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알기 위해 “어떤 일을 하세요?”라고 질문한다.
그런데 언젠가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물어보는 첫 번째 질문은 ‘직업’이다.
직업은 자신의 아이덴티티(자기다움)를 상징하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은퇴했더라도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예전 직업을 물어본다.
지금은 직업이 없지만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떤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할까?
최종 직업이 자신이 원한 직업이 아니고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직업이라면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
50대 이후부터는 이런 대답의 고민을 할 때가 올 것이다.
타인이 질문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질문해 보자.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나는 누구일까?
과거 직업이라는 액자에 갇혀있는 나는 누구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답할 수 없는 이런 질문들이 계속 자기 안에서 올라올 것이다.
50대 이후에 삶은 이 질문의 대답을 만들 수 있다(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계속 말하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더 이상 ‘목적을 찾아라.’ ‘가치를 발견해라’ ‘자기다움을 구축하라’ 식의 자기 희망 고문으로 쥐어짜지 말자.
교육 수강생들이 가져온 목적, 가치 그리고 자기다움의 휠을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더 황당하고 비참한 것은 며칠 지나서 자신이 썼던 것을 발표하라고 하면 기억도 못 한다.
그래서 자기다움 교육에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쓴다.
100명의 수강생이 모두 다르다. 사는 것은 비슷하게 살려고 하지만 죽는 것은 자기답게 죽고 싶어 한다.
뒷부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교육 프로그램 중에 있다. 당신이 죽고 1000년 전이 지나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묻은 부장품을 발견했다고 치자.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까? 교육 시간에는 백팩에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을 직접 가져온다. 그러면 수강생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의 가방을 가져와서 수강생 팀원들은 회의한다.
성별부터 시작해서 가치관까지 추론한다. 가설의 근거는 각자 개인 경험과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신비성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남에게 알려주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통해서 타인을 판단하는 내가 어떤 선입견과 가치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지를 확인하는 교육이다.
물론 내가 나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는 물건이 타인에게는 어떤 렌즈가 되어 나를 평가하는지를 알아보는 교육 효과도 있다.
이 교육 과정은 오리엔테이션 교육이다. 진짜 핵심은 물건이 아니라 글로 내가 누구인지를 써보는 회고록이다.
이 부분은 뒤 파트에서 다루겠다.
남이 만든 직업, 그러니까 기업이 만든 기능의 역할로 자신을 표현하지 말고 다시 대답해 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직업으로 말하지 말고 동사로 말해보자.
당신이 동사로 말한 그 사람은 무엇을 하다가 죽을까? 그리고 무엇을 남겼을까?
만약에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지금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좋은 브랜드로 좋은 생태계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의한 것은 첫 번째이기 때문에 여러 번 수정을 거쳐 다시 수정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이라고 한정했다.
하지만 2001년부터 컨설턴트, 출판사 대표, 잡지 편집장, 브랜드 클래스 운영자로 역할은 바뀌었지만 언제나 이 주제를 가지고 살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고, 교육하고 캠페인을 할 것이다 [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죽은 후의 미래 사람들은 이 글을 보면서 나를 어떤 인간으로 분류할까? 물론 분류당하는(?) 이 목적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남겼느냐가 목적이다.
질문을 다시 해보자. “내가 죽었지만, 남긴 것은 후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비슷한 질문이지만,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이유로, 무엇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어떤 미래를 소망하며 이것을 남겼을까?
그 남긴 것은 제대로 작동이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이 듦에서 나듦’이란 이런 질문에 답이 아니라 행동하는 삶이다.
나는 1993년 12월부터 브랜드에 관해서 일을 했다. 30년 넘게 브랜드 분야에서 일하면서 나는 ‘브랜드란 무엇인가?’ 스스로 물었다. 이 질문은 멋있어 보이기 위한 자기 최면이 아니다. 이 질문은 수십 년 동안 했던 이유는 브랜드에 관한 정의는 브랜드 책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그 어떤 브랜드 책도 동일한 브랜드 정의를 사용하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 보시길)
무엇보다도 브랜드 지식은 수학처럼 쌓이는 지식이 아니다.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나타나서 기존의 브랜드 지식을 파괴한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가 또 나타나서 기존 브랜드 지식을 무너트린다. 쌓이면 무너지고, 세우면 파괴하는 것은 브랜드 지식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시장을 만들고 브랜드 지식을 쌓았지만, 어느 날 애플 스마트 폰이 나타나서 이 모든 것을 리셋시켰다. 그래서 브랜드 관련 책을 보면 성공 사례는 있지만 절대 법칙은 없다.
우리는 브랜드라고 다 같은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애플과 티파니 그리고 나이키라는 브랜드는 완전히 속성이 다른 브랜드다. 마치 침팬지와 사람 유전자가 1.2%만 다르지만, 완전히 다른 것과 같다. 애플 브랜드 지식으로 티파니를 운영할 수 없고, 나이키를 티파니처럼 운영할 수 없다. 브랜드는 모두 각자의 브랜드에 맞는 브랜드 경영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유아부터 노년까지 여러 단계가 있는 것처럼 브랜드도 상표부터 시작해서 브랜드까지 다양한 단계가 있다. 단계별로 완전히 다른 브랜드다.
‘지금 시점에서’ 브랜드에 관한 나의 정의는 ‘브랜드란 자기다움을 남과 다름’이다. 자동차 회사에서 페라리와 비슷한 것을 만들면 페라리 짝퉁을 만든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그 스타일은 디자인 형태를 넘어 가치로도 바뀐다. 이렇게 심오하고 재미있는 브랜드가 나의 소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해변에서 반짝인다고 모두 다이아몬드가 아닌 것처럼, 브랜드는 나의 소명 안에서 빛나는 의미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30년 넘게 ‘브랜드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라는 비전과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이다’라는 의미로 브랜드를 연구했다. 브랜드 잡지, 브랜드 제품, 브랜드 교육, 브랜드 컨설팅, 브랜드 골목 대학까지 브랜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 브랜드 분야에 살다가 2016년부터 내가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나의 질문이 멈추었을 때, 나에게 브랜드가 소명의 의미가 아니라 연명의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즐거워하고 잘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확신했던 이유는 내가 의미를 둔 것에 대해서 나도 좋아했고 세상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사소한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가진 소명은 너무나 선명했기에 이것 외에 내 마음에 자극을 주는 모든 빛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몇 년 동안 브랜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멈추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브랜드 실체를 마주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마치 연쇄살인 범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가 숨임 때문에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 사고이며, 연쇄살인 범인이 아니라 조현병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고 변호하는 것처럼 브랜드를 옹호했었다.
‘그래서 브랜드는 무엇인가?’
브랜드는 대량생산, 대량 소비 그리고 대량 파괴를 주도하는 자본주의의 수단과 도구로 사용됐다. 브랜드 자체가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브랜드가 기업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극소수의 브랜드가 다르게 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고 탐욕스러운 경쟁자를 만들고 시장을 창조한다. 극소수의 브랜드도 원하지는 않았지만, 뜻대로 할 수 없는 ‘대량 파괴’를 자행했다.
(이 자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에코 시스템 브랜드]의 내용을 참조)
'에코시스템브랜드' 카테고리의 글 목록
UnitasBRAND Season2 : Sustainable Ecosystem
www.theunitas.net
나는 2016년 8월 1일 [휴먼 브랜드 A와 브랜드 내재화 B]를 마지막 특집을 마지막으로 5년 동안 브랜드에 관한 그 어떤 글도 쓰지 않고 강의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사람은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 많다. 나도 예전에 내가 알고 있는 브랜드를 잃은 후에 내가 몰랐던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 만드는 브랜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 먼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휴먼 브랜드]를 연구했고 브랜드 지식을 통해서 나이 듦의 노화가 아니라 브랜딩의 변화로 바꿀 수 있는 접점도 발견했다.
‘내 인생에서 브랜드가 없다면 나는 무엇일까?'
그동안은 브랜드 지식에 초점을 맞춘 회고록을 썼지만 50세에 다시 쓰는 회고록은 브랜드 중력을 벗어나 나에게 계속 반복적인 무의미한 것들을 의미 있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일상에서 누리는 평범함과 별 볼 일 없는 일들에서 발견한 의미는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감사로 발견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내가 무시했던 것, 내가 의도적으로 피했던 나의 약점,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 모두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나의 모든 것들을 나로서 인정하면서 브랜드라는 조명을 끄고 내 안에 소명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2016년에 합병된 회사에서 54세에 퇴사했다. 30년 동안 내가 해왔던 브랜드 업무에 브랜드 조명이 꺼졌다. 조직에서 브랜드 활동이 더 이상 on air가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다시 바꾸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유니타스브랜드는 2007년에 발행한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 이름이다. unitas는 united의 어원으로 연합, 통합이라는 뜻이다.내가 브랜드를 공부하던 시기에 브랜드는 심벌과 로고 그리고 광고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애플이라는 회사의 성장을 통해서 브랜드는 철학과 가치를 품은 보이지 않는 힘이며 그 자체가 기업 문화임을 증명하였다. 나는 브랜드는 마케팅, 디자인, 경영과 철학, 전략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알려주고 싶었다.
브랜드가 상품에 붙은 상표가 아니라 기업의 모든 것의 연합된 제품과 비제품의 통합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통합의 어원이었던 unitas단어에 brand를 붙여 유니타스브랜드 unitasbrand라는 잡지 이름을 만들었다.
합병된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2023년 퇴사를 하면서 Unitas Brand에서 Brand가 빠진 the unitas라는 이름으로 예전 지식을 재편집하고 수정해서 웹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때 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했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좋은 브랜드는 어떻게 좋은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좋은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는 브랜드 너머에 있는 목적에 초점을 맞추었다. 스스로 브랜드 조명을 끄고 앞서 말했던 나에게 의미 있었던 모든 것들을 다시 고민하였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사람이 만든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다른 질문으로 나는 짙은 암흑으로 들어갔다.
그 어둠에서 나를 빛으로 인도했던 앙리 까르띠에 블레송의 자서전을 읽었다.
“나에게 카메라는 스케치북이자, 직관과 자생의 도구이며, 시각의 견지에서 묻고
동시에 결정하는 순간의 스승입니다. 세상을 ‘의미’하기 위해서는, 파인더를 통해 잘라내는 것 안의 우리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다고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집중, 정신훈련, 감수성, 기하학적 감각을 요구합니다.
표현의 간결함은 수단의 엄청난 절약을 통해 획득됩니다. 무엇보다도 주제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스마트 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서 스마트 폰을 순간의 스승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에게 브랜드는]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글을 써보았다. 나도 사진작가처럼 이런 글이 내 안에서 나올까?
내가 쓴 글을 죽을 때 읽으면 나는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눈물이 날까?
세상을 ‘의미’하기 위해서 나는 브랜드를 어떤 관점으로 다루고 있을까?
나는 앙리 까르띠에 블레송의 자서전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나는 더 좋은 생태계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휴먼 브랜드를 연구하기로 시작했다.
사람이 사용할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드와 사람이 연합된 새로운 프로젝트, 휴먼 브랜드를 나의 중장년 프로젝트로 결정했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했다.
유니타스는 말 그대로 ‘연합’이라는 뜻이다. 유니타스브랜드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마케팅, 디자인, 영업 등 기업 활동이 모두 연결되어서 하나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휴먼 브랜드를 담을 프로젝트 이름은 유니타스 라이프이다. 유니타스 브랜드에서 ‘브랜드’가 아닌 ‘라이프’를 넣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브랜드가 된 인간은 죽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부터 스티브 잡스 그리고 샤넬까지 브랜드가 된 인간은 영생을 누린다. 그렇다고 누구나 브랜드를 통해서 유명해지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이 살면서 받았던 배움과 경험을 무덤에 묻지 말고 다음 세대의 남기자라는 뜻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도 더 유니타스라는 사이트에서 [유니타스 라이프]라는 콘셉트와 주제를 가지고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것을 남기고 있다. 내가 죽더라도 사이트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자식이 이 사이트를 삭제하지 않는다면 반영구적으로 이 내용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죽어도 더 유니타스와 유니타스라이프가 되어서 살아있지는 않지만 존재한다.
둘째 유니타스 라이프는 생태계를 만든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의 지식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도 있지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과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 것이다. 나도 이 개념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이렇게 글로 쓰고 있다. 나의 중장년 삶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서 새로운 가치와 지식을 만들어 낼 것이다.
셋째 유니타스 라이프를 추구하는 휴먼 브랜드들이 모여 브랜드 공동체를 이룬다. 목적, 지식, 경험 그리고 소명으로 연결된 중장년 휴먼 브랜드는 자신의 일자리가 아니라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공동체를 만든다. 그래서 유니타스 라이프는 지방 도시 소멸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내가 쓰는 글의 담론이다.
나는 그렇게 생태계를 이루는 사람을 생명, 삶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유니타스 라이프, 모든 것에 통합하는 생명. 이것이 나의 소명이 되었다. 이것이 나의 의미다. 유니타스라이프는 장년에 내가 되고 싶은 존재이다. 내가 경험하고 고민했던 모든 것들이 씨앗이 있는 열매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죽어야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의미있게(씨앗으로)살다가 죽는 것을 유니타스 라이프라고 정의했다. 손바닥에 있는 씨앗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땅에 묻히면 생명이 된다.
이제 내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명확해졌다. 이 글도 이렇게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진행할 나의 모든 것들은 장기기증의 마음으로 준비할 것이다.
내 친구가 장기기증을 위해서 술 담배를 끊고 다음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나의 연구도 다음 사람을 위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
내가 늙어 가고 있을 때 그리고 죽을 때 나의 자녀에게 [죽음]을 알려주고 싶다.
노년으로서 부모는 어떻게 죽어가는 것과 죽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죽는 것이 아니라 부활 된다면 무엇을 준비할까?
유니타스 브랜드UnitasBrand에서 유니타스 라이프UnitasLIFE로 ...
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www.unitas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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