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당하며 서로를 발가벗겨,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땐 그저 바둑인 거지’
더 글로리 / 문동은
바둑을 두지 못해서 ‘바둑’과 ‘그저 바둑’의 차이점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것 같다.
세사기일국世事棋一局이라는 말은 바둑을 좀 두는 사람들이 “세상사가 한판의 바둑과 같다”고 하는 말이다.
작은 격자무늬 나무판 위에서 벌어지는 백돌과 흑돌의 한판 승부에서 어떻게 인생을 읽을 수 있다는 걸까?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바둑을 둘 때 꼭 명심해야 할 10가지 비결인 ‘위기십결棋十訣 ’을 해석하면
바둑을 몰라도 여기서 인생사를 어떻게 배우게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위기십결圍棋十訣
부득탐승(不得貪勝) :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
입계의완(入界誼緩) : 서둘러 적진 깊숙이 들어가지 마라.
공피고아(攻彼顧我) : 스스로를 돌아본 뒤 상대를 공격하라.
기자쟁선(棄子爭先) :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先手 를 잡아라.
사소취대(捨小取大)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봉위수기(逢危須棄) : 위태로운 돌은 버리라.
신물경속(愼勿輕速) : 빠르고 경솔하게 두는 것을 삼가라.
동수상응(動須相應) : 행마는 반드시 주변 정세에 호응케 하라.
피강자보(彼强自保) : 상대가 강하면 스스로의 안전을 살피라.
세고취화(勢孤取和) : 세력이 약한 곳에서는 화평을 취하라.
나는 이것을 중장년 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고르라고 했다. 위기십결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했고, 이번 유니타스 라이프의 프로그램중에서 사칙연산(四則演算)안에 위기 십결을 적용하려고 했다.
대부분 비슷하고 다 맞는 것 같은데 딱히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바둑판에 검정 돌과 흰 돌이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서 선의 교차점에 빼곡히 올려져 있다. 바둑알이 특정 지역에 몰리지 않은 판국으로 보아서 이것은 고수들의 한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초록 돌과 붉은 돌이 등장한다면 이것은 어떤 바둑일까? 4명이 동시에 바둑을 둔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이길 수 있을까?
그동안 검정 돌만 상대하며 흰 돌이 줄곧 주도권을 가졌더라도 두 개의 또 다른 돌이 들어 온다면 이 바둑판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될 것이다. 엉뚱한데 돌을 놓는 붉은 돌, 그리고 은근히 검정 돌의 편이 된 듯한 초록 돌.
지금까지 우세했던 흰 돌은 과연 어떤 위기십결을 끌고 갈까?
지인 중에 위기십결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모두 바둑을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인들의 인생은 집을 만드는 바둑보다는 5개로 한 줄을 만드는 오목 五目(그들은 오목을 할 줄 알았다)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인생은 오목이라고 말하는 지인은 자신의 인생 집을 짓지 않고 선을 그리면서 살아왔다고 후회했다. 학력, 재력, 인맥 등. 자신들의 인생은 단기간 성과로 승부를 거는 오목 인생이었다. 그들은 인생이라는 자신의 바둑판에서 바둑을 두지 않고 대박 인생이라는 오목을 두었다. 중장년 지인들의 인생 간증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았다.
바둑과 인생의 가장 큰 공통점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인생과 바둑은 매 순간이 결정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까?]를 질문한다. 이 질문의 대답을 가장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위기십결처럼 묘하게 대답할 수도 있다. 가장 쉬운 버전은 이렇다.
[브랜드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의 총합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브랜드가 브랜드되는 브랜드 원칙과 법칙에 따라서 의사결정을 하면 된다..]
이번에는 어려운 대답이다.
[브랜드란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한다]
두 번째 대답이 어려운 것은 이것의 정의는 명품 브랜드가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라리와 샤넬 그리고 애플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아이덴티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기다움이고 이것으로 다른 제품과 차별화를 가져온다. 샤넬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럭셔리라는 고급스러움을 500만 가방으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500만 원짜리 가방도 1년이 지나면 사라지는 고급스러움이다.
이처럼 브랜드는 어떤 시장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브랜드를 바둑판에서 오목처럼 결정한다는 것이다. 빨리 목표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서, 빨리 시장 규모를 확보하기 위해서 5개만 연결한다. 오목에는 바둑 같은 위기십결이라는 원칙이 없는 것처럼, 브랜딩이 아닌 판촉에는 원칙은 없고 오로지 ‘가성비’라는 철칙만 있다. 인생의 의사결정을 오목처럼 하는 경우가 이런 것이다.
왜 이런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관한 철학은 없고 이런 말을 한다.
‘사장님 결정이야.’
‘경쟁사도 이렇게 하잖아’
‘돈이 정답이지’
이들에게는 인생 법칙보다는 성공전략만 있었다.
선택할 만한 대안이 많을 때 이것을 세어 보는 일을 바둑에서는 ‘수手를 읽는다’고 한다.
수를 읽기 위해서 바둑 기술을 익히고 고수들의 경기를 복기하거나 이론을 공부한다.
[더 글로리]에서 하동영(정성일)은 갈비집 박사장을 이긴 문동은(송혜교)이 두었던 바둑을 자신이 복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이미 승부가 낫는데 질질 끌었어. 왜지?”
(문동은 왜 그랬는지는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수학의 정석을 공부해서 학력고사 출신의 나의 지인들은 인생의 정석을 살지 않았다.
‘정석’은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 할 만한 바둑돌을 놓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바둑 입문자들은 이것부터 공부해야 한다. 어떤 것이든 미리 알고 있는 지식이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밑바탕에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수읽기도 가능하다. 정확한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더 멀리 보고 더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다. 바둑에는 수많은 격언과 금언이 있는데 ‘정석’ 부분에 대해 가르치는 격언은 딱 하나만 존재한다. 그것은 ‘정석 은 외운 다음 잊으라.’’다. 그 이유는 정석은 배운 뒤에 잊어야만 ‘고정관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석을 정답으로 생각해서 바둑 시합에서 정석대로 한다면 상대방은 모든 수를 알게 된다. 그래서 정석은 외우지만, 정석대로 하지는 않는다. 브랜드와 인생도 정석대로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인생의 정석을 어떻게 두어야 할까?
바둑에는 기풍이라는 말이 있다. 기풍에서는 기사의 성격과 철학이 나온다. 그래서 바둑을 두는 스타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풍을 바꾸는 것은 자신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둑 프로는 처음부터 개인이 어떤 철학을 가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둑에서도 남의 전략을 그대로 베껴 쓰거나 자신의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인생의 정석은 자기다움이다. 자신의 철학이 없으면 남의 인생(기보)을 보면서 따라 살아야 한다.
지인들은 인생을 자기다운 모험의 결정이 아니라 남들이 원했던 삶을 살았다.
그것은 [젊은 나이에 은퇴와 경제적 자유]라는 오목이었다. 바둑판에서 오목을 바둑처럼 둔 것이다.
인생 축구와 같다. 인생은 골프와 같다. 인생은 기업과 같다. 인생은 포커와 같다.
뭐 좀 하는 지인들에게 인생이 무엇과 같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자신이 즐기는 것과 비교해서 설명했다.
인생은 골프와 같다고 말한 지인 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떤 지인은 ‘인생과 골프는 힘을 빼야만 멀리 간다’고 했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기 때문에 바둑의 위기십결棋十訣 처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힘주어서 인생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어떻게 힘을 빼는지는 느낌이 왔지만, 골프에서 힘을 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떤 지인은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렇게 거들었다.
“인생과 골프의 핵심은 자기와의 경쟁이야.” 이 말도 처음에는 심오하게 들렸지만 웃겼다. 운동 경기인데 왜 자기와 싸울까? 힘을 빼는 인생을 말했던 지인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동의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었던 옆에 있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골프나 인생이나 지면 다 X 같지!” 나만 웃지 않고 모두들 웃었다.
왜냐하면 진짜 X(미지의)같은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제 중장년 인생에 인공지능이라는 빨간 바둑돌도 올라왔다. 자신의 전성기라는 바둑판이 아니라 갑자기 고령화라는 장기판으로 바꾸었다.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나 지인들은 여전히 바둑판에서 오목을 두려고 한다. 이것이 인생을 미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중장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미 자신의 바둑판에는 오목으로 둔 바둑알(남의 삶을 산 인생), 장기알(늙음) 그리고 체스 말(디지털 경쟁)까지 올라와 있다. 줄어드는 연금과 늘어나는 수급 일자만 바라볼 것인가?
유니타스라이프는 나이를 잊고 목적을 기억하는 것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기존의 바둑판은 버리는 것이 1단계이다.
이제 남이 준 목표를 보지 말고 자신의 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유니타스 라이프이다.
난 바둑을 빨리 배웠어, 연진아.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
더 글로리 / 문동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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