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34-나이 들지 않고 나듦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2. 19. 18:17

본문

나이 듦에서 나듦

 

호랑이와 사자의 이종교배, 라이거

 

나는 2012년 11월 1일에 [자기다움] 책을 출간했다.

내가 연구한 자기다움의 뿌리는 인문학이 아니라 브랜드에서 나왔다.

자기다움을 브랜드로 설명하는 것이 마치 호랑이와 사자의 이종교배에서 나온 라이거 Liger이나 타이곤 Tigon처럼 애매한 부분이 있다. 과연 브랜드와 인문학이 어울릴까?

 

[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 브랜드에 관한 내용은 아래 주소에]

https://www.theunitas.net/category/%EB%B8%8C%EB%9E%9C%EB%94%A9/%EB%B8%8C%EB%9E%9C%EB%93%9C%20%EC%9D%B8%EB%AC%B8%ED%95%99%2C%20%EC%9D%B8%EB%AC%B8%ED%95%99%EC%A0%81%EB%B8%8C%EB%9E%9C%EB%93%9C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카테고리의 글 목록

UnitasBRAND Season2 : Sustainable Ecosystem

www.theunitas.net

 


 

2003년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클라이언트에게 브랜드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무엇인지? 브랜드가 왜 중요한지?

브랜드와 마케팅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대표이사가 브랜드를 알아야 하는지를 설득해야만 했다.

그렇게 수백 장으로 만들어진 브랜드 프리젠테이션이 끝나면 대표이사는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질문을 한다.

 

“브랜드를 한 줄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브랜드를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브랜드가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책마다 브랜드 정의가 다르다. 

브랜드 설명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브랜드 아이덴티티identity와 콘셉트 Concept를 혼용하기 때문이다.

콘셉트는 브랜드 외에 모든 상황에서 우리 말 거시기’처럼 사용된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덴티티와 매우 유사하게 사용한다.

이 두 단어가 외래어이기 때문에 업계마다 다르고 시장마다 다르게 사용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콘셉트라는 개념은 꿀벌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파리 등에처럼 여기저기 붙어서 주어, 목적, 보어, 형용사 등. 상황마다 다르게 제 멋대로 사용되는 단어다. 브랜드 컨설팅을 하면서 나는 콘셉트와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 한국말을 찾았다.

그것이 자기다움이다.

 

브랜드를 한 줄로 정의한다면,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을 구축한 ‘총체’이다. 이것은 나의 정의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에 특별한 사람을 보니 그들도 브랜드였다. 나는 [휴먼 브랜드]라고 정의했다. 

브랜드로 보이는 사람은 단순히 학력과 경력을 쌓아서 품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다움으로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시킨 휴먼 브랜드다.

그들은 타인과 경쟁해서 Number 1이 되지 않고 자신이 되는 자기다움으로 Only 1이 되었다.

그렇게 정리한 생각으로 2012년에 자신만의 특이점을 설명하는 [자기다움]것을 출판했다.

[자기다움]을 원천으로 [휴먼브랜드]와 [브랜드십을 설명하는 우리 다움]도 연구하고 잡지로도  발행했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그동안  나는 [자기다움]을 타인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서 또 다른 구분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과 어른이다.

 

40대까지는 타인과 차별된 자기다움이었다면 중장년의 자기다움은 다시 새롭게 리셋되는 자기다움이다.

30~40대까지는 [자기다움]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에서는 자기다움의 재능보다는 결과물을 만드는 소질에 상품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 모드에서는 자기다움을 인식할 수가 없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자기 잘난 맛에 살 수밖에 없다.

 

경쟁과 생존 사회에서는 자기다움보다는 자아도취에 가까운 자아실현으로 살아간다.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서 경쟁모드에서 벗어난 50대가 되면서 40대에 한 번쯤 떠올렸던 질문이 저절로 생각이 난다.

 

“난 뭘 잘하지?”

“난 뭘 좋아하지?”

“이제 뭐 하면서 살지?”

“뭘 어떻게 하지?”

 

이런 질문이 자기다움의 질문은 아니다. 생존과 본능에서 일어나는 자기 본능이라고 할까?

자기다움 세미나에서 하는 질문은 아래와 같다.

 

나만 보는 것은 무엇일까?

나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가?

나는 최근에 어떤 질문을 많이 했는가?

나는 최근에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장 많이 했는가?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내가 최근에 선택하고 결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래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다움 교육 웍샵에서 이런 질문은 어느 정도 자신을 객관화하며 관조할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혹은 은퇴를 앞둔 50대에게 이런 질문은 화만 돋운다.

화를 내는 이유는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고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늙으면 애가 된다. 그렇지 않다.

이런 비유의 의도가 인류애적 표현인지 아니면 깎아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퇴화현상을 완곡하게 비틀고 에둘렀다.

오래 살았다는 증거가 주민등록증에 자기 나이밖에 없는 노인 老人은 비참하다.

늙으면 애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냥 노인으로 끝나면 끔찍한 인생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나이가 든다고 애가 되거나 어른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른을 떠올려보자. 몇 명이 떠오르는가?

오래 사는 것과 인생을 사는 것은 다른 삶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들지 않아야 어른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했다면 노인 老人의 노인 怒人이다.

“너 몇 살이야?”

“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나도 다 해보았는데.”

“자식 자랑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 자식이 말이야.”

“내가 그 사람이랑.”

 

상대방보다 오래 살았다는 나이 듦 그 자체로 존중받고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자기다운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나듦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상품은 오래되면 중고 판매 혹은 쓰레기통으로 가지만 어떤 상품은 박물관에 들어간다. 

이처럼 사람도 나이들면 노인으로 남거나 어른이 된다. 어른에 관한 나의 관점은 브랜드다. 

 

나듦은 나+들다(명사형, 듦)으로 ‘자기답게 나이 드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들다'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가거나 오거나 하다.

 2. 빛, 볕, 물 따위가 안으로 들어온다.

 3. 방이나 집 따위에 있거나 거처를 정해 머무르게 된다.

 

나는 ‘들다’라는 동사를 ‘물건을 들다.’ 혹은 ‘색으로 물들다’를 쓸 때만 사용했다.

이 단어를 분자구조처럼 쪼개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본 적은 없었다.

들 다의 1,2, 3번 의미가 모두 마음에 들었다. 서로 다른 의미이지만 한 단어에 압축되어 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그래서 신조어 나듦의 의미는 

목적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목적과 하나 된 삶을 의미한다.

소명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내 안에서 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듦이 될까?

이 질문보다 좀 답답한 질문으로 먼저 시작해 보자.

중장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길게는 50년, 짧게는 25년의 삶을 연금 가택(돈 받으면서 집에서 살다)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가택 연금(돈이 없어서 집 외에는 갈 수가 없다)으로 살 것인가? 이것은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 중에 37.6%(수치는 계속 올라감)는 한 달에 30만 원 정도의 돈을 받고 산다. 최악의 빈곤율이다.

고령화로 인한 빈곤율을 더욱 심각한 수치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누구나 알고 인공지능도 알고 있는 방법이 있다.

일이다. 노인도 일하게 하는 것이다. 노인이 하는 일이란 지금 정부에서 주는 공공 일자리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일,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존엄한 일, 사회 기여를 하면서 자음 세대를 돕는 일이다. 

노인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준비하는 일을 해야 한다.  

 

40대까지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일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고 나만이 정의할 수 있는 일을 창조하기 위해서

자기다움을 구현했다. 50대는 40대까지는 과시용으로 보여주는 거창한 비전이 필요했다. 아마 BHAG(크고 Big, 위험하고 Hairy, 담대한 Audacious, 목표(Goal)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기업 웹 사이트에 비전 혹은 미션 항목을 치면 나온다.

이제 50대라면 목도리도마뱀처럼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단어를 부풀려 자기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주변 지인들이 관심도 두지 않는다.

 

50대에서 일하는 목적은 나눔, 전달, 섬김 그리고 세움을 목적으로 일해야 한다.

경쟁, 최고, 압도적 1위, 경쟁우위 같은 경영 용어에 홀리면 안 된다.

뉴질랜드 하카 춤을 추는 것처럼 무섭게 분장하고 혀를 내밀고 전쟁의 춤을 추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

50대는 잘 죽기 위해서 산다. 자기답게 죽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경쟁할 이유가 없다.

40대까지 자기다움이 차별화였다면 이제부터 자기다움은  협력이다.

협력이란 win-win 모드로 give & take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나누고 섬겨야 한다. 지금부터  다시 배워야 하고, 질문하고, 경청하며 나누어주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듦의 시작이다.

자신이 나누어주고 섬기고 배우려고 할 때만 타인이 가르쳐 줄 것이다.

 

 

어떻게 나듦이 될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나의 경험을 더 많이 기억하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경험의 돌려 막기가 아니라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50대부터는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리셋에 가까운 배움이다.

 

눈에 보이는 비전 대신에 내 마음에서 귀로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그것을 소명이라고 한다.

소명은 나의 천성의 소리다. 중년까지 남들도 부러워하는 천직(좋은 직장의 동의어)에서 일하는 것을 원했다.

내 자리가 누구도 탐할 수 없는 천직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장년에는 천성을 이해해야 한다.

돈을 제외하고 나는 어떤 가치와 문제에 울림이 있는가? 이것에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동조(同調, entrainment)이다.

 

소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면서 내가 어떤 소리굽쇠 tuning fork인지 확인해야 한다.

돈을 받지 않고도 즐겁게 몰입하면서 남을 섬길 수 있는 것, 그 지점에 소명이 있다.

자기 천성으로 일을 하면 절대 어렵지 않다. 남들은 내가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서 배워야 하지만 천성으로 일을 하면 배우지 않아도 그 일을 할 수 있다.

 

50대는 그것을 발견하기 쉽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

죽음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끄면 된다.

 

 

자기다움과 나듦

자기다움의 정의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자기다움에 관한 나의 정의는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유일한 아이덴티티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정의다.

자기다움과 같은 방향으로 나듦은 ‘남과 다름’이 아니다. ‘우리 다움’이다.

나듦은 ‘자기다움으로 우리 다움’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으로 우리도 있지만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서 우리.

나와 공동체로서 우리.

나와 다음 세대와 연합으로서 우리.

나와 소명과 하나로서 우리.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인류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우리 다움이다.

나듦으로 사는 50대의 삶은 20대에 시작해서 30년 동안 살았던 삶과 달라야 한다.

키케로는 자신의 저서[노년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노년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마지막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지겹고 힘들더라고 끝까지 지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동의한다.

 

그래서 50대는 60대부터 죽을 때까지 삶을 버려서도 안되고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

50대 지인들이 인생에 후회하는 것은 청년과 중년 때 모험하지 않아서 오는 위기 때문이다.

50대에 다시 나듦으로 배우고 일하려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 60대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

50대는 마지막 나답게 살 수 있는 인생의 인디언 섬머라고 말했다.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서 인생 시작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키케로가 말한 마지막 인생의 장stage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이다.

죽음이 닥쳐봐야 알겠지만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지 죽음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전기를 쓰는 월터 아이작스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도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죽음이 두려운 진짜 이유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의 복사본으로 타인의 인생을 살았던 자신을 알게 되면서 죽음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하나 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민했던 이유는 브랜드 성장 변화 때문이다.

브랜드는 상품에 붙인 상표에서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제품이다.

그러나 제품으로 끝나지 않고 제품이 비제품으로 변환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나이키가 일반적인 신발 가격 9만 원 스포츠 신발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300만 원 한정판 신발이 되는 것을 말한다.

비제품이 제품을 넘어섰다. 나이키의 보이지 않는 가치가 보이는 물성을 변화시켰다.

제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인정하면 ‘가치’가 만들어진다.

이 가치가 지속되면 상징이 된다. 유럽 럭셔리 브랜드가 모두 이 공식을 따른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인식하는 개념이다. 콘셉트는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설명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비제품으로 브랜드를 구매하는 이유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다움(아이덴티티)과 중요한 이유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같다.

일을 하기 위한 숙달된 기능과 다재다능한 재능이 창조적인 예능으로 변화하려면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자신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다움이 있어야 한다.

50대에도 자기답게 일하지 못한다면  ‘일’은 ‘나의 완성’이 아니라  여전히 ‘일’은 일이다.

50대는 돈 외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그래야만 …. (이 접속사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음 세대와 협력하여 배울 수 있다.

 

 

https://www.unitaslife.net/

 

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www.unitaslife.net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