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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오래된 미래, 계획된 과거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2. 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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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나이 들면서 고약해지고 고집스럽고 퉁명해지며 법을 지키지 않고 괴팍해지는 것을 계획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 듦을 계획하지 않으면 이런 노인이 된다.

그 누구도 노화로 전두엽이 쪼그라지는 뇌의 퇴행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것은 자연법칙이다. 

모든 자연법칙은 너무 빠르지만 정말 느리게 진행된다.

예를 들어 지구 자전 속도가 시속 1,669km이지만 우리는 그 속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 삶이 ‘현실 왜곡장’이다. 

지구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내 기준에서 현실로 보이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상투적으로 인생을 화살 혹은 총알 같다고 한다.

총알 속도는 시속 1,440km이고 화살 속도는 시속 235㎞이다. 지구 자전 속도가 더 빠르다.

 

우리는 이런 지구 속도 안에서 나이 들고 있다. 30~40대에서는 나이 듦의 속도감을  지구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것처럼 전혀 체감할 수 없다. 하지만 자녀가 초등학생 3학년이라면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들의 성장 속도를 보면서 자신을 관통하는 나이 듦을 그나마 경험할 수 있다.

 

지구 공전 속도는 시속 약 107,226km이다.

지구 자전보다 64배나 더 빠르지만 전혀 우리는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사계절이 있기에 시간을 4덩어리로 느낄 수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밭밑에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보인다. 째깍째깍. 

참고로 항상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은 시속 7,852km로 은하계를 공전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우리는 일상을 반복한다.

내일 또 어제 본 태양을 보기 때문에 하루동안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그렇게 시간은 지난다.

내 주변도 태양의 자전과 공전처럼 움직인다.

비행기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하면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오늘도 어제와 같고 어제도 내일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다가 은퇴, 퇴임, 명퇴할 시기가 찾아온다. 그때 비로써 자신을 뚫고 지나간 시간을 인식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상상만 해보았던 궤도 이탈하는 그날이 맞이한다.

 

빙판 언덕에서 자동차 바퀴 헛돌면서  차선을 이탈하는 것처럼, 50대 장년이 되면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왔던 인생길에서 미끄러진다. 일자리를 박탈당한 장년들은 신문지로 타격을 받은 바퀴벌레처럼 어리둥절하며 어두운 곳을 찾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숨을 곳은 찾는다.

그렇게 중년은 살려고 뛰어보지만 피트니스센터 트레드밀(treadmill)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걸음만 한다.

이렇게 미친 속도로 지나간 시간에 한 방 맞은 후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지?”

이런 질문 쇼크가 오기 전까지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20대에서 40대까지는 생존 문제로 자신의 정체성은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존재감이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잘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직장과 일터에서 역할이 소멸이 되면서 사회 중력에서 벗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땅에 붙어 있던 발이 공중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면 이미 늦었다.

내가 조정할 수 있다는 인생 자전력과 경력 공전력이 소멸하여 가고 있다.

50대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서 관계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을 눈치로 알게 된다.

집안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여전히 50대는 자식과 부모에 대한 부양의 책임이 있다.

 

“나는 무엇이지?” 이제 질문은 ‘누구’에서 ‘무엇’으로 바뀐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사회에서 일은 돈과 지위 그리고 사회관계를 만들어내는 중심축이다.

그 축이 무너지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붕괴된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소수의 사람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먹고 놀고 쉬는 것을 계속 올리면서 ‘좋아요’를 받으면서 안심하고 있지만 그 생활도 몇 년을 지속 못한다. 결국 돈으로 버텼던 인생도 노년을 맞이한다.

직장 관계는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면서 동시에 정리된다.

항상 옆자리에서 근무하고 회식할 때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던 직장 동료도

회사를 그만두면서 모두 로그아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직장 동료와 최대 미팅 숫자는 2회인 것 같다.

‘밥 한번 먹자’라는 말로 그렇게 회사 집기 반납처럼 모두 회사에 두고 나온다.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닥치게 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남 일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런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정년까지 버티자로 생각한다. 은퇴 이후에 앞으로 닥칠 문제를 생각하려고 한다.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기보다는 아직도 현실에 남아 있는 문제가 더 큰 것도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자식 교육, 취업, 부모 노후, 주택 융자 등

 

인생 문제를 계속 돌려 막지만 문제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형 문제로 변질되어서 가족 관계를 파괴한다.

대부분 당장 대안이 없는 코 앞에 현실 문제이기 때문에 50대 장년들이 5년 안에 닥칠 자전과 공전 붕괴에 대해서 무시하는 것 같다.

 

그렇게 계획 없이 있다가 닥치면 두려움과 염려로 인해서 어처구니없는 이상한 결정을 하게 된다.

50대 대부분이 과거의 찬란한 불빛을 돌아보면서 현실 시력은 백내장과 녹내장에 걸려있다.

귀는 얇아지고 심장은 작아져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몇 번 실수와 실패를 하고 자기 인생의 길이었던 태양계를 튕겨 나가게 되어 그 어떤 중력의 영향권도 없는 공간으로 빠져 버린다.

 

처음에는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나는 무엇이지?”라고 질문이 업데이트가 된다.  

조급한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하면서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았지?”로 바뀐다.

이런 질문은 계속 모습을 바뀐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잘하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나는 왜 살아야 하지?”이다. 위험순위가 높아지는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여기까지가 내 친구들의 공통 간증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40대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오후 3 시인 것 같다. 

50대의 시간은 오후 5시 12분이다. 

아직 6시는 아니지만 남은 하루를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하기에 늦은 하루다.

물론 저녁 12시까지 6시간 넘게 시간이 남아있지만, 여름과 겨울에 따라서 일몰 시각은 다르다.

그러니까 개인 재정 상황에 따라서 시차가 있다.

50대에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재앙 같은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 

적정 노년 준비 시간은 40대라고 생각하지만 내 주변에 그 누구도 40대에 준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년 준비가 단순히 보험과 연금 준비는 아니다.

그 준비는 좀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소명’을 찾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20대와 30대들은 수많은 리더와 스타들이 말하는 비전이라는 이름에 홀려 산다. 

20~30대를 그렇게 보낸 40대는 현실을  자각하여 이제 비전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50대부터는 비전이 아닌 소명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의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 20~30대에는 주변에 너무 많은 비전의 빛으로 소명이 보이지 않았다면 동굴 같은 어둠의 통로 같은 50대에서는 작은 불씨가 보일 것이다.

먼저 소명의 불빛을 보기 위해 주변을 더 어둡게 해야 한다.  방법은 딱 하나다. ‘죽음’을 생각하면 한다.

‘나는 반드시 죽는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죽음은 모든 인간 삶의 종착지이다. 삶의 목적이 죽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삶의 목표는 죽음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50대는 죽음에서 역순으로 삶을 계획해야 한다.

자기답게 죽는 것이 목적과 목표가 되면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라지는 것보다 그냥 녹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욕심, 후회, 욕망, 서운함, 조급함 같은 것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잘 죽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죽는 것은 순간이지만 죽을 것처럼 사는 것은 열정이 필요하다.

 

 

죽음을 목적으로 사는 삶이 소명을 찾게 해주는 이유는 소명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별한 마법은 없다.

물론 소명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명을 찾는 그 과정에서 소명과 다른 운명을 만날 수도 있다.

나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브랜드를 연구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이다]라는 소명 의식으로 브랜드 잡지, 브랜드 컨설팅, 브랜드 교육 등을 했다.

나에게 소명은 브랜드라고 생각했지만 2023년 1월  4일에 [고령화, 인구감소 그리고 지역사회 소멸]이라는 키워드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이 3개의 키워드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브랜드가 소명이었다면  [고령화, 인구감소 그리고 지역사회 소멸]은 이제 나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하면서 소명을 찾거나 깨닫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자원봉사를 제안한다.

 

자원봉사라는 단어는 몸으로 궂은일을 하는 그 무엇이 떠오른다. 내가 말하는 자원봉사는 그런 노동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의 경력, 경험 그리고 재능으로 자원봉사 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돈을 받고 일했지만, 지금부터는 가치와 관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이 돈이라는 중력에 의해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일이 돈이 아니라 봉사가 되면서 무중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자원봉사(일)를 하면 몇 가지 특이점을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돈 벌기 위해서 했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내 안에 예전과 다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자기 일에 대해서 자부심이 생긴다.
자기 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가치를 깨닫는다.
자기 일로 누군가를 도와주고 섬기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
예전에는 일이었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은 분야를 공부하게 된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경험한다.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한다.
돈 받고 하는 일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깨닫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다움의 방향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해왔던 일에 자긍심이 생기고 지금 하는 일에 나의 영혼을 불어넣는다. (개인차가 있다)
이외에 수많은 간증이 있지만 나의 경우는 딱 하나다. 자기다움이라는 소명을 경험하게 된다.
돈의 중력은 ‘받은 것보다 덜 일하는 기쁨’이다.
하지만 돈을 대가로 생각하지 않는 자원봉사는
‘주는 것보다 더 큰 일의 기쁨’을 경험한다.

 

일이 아닌 봉사 과정에서 일이 일처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명이라는 특권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을 봉사하고 있지만 감사와 기쁨으로 특별하게 일한다면, 그것은 분명 소명이다.

돈이라는 소유가 아니라 봉사라는 존재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지금 하는 봉사가 세상에서 나만이 창조할 수 있는 가치이며, 내가 정의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면 소명을 깨닫는 중이다.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구나!”

“내가 필요한 존재이고 남을 도울 수 있구나!”  딱 이것이다.

 

이런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다양하고 여러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나의 일관성과 특이성을 파악해야 한다.

일관성은 어떤 단체의 일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고, 특이성은 그 일을 나만 기뻐하는 것이다.

그 일을 통해서 나만 기뻐하는 것, 나만 보는 것, 나만 질문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소명의 발견이다.

 

사람들은 천직 天職(소명, calling, Vocation)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명을 직 職으로 찾으면 너무 많이 헤매게 된다.

직업은 계속 대치되고 창조되고 사라진다. 나는 천직보다 천성 天性(자기다움)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여러 개의 자원봉사를 하면서 일반 직장에서 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남들에게 일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쉽고 즐겁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직장에서 천성(자기다움)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돈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돈을 버는 일이고, 일의 기준은 직장 상관 및 고객 만족 수준에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족쇄를 찬 코끼리처럼 직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하는 그곳에서 봉사하면 정말 많은 것을 해야 한다.

돈을 받지 않지만, 의미와 가치를 받으면서 그 일을 하게 된다.

 

천생연분 天生緣分은 하늘에서 내린 연인 사이라는 뜻이다. 만약 결혼했다면 배우자를 천생연분이라고 믿고 결혼했다.

그 누구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고 결혼한다. 죽음이 갈라놓기까지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그런데 왜 이혼할까? 왜 서로 싸울까?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늘이 이미 천생연분이라고 하여도 그것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부부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부부가 되어가는

방법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면서 서로의 것이 된다.

천직도 같은 개념이다. 앞으로 직업은 없어지고 사라진다. 그 대신에 천성은 계속 드러내야 한다.

 

나의 천성을 확인하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일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하는 일은 Get back(복직)이 아니다.

천성으로 일하는 Come back(나로 돌아가서)이 되어야 한다.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도 다시 일하기 위해서다.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 새로운 커뮤니티 관계(공전)와 자기다움(자전)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받은 만큼 일했다면 자원봉사는 가치를 느끼는 만큼 일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나는 어떤 가치에 반응하는가?

나의 경력, 재능 그리고 경험이 가치와 반응을 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세상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소명을 가진 사람이 협력해서 천생천직天生天職을 하면 어떤 일터를 만들 수 있을까?

 

예전에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구했다. 이제부터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터가 될 수 있다.

 나를 뚫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시계는 다시 감을 수 있다.

중년에는 일, 삶 그리고 죽음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노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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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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