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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伴侶動物)과 반려(伴侶)브랜드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5.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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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愛玩動物)을 사람들이 반려동물(伴侶動物)이라고 불렀을 때 나는 처음 듣는 단어지만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했다. 어렸을 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다. 15년을 함께 살다가 애완견은 자신의 천수(天壽)를 다하고 죽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강아지 때부터 함께 컸던 개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지금까지도 충격으로 남아 있어서 개를 키우고 싶어도 반려동물과 사별(?)이 무서워 감히 키우지 못하고 있다. 만약 뭔가를 키워야 한다면 평균 수명 100년이 넘는 까마귀, 거북 혹은 고래를 키워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 반려브랜드를 선택하라면 나는 무엇을 고를까? 수많은 브랜드가 평균 수명 주기 3~10년을 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신생 브랜드보다는 이미 오십 해를 넘긴 브랜드를 고를 것 같다. 일단 50년이 넘었다면 최소 100년은 이어 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 그리고 단순히 기능으로 중무장한 갑각류 같은 기계류보다는 나의 감성으로 사귐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뭔가를 공유할 수 있는 포유류 같은 브랜드를 선택할 것 같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그리고 딱히 정의할 수 없지만 ‘인간적인’ 그런 ‘인간적인’ 브랜드를 택할 것 같다. 


‘인간적인’이라는 의미는 ‘브랜드’처럼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는데, 먼저 다른 상품과 달리 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이 있고, 일반 상품들이 보여 줄 수 없는 섬세한 면(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계속 알아 가는 그런 브랜드라고 생각된다.  


이런 반려브랜드와 평생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소속감으로 브랜드를 통해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은 즐거울 것 같다. 앞으로 소개될 몇 개의 브랜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뽑은 나의 반려브랜드들이다. 이들이 반려브랜드가 된 것은 특별할 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나에게 특별한 체험을 주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자신을 알아 가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적 반려브랜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추구하며, 그리고 어떤 것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깨닫게 하는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죽었을 때 유품 혹은 같이 묻을 브랜드를 택하라고 한다면 이 네 가지가 될 것 같다. 

 


반려브랜드와 평생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소속감으로 브랜드를 통해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은 즐거울 것 같다.
앞으로 소개될 몇 개의 브랜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뽑은 나의 반려브랜드들이다. 


 

 

캠퍼
Camper

 

사실 이 브랜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내가 고의적으로 이 브랜드에 관해서 아는 것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전문지 편집장 및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직업 때문에 눈에 띄는 브랜드를 보면 본능적으로 너무 빨리 알아 버리고, 좋아하고 그리고 싫어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일부러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브랜드는 아마도 6년 전 뉴욕 소호에서 처음 본 것으로 기억된다. 매장에서 신발을 보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특히 버켄스탁(Birkenstock)처럼 생긴 몇 개의 신발들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몇 분 동안 그 매장을 둘러보고 나온 뒤에는 이 브랜드에서 내가 신발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이 브랜드를 왜 사게 될까? 언제쯤 사게 될까? 그때 나는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을까? 이 브랜드는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해외 시장조사만 나가면 항상 캠퍼 매장에 들렀다. 드디어 이 브랜드를 사게 된 것은 2011년 10월 1일 파리 출장 때였다. 


갑작스럽게 비가 왔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아무 매장이나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데 들어온 매장이 바로 캠퍼 매장이었다. 매장 안에 있는 신발을 보다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신발을 집어서 내 발에 맞는 사이즈를 달라고 했다. 참고로 나의 발은 평발에 가깝기 때문에 언제나 나이키와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었다. 가져온 신발을 오른발과 왼발에 신고 일어섰을 때 그 기분을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신발을 처음 신어본 원시인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 것 같다. 편안함이다. 하지만 안락한 편안함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존중하는 그런 편안함이다.


그렇게 캠퍼와 나는 운명적으로 만났고 이것은 이제 나의 반려브랜드가 될 것 같다. 


라미(LAMY)

 

나에게는 몽블랑 제품이 4개 있다. 그중에는 Montblanc Edition Sir Henry Tate도 한 자루 있다. 하지만 손에 항상 들려 있는 펜은 4만 5,000원짜리 라미 만년필이다. 몽블랑이 좋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번 들고 나갔다가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서다. 그래서 4개의 몽블랑 만년필과 볼펜은 항상 책상 위에 꽂혀 있게 되었다. 


컴퓨터에서 (글을 쓸 때가 아니라) 칠 때는 내가 좋아하는 특정 서체가 있다. 왠지 이 서체가 나의 필체인 것 같아서 많이 이용하지만 글로 쓰면 이런 서체가 나오지 않는다. 필체에서 뭔가 독특한 느낌을 만들려면 볼펜이 아니라 만년필의 아날로그적 느낌이 필요하다. 


글을 손으로 쓸 때는 수많은 감각과 근육이 필요하다. 먼저 머리에 생각이 생겨 마음으로 넘어가고 그것이 팔 근육을 통해 손으로 전달되는데 이때 시간은 생각에 따라서 1초에서 하루까지 걸리는 것도 있다. 일단 그러고 나면 생각이 내 촉수가 되어 버린 만년필 촉에서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내듯 술술 풀려 나가는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지문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같은 필체를 가지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범인을 잡기 위한 여러 개의 검사 중 지문검사만큼 필체검사도 유용하게 쓰인다. 나만의 필체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4만 5,000원짜리 라미 사파리 만년필은 정확히 나를 이해하고 있다. 나 또한 이 만년필의 촉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거의 지문과 같은 나의 특이점을 만드는 라미는 나의 반려브랜드다.


애플
Apple  

 

7년 전부터 나는 꾸준히 애플 적금을 붓고 있다. 은행에 정기적금을 든 것이 아니고 책상 밑에 작은 돼지 저금통을 만들어 1년 동안 잔돈들을 부지런히 모으는 것이다. 간혹 의외의 수입이라도 생기면 무조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가득히 채워지면 그것을 깨서 1년 동안 눈독 들이던 애플 제품을 하나 사는 것으로 나만의 제사는 끝난다. 이렇게 저금통을 사용하는 이유는 순간적인 충동구매를 막기 위함이고, 나중에 금액을 모아서 원하던 제품을 살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반적인 애플 마니아들 같이 애플 제품에 관한 기능적 몰입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저 애플에 관한 제품들을 수집하고 서로 연결하고 나만이 즐길 수 있는 뭔가를 찾는 것뿐이다. 

 

내 나이 80세가 되어서 애플을 쓰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나의 일곱 살 아들과 아홉 살 딸을 찍은 사진이 무려 2TB가 넘는다. 아마 이 정도의 속도라면 사춘기로 인한 나와의 갈등 시기를 감안하고도 그들이 20세가 된다면 20TB가 넘는 사진과 동영상이 생길 것이다. 40년이 지나 그들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나에게 손주와 손녀가 생기면 나는 애플의 iMovie를 이용해서 내 아들과 딸의 다큐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애플의 모든 제품과 프로그램을 구매 중이다(참고로 이 정도의 이유만으로도 아내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미니쿠퍼
MINI Cooper

아직 소유하지 않았지만 이미 소유한 자동차다.
90kg의 거구인 내가 이 차를 타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차가 작아 보여요!”
“머리가 커 보여요!”

이 차에 대한 열정만 따지면 예전에 살 수도 있었지만 아내가 미니쿠퍼 안에 앉아 있는나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준 후부터는 사진으로만 보고 있는 중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놀리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안쓰러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딜러들은 잘 어울린다고 격려한다).

 

그래서 이 차를 타기 위해 미니쿠퍼 다이어트를 2년 동안 하고 있다. 자랑할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나의 의지를 보인다면, 미니 쿠퍼를 위해 1kg이나(?) 뺐다. 이 정도의 속도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이 차를 탈 수 있을 것 같다. 
자동차에 관해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구글에 들어가서 자동차와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치면 가족들이 자동차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냉장고 앞에서 혹은 평면 TV 앞에서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자동차와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이상한 전통이다. 

 

왜 그럴까? 자동차에게는 인간의 노마드 DNA를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를 말이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를 친구라고 생각한다. 미니쿠퍼는 나에게 무엇일까? 나는 이를 피터 팬 같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늙지 않는 네버랜드로 데려다 주는 그런 피터 팬과 같은 친구 말이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반려동물(伴侶動物)과 반려(伴侶)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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