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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죽음의 계약, 모기지 (Mortgage)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0. 1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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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집을 장만한 친구의 초청으로 집들이를 갔다. 서울에 아파트를 처분하고 경기도 모처에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나는 친구가 퇴직과 동시에 준비했던 노후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자녀들의 결혼을 비롯한 집안일로 삶의 규모를 줄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줄였다고 하지만 전원주택은 제법 근사했다.

 

예전에 살았던 집보다 사이즈는 컸고 정원과 집 앞 경치가 탁월했다. 친구들은 부러워서 자신도 은퇴하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고 부러워했다. 그때 집주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도 은행 집이야, 모기지 받아서 산 거야. 내 것은 이 마당뿐이야.”

 

모기지 mortgage는 '(가옥이나 토지 구입을 위한) 융자, 저당, 담보, 대부금'의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렇게 받은 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다. 모기지는 죽음이라는 뜻을 가진 Mort와 서약과 맹세의 의미를 가진 pledge가 결합하여서 만든 단어다. 그대로 직역하면 ‘죽음의 계약’이다. 죽어야만 풀려날 수 있는 계약이다.

 

모기지가 단순히 은행에 빌린 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할 돈이라는 것을 ‘진짜로’ 알았다면 노년에 이렇게 좋은 집을 샀을까? 이것까지는 묻지 않았지만 왜 친구가 이렇게 좋은 집을 선택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는 서울이라는 럭셔리를 포기한 대가로 지방 럭셔리 전원주택을 선택한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삶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기지라는 단어가 그 어원처럼 작동되고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친구 집에 온 것이 아니라 그의 무덤이 될 시골에 온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야외에서 바베큐파티를 끝마치고 각자 가져온 캠핑용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캠핑용 모닥불 스탠드를 보면서 불에 홀린 나방처럼 아무 말없이 타오르는 불만 보았다. 종교 행위 같은 ‘불멍’은 침묵 기도나 명상 기도처럼 우리 영혼을 잠잠히 누르고 있었다. 저녁 황혼과 모닥불 그리고 장년이 되어서 만난 친구들은 그렇게 모두 마지막 남은 시간이 무엇인지를 말 못 하고  잠잠히 있었다.

 

커피가 식었으니 아마도 10분은 그렇게 말없이 장작을 본 것 같다. 집주인 친구가 집주인으로서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서 나에게 먼저 질문을 했다.

 

“니 회고록은 언제 나오냐?”

예전에 회고록을 쓴다고 친구에게 말했었다.

“그건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야. 이미 다 썼지.” 나는 식은 커피를 마셨다.

“우리 이야기도 나오냐?” 다른 친구가 질문을 했다.

“나오지, 그런데 그렇게 많지 나오지 않아.” 나는 대답했다.

“한번 보자.” 집주인 친구가 물었다.

“다 태웠어.” 나는 무심히 말했어. 태우지는 않았고 찢어서 재활용 폐지로 버렸다.

“뭐, 쓴 것을 왜 태워?” 다른 친구가 물었다.

“이것은 자기다움 프로그램이라니까 회고록을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쓴 거야.” 나는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2명의 친구는 고개를 저었고, 3명의 친구는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들에게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길]의 단위는 사람의 키라고 한다. 열 길이면 열 명의 사람이 서 있는 꽤 깊은 수심이다.

열 길 물속을 측정하기 위한 음향측심기(수심측정기)는 초음파를 발사하면 약 1,500m/s의 속도로 해저 밑에 이른 뒤에 반사되어 같은 경로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열 길보다 깊은 사람의 한길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

내 속도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속을 측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자기 속의 깊이를 측정해 보자. 자신의 안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다.

글을 쓰면 내가 믿는 것, 아는 것 그리고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모르거나 이해 못 하는 것은 절대로 글로 쓸 수 없다.

 

내 속을 확인하는 방법이 회고록과 일기다. 걸어 다니면서 만들었던 대동여지도처럼, 회고록과 일기를 쓰면서 나의 인생과 존재를 알 수 있다. 글을 쓰는 순간 시인처럼 나 자신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 작가에 더 가깝다. 내 얼굴을 보기 위해서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내가 살았던 인생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 회고록과 일기 쓰기의 목적은 회고록과 일기가 아니다. 내가 남겨야 할 것을 글로 남기기 위해서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동영상으로도 남길 수 있지만 동영상에도 대사와 자막이 있다. 화가가 아니라면 우리는 ‘문자’로 남겨야 한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가 남기고 있는 보관소에 방문한 것이다. 아래 동영상 유튜브도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한 작업이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ADH6SQj51U0m_OiwThSS3Q

 

Unitasbrand2 SE

유니타스브렌드 시즌2 / Sustainable Ecosystem의 교육 동영상입니다. 유니타스브렌드 시즌1은 a good brand is a good ecosystem입니다. 우리는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 왜 좋은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가에 관

www.youtube.com

 

회고록과 일기 쓰기는 나의 인생 경험과 지식을 남기기 위한 글쓰기 훈련이다.

My Name Class라는 휴먼 브랜드 자기다움 교육과정이 있다. 말 그대로 내 이름이 학과이다. 예를 들어 [권민학과]가 있다면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있을까? 위에 소개했던 유튜브 동영상을 비롯하여 theunitas.net의 꼭지에 있는 모든 내용이 교육과정이다. 지금, 이 글이 있는 [나이 듦에서 나듦]도 [권민 학과]에 있는 교육프로그램이다.

 

나는 실제로 이런 브랜드 대학교를 운영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골목 대학을 세우기 전에 휴먼 브랜드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존경하는 지인들의 학과를 만들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학과를 만들고 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혹은 지식 보관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콘셉트도 좋았고 취지도 좋았다. 하지만 좋지 못한 것은 글을 쓰지 못했다. 내가 제안한 사람들은 모두 전문가이며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글쓰기를 두려워했고, 어려워했다. 막상 자신의 지식을 글로 쓰니깐 빈약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계획만 세웠다가 포기했다.

 

 유니타스라이프의 목적은 중장년이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경험하고 누렸던 것을 유산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지식을 정리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다움을 알아야만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을’ 알기 위한 방법이 회고록과 일기 쓰기이다.

 

 유니타스 라이프란 자신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휴먼브랜드 프로젝트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자신의 유산은 글과 동영상 그리고 브랜드 자체가 될 수 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인공지능이 글로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도 ‘글’로 남겨주어야 한다.

이제 충분히 회고록, 일기 그리고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반복해서 설명했다. (여기까지 끝)

 

나는 나의 한길 측정을 위해 새벽 일기를 쓴다. 새벽 일기는 음향측심기의 초음파처럼 하루를 향해서 쏘아 보내는 것이다. 저녁에 새벽 일기를 쓴 것을 보면서 다시 돌아온 감정, 생각을 정리하여 선형적인 하루의 시간을 입체적으로 구상해 본다.

새벽 일기와 저녁일기를 비교하면서 질흙처럼 어두운 내 감정의 밑바닥을 확인한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측정은 주말에 새벽부터 아침까지 일주일 동안 쏘아 보냈던 글들을 정리한다.

그렇게 해서 내 어두운 마음의 수심 지도를 그린다. 일주일 모은 것으로 지도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한 달 일기를 보고, 분기 일기를 적어 본다. 그리고 1년마다 다시 한번 1년 동안의 일기를 살펴보면서 내 마음의 탐험 지도를 완성한다.

 

내가 일기를 이렇게 쓰는 이유는 내가 복잡하고 어둡고 갈팡질팡하는 내 안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한 길밖에 안 되는 내 마음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나의 자녀들이 내가 죽은 뒤 나의 일기를 정리하면서

그들이 보았던 아빠로서 내가 아니라 진짜 나의 모습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각했겠지만)

나의 한길을 그려보는 이 지도는 내 자녀가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지도가 될 것이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그냥 일기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적어 보는 자문자답 주관식 단답형 일기다

왜 그렇게 했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변명일까? 거짓일까?

나를 계속 코너에 몰아가면서 물어보면서 압박 인터뷰를 한다.

 

10년 편집장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무조건 글을 써본다

그러면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는 [믿음과 감정]뿐일 때가 많다.

이렇게 믿음과 감정으로 알고 있는 착각은 나중에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고름이 된다.

이런 가짜 지식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면서 결국에는 [교만과 독선]이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써서 보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감정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내가 화나고 있지만 왜 화를 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쓰면, 화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별거 아닌 것으로 흥분된 치졸한 나 자신을 확인하고 창피해진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글로 써보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기껏 한 줄도 안 되는 지식이라는 것.

 

그래서 나의 일기는 반성문에 가까운 고해성사(告解聖事 penance)이다.

일기를 매일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나에게 창피당하는 것이 남에게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중장년들은 출근하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몸이 노화되어서 피곤한 것과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한 것을 구분 못 한다. 피곤하니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방법은 일기뿐이다. 그런데 시간 단위로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는 일지 같은 일기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일기는 [오늘, 하루, 지금, 여기]에서 내가 나에게 묻는 말과 대답이거나 내가 남길 것에 대한 기록이 좋다. 물론 나도 나의 일기에 일과를 적고 반성하는 글을 쓴다. 그런데 이것만 쓰지 않고 나의 목적을 기준으로 결정했던 모든 것들을 기록한다.

 

자기다움 교육에서 쓰는 중장년 일기는 다양하다.

1) 자신만의 사전 만들기

2) 자신이 남길 프로젝트를 하루에 하나씩 기록하기

3) 자기다움에 맞는 삶이었는지 점검하기

4) 자녀들에게 하루에 한 번씩 주제를 가지고 편지를 쓰기

5) 나에게 대한 관찰 일기를 쓰기 등

 

 유니타스라이프가 말하는 중장년 프로젝트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배우고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여러 번 반복했다. 그 예로 파블로 곤충기처럼 자신을 연구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부분 한 길밖에 안 되는 자신을 자신이 모른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것은 무엇을 좋아하고 취미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자기다움, 목적, 소명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독특한 능력에 대해서 막연하게 감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MBTI의 통계적 설명을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그려준 자신의 지도로 자신의 마지막 인생 여행을 할 수 없다.

 

 

죽음과 계약, 모기지 mortgage

미지근한 물에 있다가 점점 뜨거워진 물에 삶아 죽는 개구리. 자기 죽음에 대해서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중장년은 개구리처럼 죽음에 삶아 죽게 된다. 퇴임 혹은 은퇴와 동시에 뜨거워진 냄비 물 안에 있지만 대부분 계속 참아낸다. 은퇴 이전에 삶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삶아지고 있다는 것을 죽기 직전에 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이 개구리 슾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언제 냄비에서 나와야 할까?  물이 미지근할 때 그때 나와야 한다. 미지근하며 뜨뜻해지면 몸이 노곤해지고 피로가 풀린다. 이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커리어로 본다면 가장 잘 나갈 때이다. 조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으며 자신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 먹히면서 자아도취가 막 시작되는 때가 냄비 물이 올라가는 시점이다. 나의 경우는 40세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지금 보고 있는 유니타스브랜드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나의 20대 커리어 시작은 광고 기획자 AE였다. 하지만 광고 기획의 사회적 수명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의 일을 좀 더 오래 하고 싶어서 광고 기획가에서 브랜드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쌓았다. 39세에 주변을 살펴보니 50세가 넘는 브랜드 전략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의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었는데 업계 평균 은퇴 나이는 50대였다. 그래서 나는 40살부터 50대 이후의 삶을 준비했다. 그것이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였고 지금 보고 있는 사이트다.

 

   업종별, 지역별 그리고 개인적인 편차로 인해서 은퇴 준비 시점을 정하기는 어렵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하고 싶은 그 분야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의 평균 연령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교육과 출판 분야와 브랜드 분야를 파악한 후에 40살에 준비했다. 은퇴 나이는 60세이고 내가 말하는 휴먼브랜드로서 삶은 75세까지로 정했다. 75세에서 80세까지는 마지막 자료 정리 기간으로 계획했다. 나는 죽을 때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한 권의 책을 남길 예정이다. 지금 나의 삶은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이다]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장년이 될수록 수입은 줄어든다. 50대는 여전히 가족부양과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연령대다. 이 부분을 골치 아프다고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40대부터 준비해야 한다. 전두엽 손상(?)을 막기 위해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찾아야 한다. 이 부분은 너무 뻔하지만 대부분 생각만 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기에 나중에 정리해서 나누도록 하겠다.

 

 55세가 된 나는 일주일 중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60세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전자제품 회사가 선행기획으로 준비한 상품을 테스트하면서 론칭시점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도 주말에는 60세 이후에 준비할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그 프로젝트가 unitaslife.net과 theunitas.net이다.

 

 “그럼,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항상 나온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누구로 죽을 것인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런 변수에 따라서 시작 시점은 개인마다 다르다. 내가 40세에 준비했던 것은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루푸스라는 오진 때문이다.

 

루푸스 오진이었지만 한 달 동안 [나도 죽는다]라는 것을 생각했다. 가족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죽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가족들은 어떤 인생을 살까? 만약에 그 병으로 직장을 잃게 되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그 사건이 내가 미지근한 냄비에서 뛰쳐나오게 했다. 그리고 집을 담보로 모기지를 받지 않고 나의 생명을 담보로 시간을 받았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시간은 어차피 죽음이 회수할 하루 생명이다. 오늘은 나의 마지막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닭살이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나이 듦의 결과는 죽어가는 것이고 가난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빨리 인정하고 여기에 맞도록 사는 것이 유니타스라이프의 시작이다.

 

 

 

https://www.unitaslife.net/

 

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www.unitas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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