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부터 17세기에 유럽에서는 마녀라는 죄명으로 적게는 20만 명에서 많게는 50만 명의 여자들이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마녀사냥은 유럽에서는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에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공공연하게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으며, 인도에서도 마녀사냥으로 인해 매년 200여 명의 여자들이 죽는다. 마녀사냥의 목적은 사회 공포 분위기 조성, 과부들의 재산 탈취, 권력자들의 범죄 은닉 등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결과는 즉각적이며 효과적이다. 특히 마녀사냥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고자, 혹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즐겨 사용했던 일종의 ‘소셜 엔터테인먼트’였다. 마녀사냥이 시작된 지 600여 년이 흐른 지난 2000년 3월,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이름의 참회서로 교회의 인류에 대한 범죄를 고백했고 사죄를 구했다.
당시 사람들은 마녀사냥으로 화형 당한 그들에게 어떤 특징이 있다고 믿었을까? 동화책에서 보듯이 빗자루를 타고 다니면서 사람에게 마술을 걸어 개구리로 만들어 버리는 식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마녀들의 우상이라고 믿었던 악마(마귀)의 지시를 받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 영혼을 재물로 바치는 그런 미션을 수행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화형시킨 이유는 마녀들의 부활 때문이다. 19세에 마녀로 몰린 잔 다르크 또한 마녀의 부활을 우려한 집행부에 의해 3번이나 태워졌고 그 재는 센강에 버렸다고 한다.
이제 인문학은 단순한 관심이 아닌 시대정신, 혹은
가치관을 바꿀만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요즘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들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바로 인문학자들이다. 많은 기업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이 소위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마케터, 디자이너, 브랜더, 기술자’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사람들이 존재할까?
“오늘날 직면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하고 인문학의 의미를 되살려 우리의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고자 한다.”
이는 2006년 9월 15일 오전,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타개’를 주제로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비장한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인문학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인문학은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웰빙과 같은 시대정신, 혹은 가치관을 바꿀만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문학이 새로운 경영 트렌드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유독 자기 경영, 처세술, 심리학에 관한 책만 잘 팔리는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잠깐 고개를 든 일종의 출판사들의 처세술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문제지만 최근 인문학 경영이 대세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과연 부활이 기대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도대체 인문학적 소양의 기준은 무엇이고 대체 그것으로 무엇을 할 속셈일까? 기업이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인문학으로 돈을 벌겠다는 단순한 계산일까? 과연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자들에 대한 선호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사용자환경(UI)을 개발하는 데는 기술 못지않게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라, 인류학자와 심리학자가 가장 뛰어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2011년 미국 스탠퍼드대 인문학센터에서 열린 ‘비블리오테크 회의’에서 머리사 메이어(Marissa Mayer) 구글 부사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구글은 올해 6,000명의 직원을 채용할 예정인데 그중 4,000~5,000명을 인문분야 전공자로 뽑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구글은 다양한 분야에서 똑똑한 인재를 찾고 있지만, 인문학 전공자가 특히 잘 어울린다. 그 이유는 사용자 환경(UI)을 개발하는 데는 기술 못지않게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라, 인류학자와 심리학자가 가장 뛰어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인문학이 돈이 된다고 말한 셈이다.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경영학에서 없던 분야는 아니다. 소비심리학, 소비자 조사, 대중 심리 등 전략의 근간을 세우기 위해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학문이 존재해 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인문학적 관찰 기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설파했던 인문학의 강조 문구를 다시 한번 들어 보자.
https://youtu.be/KlI1MR-qNt8?t=11
“우리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우리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기술 관점에서 제품은 직관적이고 사용하기에 쉽고 즐거워야 합니다. 사용자가 제품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기술과 인문학,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이 애플이 일련의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비결입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도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위한 창의적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실제 애플의 내부 직원들이 이 말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구글과 애플 두 회사 모두 ‘고객 중심’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말이 새롭게 들리는가?
만약 자동차 회사의 입사 면접장에서 인사과 임원이 자칭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여러 사람들 중에 진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을 뽑고 싶다면 어떤 테스트를 하면 좋을까? 여기 아주 명료하고 간단한 테스트가 있다.
“우리 자동차 회사에 대해서 여러분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질문해보세요”
1) 이 회사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2) 미주 지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입니까?
3) 회사가 원하는 인재의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
4) 야근과 보직 이동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 4명 중에 누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일까? 힌트는 구글 메이어 부사장과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말에 있다. 얼핏 보면 3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인간에 대한 이해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눈치챘겠지만 이 4명 중에는 없다.
내부 직원들이 이 말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구글과 애플 두 회사 모두 ‘고객 중심’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인문학적 브랜드 주제에서 인터뷰한 인문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면접관에게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자동차를 왜 만들죠?”
인문학은 ‘왜’가 궁금해서 평생 ‘왜’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왜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까?
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할까?
왜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눈물을 흘릴까?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보다 ‘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동기, 목적, 가치, 이념, 그리고 철학에 관심이 있다.
혹시 직원 중 한 명이 사장실을 찾아와 “사장님, 사장님의 철학과 이 제품은 맞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이것을 만들어야 하죠? 혹시 중간 간부의 실수가 아닌가요?”라고 말했다면 절대 해고하지 말길 권한다. 나는 그가 진정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브랜더라고 변호하고 싶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보다 ‘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왜’라는 질문에서 브랜드는 시작된다. 이제 다시 스티브 잡스로 돌아가 보자. 이미 수많은 휴대폰 브랜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시장으로 진출했는지, 그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다른 컴퓨터 제품을 만들지 않고 왜 아이폰을 만들었는지 물어보자.
다시 그의 대답이다.
“우리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우리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기술 관점에서 제품은 직관적이고 사용하기에 쉽고 즐거워야 합니다. 사용자가 제품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기술과 인문학,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이 애플이 일련의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비결입니다.”
만약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즐겁지 않다면 그는 인문학을 단지 인용한 것이고, 그의 말대로 쉽고 즐겁다면 그는 인문학을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마케터일지라도, 스스로 나는 왜 이 상품을 팔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답할 수 없다면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딸기 향 첨가’ 처럼 인문학의 향과 비슷한 맛만 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우리는 더 쉽게 속을지도 모른다. 진짜 인문학자들은 기득권 세력과 어그러진 사회질서에 대항하며 사회 전복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현재의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계속 변화와 변혁을 외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사는, 그래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사람들로서 소위 ‘배고픈 소크라테스’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을 기업에 가두고 감당할 수 있을까?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마케터일지라도,
스스로 나는 왜 이 상품을 팔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답할 수 없다면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인문학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접붙임을 하기 전에 경영의 트렌드는 다름 아닌 ‘두바이’였다. ‘상상력만이 한계다’라는 두바이의 슬로건은 경영인들의 눈을 두바이에만 머물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바이에서 시선을 거둔지 오래다. 왜일까? 2001년 경영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짐 콜린스의《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였다. 그런 그가 2009년 또 다른 책을 썼는데 책 제목은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다. 어쩌면 우리가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그의 책뿐만이 아니다. 2005년에 출간된 마케팅 서적을 꺼내 사례로 제시된 기업과 브랜드를 현재 찾아보면 거의 사라졌거나 그 성장세가 급격히 저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니타스브랜드도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사례를 고른다). 이처럼 최근 기업들은 10년의 성장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고민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 자신의 기업에 주입하는 것이다. 일종의 불로장생 명약을 찾는 것인데, 그것을 찾다가 결국 인문학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브랜드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사람들의 관계 속에 있으며, 사람들의 의식주를 관장하고,
사람들의 가치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유니타스브랜드는 창간과 함께 ‘브랜드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브랜드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사람들의 관계 속에 있으며, 사람들의 의식주를 관장하고, 사람들의 가치와 목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브랜드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제품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왜’ 이것을 구매할까, 즉 그 동기를 연구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다(소위 문사철). 달리 말해 인문학은 현재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존재와 관계된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바탕은 인간과 삶이요, 그 방법론은 이해와 해석이며, 그 목적은 의미와 진리를 파악하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인문학은 실존적이며 공동체적이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서 성찰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인문학에서 인간은 주체이자 객체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에 의한 학문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의 현재에 대한 이해와 해석 행위가 체계화되고 개념화된 것이 인문학을 설명하는 다른 표현이 될 것이다.
인문학은 현재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존재와 관계된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바탕은 인간과 삶이요, 그 방법론은 이해와 해석이며,
그 목적은 의미와 진리를 파악하는 과정에 있다.
인문학을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예술·기술)라고 부르기도 한다. liberal의 어원은 ‘자유인에게 적합한’이란 의미의 라틴어 liberalis로 BC 5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사회 엘리트와 시민 계층에게 필요한 일반적인 지식과 기술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철학, 수학, 언어학, 역사, 과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인문학이란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인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시작되면서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고대시대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구분이 없었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자연과학은 분리되었다. 그래서 한때 인문학은 자연을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별개의 영역을 구축했지만 지금은 자연을 통한 인간의 발견이라는 접근법으로 새로운 영역을 구축되고 있다.
한편 인간을 알기 위한 또 다른 학문이 바로 브랜드다. 브랜드 인문학이란 브랜드를 통해서 현시대의 가치와 문화, 그리고 상징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가장 인간다운 ‘그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자동차 회사의 면접실로 돌아가 보자. 만약 자동차 회사가 인문학을 이해한다면 무엇을 사유하고 있을까?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사장과 신입사원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한편 인간을 알기 위한 또 다른 학문이 바로 브랜드다.
브랜드 인문학이란 브랜드를 통해서 현시대의 가치와 문화,
그리고 상징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인간이 의존하는 제품들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휴대폰, TV, 그리고 컴퓨터일 것이다. 이 중에서 lib-eral(자유인에게 적합한) Thing은 무엇일까? 자동차는 어떠한가? 자동차는 인간을 위해서 인간이 만든 가장 인간적인 기계라고 말할 수 있다.
자동차는 한마디로 Liberal Art(기술)다. 따라서 자동차는 기계공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첫 번째 구매한 자동차에서 자유를 느끼며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자동차 안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자동차로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을 가기도 하며 자동차로 출근하는 경우 많은 것을 고민한다. 개인의 비전을 가다듬기도 하고, 퇴근할 때는 오롯한 개인의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끔은 자동차에게 말을 걸기도 하며, 자동차를 친구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 친구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때도 있다. 이처럼 사람과 자동차는 차주와 자동차를 넘어선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냉장고를 버릴 때와 자신의 애마를 폐차할 때 다른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브랜드가 Commodity(상품)을 넘어선 Identity(아이덴티티)로 규명되고 이것이 확장되어 일종의 Ideology(이념)를 위한 상징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브랜드 인문학에서 연구한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인종 뿐만 아니라 동물, 그리고 비생물과도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이 보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즉, 브랜드와 인간의 관계성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브랜드 인문학이다.
브랜드가 Commodity(상품)을 넘어선 Identity(아이덴티티)로 규명되고
이것이 확장되어 일종의 Ideology(이념)를 위한 상징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브랜드 인문학에서 연구한다.
친구는 지인 이상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는 대상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부부는 특별한 연인이며, 스승은 특별한 교사다. 같은 맥락에서 ‘특별한 자동차’는 무엇일까? 이것을 상상하며 만든 자동차는 어떤 자동차일까? 자동차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 시도가 바로 자동차 인문학이다.
“사장님, 우리는 왜 자동차를 만드나요?”
“우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족 여행을 통해 형성되는 가족애를 연구하고, 자동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특별해 지는 연인 관계를 고민하며,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차 안에서 고민하는 이슈들을 염려해 그 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특별함을 선사하기 위한 공간으로 자동차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동차의 카시트는 이런 소재로 만들어져야 하며 핸들은 이런 디자인이 되어야 합니다.”
유니타스브랜드의 Vol.1부터 Vol.23을 모두 소장한 독자가 있다면 지금 각 호별 주제를 다시금 살펴보길 바란다.
그 주제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인문학의 화두들의 오마주임을 눈치챌 것이다.
그간 유니타스브랜드는 인문학 관점으로 브랜드의 철학, 가치, 존재 이유, 방향성 등을 다루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고민의 주제들이 여전히 지금, 여기에 있다.
브랜드는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고민할 때 제대로 된 브랜딩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며 이는 곧 영속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유니타스브랜드 시즌Ⅰ,Ⅱ의 종합된 결론을, 또 인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브랜드를 인문학자들에게 묻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다. 소비자가 아닌 인간을 알기 위해 인문학자에게 브랜드의 방향을 물었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마치 소비심리학의 클래식 강좌쯤으로 오인하고 있는 경영자들을, 또 우리 스스로를 깨우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고민할 때
제대로 된 브랜딩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며 이는 곧 영속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브랜드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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