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기업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직원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면, 그 기업은 이미 심각한 상황에 들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고객이 “기본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돌아가자는 말은 기본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목적을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대개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거나 여러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무엇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 발생한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 보고도 해결되지 않으니, 결국 마지막 해법으로 기본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할 정도라면,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에 들어섰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기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다. 그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사회적 기업에서도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은 어떤 상황일까.
일반 기업에서 기본은 대개 고객 중심이다. 처음에는 고객 만족에서 출발하지만, 기업이 성장할수록 고객 만족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해 경영하게 되는 순간 기본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반면 사회적 기업의 기본은 고객 만족보다 설립 목적에 가깝다. 사회적 기업의 목적은 고객의 개별 욕구보다 시민과 사회문제 해결에 있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에서는 사회문제와 기업 운영의 문제가 서로 충돌하고, 그 충돌이 이해관계자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기본이 흔들리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것을 이해당사자 충돌, 혹은 이해충돌이라고 부른다.
이해당사자는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인해 이익과 손해에 직접 연결된 사람을 뜻한다. 만약 사회적 기업의 회의에서 ‘이해당사자’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면, 그때는 이미 누군가가 법적 대응까지 준비할 정도로 상황이 깊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해충돌이 심해지면 사회적 기업은 사회문제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조직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이때 “기본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친다고 해도, 사회문제 해결의 기본과 기업 운영의 기본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이 기본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은 왜 생기는가.
이해충돌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백 가지도 넘게 나올 수 있다.
가장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열정과 문제의식은 있지만 그것을 풀어낼 전문지식이 부족하기도 하다. 구성원 사이에도 이해와 지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두고도 서로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된다. 기업과 경영에 대한 기본 지식, 즉 조직 운영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경우도 매우 많다. 리더가 배우려 하기보다 경영을 다른 구성원이나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려는 태도 역시 자주 나타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적 기업을 하려면 반드시 경영의 기본 지식을 배워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대응할 지식이 없으면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개입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해, 몫, 본전 같은 갈등의 언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갈등의 원인을 깊이 파고들면 결국 돈의 문제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기업은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컨설팅을 의뢰하고, 벤치마킹 사례를 찾고, 다양한 지식을 적용하며 문제를 분석한다. 그렇게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 기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객에게 묻고 듣게 된다. 일반 기업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결론은 대개 제품으로 귀결된다. 고객 만족을 위한 제품으로 다시 고객 만족을 회복하자는 방식이다.
앞서 말했듯 일반 기업에서의 브랜드는 제품이 비제품이 되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티파니 반지가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니라 사랑의 고백이 되는 것처럼, 제품이 물성을 넘어 의미를 갖게 될 때 브랜드가 된다.
그런데 소셜 브랜드는 제품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비제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브랜드 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의 멋진 브랜드가 쓰레기가 되면 결국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도 어설픈 제품을 만들면 결국 사회문제를 브랜드 쓰레기로 바꾸는 셈이 된다.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은 일반 기업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동일한 기본이다. 제품의 품질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브랜드를 공부하는 일 역시 기본이다. 비제품을 다루는 사회적 기업에게 브랜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회적 기업은 브랜드 관점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브랜드 경영의 관점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브랜드에 관한 책은 1994년 데이비드 아커 교수가 쓴 『브랜드 자산의 전략적 관리』를 출발점으로, 지금은 2,800권에 가까운 책이 존재한다. 사회적 기업에 관한 책도 약 170권 정도 있다. 그런데 사회적 브랜드에 관한 책은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사회적 기업과 브랜드를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기업과 브랜드에 관한 책은 몇 권이나 읽어야 하는가. 물론 글을 잘 쓰기 위해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곧바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와 경영에 관한 책을 몇 권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기본이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설프게 읽고 배운 지식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업과 브랜드에 관한 공부에는 끝이 없다. 기업과 브랜드를 하지 않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이제 일반 기업이 만드는 영리 브랜드와 달리, 사회적 기업이 만드는 사회적 브랜드의 기본과 근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본이라는 말의 영어 Basis는 근거, 이유, 기준, 기반, 기초를 뜻한다.
근본이라는 말은 根本, 곧 root이며 fundamental이다. 처음부터, 애당초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브랜드의 기본과 근본을 다시 생각해 보자.
사회적 브랜드, 곧 소셜 브랜드가 되기 위해 무엇을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 말로 하면 디폴트, 곧 기본 설정값이다. 이 부분은 더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의 제품은 기본일 수는 있어도 근본은 아니다.
소셜 브랜드가 정말 소셜 브랜드가 되려면 이름값을 해야 한다. 소셜 브랜드답게 제품을 만들고, 광고를 만들고, 가격을 정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는 소셜 브랜드에 대해 일반 브랜드와는 다른 기대를 갖는다. 어떤 사람은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더 낮은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제품이 세상에 나왔다면 결국 제품으로 판단받는다. 제품 그 자체가 사회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셜 브랜드는 소셜 브랜드답게 만들어지고, 론칭되고, 경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근본이다. 근본은 존재 이유와 의미다. 사회적 브랜드는 영리 기업의 브랜드와 태생부터 다르다. 근본부터 다르게 시작해야 한다.
그 이유는 브랜드 앞에 붙은 ‘소셜’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같은 상품이라도 재료와 생산 과정, 판매 방식, 판매 이후의 애프터서비스까지 달라진다. 소셜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일반 브랜드와 다르게 설계되어야 한다. 제품과 생산 과정에서 가치와 철학을 말해야 하고, 그것을 실제로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소셜이라는 단어가 주는 근본과 특별함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정의와 개념을 확인하려면 단어의 어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 기업에서 자주 쓰는 타깃, 포지셔닝, 전략 같은 단어는 모두 군사용어에서 왔다. 군사용어에서 왔다는 것은 그 단어가 실제로 사용하는 상황과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왜 우리의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을 타깃이라고 부르는가. 단어의 정의를 다시 묻는 것 자체가 기본이다.
소셜 브랜드의 ‘소셜’은 디지털 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신조어가 아니다. 그 어원은 훨씬 오래되었고, 동맹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 브랜드는 동맹 브랜드다. 다시 말해 브랜드를 매개로 동맹을 맺은 사람들의 관계다.
동맹의 기준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혈맹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일반 기업의 브랜드 가운데도 구매를 통해 브랜드와 강한 동맹 관계를 형성하는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할리 데이비드슨이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자사의 모터사이클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At Harley-Davidson, the purchase of a motorcycle is the beginning of the relationship, not the end.”
할리 데이비드슨에게 구매는 관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것이 동맹 관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할리 데이비드슨이 자사 제품을 구매한 사람을 타깃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Harley Owners, 곧 할리의 소유자이자 주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고객인가. 유권자인가. 동지인가. 부족인가. 크루인가. 회원인가.
사회적 기업의 근본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회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부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근본의 출발점이다.
그들과 브랜드 구매 이후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 것인가.
그들이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자원봉사자가 되었을 때는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가.
이름에 따라 관계가 형성된다. 동맹의 관계에서는 흔히 동지라는 표현을 쓴다. 사회적 브랜드의 시작은 사회적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람을 누구라고 부를 것인지, 그들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그들에게 어떤 협력과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아이돌 팬덤 역시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아이돌 가수의 팬들은 단순히 팬클럽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팬클럽은 자신들만의 이름과 호칭을 가진다. BTS의 팬클럽 이름은 A.R.M.Y다. 문자 그대로는 군대라는 뜻이지만, 원래 의미는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 곧 청춘을 위한 사랑스러운 대변인이라는 뜻이다. BTS는 팬 미팅을 Muster라고 부른다. muster는 군대를 소집한다는 뜻이다. A.R.M.Y를 모은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처럼 상대를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관계가 설정된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가 아니라 동맹군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동맹의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셜의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되어야 진짜 동맹이 될 수 있는가.
나는 BTS의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BTS는 데뷔하기 전부터 팬들과 관계를 만들었고, A.R.M.Y는 BTS가 데뷔한 이후 정식으로 발족했다. 아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데뷔한 BTS의 팬덤이 아니라 BTS와 함께 데뷔한 원 팀에 가깝다.
소셜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소셜 브랜드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기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면 그 관계는 사용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우리’가 된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을 만들고 나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를 먼저 만들고, 그 브랜드를 바탕으로 기업을 세워 가는 것이다. 기업 역시 소셜하게, 곧 동맹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품도 없는데 어떻게 기업보다 먼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 사회적 브랜드의 제품은 이미 비제품으로 존재한다. 사회적 문제가 곧 제품이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 아이디어가 곧 브랜드다. 다시 말해 제품을 만들기 전에 브랜드인 비제품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브랜드 네이밍이다. 사회적 기업에서 브랜드 네이밍을 제품이 거의 완성될 때까지 미루거나, 급하게 정하거나, 대행사나 저렴한 프리랜서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근본이 서지 않은 것이다. 브랜드 네이밍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브랜드 스토리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와 사진 역시 브랜드의 비제품 요소에 해당한다.
브랜드는 한 번 만들어지면 고치기 어렵고, 바꾸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든다. 나는 러쉬라는 브랜드 이름을 소비자가 제안했고, 그것을 실제로 채택해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그 스토리 자체가 이미 소셜 브랜드임을 입증한다.
여기까지를 잠시 정리하면 이렇다.
사회적 기업은 소셜의 근본에서 출발해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그 사람들과 어떤 감정을 공유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근본이다.
기업을 세우기 전에 브랜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것도 근본이다.
이 과정에서 네이밍을 비롯해 사회적 기업이 될 조직의 이슈를 지지자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들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동맹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목적을 공유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부담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과정을 공유하는 것은 곧 동참하는 것이고, 동참을 통해 동맹의 관계가 형성된다.
사회적 기업을 세우기 전에 사회적 브랜드의 비제품을 먼저 론칭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기업 자체를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동맹의 완전체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사회적 기업의 근본이다.
제품을 만들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들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Living the Brand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브랜드로 시작해야 한다.
좋은 제품은 기본이다.
좋은 관계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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