마디로 *파격적인 체제였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진나라는 점점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중국 최초로 제국의 모습을 갖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수백 개의 나라가 황하를 중심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었기 때문에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힘을 갖는 것은 어쩌면 필수겠지요. 진나라는 어떻게 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려 550년간 계속되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제대로 찍으며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실 본론은 이제부터입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통일을 했는데, 진나라는 20년 만에 망하고 맙니다.

 

 

왜일까요? 바로 ‘품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품격이란 일종의 명분, 그러니까 ‘이념’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바로 ‘품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품격이란 일종의 명분, 그러니까 ‘이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분명한 표현일 것 같은데요, 작은 나라의 경우 힘만 있어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가 커지면 그때부터는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명분이나 이념을 제시해주어야만 나라가 존속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는 힘을 기르는 방법에서는 지혜로웠을지 모르나, 결국 나라의 이념을 만들지 못해서 힘겹게 일궈 낸 통일국가를 한(漢)나라에게 내어 주고 맙니다. 

 

*파격적인 체제

중국사회연구사센터 장펀텐(張分田) 교수는 “진시황제는 영웅과 폭군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야누스적 인물”이라고 그의 저서 《진시황 평전》에서 언급한다. 독재적 폭군이라는 일면을 지녔지만 그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든 주인공으로서 황제 제도라는 시스템의 창안자이자 중앙집권적인 정치의 규범화를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세계 최초의 법치 왕조로서 사상과 문자, 도량형, 법제, 신분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준시스템을 확립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준 왕이었다. 진시황제가 만든 국가 체제 시스템은 이후 2,000년 동안 중국을 비롯하여 주변 여러 국가들의 틀을 유지하는 기본지침이 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중국 시스템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처럼 명분을 가진 브랜드들은 고객에게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메시지가 되기도 하거든요. 

 

 

UnitasBRAND 품격, 명분, 이념… 아주 흥미로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최근 브랜드들의 움직임을 보면 일종의 ‘명분’을 찾아가는 듯하거든요. 잘 알려진 사례인 바디샵의 경우 환경 운동에 관심이 많아 국제적인 환경보호 단체인 그린피스와 함께 ‘고래 살리기 운동(Save the Whales)’을 펼치기도 했으니까요. 

 

바디샵은 다양한 환경 운동을 통해 브랜드만의 이념을 들어내는 일을 해왔다.  ⓒthebodyshop

 

이처럼 명분을 가진 브랜드들은 고객에게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메시지가 되기도 하거든요. 결국에는 브랜드도 힘은 있어야 하나, 명분을 지향해야지만 영속성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품격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반갑게 들립니다.

 

 맞습니다. 힘은 잠깐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해 주지만, 명분은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 주지요. 결국 품격이란 다른 말로 정신적인 가치, 그러니까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점점 커지면 힘만으로는 절대 지배할 수 없게 됩니다. 힘보다 훨씬 강력한, 그 이상의 이념을 필요로 하지요.

 

사실, 진나라가 귀족을 없애 버리고 왕 아래로는 모두 평민이라는 정책을 만든 것이나, 전쟁 시에 백성들에게 수많은 보상을 해준 것은 작은 의미에서 일종의 명분을 만드는 시도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품격이라고도 구분지어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시도가 있었기에 백성들이 목숨을 내놓고 전쟁에 참여하여 결국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그러나 진나라는 그 후에 백성들이 바라볼 수 있는 국가의 이상향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품격이란 다른 말로 정신적인 가치, 그러니까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춘추전국시대에는 그저 전쟁을 통해 승리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을 겁니다. 그게 곧 행복이었겠지요. 그런데 통일을 한 후, 더 이상 전쟁을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죠. 다시 말해 삶의 목표가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이때에 진나라는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을 제시하지 못했던 겁니다. 결국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못 느끼게 되었고, 결국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진나라가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힘보다는 이념이 결국 국가를 유지하는 더 큰 힘인 거지요.

 

*반란
진시황제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여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들어 냈다. 진시황제는 법이 모든 걸 통치한다는 체제인 법가사상을 숭상하며 이를 통일 후 혼란스러운 나라를 다스릴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가혹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분서갱유'와 같은 문화적 탄압도 함께 자행되었다. 또한 귀족 계층을 없애는 대신에 왕권의 힘을 보여 주려는 진시황릉, 만리장성 축조와 더불어 사치의 대명사인 아방궁까지 지으며 백성들을 힘으로 약탈해 민심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시황이 죽자 황궁 내부에서는 승상이 황제를 조종하고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진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진나라는 결국 한고조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에 의해 멸망당함으로써 20여 년 만에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가 사라지게 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영토 지도 ⓒnamu.wiki

 

이것이 진나라가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힘보다는 이념이 결국 국가를 유지하는 더 큰 힘인 거지요.

 

 

UnitasBRAND 품격이란 정리해 보면, 그 나라가 지향하는 이념, 그러니까 나라의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를 예로 들어 보면, 과거에 브랜드는 상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죠. 그런데 최근에는 브랜드들이 명분을 지향하기 시작하면서 소위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품격이 가지는 힘, 그러니까 영향력이 무엇인지 더욱 듣고 싶습니다. 품격을 이념이나 명분으로 표현하셨는데요, 그것이 힘보다 더욱 강력한 체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진나라가 멸망하고 들어선 한나라는 무려 400년 이상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때 중국은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뼈대를 모두 완성하게 되죠. 그렇다면 한나라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요?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를 거치면서 한나라는 품격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나라는 ‘*유교국가’를 완성합니다. 이 유교의 중심에는 바로 ‘*예(禮)’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예’가 품격, 이념이지요.

 

 

한나라는 ‘유교국가’를 완성합니다.
이 유교의 중심에는 바로 ‘예(禮)’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예’가 품격, 이념이지요.

 

 

사실 이 예는 춘추전국시대 전반에 걸쳐서 볼 수 있는 개념인데, 한나라 때 와서야 비로소 이것이 완성된 형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의 어원을 쫓아가 보면 문화를 뜻하는 영어인 ‘culture’와 그 어원이 같아요. ‘culture’는 ‘경작하다’는 뜻인데 결국 ‘자연 상태인 것을 갈아엎어서 가꿨다’는 말이잖아요.

 

공자는 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요.

“나의 가꿔지지 않은 심성을 꺾고 가꿔진 상태로 간다.”

결국 문화나 예나, 황야 상태인 무엇인가를 갈고 다듬어서 예쁘게 혹은 쓸모 있게 하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가꿔지지 않은 것을 제거하여 가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예의 어원을 쫓아가 보면 문화를 뜻하는 영어인 ‘culture’와 그 어원이 같아요. 

 

 

공자가 쓴《춘추좌전(春秋左傳)》

 

공자가 쓴《춘추좌전(春秋左傳)》에 보면 예(禮)를 가진 사람의 예시로 사회(士會)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일화가 나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예를 가진 사람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는 사회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냐고 물어보니까 대답하기를 “그 사람은 집안일을 잘 다스렸고, 조정에서는 사정을 숨기는 일이 없었으며, 신에게 사실대로 고하는 제문(祭文)에는 부끄러운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말하자면, 사회라는 사람은 집안도 잘 다스리고, 조정 일도 잘했으나, 무엇보다 신 앞에서 정직했다는 겁니다.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제문 혹은 축문을 읽는데, 사회는 그 내용을 읽을 때 신 앞에서 절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제문이나 축문의 내용과 일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예를 실현한 사람은 신의 대리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과 일대일로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이처럼 한나라에서는 예를 중심으로 유교를 완성하여 결국,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예란 인간의 가꿔지지 않은 본성을 잘 다스려서 결국 사회와 같은 성숙한 인간이 되게 하는 규범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주희는 이 예를 ‘하늘 이치의 절도 있는 문채요, 인간 사무의 본이 되는 행동 규범(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나라에서는 예를 중심으로 유교를 완성하여 결국,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결국, 이 이념이란 고도의 정치적인 방법으로 힘보다 훨씬 더 상위의 개념이에요. *당시에는 이것이 예로 표현된 것인데, 이 예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 않고도, 소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통치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니까 예는 일종의 ‘우아한’ 통치수단인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이념의 힘이에요. 

 

어떤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 않고도, 통치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니까 예는 일종의 ‘우아한’ 통치수단인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이념의 힘이에요. 

 

 

*유교국가
유교는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자기 수양에 힘쓰고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린다는 뜻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핵심 사상으로 두고 있다. 사실 한나라 초기에는 미신적인 부분이 더 많은 도가사상이 유행하였으나 한무제는 이런 도가사상을 정리하고, 유교주의를 기반으로 한 황제 중심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한무제가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법가적 유교 정치를 완성하고, 유교는 이때부터 중국의 정통 학문으로 정해진 후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상으로 자리 잡는다. 

 

*예(禮)

‘예’는 사회의 안정적인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유교적 윤리 규범을 지칭한다. 본래 종교적 제사의식에서 유래한 ‘예’는 제사 의례의 구성과 절차로서, 가장 일반적 실천 행위로서의 ‘제사 예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후 인간 생활의 풍속이자 관습으로 규범화되어  오늘날의 정치·법률·도덕 등의 행위를 규정하는 역할을 종합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전국시대 말에는 많은 나라들이 ‘법(法)’을 통치수단으로 사용하였는데, ‘예’는 ‘법’보다 상위 개념으로 개인의 생활과 국가의 통치 전반에 이르는 사회질서의 기본적인 원리로 여겨졌다. 또한 ‘예’ 개념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이를 타율적 구속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율적 주체성에 호소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예’는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한 사회 질서의 규범으로서 고대 사회가 유지되는 제도적, 문화적인 근간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품격이 예를 갖춘 인간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되며 예를 통해서 이념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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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이것이 예로 표현된 것

한 조직을 이끄는 고도의 정치(우선 부정적인 측면은 잠시 접어 두자)는 이념에 의해 그 모양새가 구체화된다. 한나라의 이념이 ‘예’로 정리되고 강력한 정치수단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비단 국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조직의 영속성 또한 그 조직을 대표하는 이념(혹은 이데올로기)의 견고함과 그에 대한 해당 조직원들의 동기화(synchronization) 정도가 이를 결정한다. 브랜드도 조직이며 그들의 이념은 보통 미션과 비전, 그리고 핵심가치로 가시화된다. 브랜드 만트라(brand mantras)나 브랜드의 DOs & DON’Ts도 이념의 그림자다. 이처럼 이념의 공유, 그리고 이념에 대한 조직원들의 확신과 헌신은 결국 브랜드가 리더십을 갖는 상태, 즉 브랜드십을 갖춘 브랜드로의 성숙을 도우며 영속을 꿈꿀 자격을 부여한다. 

 

브랜드도 조직이며 그들의 이념은 보통 미션과 비전,
그리고 핵심가치로 가시화된다.

브랜드 만트라(brand mantras)나 브랜드의 DOs & DON’Ts도 이념의 그림자다.

 

 

UnitasBRAND 오래된 브랜드를 보면 힘보다는 그 브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잘 갖춰진 문화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브랜드 안에서 잘 응축되어 표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브랜드에 매력을 느끼고 영향을 받는 것이죠.

바로 한나라가 예를 통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우아한 통치수단을 만든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기업의 생산활동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지는가가 바로 기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힘이란 한 번에 잃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이 힘을 유지하려면 항상 이념을 중심으로 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나라의 예를 들어 보면, 그들에게 힘이란 조직을 짜는 능력이었고, 예는 그렇게 짜여진 조직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동의를 끌어내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업의 생산활동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지는가가 바로 기업의 힘이다. 이념을 중심으로 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개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일관성’이라는 건데요.
일관성이란 힘과 이념을 국가가 잃지 않도록 국가의 발목에 거는 족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일관성’이라는 건데요, 아무리 힘과 이념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일관되지 않으면 국가는 쉽게,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집니다. 일관성이란 힘과 이념을 국가가 잃지 않도록 국가의 발목에 거는 족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면 결국 살아남는 브랜드란 처음에는 강력한 힘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품격, 그러니까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그 이념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이념을 동일시하면서
그 브랜드를 자연스레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후에는 반드시 스스로 족쇄를 채워 끝까지 힘과 이념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거죠. 그럴 때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지향하는 그 이념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이념을 동일시하면서 그 브랜드를 자연스레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브랜드도 우아한 통치(?) 수단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브랜드에게 있어서 통치와 여기서 말하는 국가의 통치 개념과는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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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갖춰진 문화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턴트로 활동한 패트릭 한론(Patrick Hanlon은 “포드, HP, 리바이스 등 경험에 비춰 볼 때 어떤 브랜드가 오랜 시간 그 명맥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카리스마적 리더가 아니라 그 브랜드만의 ‘문화’ 때문이었고 이것이 결국 브랜드의 영속성을 만든다”며, 브랜드 문화가 기업 이념의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가져야 할 영속성의 전제 조건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독특한 브랜드 문화는 기업의 구성원 전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게 되는 브랜드의 참모습이자 기준이며, 이것이 내외부의 고객들에게 한결같이 전달될 때 그 브랜드의 ‘브랜드다움’이 만들어진다(유니타스브랜드 Vol.16 p5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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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국가 뿐만 아니라 브랜드 입장에서도 일관성이란 단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만하다. 하나는 이념, 즉 브랜드의 사명과 비전, 그리고 문화를 지속적으로 지켜 나가는 데 필요한 일관성이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브랜드에게 있어서도 이념은 근간이 되는 것으로 오랜 시간 꾸준히 지속되어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이념이 상황이나 외부 압력에 의해 빈번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거나 변한다면 브랜드를 만드는 내부 직원도, 소비자도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하고 좋아하며 따르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는 브랜드의 이념과 문화가 전략, 디자인, 제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동일하게 반영, 표현되는 데 필요한 일관성이다. 이념과 문화가 비교적 명확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드러나는 비즈니스의 모든 부문이 한 맥락에서 매끄럽게 통합되지 않고 들쑥날쑥 일관성이 없다면 제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공중 분해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일관성은 국가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있어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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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이념을 동일시 

브랜드를 단순한 소비의 대상이 아닌 동일시의 대상으로 대하는 고객을 우리는 보통 ‘마니아’라 부른다. 이들은 해당 브랜드가 지닌 ‘이데올로기’를 ‘구매’라는 적극적 행위로 지지한다. 심지어 때로는 그 이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한다. 청바지 브랜드인 누디진의 마니아들은 청바지의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청결을 희생하고 1년간 세탁을 하지 않는가 하면, 닥터마틴 마니아들은 이 신발을 신기 위해 일주일 정도 붕대를 감아야 하는 고통을 견뎌 낸다. 이들이 보이는 이런 면모, 즉 논리적으로는 다소 설명이 힘든 ‘슈퍼내추럴 현상’은 마치 원시 부족의 통과의례를 떠올리게 한다. 성인식을 위해 피라니아 이빨로 살을 긁거나 목숨을 담보로 번지점프를 하고, 신체 변형을 감수하고서라도 목에 기다란 링을 계속해서 끼거나 입술이나 볼에 피어싱을 해서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에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는 부족인의 통과의례 말이다.

 

 

역사는 시간을 가지고 여유 있게 통째로 보아야 함을 말합니다. 
그럴 때만이 역사 속에 있는 것에서 
비로소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열쇠 구멍을 찾게 되는 겁니다. 

 

역사, 
미래로 가는 
무딘 열쇠

 

UnitasBRAND 우아한 통치 수단을 갖는 브랜드가 더 많아지길 저 또한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도 아닌 중국, 그것도 과거에 있었던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역사를 반추해 보면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역사를 통해 엿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데요, 역사학자로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어떤 것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역사를 현실에 적용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면 ‘기다림’에 대한 것입니다. 어제의 열쇠로 오늘날의 문을 열려고 하면 열릴까요? 안 열립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막상 역사를 현실에 적용하려고 해도 적용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본다는 말은, 역사는 시간을 가지고 여유 있게 통째로 보아야 함을 말합니다. 그럴 때만이 역사 속에 있는 것에서 비로소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열쇠 구멍을 찾게 되는 겁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무려 550년입니다. 이 550년을 한 토막만 본 후 그것을 현실에 바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이는 역사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약소국들의 생존 방식은 힘과 품격과는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제가 앞에서 설명한 것은 바로 550년의 기나긴 시간 동안 결국, 누가 살아남았느냐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이 550년에서 볼 수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550년 동안 강자는 소수였으며 약자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에서는 약자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생존 방법을 가지고 있었느냐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약소국들의 생존 방식은 힘과 품격과는 조금 다릅니다. 힘과 품격이 있되, 약소국들은 이것들을 훨씬 더 유연성 있게 국가에 적용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딱 한 가지 기본 방침이나 원리를 일관성 있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흐름을 빨리 읽으며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한 국가만이 조금 더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약소국들은 강대국보다 도덕적인 우위를 가지려고 했어요.
도덕적 우위를 가질 때 강자를 건드리지 않고도 굴복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경쟁 이론에 의하면 자연, 자본, 노동과 같은 부존자원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하잖아요. 약소국의 경우, 애초부터 강대국에 비해 부존자원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강대국보다 시대를 더 빨리 읽고, 더 많이 알아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단 한 가지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덕률’인데요, 약소국들은 강대국보다 도덕적인 우위를 가지려고 했어요. 도덕적 우위를 가질 때 강자를 건드리지 않고도 굴복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같이 하나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한 부분만을 떼어서 보면 어떤 것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없어요. 현실에서 약소국에 속하는 작은 브랜드가 강한 브랜드가 했던 살아남는 법칙을 적용한다면 그게 제대로 작동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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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들의 생존 방식 

국가들이 그런 것처럼 시장에도 강대국 같은 브랜드(대기업)와 약소국 같은 브랜드(중소기업)들이 공존한다. 약소국과 마찬가지로 작은 브랜드들은 거대 자본과 대규모 인력의 영향력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연성과 스피드를 무기로 시장에 나서지만 생존율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타스브랜드는 ‘스마트 브랜딩’ 특집에서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브랜드를 다져가고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살펴보았는데, ‘비경쟁’ ‘비타협’ ‘비상식’이 이들의 세 가지 공통점이었다. 시장 점유율과 매출만 보면서 하는 경쟁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 ‘비경쟁’, 유연성을 보일 것과 타협하지 않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아는 ‘비타협’, 그리고 상식적인 방법이 아니라 남들이 미쳤다고 해도 우직하게 나만의 길을 가는 ‘비상식’. 이런 스마트한 브랜드들의 공통점만 살펴보자면 오늘날 약소국들도 이들에게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브랜드를 다져가고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살펴보았는데,
‘비경쟁’ ‘비타협’ ‘비상식’이 이들의 세 가지 공통점이었다.

 

 

UnitasBRAND 결국, 역사란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즐기는 법을 체득하고 다양한 관점을 배워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그것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네요. 최근 중국의 역사는 브랜더들이 가장 즐겨 보는 인문학 공부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가 탄생시킨 제자백가들의 가르침은 필독서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역사를 공부하신 인문학자로서 브랜더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싫더라도 실은 역사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역사란 지난 과거이고, 현재는 여전히 불투명하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숱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역사 해석에 왕도는 없습니다. 역사로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면 거듭 말하지만, 긴 시간 동안 과거를 관찰하고, 또 그것을 천천히 소화해야 하는 것만이 방법입니다. 

 

제자백가는 대표적인 것은 유가, 도가, 법가, 묵가들로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이 시작되자 난세를 수습하기 위한 다양한 사상이 출현했다.

 

 

저는 역사를 ‘무딘 열쇠’라고 정의합니다. 
이처럼 무뎌 보이지만 시간을 조금만 가지고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미래로 가는 열쇠를 제공해 주는 것 역시 역사입니다. 

 

 

역사를 음식에 비유한다면 곰탕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한 곰탕을 먹으려면 적당한 불로 충분히 오래 끓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역사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fact) 곧,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지만, 기록이나 유물 등의 팩트들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상력’ 역시 필요합니다. 이 상상력이 고대인들의 마음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죠. 저는 역사를 ‘무딘 열쇠’라고 정의합니다. 당장 내년의 일을 역사에게 물어봐도 역사는 모른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무뎌 보이지만 시간을 조금만 가지고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미래로 가는 열쇠를 제공해 주는 것 역시 역사입니다. 


공원국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10년째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있는 그는《인물지》《귀곡자》《장부의 굴욕》등에 이어 현재는《춘추전국시대 이야기(전 12권)》를 집필 중이다. 해박한 지리적 정보와 함께 춘추전국시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사학자로서. 최근에는 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아시아 신화 대전 神話大典》을 기획하고 있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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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History) 스마트 브랜딩 살아남은 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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