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6-중장년을 위한 소설쓰기, 주인공으로 살아보기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1. 1. 23:46

본문

나를 만나다. 내가 하는 것과 내가 되는 것

“이번 생은 글렀어. 다음 생에는 도전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연휴 때 한강 자전거길 완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휴가를 내서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자고 했다.

언제 갈까를 논의하다가 인생 버킷리스트로 자전거 전국 일주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누군가 몽골 이야기를 하면서 대륙 자전거 횡단까지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때 친구 5명 중에 2명이 몽골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죽기 전에 버킷리스트로 해보자는 3명의 친구가 부탁했지만 결국 다음 생에서 20대에 만나면 해보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다음 생이 있을까?]

 

 

 

 

우리에게 두 번째 인생이 영화처럼 주어진다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두 번째 삶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해 보자.

“당신의 오늘은 어제와 다른가?”

“당신의 일주일 전과 오늘은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 변화가 없다. 하루 일상은 모두 습관으로 자동화가 되어서 어제와 오늘은 비슷하게 작동된다.

하루 일상이 똑같은데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이 아닐까?

 

중장년의 삶 중에서 고통스러운 질문 중의 하나는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이다.

보다 사실적이며 현실적으로 이 질문을 바꾸어 보자.

[돈을 벌지 않으면. 나는 누구인가?] 실업자? 퇴직자? 은퇴자? 이것도 아니면 집돌이와 집순이?

이런 날이 반드시 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보다 직함을 부른다. 회사를 퇴사해서 직함이 없어져도 직함을 부른다.

직함이 자신의 아이덴티티화 되어 버렸다. 그래서 퇴사 이후에 지인들 때문에 [현실왜곡장]에 갇혀산다.  

 

나는 죽기 전 1주일까지 일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하는 그 일은 노동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반응이다.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의 일]을 하면서 존재하고 싶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혹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이 질문의 대답을 중장년 세대라면 노년이 오기전, ‘지금’ 해야 한다.

 

중장년의 고통 중에 또 다른 하나가 [변하지 않는 하루]이다.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이 내 삶에서 어떤 변화도 일으킬 수 없을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날이 오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다.

그럼에도 살았지만, 죽은 사람처럼 하루를 살 것인가?

 

만약에 두 번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지금을 어떤 태도와 행동으로 살아갈까?

일과 일상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질까?

만약에 세 번째 네 번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오늘을 살면서 여러 번 다른 인생을 살 방법이 있다.

나는 이 방법으로 총 4번의 인생을 살았다.

두 번째 인생은 구도자의 삶을 가진 직장인으로 살아 보았다.

세 번째 인생은 국가 특수 정보원으로 살아 보았다.

네 번째 인생은 두 번째 인생 구도자에서 해답을 발견한 인생 탐험가로 살았다.

 

어떻게 자신의 인생에서 4번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이 되면 된다.

내가 살고 싶은 새로운 인생 안에서 자기답게 살아보는 방법으로 소설 쓰기를 추천한다.

그렇다고 소설작가로서 소설 쓰기는 절대 아니다.

그 누구도 당신이 쓴 소설을 책으로 만들거나 돈 주고 읽지 않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장년 소설 쓰기의 목적은 ‘소설’이 아니라 ‘관찰’이다.

 

자기다움을 확인하고 경험하기 위해서 소설이라는 툴을 활용하여 주인공이 된 나를 관찰한다.

 중장년 글쓰기는 회고록과 일기 그리고 [소설]이 있다. ‘그냥’ 소설이 아니라 ‘자기다움 소설’이다.

소설의 주제에 따라서 성장 소설, 역사 소설, 사회소설, 로맨스, 추리소설, 공포 소설, 과학 소설 등.

갖다가 붙이면 장르를 만들 수 있다. 자기다움 소설은 회고록에서 나온 자기다움으로 쓰는 자기 관찰 소설이다.

따라서 자기다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회고록을 써야 한다.

자기다움 소설의 결론은 ‘무조건 해피엔딩’이지만 주제를 정하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소설 작법은 크게 ‘즉흥적 글쓰기’와 ‘계획적 글쓰기’가 있다.

계획적 글쓰기는 주로 드라마 작가들이 모든 캐릭터를 결정하고 사건과 상황을 계획적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자기다움 소설은 정해진 플롯이 없고 그때마다 쓰는 글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설명하겠다.

 

그렇다면 왜 중장년들이 소설을 써야 할까?

기억이 상상보다 많아지면 죽어가는 중이다. 중장년 삶이 그저께와 같은 오늘이지만 상상을 통해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소설이라는 상상력을 통해서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 부분도 자세히 설명하겠다.

 자기다움 소설은 회고록에서 발견된 자신의 키워드, 약점, 강점을 종합해서 재료로 사용하여 자기다움을 확인, 경험 그리고 통합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따라서 소설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가볍게 시작하면 된다.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소설(小說) 한자의 의미는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다.

한자 의미보다 영어 novel(소설)이 더 소설답다. 'novel'의 어원은 라틴어 'novus'이고 그 의미는 ‘new’이다.

Novel로 안착한 것은 중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노벨라(이탈리아어: Novella)부터라고 한다.

노벨라의 의미는 새롭고 신기한 것이란 뜻이다.

 

자기다움 소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전지적 작가로서 일인칭 주인공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활용해서 자신의 중장년을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새로운 이야기’이다.

자기다움 소설은 나를 중심으로 ‘새로운 작은 이야기(소설)’를 써보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회고록을 프로타주 (frottage) 글쓰기라고 설명했다.

나의 과거를 기억을 따라 쓰다 보면 (긁다 보면) 내 삶의 등고선처럼 윤곽들이 드러난다.

그런 윤곽을 통해서 운명과 숙명 그리고 소명을 확인할 수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물이 흐르면 물길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나는 인생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회고록은 현시점이라는 정상에서 내가 살아왔던 삶을 입체감 있게 3D로 그려내는 것과 같다.

 

반면에 자기다움 소설은 프로타주 글쓰기와 비슷하지만, 동전으로 긁는 복권에 더 가깝다.

로또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라고 한다. 이런 확률 속에서 신기하게도 매주 1등이 나온다.

복권은 당첨은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이지만 당첨될 것 같은 막연한 희망도 있다.

일단 복권을 지갑에 넣고 있으면 당첨을 상상하게 만들고 일주일 동안 막연한 기대에 취해서 산다.

현실에서는 복권에 당첨될 일은 없지만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다.

그 복권은 돈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답게 사는 것, 자기답게 회사 생활하는 것, 자기다움을 이해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복권을 설명한다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소설 속에서 자신이 진짜 해보고 싶었던 우주 여행사가 되는 것, CSI 출신 잡지 편집장이 되는 것, 형사가 되어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로또 같은 두 번째 인생이다.

회고록은 사실 기반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자기다움 소설은 공상 소설에 가깝다.

왜냐하면 자기다움 소설에는 ‘절대’ 비극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도 비극인데 소설까지 비극으로 끝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자아도취로 자전적 소설로 쓰는 경우도 있고, 급기야 무협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기다움 소설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쓰는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뭐든 상관없다.

해리 포터를 쓴 J.K. 롤링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중장년 소설 쓰기는 자기 과거의 사건을 중심으로 현실 내용을 자기답게 극화해서 쓰고 그것을 상상해서 미래 일들을 글로 쓴다. 하지만 이런 글쓰기에도  조건이 딱 하나가 있다.

앞에서 몇 번 다루었지만, 회고록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자기다움을 근거로 글을 써야 한다.

회고록을 통해서 알게 된 나를 어떻게 미래의 나로 만들 수 있을까?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이 자기다움 소설의 주제이다. 조금만 더 설명하겠다.

 

 

 

 비극처럼 불운한 인생을 살았던 찰리 채플린은 자칫 후회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 shot.”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참고로 롱샷은 카메라를 피사체(被寫體)로부터 떨어져서 촬영하여 넓은 장면 안에 피사체를 넣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했는데 풍경 사진을 생각하면 된다)

롱샷이라는 인생 관점으로 자신의 과거를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 연장선으로 보이지 않을까?

미래까지 연결된 과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롱샷 관점은 지금 모습이 과거 실수의 결과가 아니라 탁월한 선택이라고 믿고 과거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미래,  현재, 과거를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것이다.

비극이 희극이 될 수 있도록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것이다.

인생을 롱샷으로 보는 방법이 바로 자기다움 소설 쓰기다.

회고록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고 소설은 미래를 상상하여 기억하여 쓰는 글이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이유는 자신이 소설 주인공이 되어 과거 실수나 어려움을 해피엔딩 happy ending 관점으로 끌고 와서 쓰는 인생 소설이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것이 해피 엔딩으로 끝난 것처럼 소설을 쓰는 것이 롱샷 관점이다.

과거 사건, 트라우마를 해피엔딩을 위한 복선으로 만드는 글쓰기다.

 자기다움 소설이 즉흥적 글쓰기라고 하면서 왜 계획적 글쓰기처럼 결말을 이미 내놓고 글을 쓰라고 할까?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 ‘자기다움 소설’은 ‘소설’이기보다는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복선을 깔아 놓았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자기다움 소설은 누군가에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보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소설 쓰기의 핵심은 소설이 아니라 작가 시점으로 자신을 넓게, 깊게, 크게 그리고 높게 보는 ‘나이 듦에서 나듦’ 훈련이다.

어떤 면에서는 후회하고 있는 과거를 강제로 리셋 reset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22년 2월 2일에 70명이 시작한 자기다움 교육 프로그램에서 회고록을 쓰다가 중도 포기하는 교육생은 69명이었다.

이렇게 회고록 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다. 

1)회고록이 될 만한 사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2)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경우

3) 참담한 인생을 살아와서

4) 회고록을 쓰려고 하니 우울증이 도져서

5) 회고록을 작성하다가 열받아서

6)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서.

 

이렇게 말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 회고록 쓰기에 바빠서

2) 지금 살기도 바쁜데 굳이

3) 기억하는 것이 귀찮아서

4) 자기다움에 관한 호기심이 사라져서. 이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회고록을 써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1)앞으로 이렇게 살지 말자.

2) 지금부터는 절대 이것을 하지 않는다.

3) 일단 후회하지 말고 다음번에는 무조건 해보자

4) 내가 이 정도로 심각한가?

5) 정말 하찮게 살아왔구나. 등 이것 외에 수많은 자기 발견으로 반성하게 된다.

 

자신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알게 된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삶의 미세조정을 통해 자기답게 살 것인가?

일단 소설에서 나의 자기다움으로 살아보는 것이 ‘자기다움 소설’이다.

 그래서 휴먼브랜드 프로젝트를 위한 인생 소설은 허구를 기반한 소설이나 판타지 장르가 아니다.

자신의 과거 팩트를 기반으로 미래 일을 상상해서 쓰기 때문에 과학적 사실과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분류한다면 다큐멘터리 픽션(Documentary Fiction)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전에 작가(나)는 주인공(가장 나 다운)인물을 설정한다.

일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형식을 쓰면 된다.

나는 이 두 개를 모두 사용해 보았다. 각각 다른 삶의 맛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에 대한 캐릭터를 다시 정리하고, 새로운 이름을 주고 예전에 자신이 자기답게 결정하지 않았던 일들을 기억해서 소설의 소재로 쓴다.

 회고록을 통해서 배운 교훈, 반복적인 실수와 실패, 벗어나고 싶은 상처, 미래에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반드시 일어나고 말아야 하는 일들. 이런 것을 내가 슬 소설의 플롯 PLOT으로 활용한다.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는 당연히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소설 장치이다. 과거의 사건은 해피엔딩의 복선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이 미래에 과거 경험을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휴먼브랜드 대본을 쓴다.

 

소설을 쓰면 막연했던 자기다움이 구체화하고 특징을 알게 된다.

감정이입을 통해서 자기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과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문제가 소설에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이때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을 쓰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선택지가 보인다.

어떤 것이 나다운 결정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나온다. (이런 현상은 결론 부분에서 설명했다)

 

내가 첫 번째 쓴 자기다움 소설은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이다. 이 소설은 33세 조태현(나의 본명이다)이 40세 권민(내가 만든 주인공)을 상상하면서 쓴 소설이다. 권민이라는 이름은 소설 주인공의 이름이다. 33살이었던 나는 30세 때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 40대 권민이 될 조태현은 이렇게 살 것이라고 쓴 글이다.

소설은 2000년도에 썼지만 소설이 시작되는 배경은 IMF시절 1998년이다. 나는 과거의 실수를 바꿀 수 없지만 소설 속으로 들어가 과거 결정을 돌이켜 묵시적 소설로 써보았다.  미래로 갈수록 내가 만나는 어려움, 불행, 사람들, 고난, 선택에 관해서 현재 조태현의 관점이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권민의 관점에서 내가 겪을 문제들을 썼다.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에 들어서기 직전에 머릿속으로 진행하는 마인드 트레이닝과 비슷하다.

 

“나는 나답게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것을 글로 적어 보는 것이 ‘새벽나라에 사는 거인’이라는 자기다움 소설이다.

 

아래 주소에 그때 내가 썼던 [새벽나라에 사는 거인]의 원본이 있다.

https://brunch.co.kr/@unitasbrand/359

 

나는 소설을 쓰면서 내가 되고 싶었던 캐릭터를 만들고 권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소설은 50%의 팩트를 기반으로 쓴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나의 과거를 권민 캐릭터 관점으로 다시 보고 미래와 연결했다.

조태현으로 실수한 과거 사건은 더 이상 미제 사건未濟事件으로 남지 않았다.

조태현이 아닌 권민으로 과거를 다시 해석해서 현재와 미래와 하나가 된 이야기로 만들었다.

소설에는 미래 나의 모습이 있다. 나는 소설 주인공처럼 현재를 살아가면 언젠가는 소설 속의 인물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소설을 썼다. 그렇게 2001년에 소설에 나온 인물이었던 ‘권민’은 지금의 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소설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예전에 내가 실패했던 사건을 대입시키고 다시 과거를 회상하는 고통을 직면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래 시뮬레이션이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새벽마다 2시간씩 소설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내가 추구하는 휴먼브랜드 캐릭터를 만들었다. 소설을 쓰면서 주인공에 감정이입과 몰입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성격과 세계관도 바꾸었다.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을 출판을 위한 소설이 아니었다. 

패션인사이트 객원 기자 권민이라는 휴먼 브랜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런 생각과 나의 글을 읽은  패션인사이트 발행인이 출판해 주었다.

 

 나의 두 번째 소설책은 삼인칭 시점으로 쓴 [마음 사냥꾼 1,2,3]이라는 마케팅 소설이다. (아래 샘플 참조)

https://www.theunitas.net/entry/%EC%9E%90%EA%B8%B0%EB%8B%A4%EC%9B%80-%EC%86%8C%EC%84%A4-%EC%93%B0%EA%B8%B0-%EC%83%98%ED%94%8C1

 

자기다움 소설 쓰기 - 샘플(1)

마음 사냥꾼 (1) 차례 1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시대 서문 1장. 싱귤러 포인트 Singular Point 2장. 화이트 홀 White Hole 3장 . 기브 앤 테이크, 테이크 앤 기브 Give and Take, Take and Give 4장. 네버랜드를 찾아

www.theunitas.net

 

이번에는 ‘권민' 대신의 김정환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삼인칭 시점으로 쓴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실행하는지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나의 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첩보물 소설이다. 상상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소설로 극화시켰다.

미국 드라마 CSI 라스베이거스를  보고 마케팅 소설로 극화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그리고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의 하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다움]은 새벽 나라에 사는 권민으로 살아보고 쓴 책이다. 조태현의 회고록이 아니라 권민의 회고록이다.

 

소설을 쓰면 자신이 되고 싶은 휴먼브랜드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이점 Singularity Point

회고록을 써보았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원인과 결말은 ‘돈’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깨어진 인간관계의 원인도 ‘결국은 돈’이고,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 기준도 대부분 ‘돈이 되느냐’이다.

우리 인생은 돈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우리는 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과 선택에 항상 돈이 기준이 된다.

 

 자기다움 질문 웍샵 리스트에 이런 질문이 있다.

“통장에 100억 원이 있어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거의, 대부분, 대다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100억 원이 있으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하는 사람보다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비율적으로 더 많다.

대략 100억 원이 있으면 돈의 중력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100억 원이 생기지는 않는다.

 

 자기다움 소설에서는 돈의 중력이 없다. 회고록에서는 중력이 있었다고 하면 소설에서는 돈의 중력 없이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데로 살 수 있다.

자기다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자기답게 결정, 판단,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비록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 수 있지만 소설에서 나는 나답게 결정해 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반응하는 나의 수많은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즉흥적 글쓰기를 하면 소설에서 일어나는 이벤트에 반응하는 나를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소설을 다 쓰고 다시 읽어본다. 물론 교정 수정할 필요는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낯선 나의 모습을 내가 걸어갈 길을 살펴볼 수 있다.

 

자기다움 소설은 미리 써보는 회고록이다

자기다움 소설로 중장년 미래를 탐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예전에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소설 속에서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자전거 한강완주도하지 못했다.

몽골 자전거 여행은 AI 그림으로

 

 

https://www.unitaslife.net/

 

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www.unitaslife.net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