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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더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하다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5. 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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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 김상근

 

에디터가 1차로 인터뷰를 한 뒤, 나와의 두 번째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김상근 교수의 비서와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나 비서 분으로부터 오는 대답은 “시간이 없습니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뷰 약속을 드디어 잡았다면서 에디터가 나에게 알림 메일을 보내왔다. 겨우 약속을 잡았다는 환호성과 함께 가장 마지막 줄에 쓰여 있는 문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40분 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십니다.”

 

40분. 이 시간 동안 과연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거라 사실 초반의 30분은 탐색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핵심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통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관찰하며, 사전에 준비한 질문들을 재편집하여 인터뷰이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질문을 만드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40분. 탐색전은 사치에 가깝고, 무언가를 알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김 교수가 지정한 날은 오전부터 그야말로 줄줄이 미팅이 연속되는 날이었다. ‘만나는 데 의의를 두자’라는 그 누구의 다짐을 내 다짐을 삼고 김 교수가 있는 광화문의 플라톤 아카데미 사무실로 향했다.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 미켈란젤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누구나 아는 이 세 가지의 개념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유명인물

 

수많은 책을 통해 여러 사람에 걸쳐 얘기되고 또 얘기되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야기와 그 중심에 있었던 메디치 가문,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천재적인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2010년을 살아가는 김 교수에 의해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재탄생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다음 연구 주제가 마키아벨리에요. 다음 주에는 이탈리아에 갈 거예요.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인터뷰 말미에 그가 한 말을 듣고서, 그가 어떻게 마법을 부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40분’이라는 시간밖에 나에게 할애해 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몇 가지 자료를 받기 위해 김 교수에게 다시 연락했을 때 그는 이탈리아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기업에서 몇천 년 전의 르네상스를 다시 꺼내보고,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베이커는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여지며,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날마다 새롭게 탄생된다. 브랜드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받은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말입니다.
‘술(術)’로만 자신의 일을 여기는 브랜더들에게 질문하고 싶군요.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왜 창조적이지
않은가?  

 

UnitasBRAND *창조 경영과 인문 경영이라는 말은 경영에서는 여전히 이슈입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인문학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마치 ‘인문학만이 답이다’고 할 정도로 인문학 배우기에 열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붐에 대해서 인문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혹시 경영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 것이라고 예상하셨나요?

 

김상근 교수(이하 '김') 사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이 뭔가 필연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우연성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우연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우연성이 시대적 관심사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표면적으로 돌출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경영이니, 인문 경영이니 하는 사건들이 어떻게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창조 경영이니, 인문 경영이니 하는 사건들이 어떻게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일단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단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스티브 잡스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처참하게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는 기적처럼 부활해서는 과거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을 벌이죠. 결국에는 세계를 놀라게 할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룹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하죠. 

“나의 성공 비결은 창조성”이며, *“애플은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교차로에 있다”고 말입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다름 아닌 삼성의 ‘창조 경영’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1위 기업에서 ‘창조 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지니까, 1위 기업을 넘보며 뒤쫓던 다른 기업들도 창조성이라는 것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안팎으로 인문학과 창조성을 얘기하는 두 개의 큰 사건이 터질 당시 우리나라는 글로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때였어요. 

 

BRAND Think 
*창조 경영과 인문 경영 
일찍이 일본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기업 경영을 배웠던 이병철 회장은 이를 토대로 삼성의 기업 문화와 DNA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경영을 시작하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창조 경영을 기치로 내걸었고 이에 업계 전반의 이슈가 됐다. 이 단어를 정의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한데 유니타스브랜드 ‘디자인 경영’ 특집에서 서일윤 교수는 디자인 경영이라는 단어의 모호함과 한계를 보완하고 개선하는 측면에서 혁신의 수준을 넘어선 창조 경영과 그 프로세스를 주장하기도 했다(유니타스브랜드 Vol.10 p76 참조). 
인문 경영의 경우 최근 애플과 삼성이라는 대형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신이라는 점과 함께 분야별 전문성을 넘어 다양한 지식의 융합을 추구하는 시대사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각종 인문학 특강의 개설과《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를 위시한 다양한 경영 서적들이 이를 방증한다.

 

*우연성

우연성이란 당연히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필연성’과는 반대되는 뜻으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철학사에서 필연성을 주장했던 사상으로는 세계의 모든 사상을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기계론적 유물론과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고자 했던 형이상학 등이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을 포함하여 전 세계를 거대한 하나의 기계로 간주하고, 거기에는 필연성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우연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인간의 무지에 의한 것이라고 여기며 우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우연성’이 언급되었고,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모든 존재자의 중심에는 우연성 또는 비필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상태나 결과의 인과론적 결정만을 인정하지 않는 비결정론의 원리와 현대 과학에 와서는 우연성의 존재를 일부 인정하며 불확정성의 원리 등이 받아들여지며 우연성에 관한 이론의 맥을 잇게 된다. 

 

*애플은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교차로에 있다

전세계 IT업계의 선두자 애플의 최고 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사고에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리더로 그 혁신을 높게 평가받는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라고 할 정도로 인문학 예찬론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애플은 변함없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다”라고 말하며 애플이 기술 뿐 아니라 인문학 가치 역시 중요하게 생각함을 알렸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3월 iPad2 시연회에서도 “기술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게 바로 애플의 DNA다. 기술과 인문학(Liberal arts), 그리고 사람이 합쳐져야 한다. 많은 태블릿 PC를 만드는 제조사들이 더욱더 성능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지만 애플은 그들이 만든 기계로 사용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인문학의 중요성 강조했다.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이 우연적으로 발생하자,
우리나라는 현재 창조 경영 혹은 인문 경영이라는 열풍이 불게 된 거죠. 
 

 

 

그 전까지 우리나라의 문화는 그야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나라였죠. 선진국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40시간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55시간이나 되었으니까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미덕이라 여기면서 글로벌 시장을 향해 발을 내디뎠는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죠. 선진국들은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아 보이는데, 우리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 것을 보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거죠.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이 우연적으로 발생하자, 우리나라는 현재 창조 경영 혹은 인문 경영이라는 열풍이 불게 된 거죠. 그런데 제가 질문을 앞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절대 창조적이지 않아요. 

 

*평균 노동 시간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0년 기준 2,19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이다. 이 결과는 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444시간 많은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최근에는 노동시간을 과도하게 줄이면 시간당 업무부담이 늘어나 생산성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하는 주장과, 초과근로가 관행화된 문화를 바꾸어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가 질문을 앞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절대 창조적이지 않아요. 

 

 

UnitasBRAND 한국 사람들이 창조적이지 않다는 말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뉴스나 신문에서 우리 민족의 소위, 장점을 말할 때 창조적이다, 혹은 창의적이다, 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지 않습니까. 사실 독자들의 경우 창조성은 생명과도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어떤 이유에서 한국 사람들은 창조적이지 않은 건가요? 

 

제가 이집트를 여행할 때의 일이에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뭔가가 가물가물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낙타에서 내려 유심히 봤지요. 다름 아닌 모슬렘(Moslem)이더군요. 그는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는 말입니다. 왜, 모슬렘들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해야 하는 이슬람의 법도가 있잖아요. 그것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한 번은 그리스에서 기차를 탔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갑자기 기도를 하더군요. 얼마 동안 살펴보았죠. 알고 보니 그리스는 길가에 작은 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에 인형이 놓여 있어요. 그 성전이 나타날 때마다 이 아주머니가 기도를 하는 거더라고요.

 

창조’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 하는 거죠.
그래서 ‘Creator’의 뜻은 ‘신’이며,
인간은 ‘Creature’ 즉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거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바로 여기에 창조성의 비밀이 있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 하는 거죠. 그래서 ‘Creator’의 뜻은 ‘신’이며, 인간은 ‘Creature’ 즉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의 영역에 있던 창조적 행위가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인간이 이러한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월적 사고’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초월적 사고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외에 그것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초월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죠.

 

 

초월적 사고가 무엇인지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를 얘기하는 겁니다.

 

 

창조를 흔히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렇다면 ‘무(無)’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인 이와타 요시하루 교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창조라고 하지만, 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정의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죠. 어쨌든 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렇기에 창조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초월적 사고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겁니다. 제가 예로 든 모슬렘이나, 그리스 정교인들은 바로 초월적 사고가 삶이 된 사람들이에요. 이것은 단순히 종교를 가지고 있다, 없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초월적 사고가 무엇인지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를 얘기하는 겁니다.

 

창조적일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가요. 한국인들은 교회, 성당, 절에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종교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아닙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현실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한 민족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물욕적이기까지 하죠. 이것은 이미 많은 종교학자들의 논문을 통해 이야기된 바 있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초월적 사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창조적이지 않다라기보다는 창조적일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창조적일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중세 봉건 시대에서 근대로, 그리고 현대를 거쳐 포스트모던이라는 오늘날의 사회를 맞이하잖아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시대를 중세로 얘기한다면 조선 후기에서 근대 시대로 넘어갈 준비를 할 때 일본의 침략을 받죠. 그리고는 한국전쟁까지 발발하며 아예 국가 자체가 초토화됩니다. 열심히 국가를 재건했더니, 어느새 포스트모던 시대가 되어 버렸죠. 결국 우리나라는 축지법을 쓴 것처럼 중세에서 포스트모던 시대로 껑충 뛰어 버렸어요. 몇 시대를 건너뛰어 버렸으니 사람이건, 사회건, 또 나라건 얼마나 정신이 없겠습니까.

 

시대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초월이 아니라
바로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도로를 다시 닦고,
건물을 세우고, 집을 짓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흔히 우리나라를 일컬어 ‘*압축 성장’을 했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압축 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우리를 더더욱 초월적 사고로부터 멀어지게 한 겁니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초월이 아니라 바로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도로를 다시 닦고, 건물을 세우고, 집을 짓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압축 성장

한국전쟁을 겪고 난 한국은 당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보다도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최빈국이었다. 이후 서방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지원과 함께 경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며 경공업 중심으로 시작한 산업은 이후 철강이나 조선, 자동차 등을 수출하며 중화학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범국민적인 노력을 통해 전쟁이 끝난 당시인 1960년에서 2008년 사이에 GDP 성장률이 30배 이상 증가하는 등 전쟁의 폐허로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다른 선진국들이 수백 년은 필요했던 것을 한국은 50여 년 만에 이룩한 것을 빗대어 서울 중심부를 흐르는 한강을 통해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인 ‘한강의 기적’ 도 이 시기의 압축성장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산업에만 집중되어 불균형 성장했다는 것과, 사회를 극심한 경쟁 구도로 만들었다는 점 등의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 부머죠. 이들이 가진 트라우마는 열심히 바로 창조적 사고를 못하게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세대까지가 창조적인 인간이 될 수 없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UnitasBRAND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모두가 우리나라를 보며 이 나라를 재건하려면 100년은 더 걸린다고 했죠. 그런데 우리는 몇 년 만에 나라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기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사유’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창조적인 인간이 영원히 될 수 없는 건가요?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있습니다. 이 세대까지만 초월적 사고가 안 되는 법칙(?)이 적용된다는 겁니다. 바로 빌 클린턴부터 저까지예요. 빌 클린턴이 1946년생이고 저는 1964년생인데, 다름 아닌 *베이비 부머죠. 이들이 가진 트라우마가 뭔지 아십니까? 이 세대는 전쟁을 겪은 세대들 밑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성취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대는 오직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세대지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일에 대한 열정은 어떤 누구도 못 따라갈 정도로 뜨겁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히 바로 창조적 사고를 못하게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세대까지가 창조적인 인간이 될 수 없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베이비부머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한국이 압축성장했던 시기이기도 해 베이비부머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산업화 초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현재 베이비부머는 2011년 기준으로  700만 명 이상으로 전체 한국 인구의 14~15%를 차지하고 있다. 전쟁 직후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몫을 하며 산업일꾼으로 활약하였고, 또한 한국의 민주화 확립에 큰 공을 세우며 한국 현대사회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친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1997년 IMF 금융위기와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에는 조기퇴직 때문에 자녀양육과 부모 부양의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부머 이후 1965년~1976년에 태어난 소비와 유행에 민감하다는 X세대, 1977년~1997년 사이에 태어난 디지털 문명 세대인 N세대 등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게임만 하는 세대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이들의 안에는 창조성이 숨어 있습니다. 

 


한국이 창조성을 화두로 꺼냈을 때는, 지금부터 주목해야 할 세대가 바로 다음 세대, 그러니까 영 제너레이션(young generation)입니다. 이 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게임만 하는 세대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이들의 안에는 창조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이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세대라는 것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이들 안에 창조성이 싹트고 있는 것도 모르지요.

 

서유럽과 동유럽을 휩쓸었던 고트족, 로마인을 학살하는 고트인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최근 로마가 멸망한 이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멸망의 이유가 고트족이라 불리는 야만족이 로마를 침공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어요. 그러나 사실 로마라는 거대한 나라가 침공으로 멸망까지 갔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아, 로마 멸망의 이유를 내부적인 것에서 찾는 움직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빚어진 정치적인 갈등도 멸망의 이유 하나로 꼽히고 있었죠.

 

 

고트족은 로마와는 다른 창조성을 지닌 사람들이었으나, 로마인들은 알지 못했어요.
그저 억압하는 것만이 이들을 다스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은 야만족이라 불리던 고트족의 특성을 로마인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고트족은 당시 아시아를 정복하고 나선 훈족을 피해 로마로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처음 로마에 들어왔을 당시는 그야말로, 살려 달라는 의미였죠.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들을 야만족이라 칭하며 그들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아이들을 인질로 잡아 처소까지 격리시킵니다. 바로 이것이 로마가 멸망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만약 기성세대들이 이들을 야만족이라 칭하며 용납하지 않는 순간,
한국은 영원히 창조적인 세대를 배출할 수 없겠죠.

 

 

고트족은 야만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었으며, 무엇보다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겉으로는 미개해 보였을지 모르나, 로마와는 다른 창조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그러나 이들의 창조성을 로마인들은 알지 못했어요. 그저 억압하는 것만이 이들을 다스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결국 고트족이 반란을 일으켰고 찬란하던 로마가 하루아침에 멸망하게 되지요.

 

고트족인 다음 세대들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다른 방식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영 제너레이션(young generation)은 고트족과 흡사합니다. 만약 기성세대들이 이들을 야만족이라 칭하며 용납하지 않는 순간, 한국은 영원히 창조적인 세대를 배출할 수 없겠죠. 고트족인 다음 세대들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다른 방식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새로운 문명 건설을 가능케 한 시대가 딱 하나 있어요. 
바로 14~16세기인 르네상스 시대죠. 

 

그들은
왜 창조적인가?

 

UnitasBRAND 오늘의 인터뷰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르네상스와 특히 메디치 가문 연구를 통해 창조성의 기원을 찾고, 창조성은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연구하시는 분입니다. 왜, 창조성의 기원을 르네상스부터 찾기 시작했는지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왜 창조적이었습니까?

 

 인류 역사에서 ‘창조성’이 마치 활화산처럼 분출되어 새로운 문명 건설을 가능케 한 시대가 딱 하나 있어요. 바로 14~16세기인 르네상스 시대죠. 르네상스는 창조성과 동의어라고 해도 될 정도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 4~5년 단위로, 말 그대로 줄줄이 배출되었어요. 문학이나 예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름 정도는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르네상스 시대에 배출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창조성의 비밀은 르네상스에 숨어 있는 겁니다.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이라 불리던 많은 사람들의 뒤에는 
메디치 가문이라는 명문가가 있었다는 겁니다.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유명인물

단테,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라파엘로, 그리고 가장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불리는 미켈란젤로까지 모두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창조성의 기원이 르네상스는 아닐지는 모르나, 창조성의 비밀은 르네상스에 숨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왜,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토록 천재들이 많이 배출된 걸까요? 딱 한 가지 이유를 꼽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것은 분명 있습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가 그 유명한 메디치 은행을 운영하는 
세계적인 금융가로 활동하다가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든 이유를 아시나요?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이라 불리던 많은 사람들의 뒤에는 메디치 가문이라는 명문가가 있었다는 겁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귀가 닳도록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들어 보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질문을 드려 보고 싶군요. 메디치 가문을 실질적으로 부흥시킨 코시모 데 메디치가 그 유명한 메디치 은행을 운영하는 세계적인 금융가로 활동하다가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든 이유를 아시나요?

 

피렌체 공화국 시민들이 ‘국부’라는 칭호를 바친 코시모 데 메디치 /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르네상스 시대 학문과 사상의 전당으로 큰 역할을 한 메디치 도서관

 

코시모를 궁금해서 미칠 정도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플라톤의 책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디치 가문에서 천재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비밀입니다.

 

 

먼저, 그가 플라톤 아카데미의 책임자였던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 드리죠. 

이 편지는 피치노가 플라톤 아카데미가 있었던 카레지에서 피렌체로 잠시 출타했을 때 메디치에게 받은 편지 내용입니다. 

“나는 어제 카레지에 왔다네. 정원을 경작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음을 경작하기 위해 왔다네. 가능하면 빨리 돌아오게나. 서둘러 오더라도 자네가 번역한 플라톤의 책을 가져오는 것은 잊지 말게. 정말 무엇이 나를 가장 큰 행복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코시모를 궁금해서 미칠 정도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플라톤의 책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디치 가문에서 천재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비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UnitasBRAND 많은 책이나 혹은 강의에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코시모 데 메디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문 경영을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질문하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플라톤 아카데미 안에 창조성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나 플라톤 철학이나 이미 다 알고 있지만, 1453년 당시까지 유럽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 당시 유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하던 시대였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알다시피 현상학을 중시하는 철학자입니다. 쉽게 말하면, 물컵에 물이 들어 있다면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이 물의 용량은 얼만이며, 전체 용량의 몇 분의 몇이 비어있는가 등의 현상에 대한 분석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당시 현상학을 중시하는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당시 유럽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겁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현상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사물의 관찰,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사유를 합니다. 사실 그 시대까지 전해져 오던 플라톤의 책은 총 43권인데, 모두 동방 비잔틴 제국에 있었지 유럽에는 단 한 권도 없었어요. 플라톤에 대해서는 그저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서 전해 들은 것이 전부였죠. 그래서 더더욱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당시 유럽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이데아’,
눈에 보이는 것 저편에 있는, 원형, 즉 본질을 플라톤은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잔틴 제국에서 사제 700여 명이 피렌체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 메디치 가문에서 모든 비용을 후원해 주게 됩니다. 사제들이 피렌체에 머물 당시 코시모는 그들을 통해 플라톤 철학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피렌체를 떠날 때 사제들은 자신들을 섬겨 준 감사의 선물로 플라톤의 책을 코시모에게 주고 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발단입니다. 플라톤이 중시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거잖아요. ‘이데아’, 그것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 저편에 있는, 원형, 즉 본질을 말하는 겁니다.

 

플라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이데아를 본떠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데아만이 진실한 존재라고 말하지요.


다른 질료와 형태의 컵이라도 동일한 '컵'이라는 원형이 있다. 이것이 이데아다.

 

예를 들어, 여기 두 개의 컵이 있습니다. 이 둘은 다른 질료와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일한 컵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머릿속에 ‘컵’이라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이데아입니다.

 

플라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이데아를 본떠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데아만이 진실한 존재라고 말하지요.

이처럼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다름 아닌 눈에 보이는 현상을 중시하며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듣다가 플라톤의 철학을 듣는 순간 코시모가 어땠을까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바로 코시모가 피렌체 인근의 카렌지에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그리스어로 된 플라톤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게 한 이유입니다.

 

감성적 직관이나 창조적 영감 등을 보며
동시대의 사람들을 새로운 시대로 옮겨 줄 견인차가 바로 플라톤 철학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에 54명의 지성인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장면을 라파엘로가 상상하며 그린 그림

 

그는 플라톤의 초월적 사고,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볼 수 없었던 감성적 직관이나 창조적 영감 등을 보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동시대의 사람들을 새로운 시대로 옮겨 줄 견인차가 바로 플라톤 철학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이것이 그들이 ‘왜’ 창조적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메디치 가문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그들을 플라톤 아카데미로 초청하여 플라톤의 철학을 배우게 했어요.

앞에서 창조성은 초월적 사고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듯이, 플라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된 사람들의 작품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 그러니까 창조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미켈란젤로입니다. ‘초월적 사고’입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철학자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부활시켜 그 운영 책임을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맡긴다. 이후 그는 코시모의 지원에 힘입어 그리스어로 된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을 완수하고 그동안 부분적으로 이해되어왔던 플라톤의 모든 사상체계가 조직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분석의 틀을 마련하였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플라톤의 전집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며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창시하는데 핵심 인물이 된다.

 

*플라톤의 책

15세기 초에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한 플라톤의 그리스 원본은 피렌체에서 신플라톤주의를 생겨나게 했다. 당시 유럽과 이탈리아의 지식체계는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기조는 현상에 대한 분석, 사물의 관찰,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다. 그런데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데 메디치는 초월적 사고, 감성적 직관, 창조적 영감을 중시하던 플라톤주의에 주목하며 플라톤의 사상이 바로 자신이 찾던 새로운 시대를 견인할 새로운 생각의 틀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플라톤 아카데미의 부활을 선언하고, 그 운영 책임을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맡겨 연구활동을 시작한다. 전성기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초월적이며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모두 피치노의 신플라톤주의 미학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아름다움을 본질을 넘어선 최고의 가치로 보았기 때문이다.

 

BRANDThink 
*보이지 않는 것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일 때가 많다. 신뢰, 사랑, 우정처럼 말이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것들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 왔고 그 중심에 브랜더가 있다. 티파니는 사랑을, 신용카드사들은 신뢰를, 페이스북은 우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제품 혹은 서비스로 만들어냈고 그 가치를 변함없이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 당신이 만들어내는 제품과 서비스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가치가 숨겨져 있을까? 

 

플라톤의 철학을 배운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서 완벽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본질인 이데아를 찾으려고 했겠죠.

 

 

UnitasBRAND 미켈란젤로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조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미켈란젤로는 조각가가 아니라 철학자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통해 플라톤 철학을 실현한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미켈란젤로는 알다시피 가난한 거리의 예술가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메디치 가문의 양자로 입양되면서 그곳에서 조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배웁니다. 플라톤의 철학을 배운 그가 대리석을 마주했을 때 어땠을까요? 대리석에서 완벽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본질인 이데아를 찾으려고 했겠죠.

 

플라톤

 

당시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신, 그 자체였어요. 다른 말로 신과 환치될 수 있는 것만이 아름다움이라는 거죠. 그래서 미켈란젤로에게 있어서 조각이란 그저 대리석을 깎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인간이 ‘이것이 신이다’라고 규명하는 순간 그것은 신이 아니게 되죠. 왜냐면 인간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신이 아니라는 거죠.

 

 

아닌 것을 규명해 봄으로써 결국 그것의 진정한 본질, 실체에 다가가 보는 겁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예를 들어, ‘신은 사랑이다’라고 말했을 때 왜곡적인 사랑도 있고, 변태적인 사랑도 있고, 또 억압적인 사랑도 있잖아요. 그러나 신은 그렇지 않아요. 이처럼 인간이 가진 그 무엇으로도 신을 규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는 신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신이 아닌 것을 규명’ 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플라톤 철학에서는 ‘*부정(Negation)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아닌 것을 규명해 봄으로써 결국 그것의 진정한 본질, 실체에 다가가 보는 겁니다.

 

미켈란젤로가 한 것은 조각이 아니라 철학이었던 거죠. 

 

이처럼 미켈란젤로는 끊임없이 정(Chisel)으로 신이 아닌 것들을 쳐 내려간 겁니다. 결국, 미켈란젤로가 한 것은 조각이 아니라 철학이었던 거죠.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신을 규명하려고 했기에, 그의 조각품은 그 시작부터 창조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메디치 가문에서는 이처럼 고대 플라톤의 철학을 다시 부활시킴으로써 당대의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정반대에 있었던 초월적 사고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었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통해 플라톤 철학을 실현

미국의 종교학자 로이 블레너가 쓴 《시스타나 예배당의 비밀》에 보면 미켈란젤로는 “나는 모든 대리석 덩어리 속에서 신체 각 부위의 자세와 움직임까지 이미 완벽하게 모양이 잡혀있는 형상을 마치 내 눈 앞에 서있는 것처럼 또렷이 본다. 나는 내 눈이 그것을 보듯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도록 그 아름다운 유령을 가두고 있는 거친 벽을 깎아 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스승이었던 마르실리오 피치노에 의해 영향을 받은 플라톤적 사고로 조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미술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미 존재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작업으로서 이러한 예술적 정체성은 그의 조각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부정(Negation)의 신학
스콜라 철학은 모든 철학의 목표인 ‘획득 가능한 진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포함시킨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스콜라 철학의 기초를 설립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부정否定신학’으로 유명한 위디오니시오스다. 하지만 실제 그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려진 바가 없으며 많은 역사적 자료를 통해 그가 시리아의 신풀라톤주의자로서 당시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인 보에티우스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는 신 자신이 계시하지 않은 한 어떤 이름도 신에게 줄 수 없으며 계시된 이름마저도 인간의 유한한 오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의 본성에 이르거나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신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인간이 신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기 때문에 신에 관한 모든 긍정적 진술은 ‘부정’이라는 교정 수단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포착될 수 없는 신이라는 존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통해 서술하는 신학적 방법이다.

 

BRANDThink 
*아닌 것을 규명해 봄으로써 결국 그것의 진정한 본질, 실체에 다가가

철학자 중에서 ‘부정’의 논리를 사용한 사람은 비단 플라톤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헤겔의 ‘정반합’의 개념도 부정의 논리로 진리에 한 발 더 다가서려는 시도다. 유니타스브랜드는 헤겔의 정반합의 개념을 기반으로 ‘브랜드 안티테제(antithese)’라는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브랜드 안티테테제의 개념을 사용하면 브랜드의 ‘진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방법은 이렇다. 만약 당신이 커피를 파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커피를 파는 사람들이 아니다”로 시작하며 자신을 부정해 보자. 그리고는 “우리는 커피를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를 파는 사람들이다”라는 명제를 완성해보자. 스타벅스가 ○○○에 ‘도심의 휴식’이라는 단어를 채워 넣었던 것처럼.

 

*천재적인 예술가

메디치 가문이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로서 시대정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인문학적인 지식과 본질적인 가치의 추구를 토대로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그들과 영향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세상과 인간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과 숨겨진 불만, 욕구 등을 흡수하여 기존의 것과 차원이 다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 숨겨진 메시지들은 다시 대중들에게 전달되어 생각할 이슈를 만들고 시대사조로 승화되기에(유니타스브랜드 Vol.18 p88 참조) 이들은 시대정신을 구성하는 일종의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가들에게 지식적,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들로부터 재가공된 새로운 인문학적 소양과 시각을 수혈 받음으로써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브랜드에게 꿈은 메디치 가문일 수 있거든요.  
오랜 시간 생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나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는 것 말입니다. 

 

 

UnitasBRAND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창조적 사고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르네상스, 특히 메디치 가문을 주목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화두가 아니더라도 메디치 가문은 등장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단순히 플라톤 철학이라는, 당시의 가치를 뛰어넘는 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라고 하기에는 이 가문은 너무나 위대해 보입니다. 게다가 300년이 넘게 부자는 물론이거니와 존경과 칭송을 받는 가문이지 않았습니까. 사실, 브랜드에게 꿈은 메디치 가문일 수 있거든요.  오랜 시간 생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언제나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는 것 말입니다.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렇죠, 메디치 가문은 언제나 화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배웠던 플라톤 철학 그 이면에는 사실 그들이 추구하던 목표가 있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이 남긴 것 중에 유독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추도사입니다. 메디치 가문은 누군가가 죽으면 장례식을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동안 치르는데, 그때 학자들이 나와서 죽은 사람의 생애를 쭉 읽으며 추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추도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어가 있어요. 바로 ‘Arete’입니다. Arete는 번역하면, 최고의 상태를 지칭하는  ‘*탁월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인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삶의 덕목 중 하나예요.

 

메디치가문(Medici family)의 문장

 

바로 Arete는 최고의 상태를 지칭하는 ‘탁월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인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삶의 덕목 중 하나예요.

 

 

Arete라는 말의 기원을 쫓아가면 라틴어의 ‘Virtus’를 만나게 됩니다. 이 단어의 뜻은 용기, 용맹, 불굴의 의지와 같은 남성다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당시 부자이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 혹은 뛰어난 인재들에게는 행운을 뜻하는 ‘Fortuna’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Fortuna는 아주 변덕스러워서 언제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Fortuna를 여성에 비유했습니다. Arete란 바로 남성성으로 비유되는 Virtus로 소위, Fortuna를 애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말하죠.

 

 

탁월함이란 그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이상(理想)을 제시하고 그것의 실체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메디치 가문은 그저 한낱 가문이 아니라
‘시대정신’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탁월함이란 용기와 용맹, 불굴의 의지로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취하는 것을 뜻합니다. 메디치 가문은 바로 이 Arete를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성도 발견할 수 있었던 거구요. 탁월함이란 그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이상(理想)을 제시하고 그것의 실체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메디치 가문은 그저 한낱 가문이 아니라 ‘시대정신’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겁니다. 

 

*탁월함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라 마키아벨리는 이상적인 군주에게 필요한 3가지를 요건을 ‘행운(Fortuna)’, 이행운의 낚아채기 위한 ‘과감함(Virtus)’,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것, 곧 ‘시의 적절함necessita’이라고 말하고 있다. 운은 때론 악운으로, 때론 행운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행운을 잡기 위해서는 활력과 기백이 넘치는 결단력과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virtus는 힘에 가까운 덕목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강조했던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 즉 그 시대에 합당하는가 하는 시대정신인 ‘시의 적절함(necessita)’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해야 할 의무’나 ‘하도록 강요된’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요건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이상적인 군주가 될 수없다고 하였다. 

 

BRANDThink 
*탁월함

브랜드가 원하는 것, 아니 사실 ‘모든’ 인간이 원하는 것이 ‘탁월함’ 아닐까? 혹시 당신은 입신양명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며 ‘모든’이란 표현을 정정해 줄 것을 요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도 ‘탁월함=시장에서 1등이 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에서의 1등은 단지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강력한 브랜드는 단지 몇몇 속성에 의한 ‘차이’가 아닌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된다. 차원이 다른 카메라(로모), 차원이 다른 운동화(닥터마틴), 차원이 다른 휴대폰(아이폰)… 이들은 해당 카테고리에서 제일 비싼 것도, 시장 1위도 아니다지만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차원이 다르다. 브랜드가 경험할 수 있는 ‘초월성’은 이런 것 아닐까?

 

 

메디치 가문에서 한 것은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철학을 논한 거였으니까요. 

 

왜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UnitasBRAND 유럽에서는 이른바 ‘명품’이라는 브랜드들이 대거 탄생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이러한 초월적 사고를 근간으로 한 철학적 사유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앞에서 교수님도 언급하셨지만, 어쨌든 다음 세대를 통해서는 이러한 창조성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메디치 가문의 교육 방식을 통해 엘리트 교육 방법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결국에는 교육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디치 가문에서 한 것은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철학을 논한 거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할 것인가가, 다음 문제일 것 같은데요,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인문학을 배우면 됩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부분 *라틴어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는 대학에 들어가면 고전을 읽어요.

 

인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겉으로 나타난 것 외에는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학들은 어떤가요? 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을 듣냐고 물어보면 마케팅개론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철학이 아니라 방법만을 가르치죠. 만약 이러한 교육이 계속된다면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겉으로 나타난 것 외에는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품, 오래가는 브랜드는 그 안에 본질을 담고 있거든요.

 

 

명품, 오래가는 브랜드는 그 안에 본질을 담고 있거든요.

 

 

서고트 알라리크의 고마 약탈

 

로마를 멸망시킨 고트족이 로마에 들어와서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라틴어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라틴어를 배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을 읽으라는 겁니다. 진짜 인문학을 배우라는 겁니다. 마케팅 개론과 같은 얄팍한 지식이 아니라 진짜 원전을 접했을 때, 고트족의 창조성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BRANDThink 
*유럽

유럽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인 LVMH의 포트폴리오는 약 60여 개의 브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LVMH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행보 하나하나에서 묻어난다. HEC의 교수이자 명품 브랜드 컨설턴트로도 유명한 장 노엘 캐퍼러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브랜드들은 명품 브랜드 직원 채용 때 어떤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LVMH에서는 최근 다녀온 갤러리는 어디였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예술가를 존경하는지를 묻는다”라며 예술과 명품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LVMH의 미션이 ‘생활 속 예술(Art de Vivre)’인 것도, 이런 사조를 견지하는 그들이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거느린 것도, 많은 명품 브랜드가 유럽 태생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라틴어 공부

라틴어는 유럽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언어의 기원이다. 현재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여러 나라들의 언어가 라틴어 계열에 속하며 독일어이나 영어 등도 라틴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언어들이다. 그러다 보니 신학, 역사, 문학뿐만 아니라 법학, 정치학, 화학, 생물학, 의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학문연구를 하기 위해서 라틴어의 공부는 필수다. 이와 같이 라틴어는 유럽의 역사이며 유럽 문화의 원류 그 중심에 있다. 따라서 유럽의 중등교육에는 라틴어가 정식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으며 학부에서 라틴어를 모르면 학문연구나 박사학위 취득이 어렵도록 라틴어 공부가 필수 교양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 대한 교수님만의 정의가 궁금해집니다.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문을 통해서 창조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현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문학이 가지는 가치를 설명하기에 부족해 보입니다. 기업의 CEO들이 인문학의 진정한 힘을 제대로 안다면 지금의 열풍을 단순히 트렌드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창조성을 가진 브랜더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피렌체에서 보았던 그 천재들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진짜 인문학을 배우라는 겁니다.
마케팅 개론과 같은 얄팍한 지식이 아니라 진짜 원전을 접했을 때,
고트족의 창조성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UnitasBRAND 그렇다면 인문학에 대한 교수님만의 정의가 궁금해집니다.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문을 통해서 창조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현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문학이 가지는 가치를 설명하기에 부족해 보입니다. 기업의 CEO들이 인문학의 진정한 힘을 제대로 안다면 지금의 열풍을 단순히 트렌드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창조성을 가진 브랜더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피렌체에서 보았던 그 천재들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 르네상스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된 줄 아나요? 프랑스 남부 아비뇽 옆에 악상 프로방스라는 도시에 자리 잡은 방투 산(Mont Ventoux)에서 시작됩니다. 최초의 인문주의자로 불리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산을 오르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이라는 책을 읽게 됩니다. 그 책을 덮고 산을 내려오며 그는 단 한마디로 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감탄을 하죠.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고 감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페트라르카는 “*진짜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세계인데, 나는 그것을 왜 몰랐을까?” 하며 한탄을 하지요. 그러면서 산을 내려오며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이제부터 나의 내면을 보겠다, 나의 본질을 보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이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성찰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결심을 담아 ‘*방투산 등정기(The Ascent of Mont Ventoux)’라는 편지를 써 자신의 스승에게 보내지요.

 

진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고 감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Odysseia》

이것을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집니다. ‘르네상스’라는 뜻이 ‘부활’이지 않습니까. 무엇의 부활인가, 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예술의 부활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중심에는 호메로스의《오디세이아 Odysseia》가 있습니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통해 한 고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페트라르카가 했던, 나는 지금 누구이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이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 말입니다.

 

 

성찰을 통해 무엇을 선택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이루려는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 비로소 성찰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이것은 삶의 방향성의 문제이지 어떻게 하라는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법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내 삶에 대해서 얼마나 진정한 성찰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끝은 아닙니다. 성찰을 통해 무엇을 선택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이루려는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 비로소 성찰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만약 포기하거나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제가 강의를 할 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는데,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며 또 방황한다고 해서 그것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방황 자체가 길이 된다”입니다.

 

 

방황 자체가 길입니다. 브랜드도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목적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면 결국, 진정으로 원하던 브랜드가 되는 거죠. 

 

 

사람들은 방황을 하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 버리죠. 그렇지 않습니다. 방황 자체가 길입니다. 브랜드도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목적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면 결국, 진정으로 원하던 브랜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혹은 브랜드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거예요. 이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거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저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가장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
총 13권으로 이루어진 《고백론》은 1~10권까지는 그의 참회록 중 자신에 관한 고백이며 나머지 세 권은 성서에 기록된 천지창조에 관련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백론》은 성 어거스틴의 젊은 날의 방황과 타락에 대한 깊은 반성, 그리고 신을 통한 영적 체험에 의해 쓰여진 책이지만 “신앙은 찾고 지성은 발견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신학사상은 아주 포괄적이었다. 이러한 사상이 녹아든 《고백론》은 지금까지도 신학뿐만이 아니라, 심리학, 철학, 인문학 등 폭넓은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어거스틴의 신학은 이성으로 회의하고 탐색하는 더 깊은 지식으로 신에 대한 더 확실한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신학의 탁월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평가된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는 ‘인문주의의 아버지’ 혹은 ‘르네상스의 아버지’다. 그는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그 지역의 수도원 도서관에서 고전의 필사본들을 수집하며 고대 문헌 공부에 몰두한다. 그러다 파리에 이르러 성 어거스틴의 《고백론》의 사본을 구하게 되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는 신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인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며 인문주의의 선구자 혹은 르네상스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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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세계

브랜드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적 성찰을 선행하여 자신의 오리진(origin이 무엇인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본지를 통해 강조한 바 있다(유니타스브랜드 Vol.20 p36 참조).
특히 창업자가 오리진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유니크함이 브랜드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세상 60억 인구 중 누구도 완벽히 똑같은 사람이 없기에 창업자는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정확히 앎으로써 자신의 강점과 약점, 성향과 성격, 추구점과 목적의식을 독특히 결합하여 다른 브랜드와 확실히 구분되는 내 브랜드의 차별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 버진의 리처드 브랜슨, 월마트의 샘 월튼 등은 이들 자신과 삶이 그 브랜드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투산 등정기(The Ascent of Mont Ventoux)

페트라르카는 1336년 4월 26일 아비뇽 근처의 방뚜산에 올라 등정 도중 겪은 경험과 느낌, 깨달음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자신의 고해 신부였던 디오니지(Fran-cesco Dionigi de’ Roberti)에게 편지를 적어 보내는데 이것이 바로 ‘방뚜산 등정기’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 그는 처음 산 정상에 오른 이유를 산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세속적 열망 때문임을 밝히는데 고된 산행과 이것이 가져온 자기회고적 명상과 그가 아끼던 책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을 읽으며 페트라르카는 내면세계를 돌아보라는 그리스도교의 참된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creativity의 시작은 나의 originality를 아는 것
브랜드의 최종 목표는 ‘자기다움’으로 ‘영속성’을 이뤄 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거든요.

 

 

UnitasBRAND 결국, creativity의 시작은 나의 originality를 아는 것이겠군요. 브랜드의 최종 목표는 ‘자기다움’으로 ‘영속성’을 이뤄 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브랜더 혹은 CEO들이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CEO들은 인문학적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몰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CEO를 어떻게 직원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저라도 못 따라갈 것 같습니다. 코시모도 피치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엇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내면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을 왜 이토록 사람들이 거론할까요? *그는 자신의 내면, 그러니까 본질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군요. 무엇이나 영원한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오직 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혹은 편집장님이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브랜드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저는 시대적 ‘소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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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내면, 그러니까 본질을 보았기 때문

스티브 잡스의 20대 때 미국에서 유행했던 히피 문화의 영향이라는 평도 있으나, 남달리 혼자만의 시간에 차와 명상을 즐기고 불교와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가져 인도를 여행하기도 하며 일본의 선(Zen) 사상에 심취해 코분치노 선사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던 스티브 잡스는 누구보다 자신의 내면 성찰에 오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스티브 잡스는 자신다움과 스스로 추구했던 바(단순함과 과감성 등이 대표적이다)를 애플에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람이든 브랜드든, 어떤 것이든 흥망성쇠라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이것이 순리입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시대적 소명을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메디치 가문도 300여 년이 넘게 가문을 유지했지만, 결국에는 문을 닫는 시점이 왔습니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면 결국 문을 닫는 거죠. 저는 브랜드가 300년을 가든 500년을 가든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의 부름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거기에 맞게 행동했는가이죠. 그랬다면 그 브랜드가 죽는 시점을 맞이했을 때는 멋진 장례식을 치르면 된다고 생각해요. 영원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일 뿐이죠.

 

사람이든 브랜드든, 어떤 것이든 흥망성쇠라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와 쭉 함께 해왔던 역사예요. 이집트 제국이 왔다 망하고 그리스, 로마가 왔다가, 또 신성로마제국이 왔다가 그리고는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미국이 왔다가 이제는 중국이 오고 있죠. 이것이 순리입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시대적 소명을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얘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요즘 *중국에서 하고 있는 두 가지 연구가 있어요. 하나는 기독교이며, 다른 하나는 메디치 가문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한계를 접하고 자본주의적 제도를 모색해 봤지만 아무리 자본을 축적해도 또다시 한계에 부딪치죠. 자신들이 넘을 수 없는 한계가 바로 창조성이었어요.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처럼 대단히 현실적이죠. 그래서 이 창조성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중국에서는 이 연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중국에서 이런 것을 연구한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중국에서 하고 있는 두 가지 연구

오랫동안 기독교를 탄압해 왔던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기독교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였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기독교 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신학적 접근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목적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장즈강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당시 중국 학술계가 중국이 모든 면에서 서방에 뒤쳐졌다고 판단했고, 이성적 사유 능력을 훈련하는데 있어 기독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경제적 기여뿐만 아니라 건축, 그림 및 조각 등 유럽의 문화적 기여에도 큰 몫을 하는데 그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중국에서는 지금 국가발전과 사고의 전환을 위해 기독교와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업들은 너무나 ‘쉽게’ 무언가를 이루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단순한 ‘술(術)’로 여긴다는 겁니다. 

 

UnitasBRAND 중국에서도 창조성의 연구는 우리나라만큼이나 갈급한 것 중 하나인가 봅니다. 브랜드가 영속하려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적으로 자신들이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결국, 사람이나 브랜드나 자신이 사는 *‘목적’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또 르네상스라는 역사를 공부하신 학자로서 브랜더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통해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내가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통을 견뎌 내야 마침내 소명을 이룬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너무나 ‘쉽게’ 무언가를 이루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단순한 ‘술(術)’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업’입니다. 노년의 미켈란젤로가 소위, Arete에 도달하고 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의 고백은 1554년에 쓴 시인 소네트 283번인데요, 시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걸작을 만들고 있었음을 확신했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천재적인 작품이라 칭송했지만 결국 자신의 작품은 다 무의미한 것이며, 자신은 다만 그분의 품으로 돌아간다,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분이란 하나님을 말하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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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아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브랜드의 목적은 ‘올해 매출 ○○○○원 달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가시적 성과 즉, 목표일 뿐이다.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결국 우리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즉 목적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당신 브랜드의 목적은 무엇인가?

 

*《오디세이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서구문학 전체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국민적인 서사시였다. 그의 언어와 기법은 기교와 자연스러움과 생동감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인간의 감정과 심리, 태도에 이르기까지 진실하고 가장 생생하게 묘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슬픔, 기쁨, 아픔, 우정, 공포, 유혹 등 인간의 보편적 감성들과 다양한 인간사의 체험들을 치밀한 구성과 방대한 스케일 속에 전개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지속적인 긴장을 통해 몰입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받은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말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신 앞에서 혹은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본질을 깨달은 것이죠. 호메로스의《오디세이아》는 그리스 군이 트로이와 펼친 10년 간의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것입니다. 이 10년 간의 여정이 흡사 우리네 인생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국, 끝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딘가로 돌아갑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죽음’ 그러니까 하데스의 집으로 돌아가는 건 똑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받은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말입니다. 
‘술’로만 자신의 일을 여기는 브랜더들에게 질문하고 싶군요.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받은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을 비롯해 인문학자들의 질문이 이것이었죠. ‘술’로만 자신의 일을 여기는 브랜더들에게 질문하고 싶군요.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김상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 대학에서 종교학과 목회학 석사학위를,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삼성경제연구소 SERI에서 최고경영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의 후원을 받아 르네상스의 예술과 사상 및 신학 연구를 통해 인문학의 시작을 알린 르네상스 시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르네상스 창조경영》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외 다수가 있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Ⅳ. History) 자신을 초월하지 않는 창조 경영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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