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D형의 장례식장에 갔다. 형은 나보다 2살 많았다.
친구 D의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들어가서 특전사 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태권도로 하사 시절부터 특공무술 교관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친구 D의 형은 휴가를 나오면 친구와 나에게 집 옥상으로 모이게 하고 특공무술을 비롯하여 각종 호신술을 가르쳐 주었다.
친구 D의 형은 중사 때 일등상사와 진급 문제로 심하게 다투고 전역을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실내 골프장 사장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일을 했다.
특공 무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사람들과 주먹으로 다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마지막 직업은 오토바이 배달 기사였다.
형은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병명은 간암이었지만 심장 쇼크로 죽었다.
형은 죽기 3개월 전에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산으로 올라가서 텐트를 치고 살았다.
마지막 여생을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의 치료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와 함께 형의 텐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3개월 시한부 환자의 텐트처럼 소박하지는 않았다.
텐트 안에는 일반인의 살림살이처럼 수많은 물건을 빼곡히 쌓여 있었다. 발전기로 사용하는 TV도 있었다.
내부 생활만 본다면 10년 차 고시생의 원룸 살림살이처럼 집기들 위에 집기로 바글바글했다.
안주로 보이는 육포와 황태구이 포장지가 반쯤 열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형은 텐트에서 5개월짜리 어린 수컷 백구 진돗개와 같이 살았다.
진돗개는 나를 보자마자 배를 보여주면서 누웠는데 그 배는 모기에게 물린 빨간 상처 자국이 가득했다.
형은 가끔 멧돼지가 텐트 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쫓기 위해서 어린 진돗개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진돗개는 12개월이 되어야 성체가 되는데 생후 3개월 강아지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형은 아마도 자신이 1년 넘게 살거나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진돗개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아직 이름이 없다고 했다. 형은 그냥 ‘야 인마’로 부른다고 했다.
형이 텐트를 치고 있는 산이 태백산맥太白山脈라인에 있는 산이었다.
태백산 太白山의 한 자 의미가 거대한 하얀 산이기에 나는 백구 진돗개 이름으로 ‘태백’이라고 제안했다.
태백산맥이 형의 건강을 지켜주고, 태백이가 멧돼지로부터 형을 지켜줄 것이라는 예언자적 축복도 해주었다.
그때 형이 해맑게 웃는 얼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래, 백구니깐 태백이네. 이 자식 발을 좀 봐. 엄청나게 클 것 같지.”
형은 쌓여 있는 생수통 위에 있는 육포 봉지를 가져왔다. 그 안에 육포를 꺼내어 태백 이에게 던져 주었다.
태백이는 떨어진 육포를 흙과 함께 흡입했다.
형의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태백이가 궁금했다.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저 멀리 다른 테이블에서 어른들과 이야기하고 있어서 부르지 못했다. 나와 함께 있는 친구들은 형은 잘 모르지만, 친구 형이 죽었다고 했기에 모였다.
형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모두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만 했다.
그러다가 형이 태백산 근처에 텐트를 치고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친구 A가 했다.
나보다 먼저 온 친구 A가 친구 형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 D가 아침에 형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서 119에 신고했다.
형은 텐트 안에서 죽지 않았고 차를 파킹하고 텐트로 올라가는 비탈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태백이는 어떻게 되었어?” 나는 이야기를 끊고 말해주는 친구 A에게 물었다.
“태백이가 누구야?” 친구 A는 의아해했다.
“아, 형이 기르던 강아지, 못 들었어?”
“거기 개가 있었어?”
나는 태백이와 형의 텐트 생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중간에 대충 마무리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너희들은 그런데 어떻게 죽고 싶어? 형처럼 연명치료를 거부할 거야?”
“그게 내가 정한다고 되냐?” 내 앞에 있는 친구 B가 말했다.
“사고사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죽어가고 있다면 선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다시 물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4개월 동안 있었는데 어머니가 계속 연명치료를 요구하셔서… 그게 원한다고 깨끗하게 끝나는 게 아냐.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 ” 다른 친구 C가 말했다.
친구 A가 이렇게 말했다.
“유산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정말 고차방정식 집안싸움으로 번져. 우리 큰아버지 집이 연명치료 문제로 집안이 완전히 박살 났어.”
나는 친구 A의 이야기를 더 듣고자 이유를 묻고 싶었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나는 장기 기증 약속했어” 말했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서 ‘장기기증 희망 등록증’을 보여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친구는 자신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유서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결심은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연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이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50대 내 친구 중에서 이미 암으로 죽었거나 뇌출혈로 쓰러져서 재활병원에 다니고 있다. 발가락에 미세 골절로 인해서 걷지 못하다가 결국에 인대가 약해져서 넘어져 골반이 골절된 친구도 있다.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다가 갑자기 의식이 끊겨 그대로 넘어져서 쇄골과 갈비뼈가 으스러진 친구도 있다. 나도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한 달 전에 물린 모기 자국이 여전히 남아있거나 발등에 난 상처가 2개월째 아물지 않고 있다. 노화가 되면 면역이 약해져서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 40대 중년까지는 모르겠지만 50대 장년이 된 이후에 신체적 회복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나는 매일 운동을 하지만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죽기 위해서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잘 죽기 위한 프로젝트 중의 하나다. 나의 남은 인생 계획은 더 이상 잘살기 위한 노년 계획이 아니라 잘 죽기 위한 사망 계획이다. 사망계획을 준비한다고 우울하거나 염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늘, 지금, 여기가 소중하고 충실해진다. 쓸데없는 것이 마음이 쓰지 않고 삶이 심플해진다. 심플하다는 것은 단순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심플 라이프는 초점이 잡혀서 하루하루를 목적에 집중한 삶이다. 그래서 나는 제철 과일(50대 나이에 맞는 결과)을 맺기 위해 하루를 산다.
50대에 맞는 제철 과일을 맺는 것은 노후 안전을 위한 부의 축적이 아니다. 생물학적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인생에서 경험한 것을 남이 나를 누릴 수 있는 콘텐츠(과일)가 변화한다.
그래서 나의 중년 나의 프로젝트는 다음 세대를 더 풍요롭게 하는 씨앗이 된다.
지금 나에게 50대는 제철 과일(인생 목적의 결과물)을 만드는 기간이다.
개인마다 업무마다 그리고 시대 환경마다 다르겠지만 계절로 인생을 구분한다면 봄은 30대 나무이다.
40대는 인생의 꽃을 피운다. 50대는 열매를 맺고, 60대 이후부터는 씨앗이 되어 다시 땅으로 들어가는 시기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책을 읽었고, 강의를 들었으며, 인터뷰했고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선배의 인생 지식 콘텐츠 열매를 먹었다.
내 생각과 개념들은 내가 먹은 그들의 열매 안에 씨앗으로 배설된 것이 나의 인생 정원을 이루고 있다.
내 몸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DNA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시작해천 수 천만 명의 사람의 DNA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총합체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삶을 본다면 사회와 공생했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가족을 부양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명과 삶을 유지하기 위한 윈윈 방법이다. 하지만 오늘 지금 나의 삶이 다음 세대와도 공생일까?
다음 세대의 자원을 빌려 쓰면서 그들에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면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공기만 오염시키고 사라지는 것이다.
시신 한 구를 화장할 때마다 16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매장할 때는 39kg이 배출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가을과 같은 나의 50대에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씨가 있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의 열매는 문자화된 지식 때문에 Youtube, 브런치, 웹사이트 등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을 융합하는 중이다. 모두가 나와 같은 제철 과일을 맺을 수 없다. 사람마다 자기다움에 따라서 제철 열매는 다르다.
다른 파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내가 열매 맺는 중장년에 대해서 온몸으로 알게 된 간증이 있다. 나는 30대 후반에 병원에서 루푸스라는 오진을 받았다. 이 병 탓에 죽음에 대해서 두 달 넘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이런 유사 임사 체험(臨死體驗, 영어: near-death experience, NDE)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자기 다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 죽었던 경험을 한 사람들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 노벨상을 만들었던 다이너마이트 발명가 노벨은 자기 형이 죽었는데 오보로 "죽음의 상인, 노벨 사망”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신문에 실렸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확인한 후에 그는 다른 삶을 살았다. 도스토옙스키 황제의 처형 쇼 탓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았다. 그는 처형 직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만약 산다면 나의 삶은 끊임없는, 영원처럼 느껴지며 1분이 백 년과 같으리라,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인생의 단 1초를 소홀히 하지 않을 텐데”
루푸스 오진으로 두 달 동안 생각한 죽음으로 나는 다른 삶을 살게 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죽음이란 언젠가는 올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나의 죽음의 목표는 늙어서 노화로 죽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로 남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죽음으로 내가 태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죽음에 관해서 생각한 것은 30대 후반이었지만 노화에 관해서는 50세부터 시작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했지만 그렇게 죽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중장년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영원할 것인가를 준비했다. 내가 직업으로 가졌던 브랜드 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기업은 지속 가능성이 꿈이라면, 브랜드는 영속 가능한 특이점이 있다.’ 브랜드를 가진 기업을 언제든지 망할 수 있지만 브랜드는 영속가능하다. 누구나 한 켤레 정도는 가지고 있는 컨버스 신발은 1908년도에 론칭했고, 지금까지 주인이 3번 바뀌었다. 기업은 망하고 사라졌지만, 브랜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명품 그룹이라고 하는 LVMH에서는 기업의 주인이 바뀐 수십 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브랜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건물을 짓거나 무덤을 크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남기는 방법으로 브랜드로 정했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지속가능성과 영속 가능성의 특성을 활용하여 브랜드 안에 내가 받았고 누렸던 모든 것을 담기로 했다. 내가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니다. 이름이 아니라 브랜드가 되어서 모두가 누리게 하는 것이다. 지금 theunitas.net에서 쓰고 있는 이 글이 바로 씨앗을 품은 열매가 되는 작업이다.
물론 이름을 브랜드로 만들어서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신발장에 있는 컨버스 Converse는 창업자 마퀴스 밀스 컨버스(Marquis Mills Converse, 1861~1931)의 이름에서 나왔고 루이뷔통 브랜드도 창업자 루이뷔통(Louis Vuitton, 1821~1892년)의 이름이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들은 100여 년 전에 죽었지만 그들의 이름과 철학은 브랜드가 되어 수천만 명의 직업과 생계에 도움을 주었다. 이름과 상품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향한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이 브랜드가 되어 한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을 연합하게 만드는 브랜드도 있다. 파타고니아와 러쉬가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빌려 쓰는 지구를 더 좋은 지구로 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처럼 브랜드의 영속 가능한 특이점을 개인의 나이 듦과 나듦으로 연결하여 활용하면 씨앗이 있는 과일을 나이 들면서 맺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aging 브랜드가 되는 것 branding이 이 글의 주제이며 결론이다.
고령화는 인류 역사가 처음 겪는 문제로서 막을 수 없는 미래의 재앙인데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고 주장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들어보면 실제적인 대안은 없다. 관련 동영상을 볼수록 짜증만 난다. 전문가의 허무한 대안에 화도 났지만,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서로서로 속이기 위해라는 개념을 비즈니스 툴로 만들어 중장년과 노년을 퍽치기로 넘어뜨려 돈을 갈취한다. 더 나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만 보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인간을 속이는 어그로(aggro / aggravation) 일뿐이다. 결국에 자신들에게 돈을 내면 잘 관리해서 돈 걱정 없는 삶을 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 사람을 돈으로 연명하게 만든다. 무서운 것은 이런 것들은 중장년이 10년 안에 맞게 하는 노년을 ‘연금 연명’ 외에는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만든다. 결국 중장년은 ‘나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관한 판단력을 망각하게 만드는 자기다움 치매(癡 어리석을 어리석을)에 걸리게 된다. 마지막 인생을 돈에 연명하여 어리석게 늙게 한다.
[노화, 나이 듦, 고령화]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단어를 보았다. [목적]이다. 내가 평생을 연구했던 브랜드 분야의 핵심 키워드가 [목적]인데, 중장년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단어가 [목적]이라니 … 사람들이 죽을 때 제일 많이 후회하는 것이 [목적 없이, 목적을 찾지 않고, 목적과 맞는 삶을 살지 않았다]라고 한다. 이런 증상이 자기다움의 치매다.
노인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이. 술·담배를 끊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하고, 뇌 활동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계속 배우고, 사회관계 및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모든 것들을 중장년 때부터 실행하면 되는데 왜 하지 않을까? 왜 못할까? 그렇게 하지 않는 수많은 이유가 개인마다 있을 수 있다. 비록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의 장년 친구들과 지인들이지만 그들이 이렇게 쉬운 치매 방지를 않는 이유는 목적의식과 공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술·담배를 끊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이유,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는 이유, 계속 머리를 쓰면서 창조성을 놓지 않는 이유 그리고 사회 관계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노화로 인해서 쉬고 싶은 마음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질병으로서 치매가 아니라 말 문자 의미 그대로 치매(癡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어리석음이다.
의학 및 기술 발달로 생명 연장이라는 말이 생겼지만, 현실은 고통스러운 노화 연명일 뿐이다. 힘들게 살아온 50년만큼 나이 듦으로 인한 수많은 위기를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하고 영속가능한 브랜드의 삶으로써 언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앞으로 이야기할 주제가 이것이다.
브랜드는 만들 때부터 목적에 따라서 상품 commodity와 정체성 Identity의 정해진다. 쓰다 버릴 것과 자신을 표현할 상징으로 구분된다는 뜻이다. 이 구분의 시작은 창업자(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가 상품의 목적을 돈인가? 아니면 가치인가를 정하면서 일어나는 선택이다.
브랜드의 최종 모습이 쓰레기라면 쓰레기를 만든 것이다. 2023년 1월 2일까지 나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자연 생태계와 하나 된 브랜드를 연구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이 듦이 고령과 노화가 아니라 브랜드 관점으로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가 ‘나듦’이다. 나이 듦에서 [이]가 빠진 것이 아니라 ‘내가 목적으로 물들다.’ 또는 내가 드러나더라는 의미로 ‘나듦’을 정했다. 그러니까 나듦은 Branding이다. 사람의 노화 aging을 브랜드의 branding 개념으로 바꾸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브랜딩 branding이라는 단어는 2010년까지는 없었던 단어다. 브랜드도 디자인실에서 관리하는 심벌과 로고 그리고 컬러 관리를 브랜드 관리였다. 일종에 디자인과 이미지 영역이다. 하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경쟁력이 되면서 경쟁을 통한 마케팅 Marketing과 다른 개념이 필요했다. 브랜딩은 애플과 함께 나온 신조어였다. 마케팅은 기업이 매출을 목표로 진행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브랜딩은 기업이 브랜드의 자기다움과 남과 다름을 구축하기 위한 행위이다.
나는 인간의 aging을 노화가 아니라 어른이 되는 branding이라는 프로세스로 소개할 예정이다. 여기서 제철 과일의 개념을 생각했다. aging을 ‘죽어가는, 노화되는’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내가 되는’ becoming의 의미로 사용하고 싶었다. 브랜드로 비유한다면 commodity에서 identity로 identity에서 ideology로 구축되는 것을 말한다.
친구 D가 소주병을 가지고 친구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왔다. 나는 친구 D에게 백구 태백이를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다행히 태백이는 다른 친척이 키우려고 데리고 갔다. 친구의 형은 자신이 자연치료받아서 회복 중이라고 믿었다. 친구 형은 산에서 생활 4개월 동안은 무엇을 했을까? 회복된 새로운 삶을 준비했을까?
친구 D가 친구들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런데 친구 C가 술을 안 먹는다고 했다. 친구 C는 술을 많이 먹는 것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한 주당이었기 때문이다. 친구D가 친구 C에서 자기 형처럼 간이 안 좋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나, 장기 기증했어. 그래서 지금은 깨끗하게 잘 관리하면서 사용 중이거든.” 친구 C가 어색하게 말했고, 듣는 우리도 당황스러웠다. 누가 보아도 준비했던 멘트이거나 누가 알려준 대본이었다.
나는 장기기증으로 자기 연명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 연장으로 삶을 바꾼 친구의 동기가 궁금했다. 나는 친구에게 장기 기증의 이유를 이렇게 물었다.
“장기기증을 한 이유가 뭐야? 너도 장기 기증을 받았어?”
친구 C가 마치 길거리에서 종교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처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웃으면서 윗옷에 있는 자기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기증 카드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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