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브랜드 가치를 만나 문화가 되다.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5. 20. 16:21

본문

반응형

The interview with 경희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이택광

 

삼십 여 명의 인문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대부분 인터뷰 장소를 강북으로 요청했고, 그중에서도 광화문 근처와 안국역 근처가 가장 많았다. 어떤 인문학자는 “인터뷰 장소는 시내였으면 좋겠습니다” 하길래, 유니타스브랜드 근처인 강남역에서 보자고 했더니 대뜸 “제가 말한 시내는 광화문입니다”라고 했다.

 

이택광 교수도 역시나, 안국역 뒤편에 있는 카페 골목으로 오라고 했다. 그가 약속 장소로 정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곳은 한 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매우 소박하(culture)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 순간 그의 저서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가 왜 여길 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 명의 예술가를 상상하며 그곳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사실 나는 인터뷰이와의 약속 시간보다 항상 30분 혹은 넉넉하게 1시간 정도는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 있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섰다. 분명 그는 내가 30분 내내 상상하고 있던 회화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택광’이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제야 그가 문화비평가라는 것을 떠올렸다.

 

유화의 덧칠처럼 발음에서 묻어 나오는 부산 사투리와 빠른 말투는 흡사 심야 정치 TV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진보파의 대변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기야 그는 스스로를 일컬어 ‘인문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문화는 사회의 가치체계를 연구하는 겁니다.” 


영문학과 철학 그리고 미술과 문화를 넘나드는 이택광 교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인문학자가 아니라 브랜드 20년 차 임원을 만난 느낌이었다. 특히 ‘나는 가수다’라는 TV프로그램이 어떻게 브랜드로 만들어지는가를 말할 때는 대기업에 브랜드 임원으로 소개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분야를 자유자재로 엮으며 끊임없이 그것들의 상관관계를 풀어 가는 그의 엄청난 지식의 바탕은 바로 인문학에 근거해 있다는 것이다.  문화, 가치를 만나다

 


브랜드가 문화가 된다는 것, 그것도 가치화되지 않은 것들을 가치화시켜 문화가 되는 순간,
브랜드는 과거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될 것 같습니다. 


 

문화,
가치를 만나다

 

UnitasBRAND 컨버스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판매되는 컨버스화는 판매가가 4만 원 정도 되는데 수백 만 원에 해당하는 프라다 양복과 함께 신습니다. 플리커에서 컨버스를 검색해 보면 세계 각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독특함을 발휘하며 각양각색으로 꾸민 컨버스화 사진이 올라옵니다. 이것이 말해 주는 것은 컨버스는 단순히 브랜드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이죠. 

 

이제 브랜드는 더 이상 상품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컨버스처럼 문화의 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브랜더가 문화의 의미를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문화비평가이신 교수님을 만난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 입니다. 교수님의 책이나 칼럼을 보면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사회의 가치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셨던데요.

 

광 교수(이하 '이') 맞습니다. 문화 연구를 그저 대중 문화의 형식을 분석하거나 문화 트렌드나 사람들의 심리 정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여기면 그것은 정말 큰 오산입니다. 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아주 쉽게 말해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회에 어떤 가치들이 형성되고 있는지, 또 각각의 가치들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문화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 현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지층과 깊이가 상당히 다양하거든요. 

 

장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어떤 문화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 현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지층과 깊이가 상당히 다양하거든요. 

 

 

예를 들어, 18세기에 프랑스 철학자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인간이 자연과 단절되는 바람에 병들었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영국에서는 자연 그 자체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았죠. 그래서 그 두려움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할까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가 하면 독일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은 온화하며, 또한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레저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죠. 이처럼 레저 문화라는 것 하나에도 각각의 나라가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자연’을 어떤 가치를 두고 바라보는지도 다릅니다.

 

문화라는 것 하나에도 각각의 나라가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르다.

 

 

레저 문화라는 것 하나에도 각각의 나라가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자연’을 어떤 가치를 두고 바라보는지도 다릅니다. 

 

 

문화연구란 이러한 다양한 시각들을 통합시켜서 하나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가치체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하는 거죠. 그러면서 결국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비롯하여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이 세계의 모습에 대해 이해해 보는 겁니다. 문화는 사람들의 욕망과 생각, 혹은 가치관의 집약적 총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거지요.

 

결국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비롯하여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이 세계의 모습에 대해 이해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면, 이미 제 블로그나 칼럼을 통해 얘기한 바 있지만, 이전에 방영되었던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나는 가수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여론까지 만드는 것을 보면 그저 한낱 방송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은 ‘정의’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 하나 있어요. ‘(진짜) 가수가 없다’입니다. 다시 말해, ‘노래 잘 부르는 가수가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거죠. 바로 ‘정의의 회복’에 대한 필요성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의미 속에서 임재범이라는, 노래를 잘하지만 그간 조명 받지 못했던 가수가 등장하면서 대중들은 그를 통해 정의의 실현을 즉각 이행하며 이른바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화 현상 속에 숨겨진 가치들을 찾고 그 가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화되었으며, 발화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는 게 바로 문화연구라는 겁니다. 

 

문화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문화 현상 속에 숨겨진 가치들을 찾고 그 가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화되었으며,
발화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는 게 바로 문화연구라는 겁니다. 

 

 

*루소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만들었으며 칸트, 헤겔 등의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과 이후 정치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인간불평등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자연주의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다. 루소는 일생 동안 여러 분야의 책을 남겼는데 그중《에밀》이란 저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에서 루소는 교육은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자연은 쉬지 않고 아이들을 단련시키는 최고의 스승이라고 주장한다. 원래 선했던 인간 본성을 나쁘게 만든 것은 문명이라는 그의 사상적 배경이 잘 드러난 교육 소설이다.

 

BRAND Think 
*발화점

화재의 현장에는 발화점이 있듯 화제가 된 브랜드에는 브랜든(brandon)이 있다. 브랜든은 프랑스어로 영어의 firebrand, 즉 횃불, 불붙은 관솔, 불타는 나뭇조각을 뜻한다. 은유적으로는 선동자 혹은 말썽꾼이나 불평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한 브랜드가 시장에 나오자마자(혹은 나오기도 전에)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브랜드의 부흥을 촉발시키는 선동자나 그 반대로 브랜드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말썽꾼들을 통칭하기에 알맞다. 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브랜드의 직원들은 저녁이 되면 퇴근하지만 브랜든들은 이제 갓 태어난 상표를 밤새 브랜드로 성장시키거나 아니면 땅에 묻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이 밤에 쓴 불만은 다음날 아침 뉴스가 되고, 정보가 되며,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합쳐져 브랜드의 스토리가 된다. 브랜더라면 브랜드에 (좋은 방향이건 나쁜 방향이건) 불을 붙이는 이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관찰해야 할 것이다(유니타스브랜드 Vol.11 p30 참조).

 

* 더 이상 지정학적 방법으로는 세계를 운용할 수 없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자기편, 상대편, 혹은 중립의 기준에 따라서 국가를 분류했었다. 그러다 보니 국가들은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지정학적인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양극적 세계 질서는 다극주의의 국제관계로 변화하게 된다. 국가들은 이념 경쟁에서 탈피해 더 이상 지정학적으로가아닌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질서 재편을 하게 된다. 근대의 세계체제는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생산체계 구조와 규모의 노동력 구조를 결합시키는 위계적 분업구조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이제 세계체제에서는 지정학적인 국경만이 존재 할 뿐 경제적으로는 국경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화폐
‘시카고 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화폐 경제론》을 보면 미크로네시아의 캐롤라인 군도에 위치한 앱(Yap)섬 주민들의 돌 화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있다. 책에 따르면 앱섬의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화폐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화폐는 거대한 돌 바퀴였다고 한다. 실제로 돌 바퀴가 거래된 것은 아니었으며 돌의 소유권만을 넘겨주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돌 바퀴는 섬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에서 나는 석회석을 가공하여 가지고 와야 했기 때문에 이 섬의 화폐는 ‘노동 가치’의 교환이라는 척도를 수행하는 대체재였다. 저자는 본래 화폐는 ‘노동에 대한 교환가치’로 출발했다고 말하며 현재 변화된 화폐의 모습과 더불어 화폐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다.

 

 

 

UnitasBRAND 마치 화재가 났을 때 그 *발화점을 찾아가는 것처럼, 문화연구도 어떤 현상이 발화된 시점을 찾으며, 그 발화점을 시작으로 어떤 가치들이 출현했는지, 더 나아가 이러한 가치를 출현시킨 원인들은 무엇인지를 밝혀 보는 것이겠군요.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보면서 어떤 가치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고 보는지요?

 

먼저 가치라는 것이 왜 중요해졌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세계의 체제가 운영되는 방식이 일종의 지정학적인 관점이었어요. 단순하게 설명하면 지리적, 정치적인 것이 기준이 되어 개인 혹은 국가가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었죠. 그런데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체제가 무너졌잖아요. 이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냐면 *더 이상 지정학적 방법으로는 세계를 운용할 수없다는 겁니다.

 

세계는 ‘가치’라는 것으로 통일되기 시작하죠.
이것이 중요한 시대가 펼쳐졌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세계는 다극화되고, 점차 세계화되기 시작하죠. 세계화가 무엇입니까.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거잖아요. 모든 것의 이동이 자유로워지죠. 조기유학이 단적인 예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지배하던 지정학적인 본질들이 해체되면서 적군도 아군도 없어지고, 무언가를 분리하고 구분하는 기준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계는 ‘가치’라는 것으로 통일되기 시작하죠. 물론, 가치라는 것이 옛날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한 시대가 펼쳐졌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가치라는 것은 사실 ‘차별’이 없는 거거든요. 그저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덜 유용하다든가 혹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죠. 
단지 이 둘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되면서 가치를 휘두르게 된 것이 바로 *화폐죠. 

 

 

예를 들어, 여기 테이블에 올려진 컵과 주전자는 가치가 다른 물건입니다.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이 컵이 이 주전자보다 덜 유용하다든가 혹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죠. 단지 이 둘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되면서 가치를 휘두르게 된 것이 바로 *화폐죠. 이전 시대에서 화폐는 수많은 가치들 중의 하나였지만,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화폐가치로 모든 것이 통일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근대사회의 시작과 함께 자본주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18세기에 호모에코노미쿠스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경제적 인간입니다. 그 당시 이들을 계급적으로 보면 부르주아지라고 할 수 있어요. 중세시대부터 등장한 부르주아지들은 서민도 아닌, 그렇다고 귀족도 아닌 소위 중간에 끼어 있는 제3의 신분이었죠. 바로 이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근대사회의 시작과 함께 자본주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 자본주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죠. 다시 말하면 ‘화폐’라는 가치가 최고의 가치로 그 자리를 꿰찬 지 아주 오래되었다는 말입니다.

 

화폐 중심의 가치 시대에서 현재는 수많은 것들이 가치가 되는 시대로 그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기 자본주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화폐의 가치로 인해 주목받지 못했던 가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예전에는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연봉을 제시해야 했죠. 그런데 지금은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되는 시대가 되고 있잖아요. 이렇게 화폐 중심의 가치 시대에서 현재는 수많은 것들이 가치가 되는 시대로 그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의 화두가 창조적인 사람 혹은 창의적인 사람이지요. 바로 이 creative 한 존재들은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것들에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이들은 무엇을 가치화해야 하는지 유심히 살펴봅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여 그것을 가치로 환원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화폐 중심의 가치 시대에서
현재는 수많은 것들이 가치가 되는 시대로 그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UnitasBRAND 브랜드에서도 가치의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품질이 좋은 것, 그러니까 가격 대비 품질 만족이 가장 최고의 상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철학이 무엇인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IWC라는 수동 시계 브랜드가 있어요. 그런데 이 시계는 1년에 2분이 느려진다고 합니다. 

상품의 기준으로 본다면 불량품이죠. 하지만 소비자들은 사람이 직접 만든 시계이기에 휴머니즘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죠. 교수님은 어떤 글에서 “문화비평이란 결국 인문학적 사유다”라고 말씀하셨더군요. 이렇게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에 교수님은 인문학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문학이 무엇입니까? 아주 단순하게 말해, 인간에 관한 것이겠죠. 그렇다면 인간이 뭘까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혹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말이 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도 동물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과 동물에는 네 가지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https://www.iwc.com

 

그런데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강아지는 자신이 강아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인간인 줄 압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를 보면, 자기가 토이인 줄 아는 토이와, 자기가 토이인 줄 모르는 토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입니다.

 

 인문학(Humanities)각이란, 바로 인간 ‘주체’에 관련된 학문이라는 겁니다.
주체라는 것은 한마디로 ‘나를 규정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인문학(Humanities)각이란, 바로 인간 ‘주체’에 관련된 학문이라는 겁니다. 주체라는 것은 한마디로 ‘나를 규정하는 방식’이죠. 나를 규정하는 방식이 사회의 가장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것은 어떻게 규정되나요? 나를 있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와 환경들, 예컨대 언어, 경제, 정치적인 조건, 사회 처지 등 이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서 ‘나’라는 것을 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구성 요소들은 시대마다 다르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죠. 자, 바로 이 구성 요소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문화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인문학적 사유일 수밖에 없는 거죠.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잖아요.
이러한 시대에는 자꾸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요즘은 나를 규정하게 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요?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미 사회는 후기 자본주의로 넘어갔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잖아요. 이러한 시대에는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자꾸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합니다. 이게 뭔가요? 바로 나를 규정하는 방식이 더 많아졌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해진 겁니다. 사회 *전체를 읽어 내는 눈, 조각조각 퍼즐처럼 나뉜 현상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해진 겁니다. 이 눈이 바로 인문학인 거죠. 

 

*알랭 바디우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탈근대 이후 반 플라톤주의 배경에 따라 진리의 상실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같은 흐름을 배격하고 고전적 형태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면서 진리를 다시금 찾고자 한 철학자이다. 플라톤과 같이 진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로 간주하는 전능한 진리의 관념이 아닌 복수의 진리를 주장하며 혁신된 진리를 사유한다. 전통 철학은 정치, 과학, 예술, 사랑 중 하나 또는 일부만 진리로 특권화 시키는데 반해 바디우는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의 이 네 가지가 모두 진리생산절차이며 이를 통해 복수의 진리를 말한다. 

 

*전체를 읽어내는 눈
고전으로 여겨지는 《Flow》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은 일반적으로 여러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과관련 있다”고 말한다. 또한 초창기 애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클레멘트 모크는 ‘향우 10년간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경계를 넘어 생각하고 일하도록 요구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야 할 뿐 아니라, 기회를 규명하고 서로 다른 분야간에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다중 렌즈를 통해 문제를 바라봐야 할 뿐 아니라 다중 모드에서 일하고 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A Whole New World》의 저자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역시 ‘과거에는 한 분야의 상세한 지식만을 보유해도 성공했었지만 오늘날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큰 보상이 돌아가며 그런 사람을 일컬어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boundary crossers)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앞으로 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사회 전체를 읽어 내는 눈, 조각 조각 퍼즐처럼 나뉜 현상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해진 겁니다.
이 눈이 바로 인문학인 거죠. 

 

 

가치, 
브랜드를 만나다 

 

UnitasBRAND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시대》에서 어떤 상품을 소비할 때, 사람들은 그 상품이 가진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징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도 어쩌면 ‘나를 규정하는 방식’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면 상징가치를 소비한다는 것은, 상징가치를 소유함으로써 자신과 그 상징가치를 동일시하기 위함 아닙니까. 문화를 연구하시는 교수님의 시각에서는 브랜드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실 건가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 자크 라캉(Jacques Lacan)

 

 한마디로 저는 ‘대타자(The Other)의 얼굴’이라고 얘기하겠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설명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세워 놓고, 그 존재로부터 자신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미지의 존재는 때로는 종교일 수 있으며, 때로는 부모일 수 있으며, 때로는 사회의 규범일 수 있으며, 때로는 문화일 수 있죠. 이미지의 존재가 바로 대타자죠. 그래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고 말했죠.

 

인간은 자기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세워 놓고, 그 존재로부터 자신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부모일 수도, 사회의 규범, 문화일 수 있죠. 

 

 

인간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종교나, 문화, 관습, 제도 등의 대타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그것에 비추어서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내가 태어난 곳, 소속된 집단,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았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가족이 일종의 대타자 역할을 한 겁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 어머니가 원하는 배우자가 중요한 거죠.

 

 

브랜드를 대타자의 얼굴이라고 얘기한 것은 바로,
현재 시대의 *대타자가 원하는 모습이 브랜드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브랜드를 대타자의 얼굴이라고 얘기한 것은 바로, 현재 시대의 *대타자가 원하는 모습이 브랜드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결국 브랜드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설명하려고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귀결될 수 있죠.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는 브랜드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어요. 질문에서도 말씀하셨지만, 그저 물건의 어떤 쓰임새, 그러니까 사용가치, 그것만 중요했어요. 그러나 현재는 브랜드에 집착하죠. 왜냐면 그 브랜드를 통해서 자기 주체화를 할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시대에 브랜드가 경쟁력이 있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했던,
아직 가치화 되지 않은 것을 가치화해야 합니다. 

 

 

 

맨 처음 편집장님이 ‘브랜드가 문화를 만든다’고 하셨는데, 이 맥락에서 바로 브랜드가 문화적인 관점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소위 ‘된장녀’가 무엇입니까? 값싼 밥을 먹고 밥값보다 더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잖아요. 왜? 세계적으로 대타자가 욕망하는 것이 그것이니까요. 주류적인 욕망의 방향이 있으면, 각 개인들은 그 주류를 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기네스를 마시는 거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것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말보르를 피우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어떤 브랜드를 입느냐가, 나는 어떤 사람이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브랜드가 경쟁력이 있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했던, *아직 가치화 되지 않은 것을 가치화해야 합니다. 

 

BRAND Think 
*발화점

브랜드가 연구된 이래 브랜드의 상징적 효용은 여러 심리학자 및 브랜드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아커가 제창한 브랜드가 사용자에게 주는효익, 즉 ‘기능적 이익, 정서적 이익, 자아표현적 이익’에서 자아표현적 이익이 상징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또 한명의 대표적인 브랜드학의 구루 장 노엘 케퍼러의 ‘아이덴티티 프리즘’에서도 브랜드의 상징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이덴티티 프리즘은 브랜드가 송신자(기업)에서 수신자(사용자)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갖는 ‘여섯 가지 역할’을 설명하고자 만들어진 프레임인데, 이중 ‘사용자 이미지가 그것이다. ‘제품이 아닌 상징과 기호를 구매한다’는 명제는 이제 명백하다 못해 고루하다(유니타스브랜드 Vol.14 p194 참조).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과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자크 라캉은 철학, 언어학, 인류학의 성과를 접목시켜 정신분석을 설명하는 정신분석이론의 새로운 혁신을 주장한 사람이다.라캉은 욕망이라는 것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집착이나 본능에서 비롯되는 탐욕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인간이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언어로 100% 표현할 수없다는 것을 경험하는 언어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겪는 필연적 소외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언어는 주체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구조이고, 타자에 의한 인정을 소통의 본질로 삼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는 라캉의 말은 인간이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 또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즉 대타자(The Other)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보았다.

 

BRAND Think 
*대타자가 원하는 모습이 브랜드라는 것으로 표현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1961년저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통해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주장한다. 본래 이 이론은 소설을 근거로 만들어졌지만 최근 브랜드의 TV 광고 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욕망의 삼각형은 ‘주체’, 주체가 욕망하는 ‘대상’, 그리고 ‘(욕망의) 중개자’로 이루어지는데 쉽게 말해 겉보기에는 주체가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개자가 욕망하는 것을 보고 비자발적으로 욕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 광고에서 유명 스타가 나와 제품을 사용하는 장면을 본 뒤 해당 제품을 구입하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그제품을 욕망했다기보다는 중개자(유명 스타)의 욕망을 본 뒤 그 욕망을 따라 비자발적인 욕망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의 욕망은 일종의 모방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브랜드가 광고 모델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캐릭터를 명확히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이런 모방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는 기업 자체가 사회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기 위해 탄생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가치화되지 않은 것을 가치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UnitasBRAND 유니타스브랜드에서도 ‘슈퍼내추럴코드’라고 하는, 일종의 하나의 *브랜드에 마니아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와 자기 사이에서 공통점들을 발견하고, 그 브랜드를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더군요. 브랜드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는 데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이타적인 브랜드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몇몇의 마니아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죠. 자본주의 시대에서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이제는 기업 자체가 사회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기 위해 탄생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가치화되지 않은 것을 가치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기업들이 점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죠.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왜 나타났냐면, 현재의 사회는 소수 독점의 문화에서 다수 공유의 문화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이제 ‘고급문화’라고 불리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고급문화가 뭡니까, 소수의 구별된 사람들만이 즐기는 독점적 문화 아닙니까, 이러한 문화들이 하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공유의 문화가 채워지고 있다는 거예요.

 

현재의 사회는 소수 독점의 문화에서 다수 공유의 문화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품후기’라는 것을 주목해서 본 적이 있는데요, 상품 후기는 자신이 산 상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올리는 거잖아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즐거움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쾌락의 평등주의라고 얘기합니다. 사실, 쾌락의 평등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며 ‘쾌락’에서만이라도 그 불평등을 없애고 평등하게 누리자는 겁니다.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즐거움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쾌락의 평등주의라고 얘기합니다. 

 

 

월드컵을 예로 들어 보면, 월드컵은 전형적인 쾌락 평등주의의 실체라고 할 수 있어요. 개인들을 행동의 ‘주체’로 만들어 줌으로써 ‘내가 즐기는 만큼 당신이 즐기고, 당신이 즐기는 만큼 내가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공유된 거예요. 그러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시청 광장으로 모이게 된 거지요. 그리고 2008년, 이 월드컵의 주체들은 촛불집회로 다시 귀환하며 쾌락의 평등주의를 이어 갑니다.

 

월드컵의 주체들은 촛불집회로 다시 귀환하며 쾌락의 평등주의를 이어갔다

 

 

자선사업이 무엇입니까. 결핍을 메운 겁니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메워 버림으로써 결국 쾌락을 전파하는 겁니다. 

 

 

쾌락 평등주의는 쾌락이 아닌 것들을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실현해 나가거든요. 그러니까 쾌락을 즐길 수 없도록 만드는 결핍들을 채워 줌으로써 쾌락으로 이끄는 거죠. 한 예로, 자선사업이 무엇입니까. 결핍을 메운 겁니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메워 버림으로써 결국 쾌락을 전파하는 겁니다. 이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에요. 현실입니다. 이처럼 현재의 사회는 쾌락 평등주의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까 질문하신 것처럼 이타주의 브랜드가 사회의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거죠. 이제 브랜드가 무언가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것이 곧 힘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나눌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떤 가치를 나눌 것인가가 브랜드의 숙제가 되는 것입니다. 

 

BRAND Think 
*대타자가 원하는 모습이 브랜드라는 것으로 표현

브랜드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작은 브랜드들이 스마트하게 브랜딩하는 법 중 하나는 억지로 브랜드에 큰 자본이나 많은 인력을 공급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소홀히 생각하거나 시장의 관심이 아직 미치지 못한 것, 혹은 시대적 결핍 요소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여 이것을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 들이는 방법일 것이다. 이때 유의할 것은 비즈니스를 위해 남들이 발견 못한 것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이 진심으로 옳다고 여기지만 현재 전반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문제들은 현재로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아주 작은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성패는 판가름 날 것이며 그것이 당신을 진정한 의미의 마이너 마이너(minor miner, 작은 것을 캐내어 크게 만든 사람들)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유니타스브랜드 Vol.21 p98 참조). 

 

BRAND Think 
*브랜드에 마니아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Vol.12 ‘슈퍼내추럴코드’에서는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브랜드 마니아들의 놀랍고도 기이한 행동과 습성에 대해 밝혔다. 이런 현상들은 크게 6가지 정도로 분류가 가능한데 같은 마니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모이게 되는 브랜드 부족주의, 개인적 특별함을 추구하면서도 공감을 원하는 이중문화적 코드, 더 많은 마니아들이 생기도록 브랜드를 전파하는 마니아 오라클, 브랜드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발전시켜 나가는 이데올로기 코드, 수집을 통해 브랜드 박물관을 만드는 마니아들, 브랜드를 원하는 대로 변형시키며 창의성을 발현하는 C-Code 등이 그것이다(유니타스브랜드 Vol.12 p218 참조).

 

*공유의 문화

과거에는 문화 자본이 학습하기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소위 ‘고급문화’라 칭해지며 일부소수 계층에게만 접근이 허락되었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프랑스 사회를 소개하면서 상류층은 어릴 적부터 고급문화를 습득하면서 문화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다른 계층과의 구별 짓기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기존에는 문화 자본이 부모로부터 또는 유사계층 간의 강한 연결 망으로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수가 즐길 수 없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 온라인 공간이 생기면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많은 정보와 문화 자본들이 오픈되면서 ‘공유의 문화’가 형성된다. 사람들이 의견이나 생각 등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소셜미디어 등이 활성화되며 소통을 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브랜드가 무언가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것이 곧 힘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나눌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떤 가치를나눌 것인가가 브랜드의 숙제가 되는 것입니다. 

 

 

 

BRAND Think 
*개인적인 견해를 올리는 이유

유니타스브랜드 Vol.11 ‘온브랜딩(ON-Branding)’ 특집은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을 통해 24시간 쉬지 않고 일어나는 브랜딩 활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과거 쉽지 않아서, 혹은 귀찮아서 모이지 않았던 브랜드 마니아와 소비자들의 모임은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격화되는 분위기다. 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구매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 받고,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며, 단지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마저 공유하고 있다. 관계(Relationship)는 바로 이 ‘감정’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렇게 생긴 유대감을 통해 브랜드를 향한 욕망을 극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딜레이션십(Digital+Relationship)은 이런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로 브랜드는 소비자와 딜레이션십을 맺기 위해 ‘정보(information)’ 가 아닌 ‘정(intimacy)’을, ‘계약 관계’가 아니라 ‘친구 관계’ 를 유지하는 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BRAND Think 
*쾌락의 평등주의

특히 우리나라에 유난히도 많은 것이 맛집이다. 맛집 관련 TV프로그램 또한 한둘이 아니고 맛집 전문 블로거는 이제 전문가의 명함을 내걸기도 민망할 만큼 넘쳐 난다.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수가 미식가라도 된 것일까? 분명 과거보다 식생활과 문화생활 수준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이 또한 쾌락의 평등주의를 외치는 평민들의 몸부림, 그 단면이 아닐까? 먹는 것만큼 ‘범접 가능한 럭셔리 아이템’이 없다. 내가 비록 천만 원짜리 정장을 입는 사람과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비행기석에 앉을 수는 없어도 먹는 것만큼은 (큰맘 먹으면) 평등해질 수 있다. ‘천만 원짜리 양복을 입은 사람이 갔다던 한 끼에 3만 원짜리 식당은 나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그것을 고스란이 기록해 블로깅할 수 있으니까! 나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있어 보일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의 맛집 문화는 쾌락 평등주의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브랜드도 과거에는 ‘소유’의 개념, 그러니까 ‘내 것’을 의미하는 거였죠. 
그런데 이제 브랜드는 ‘공유’의 개념입니다. 

 

 

UnitasBRAND 갑자기 브랜드 전문가를 만난 것 같습니다. 브랜드도 과거에는 ‘소유’의 개념, 그러니까 ‘내 것’을 의미하는 거였죠. 그런데 이제 브랜드는 ‘공유’의 개념입니다.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브랜드를 공유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문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요. 이제 브랜드가 가치를 나누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브랜드가 가치화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 가치화시켰을 경우, 브랜드는 힘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겠죠?

 

 그런 의미죠. 제가 쓰는 표현으로 얘기하자면, 저는 하나의 ‘*기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표란 쉽게 말해, 그것에 담긴 의미가 상징적으로 구현되는 것을 말해요. 그래서 결국 그 상징이 어떤 욕망의 대상이 되는 거죠. 다시 말해 브랜드가 가치를 찾아 그 가치가 브랜딩되는 순간, 사람들에게 욕망을 주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즉 브랜드가 기표가 된다는 것은 상품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사용가치’를 준다는 거예요. 

 

 

 

애플이 그러한 기표가 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애플은 사람들에게 욕망을 주잖아요. 어떤 욕망일까요? 누구에게는 캘리포니안, 혹은 뉴요커의 욕망을, 누구에게는 지식인의 욕망을, 누구에게는 시대를 앞서가는 리더의 욕망을 줍니다. 즉 브랜드가 기표가 된다는 것은 상품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사용가치’를 준다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사용가치란, 과거에는 내구성이 튼튼하고 잘 작동하면 되는 가치였어요. 그런데 이제 브랜드의 사용가치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는 사용가치,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삶의 쓸모 있는 가치’를 말하는 겁니다.

 

 

이제 브랜드의 사용가치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는 사용가치,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삶의 쓸모 있는 가치’를 말하는 겁니다.

 

 

 

보십시오, 애플의 제품을 살 때, 애플의 기표를 ‘시대를 앞서가는 리더’라는 욕망으로 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애플은 ‘나를 리더로 만들어 주는’ 혹은 ‘내가 리더로 살게끔 하는’ 제품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 브랜드는 실질적으로 진리의 문제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브랜드란, 이제 생활의 미학이 되었다고 봐요. 예전에 브랜드 미학이라고 하면 아름다움에 국한되어 있거나 혹은 명품에만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브랜드에 고급스런 이미지, 예를 들면 모더니즘적이거나 아방가르드적인 이미지를 삽입하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이미지를 소비하게 했죠. 말하자면 이게 브랜드 미학이었어요. 그러나 오늘날 브랜드 미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생활의 미학을 의미합니다. 끊임없이 브랜드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죠. 즉 브랜드란 이제 인간의 삶의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 기표
‘기표’는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의 기호 이론에서 등장한다. 기표란 쉽게 말해 무언가를 지칭하는 언어적구성요소이다. 소쉬르는 (언어)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구분했다. 기표는 ‘표시하는 것’이란 뜻으로 기표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의식적 신호나 표시 중의 하나로, ‘표시되는 것’이라는 뜻의 기의와 역동적으로 의미 작용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사과’라고 부르는 것은 기표이고, ‘사과’라는 기표가 지시하는 실제 사과는 기의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기표는 단순히 언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 또는 방법으로서의 기표를 말한다.

 

* 유토피아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저서《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다. 여기서 나온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라는 의미로 저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여행 중에 본 이상의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는 농업이 중심이고 6시간의 노동과 여가시간은 교양을 배우는 데 쓰고, 필요한 물품은 모두 시장의 창고에서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다. 모어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이성에 따른 선한 사회 질서로 유지되며 원초적인 평등과 자유가 누려지는 국가로 르네상스 휴머니즘 정신을 갖고 있는 나라로 보여진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의 ‘아무데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이었으나, 이 작품 이후 ‘이상향(理想鄕)’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이택광 교수는 애플이 사람들이 욕망하는 ‘자유’라는 기표를 제시한 유토피아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브랜드 미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생활의 미학을 의미합니다.
끊임없이 브랜드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죠. 

 

 

브랜드, 
문화를 만나다

 

UnitasBRAND 브랜드가 기표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브랜드의 궁극적인 꿈일 수도 있겠네요. 애플은 기표가 된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애플은 초기에는 소수의 마니아 중심의 브랜드였지요. 그런데 MP3P인 아이팟을 기점으로 휴대폰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대중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가 “문화는 지식·신앙·예술· 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다”라고 말했는데, 그가 내린 이 정의에 해당하는 것들이 모두 앱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겁니다. 애플이 기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문화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운용했기 때문일까요? 

 

 문화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표가 됨으로 인해서 문화가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네요. 애플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종의 ‘*유토피아’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애플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그 이미지는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프랑스의 보그 잡지나 또는 뉴욕의 포브스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이러한 미적인 감각 때문에 애플에게 눈길이 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이 생활의 미학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했기 때문이에요. 

애플은 사실 기계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기계예요. 이건 사실이죠. 그러나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애플을 산 것은 그것이 ‘자유’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표가 됨으로 인해서 문화가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네요.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이야 많이 열린 사회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나 유교적인 이념의 잔재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회, 폐쇄적인 사회라는 인식이 있어요. 이러한 문화 속에서 애플이 ‘자유’라는 기표를 던진 거죠. 사람들은 그 기표를 욕망하며 기꺼이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무언의 주장’을 한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애플은 유토피아를 제시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더 살펴볼 것이 있어요. 기표라는 것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기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사회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져요. 이 사건이라는 것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건들을 말합니다. 

 

 

결국, 브랜드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모아서 
그것을 하나의 기표라는 상징으로 보여 주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사람은 원래 단것만 먹고, 쓴 것은 먹었다가 금세 뱉어 버리잖아요. 그런데 기표라는 것이 등장할 때 보면, 예전에는 단것이었는데 현재는 쓴 것으로 변했다든가 혹은 그 반대이든가 하는 패러다임이 변하는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거죠. 이 징후들을 집약해서 하나의 표본으로 만들어 주었을 때 그것이 기표가 되는 것입니다. 애플은 바로 이 징후들을 잘 관찰하여 실제로 구현해 냈다고 할 수 있죠. 결국, 브랜드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모아서 그것을 하나의 기표라는 상징으로 보여 주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포드주의는 각 사람의 노동 시간이라든가
활동 반경의 테두리를 만들고는 통제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스티브 잡스가 생각한 것은 테두리는 있되,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대를 본 겁니다. 

 

 

 

UnitasBRAND 유니타스브랜드 Vol.18에서 ‘트렌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일종의 패션을 뜻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버리는 트렌드를 저희는 ‘시대정신’이라고 보았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시대의 사건을 본다는 것은 *시대정신(Geist)을 읽을 수 있다는 헤겔이 말한 말과도 같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애플은 어떤 징후들 속에서 기표로 탄생된 브랜드인가요?

 

 애플은 포드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포드주의(Fordism)라는 게 뭡니까. 한마디로 각각의 사람들이 분업 체계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거죠. 거기에는 개성이 없어요. 사실, 옛날에는 개성을 표출하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죠. 그저 어떤 표준이라 불리는 체제 속에 들어가 있으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이게 포드주의예요. 그런데 이러한 표준들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자율성이 대두되기 시작했죠.

 

스티브 잡스는 전체 속에 숨어 있던 개인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와는 다른 특이성을 가진 사회가 도래할 것을 생각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회를 본 걸까요? 포드주의는 각 사람의 노동 시간이라든가 활동 반경의 테두리를 만들고는 통제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스티브 잡스가 생각한 것은 테두리는 있되,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대를 본 겁니다. 이러한 시대를 예상하며 그가 내놓은 것이 다름 아닌 앱스토어죠. 앱스토어가 뭡니까. 하나의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앱에 대한 룰을 가지고 제각각 활동하는 것 아닙니까. 스티브 잡스의 예상이 얼마나 적중했는지는 지금 사회를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소비자의 시대가 아니라 ‘창조자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주목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달라진 소비자입니다. 흔히 프로슈머라든가 하는 말로 소비자 담론을 얘기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소비자의 시대가 아니라 ‘창조자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반제품이 아닌 완제품으로 나온 것이라 해도 거기에 일종의 ‘튜닝’을 합니다. 그래서 분명 같은 기업에서 만든 같은 브랜드, 같은 종류, 같은 성능이라고 하지만, 구매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것은 전혀 다른 제품이 되는 거죠.

 

브랜드들은 이제 소비자들이 튜닝을 잘할 수 있도록 점점 더 심플하게 만들고 있어요. creator라는 것은 없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아직 재현되지 않은 것을 재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혀 다른 것을 만드는 사람이죠. 이게 바로 creator입니다. 애플은 소비자들을 이러한 *창조자라고 본 겁니다. 

 

*시대정신(Geist)

시대정신으로 번역되는 Geist는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 정치적, 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이다. ‘시대정신’은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Herder)가 처음으로 사용한 이래 헤겔(Hegel)에 이르러 개념으로 정착된다. 헤겔은 역사의 진보를 ‘가이스트(Geist)’, 즉 ‘정신’ 혹은 ‘영혼’이라는 특유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헤겔의 시대정신은 역사적 과정과 결합한 보편적 정서, 민족정신과 결부된 현대적 개념으로 해석된다. 헤겔은 인간 역사의 전 과정을 ‘가이스트’의 의식으로 보고, ‘절대정신의 발전 과정에 있어 한 역사적 단계의 정신’, 즉, 각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발전 단계로서의 민족정신을 ‘시대정신’이라고 보았다. 

 

*포드주의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직무의 세분화와 부품의 표준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이동식 생산공정을 도입한 생산방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그와 더불어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생산혁명과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과 소비수준을 보상해주었다. ‘포드주의’란 용어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자동차 왕인 헨리포드(Henry Ford)가 자동차 대중화를 가져온 모델 T를 생산하며 노동자들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당 5달러의 높은 임금을 지불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즉, 생산의 효율화와 고임금, 업무시간 단축 등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포드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황금시대를 이끄는 대표적인 체제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며 포드주의는 생산과정에 노동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노동의 파편화와 단조로움 그리고 지배적인 작업 조직에서 오는 노동자들의 불만으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다.

 

BRAND Think 
*창조자

한때 프리미엄급 커스터마이징을 목표로 몇몇 브랜드가 개인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시도가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슈성 기사가 되거나 브랜딩을 위한 프로모션용으로 반짝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개념 자체가 진화된 모습이 등장했다. 애플의 ‘앱스토어’와 구글의 ‘마켓’ 같은 API환경 기반의 비즈니스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기업 비밀에 속하는 소스를 오픈, 제공하고 소비자의 창조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누디진이란 브랜드는 더 독특하다. 일반 청바지 브랜드처럼 완성된 바지를 제공하면서도 그 이후의 사용자 스스로의 변형 및 가공을 통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바지로 만들 것을 독려한다. 사실 이처럼 개인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브랜드는 꽤나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상당하다. 바로 레고다.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는 그들이 애플보다 훨씬 전에 인간은 창조자라고 본 것은 아닐까? 이처럼 C코드(Creative Code)를 지닌 브랜드야말로 소비자의 창조욕구를 자극해 스스로 무한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하며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유니타스브랜드 Vol.12 p218 참조).

 

 

 애플은 소비자들을 이러한 창조자라고 본 겁니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입느냐가, 나는 어떤 사람이다를 말하는 것 ⓒbrandness.co.kr

 

UnitasBRAND 애플뿐만 아니라, 할리데이비슨, 미니쿠퍼, 로모 등 많은 사람들이 소위 공장에서 나온 제품들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제품 속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넣고자 하니까요. 결국 애플은 소비자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주도한 거군요. 왜 애플이 기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처럼 시대의 징후들을 읽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가 궁금해집니다. 물론,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만 문화학자로서 시대의 가치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주신다면요.

 

 결국엔 인문학으로 다시 귀결됩니다.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제대로 보려면 어쩔 수 없이 큰 그림을 보는 눈이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려면 인문학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인문학을 마치 철학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인문학적 사유를 하라는 말입니다.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제대로 보려면
어쩔 수 없이 큰 그림을 보는 눈이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독특한 생각 방식, 사유체계죠. 물론, 헤겔이니 사르트르니 하는 철학 이론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봅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관찰했어요. 그 관찰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이 있었죠. 그것을 정리하려고 했을 때, 만약 사물을 관찰하고 깨달은 것을 숫자로 100이라고 친다면 이 100을 모두 언어로 옮길 수 있나요? 많이 옮기면 80~90 정도, 적게는 50~60 정도겠죠. 이때 내가 옮겨 놓은 것을 분명하게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론인 겁니다.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것이지요. 이 관찰을 저는 다시 ‘비평’이라고 말하는데요, 
끊임없이 세상과 거리 두기를 통해 관찰을 한다면 시대의 징후들을 볼 수 있겠죠.

 

 

다시 말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설명하고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론이지, 그 이론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것이지요. 이 관점을 만들 때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관찰이에요. 이 관찰을 저는 다시 ‘비평’이라고 말하는데요, 비평이란 말은 영어로 ‘critical’이잖아요. 그 어원을 쫓아가다 보면 그 원뜻을 만나게 되죠. 바로 ‘거리 두기’입니다. 끊임없이 세상과 거리 두기를 통해 관찰을 한다면 스티브 잡스가 보았던 시대의 징후들을 볼 수 있겠죠. 우리는 너무 밀착되어 있어요. 아예 그곳에 들어가 있죠. 그래서 뛰어난 경영자는 이러한 거리 두기를 통해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메타(meta)화’ 할 수 있는, 그러니까 개념화하여 기업의 가치로 혹은 브랜드의 가치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인 겁니다. 

 

*메타(meta)화

메타(meta)는 그리스어로 ‘함께’라는 뜻이다. 또한 접두어로서는 ‘하위대상을 모두 포함하면서 초월하는’이라는 뜻을 지닌다. 메타에서 유래한 메타포(metaphor)는 ‘함께’라는 뜻의 meta와 ‘함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pherein의 합성어로 ‘함께 운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메타포를 ‘뭔가 다른 것에 속하는 사물에 명칭을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메타포는 사물을 설명할 때 ‘비슷한 것’을 빌려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은유, 암시, 상징 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메타화 한다는 것은 보조관념을 통해 보다 상징적이고 강렬하게 원관념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즉,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 추상적 또는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곧 메타포가 된다.

 

 

거리 두기를 통해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메타(meta)화’ 할 수 있는,
그러니까 개념화하여 기업의 가치로 혹은 브랜드의 가치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인 겁니다. 

 

 

 

UnitasBRAND 애플은 결국 가치를 만나, 문화가 되었습니다. 브랜드가 문화가 된다는 것, 그것도 가치화되지 않은 것들을 가치화시켜 문화가 되는 순간, 브랜드는 과거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애플과 같이 문화가 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고유성’이 무엇이냐 라고 하면 라틴어로 수이제너리스(sui generis)예요.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Generation된 지점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Unique하고, Originality한 것이 시작된 시점 말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고유성이 드러난 그 시작점을 부대찌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음식, 혹은 한국에만 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김치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김치는 중국에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된장찌개일까요? 된장찌개도 중국 전골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원이라는 것은 중요치 않죠.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고유성을 갖추기 시작한 그때입니다.

 

 

가치화되지 않은 것들을 가치화시켜 문화가 되는 순간, 
브랜드는 과거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될 것 같습니다. 

 

 

부대찌개는 우리나라에만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부대찌개를 본 적이 있나요? 소시지와 햄을 넣고, 거기에 라면을 넣어 끓인 이 잡탕찌개는 우리나라에만 있습니다. 이 부대찌개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인데, 저는 우리나라의 문화의 특성이 바로 이 부대찌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 후 그것을 섞어 독특함을 만들어 내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홍대야말로 최고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함과 혼재성이 있는 홍대 ⓒnamu.wiki/

홍대에 가보셨겠지만, 그곳은 무수히 많은 것들이 섞여서 다양성에 있어서는 어디도 못 따라올 정도입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문화죠. *하이브리드 문화의 특성이 뭡니까. 바로 혼재성입니다. 홍대에 가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 같다가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영국의 펍이 있고, 또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몽골에 있기도 하죠. 홍대는 단순히 우리나라 밖의 것들을 베낀 것이 아니에요. 그것을 가지고 와서 마치 비빔밥처럼 한데 섞어서, 다시 우리만의 혼재성으로 만들어 낸 겁니다.

 

글로벌화가 되면서 나라와 나라 간의 국경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대는 최고의 브랜드가 될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거죠. *홍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목해 본다면, 다음 시대를 이끌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하이브리드 문화

혼합, 퓨전, 잡종 등의 단어와 동의어로 다양하게쓰이는 ‘하이브리드’라는 용어는 집돼지와 멧돼지의 잡종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여 야생의 것과 길들여진 것의 혼합을 의미했다. 문화 이론가들은 전 지구화 시대에 사람이나 문화의 혼합 양상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통과 현재,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공존하는 문화를 ‘하이브리드 문화’라고 지칭하였다. 예를 들어, 최근에 놀이와 교육이 융합되는 ‘에듀테인먼트’, 일과 놀이가 융합되는 ‘플레이워크’ 등이 하이브리드적 문화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이브리드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에서 벗어나 경계를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택광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를 부대찌개라는 하이브리드 문화로 설명하고 있다. 부대찌개는 한국전쟁 즈음 주한 미군들이 먹던 깡통에 든 소시지와 햄을 우리나라 고추장을 넣고 끓여서 먹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잡탕으로 섞여 새로운 요리로 만들어진 부대찌개는 하이브리드 문화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BRAND Think 
*홍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목

이택광 교수의 말처럼 홍대는 브랜더라면 반드시 눈여겨 봐야 하는 문화 요충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곳이 (트렌드 리더일 확률이 비교적 높은) 젊은이들이 많은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외려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어서가 아닌 예술가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들이 트렌드 리더라는 구체적 이유는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의 저서《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라는 책에 소개된 ‘정신의 삼각형(Geistige Dreieck)’, 그리고 이 삼각형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이해하면 좋다. “시대의 정신 생활이 형성하는 삼각형 속의 저변(底邊)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정점(頂點)에는 고독하고 이해 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있다. (중략) 오늘 고독한 정점에 있는 예술가의 예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내일은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모레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결핍을 읽어 내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예술가들의 행보가 엿보이는 홍대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유니타스브랜드 Vol.18 p86 참조).

이택광 부산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워릭대학에서 철학 석사를 받았으며, 영국 셰필드대학 영문학과에서 문화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미술·영화·대중문화에 대해 글을 쓰는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인문학을 바탕으로 그림을 보는 독특한 그림 읽기를 보여 준 네이버 ‘오늘의 미술’ 의 연재 글은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저서로는《이것이 문화비평이다》《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등이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V. Culture) 브랜드, 가치를 만나 문화가 되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