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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하루동안 인생을 살기, 하루 회고록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0. 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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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 아인슈타인

 

 

글쓰기와 글짓기에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런데 글을 왜 ‘짓는다’고 할까?

 

짓다의 사전 정의는 [1. 재료를 들여 만들다 2. 쓰거나 만들다  3. 나타내 보이다]이다. 실제로 글을 써보면 짓다의 3개 정의가 모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짓기는 소재와 단어로 글을 만들어 보여준다.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처음에는 어렵고 복잡하고 난감하다. 머릿속에는 기승전결과 서론 본론 결론이 있지만 집은 쌓아 올리지 않고 계속 지하실만 파고들어 가는 것 같다. 어쨌든 원고지에 글을 모두 쓰고 읽어보면 내용은 안 들어오고 급하게 쌓아 올려 흔들리는 젠가처럼 보인다. 비문을 빼고,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번역체를 교정하고, 수동태를 능동태로 고치고, 여드름 짜듯이 교정 담당자는 빨간 펜으로 뽑아 올린 적, 의, 것, 들이라는 단어를 빼면 공들여 썼던(쌓던) 글은 무너지기 직전이다.

 

 중년 회고록 글쓰기는 다행히 이런 글짓기가 아니다. 오히려 ‘글짖기’에 가깝다. 글짖기의 ‘짖기’는 ‘동물이 크게 소리를 내다’라는 뜻이다. 처음 쓰는 글은 짓지 말고 그냥 글을 짓듯이 쓰면 된다. 다른 사람을 향해 짓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짓는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낙서는 아니지만 동굴 벽화처럼 나만 보는 기록문이다. 누군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나만 읽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막, 자주, 확, 바로, 쓱~~] 짓듯이 쓰면 된다.

그냥 두려움 없이 글쓰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만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척 보면 안다.’ 그리고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있다. 초능력에 가까운 이 능력은 직감과 감정으로 순식간에 깨달은 예지능력이다. 그런데 척 보면 아는 것을 글로 써보라고 하면 A4 한 장 가득히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척 보면 아는 것은 그렇다고 믿는 것 같다. 분명 그것을 아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글로 써보면 안다. 자기 인생도 글로 쓰기 전까지는 어떻게 산지 모른다. 회고록을 써보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지어왔는지 알 수 있다.

 

 중장년 회고록 주제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자.기.다.움]이다. 자기다움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번호를 매겨 쓰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일생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의 종합체이다. 따라서 내가 결정한 것들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면 내가 믿는 것을 발견하게 해 준다. 내가 어떤 믿음으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추적하면서 지금과 자신과 연결하면 된다.

 

 휴먼브랜드가 되기 위한 자기다움 글쓰기 목적은 남에게 내 글을 ‘보여주기’가 아니라 내가 믿는 것을 ‘발견하기’다. 그래서 회고록 글쓰기는 나를 파고 들어가는 채광 같은 작업이다. 다이아몬드 채광을 할 때 다이아몬드만 파내지 않는다. 일단 바위를 깨고 흙을 땅속에서 파온다. 글을 쓰면 감정, 믿음, 가치, 신념, 욕망, 죄업 본성, 야망, 욕구가 덩어리째 뭉쳐서 나온다. 자신이 쓴 글을 보면 혼란스럽고 창피하지만 일단 쓰고 시간이 지나면 물컵의 흙탕물이 가라앉는 것처럼 나의 침전물이 내려앉는다. 사금을 채취하듯이 가라앉은 흙 속에서 그것을 결정한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의사 결정한 이유를 찾아서 연결하면 나의 본성과 목적이 드러난다.  하지만 반짝인다고 모두 다이아몬드가 아닌 것처럼 억지스러운 이유인 척하는 유리를 조심해야 한다.

 

글쓰기는 원래 어렵다. 특히 이렇게 자기를 연구하는 글쓰기는 더욱 어렵다. 글쓰기가 어려운 증거로 우리나라에서 추적한 48년 동안 직업별 평균 수명을 통계가 말해준다. 종교인은 80세로 1위로 장수를 누린다. 정치인은 75세, 기업가는 73세다. 반면 글 쓰는 작가는 67세이다. 휴먼 브랜드 글쓰기가 수명 단축하는 용도는 아니기에 작가가 받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글을 잘 쓰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는 목적과 방향은 알아야 한다. 글쓰기의 목적은 짓기가 아니라 발견이다. 회고록을 다 쓴 수강생들이 자기다움을 확인하여 기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 이벤트에서 선택한 이유에서 자신의 나약함, 비루함, 쪼잔함, 역겨움, 부족함이 드러난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이 결국 돈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대신에 자신이 추구하며 갖고 싶어 하는 가치 키워드를 연금술처럼 만들어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다움 회고록 프로그램 중에서 타인의 회고록을 공유하여 읽고 피드백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과정은 선택이다) 평균 5명의 사람이 한 사람의 회고록을 읽고 서로 느낀 점을 나눈다. 물론 회고록을 쓴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공개하지 않는다. 회고록을 나누어 보면서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실체를 나누고 그렇게 나누었던 정보는 회고록을 쓴 사람에게 전달해 준다. 내 삶에 대해서 타인의 관점을 여과 없이 전달하면서 자신과 타인과의 차이를 확인한다.

 

 

일기, 하루를 보내지 말고 인생을 살자.

호모 파머를 쓴 스위스 전후 작가인 막스 프리슈 Max Rudolf Frisch은 글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쥐고 있는 펜은 지진계의 바늘과도 같다. 말하자면 우리가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서 쓰일 따름이다. 쓴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읽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자신을 보기 위해서 거울을 보지만  중장년 사람은 막스 프리슈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일기를 봐야 한다. 자기 안에 울리는 그 소리에 따라서 글을 써야 한다.

인생 회고록은 연대기 혹은 사건 중심으로 기억나는 것을 쓰는 글이다. 반면에 하루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일기는 하루를 반성, 숙성, 완성하는 인생글이다. 자기다움 교육에서 하루에 3번 쓰는 일기를 추천한다. 아침에 쓰는 일기는 계시록, 점심에 점검하는 일기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저녁에 쓰는 일기는 기도문이다.

(아래 내용을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6F8KEVu4F8&list=PLBsnYNeJ0UmAJo6nr8KVAivYkcMvBTC0A&index=11 

 

나는 자전거를 타기 전에 ‘항상’ 65psi 공기압을 체크하고 공기를 넣는다. 원래 한번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넣으면 일주일 동안은 주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라이딩을 할 때마다 매번 공기를 체크하고 주입한다. 그 이유는 공기압 확인 없이 끌고 나갔다가 펑크를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으로 타이어를 눌러 공기가 빠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어의 작은 구멍으로 인해 주행 중에 타이어가 순간적으로 펑크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타이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공기압을 체크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전에 오보에의 A 음으로 항상 음을 맞춘다. 처음에 음을 맞추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들은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또 음을 맞춘다. 앞 연주가 끝나고 다시 시작할 때, '굳이' 또 음을 맞추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타를 배우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연주자는 최고의 음을 맞추기 위해서 음악이 끝나면 다시 또 음을 맞춘다고 한다.

곡을 연주하는 과정에 악기의 음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한번 음을 맞추고 일주일 동안 쓰는 사람은 완전 초보이거나 이제 악기를 배우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기타 튜닝을 하지 못해서 결국 기타를 포기했다.)

 

스포츠 선수들도 경기장에 들어서면 준비 운동을 시작하면서 근육을 풀어준다.

경기를 마친 후에도 회복 운동을 통해서 몸컨디션을 유지한다.

자신을 자전거 선수, 음악연주가 혹은 스포츠 선수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할까?

양치와 냉수 한 컵을 들이켜고 무엇으로 공기압과 튜닝 그리고 근육을 풀어줄까?

 

우리의 하루는 '놀랍게도' 다른 사람의 하루와 비슷하게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문자 확인, 카톡, 메일, 뉴스 그리고 어제 올린 SNS 게시물의 '좋아요'를 확인한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서 11시 정도까지 우리는 어떤 기준과 목적으로 오전 하루를 보낼까?

습관적인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아침 일기 쓰기는 공기압 체크와 음을 맞추는 튜닝과 같다. 나는 그렇게 믿고 아침을 시작한다.

중장년이 시작되면 하루 동안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일기를 써야 한다.

일기는 일지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시나리오에 가깝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양치와 물 한 잔을 3분 안에 끝내고 바로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어제 꾸었던 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제 자기 전에 오늘 할 일을 확인하고 어떤 마음으로 할 것인지를 적는다.

가치 기준에 따라 어제저녁에 기록한 오늘 할 일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확인하는 공기압 체크다.

 

어제 적었던 항목이 수면으로 리셋되고 난 뒤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한다.

오늘 내가 할 일에 대해 나의 예상과 반응을 상상하면서 그것이 자기다운 결정과 행동인지를 음을 맞춘다.

 

"왜 내가 이렇게 해야 하지?"

나에게 물어보면서 내 마음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집에서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전히 마음의 갈등으로 이상한 소리가 나면 다시 전체 튜닝을 한다.

 

[이것을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 10가지, 이것을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10가지]를 적는다.

경험상, 5개를 써 내려가면 으뜸음을 다시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자기다움 키워드를 마음속으로 음미하면서 나의 미래 행동을 튜닝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는 점심을 먹고 잠깐 살펴본다.

무엇을 놓쳤는지를 확인하고 오후에 있을 일들에 대해서 ‘자기다움’ 가치 키워드로 다시 튜닝한다.

 

저녁 퇴근하기 전에 내가 했던 부분을 다시 살펴보고 결과에 대한 멘트를 기록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2시간 전에 스마트폰을 취침 모드 설정한 후에 일기를 보면서 오늘 했던 일에 대해서

점검하고 내일 할 일에 대해서 기록한다.

이렇게 나는 튜닝으로 압축된 나만의 인생, 목적을 살아낸다.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관찰과 기록이다. 일기는 오늘이라는 나의 압축된 인생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는 것이다.

아침 일기 30분은 하루 16시간을 미리 살아 보는 것과 같다. 인생 미리 보기이다.

그래서 아침에 쓰는 일기 日記는 출근 전에 확인하는 일기예보(日氣豫報)처럼,

오늘 하루를 기록함으로 미리 살아보는 작은 하루를 맛보는 일기예보日記豫步(日날 일, 記기록할 기, 豫미리 예, 步걸음 보.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단어이다)이다.

점심 먹고 튜닝하고, 저녁 먹고 공기압을 확인하는 하루는 자기다움으로 충만한 인생과 같다.

저녁에 자기 전에 일기를 열고 아침에 적었던 항목을 점검한다.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왜 감사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유를 꼬리표로 달아둔다.

 

중장년은 [자기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기 위해 인생 회고록 쓰기가 끝나면 바로 인생 일기 쓰기가 시작해야 한다.

 

나는 스마트폰에 일정 체크와 일기예보(日記豫步)는 다르다고 아무리 말해도 중장년층은 대부분 그때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해된다. 그들은 50년 이상을 자기다움과 목적 없이 살아왔기에  오늘 인생을 다큐멘터리식 일기 쓰기가 낯설고 힘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할 일이 없어진 자신의 하루를 튜닝할 수 있는 도구(직업)가 없기에 더욱 막막해하고 절망스러워한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물 밖에서 음파 음파 연습하면서 손동작을 배우는 것처럼, 아침 일기 쓰기는 허공에 헛손질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중장년으로 보냈던 50년의 과거를 다시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인생을 살게 된다.

 회고록을 쓰고 읽어 보아라.  내가 인생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나에게 내가 왜 그곳에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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