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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인생의 블랙아웃(Blackout)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0. 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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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을 쓸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쓸 기억이 없을 때다.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다. 한 줄 경력만 있을 뿐이고 그 삶에서 내가 숨 쉬면서 살았던 기억이 없을 때 암담해진다.

 

 

중장년 교육 수강생이 좌절하는 이유 중에 대부분이 자신이 준비하는 중장년 자기다움과 그것을 설명할 자신만의 이야기와 기억이 없을 때다. 그들은 기억을 찾기 위해서 옛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그때 기억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마저 조각 기억일 뿐이다. 그렇게 자신이 기억을 짜내어 기억한 것과 지인들이 기억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만 기억하는 나의 기억이 내가 원하는 자기다움과 다를 때이다.  

 

  나는 2000년도부터는 회고록을 처음 쓰면서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00년도부터 매일 일기 쓰기를 쓴다. 사건의 암전과 무관심의 방전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일기를 쓰는 사람만 알겠지만, 수십 년 전에 일기를 읽으면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글자는 남아 있지만 그때 감정과 상황은 모두 휘발성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몇 번 한 후에 비로소 기억의 블랙아웃에 대해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잊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의 블랙아웃은 어떤 면에서는 우주 블랙홀과 비슷하다고 상상했다. 블랙홀은 거대한 항성이 진화의 최종단계에서 폭발 후 수축하여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블랙홀이 생기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 당긴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내 시간에 블랙홀이 생기면 그 무엇인가 나의 기억을 모두 빨라 당긴 것처럼 남아 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기억나지 않은 것으로 괴로워했지만 인생의 회고록을 쓰면 블랙홀과 같은 휘발성 망각에서도 기억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끝까지 남아 있던 기억은 나의 미래로 인도하는 인생의 표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고록을 처음 쓸 때 … 

질문의 시작을 “왜 내가 살았던 시간이 이렇게 낯설게 느낄까?”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질문의 대답으로 질문을 만들었다. “자기다움으로 살아온 것만 기억으로 남는 것일까?” 

아래 교육 샘플로 썼던 회고록이 바로 기억하는 것만으로 중장년 자기다움 회고록을 쓴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답게 살아온 기억만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것은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돌아갈 길을  잃을 것 같아서 나무에 X 표시를 하는 것과 돌아왔던 것과 같다. 블랙아웃이 되어 버린 인생의 기억이지만 회고록을 쓰면서 희미한 과거의 기억이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 누군가 내가 과거를 볼 때 자신이 표시해 둔 것을 잘 볼 수 있도록 불을 끈 것은 아닐까? 그 누군가는 신이다. 내가 블랙아웃에서도 발견한 기억은 내 인생에 관여한 그 어떤 존재가 나의 인생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서명처럼 보였다. 

 인생 블랙아웃은 뇌의 망각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암전(무대를 어둡게 하고 막을 내리지 않고 장면 전환을 하는 것)이었다. 암전으로 어떤 막이 새롭게 시작되었을까? 암전은 내 인생의 암전인가? 다른 사람 인생의 암전이었나? 나는 내 무대에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여러 사건을 들면서 설명하겠다.

 

그때는 몰랐지만, 몇 개의 막이 지나간 후에 인생이 어떤 결론이 되어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 회고록을 쓴다면 인생에 그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보면 맨 마지막 장에[마지막으로]라는 챕터에서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한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50대 50입니다.
어쨌든 나는 내 인생 대부분에 걸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왔습니다.” 

 

회고록을 쓰면 …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흘러가는 시간으로 [크로노스]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기회로서 [카이로스]로 나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시간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다. 처음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회고록을 쓰면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차 외에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나가는 시간과 잠깐 멈춰 버리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간을 사용하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고록을 쓰면서 그때가 카이로스라고 생각했는데 크로노스였고, 크로노스처럼 지루한 시간이 카이로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카이로스(결정적 순간)을 기대하면서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시간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남는 '시간 수영법'도 배우게 되었다. 내 멋대로 정한 시간 수영법은 [오늘, 지금, 여기]라는 시간을 통해서 시간에 익사하지 않고 수영하는 법이다.

(시간 수영법은 별도로 정리할 예정이다)그리고 추천하는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을 번역했지만, 실제 영화명은 [Groundhog Day]로 1993에 방영되었다. 이 영화를 추천한다.

 

 지나고 보니 그때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 자체가 목표였고, 나는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과정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왜곡시키고 바꾸는 것은 목적이다. 중장년 자기답게 살려는 것은 목적에 따른 삶을 살려는 것이다. 이때 (경험해야만 알겠지만) 과거의 시간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 그리고 카이로스에서 크로노스로 변한다. 나는 흐르는 강물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은 과거로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시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시간, 그러니깐 그 어떤 것을 위한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를 위한 나의 시간도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들이 모여서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도 알게 되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그리고 또 다른 때가 서로 엉켜있지만, 잘 짜인 원단 같았고, 그 원단 중앙에는 씨줄과 날줄로 짜인 목적이라는 그림이 있다. 아쉽게도 현재에서는 그런 시간의 결을 느끼지 못한다. 덩어리로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와 목적을 찾기 위한 회고록을 작성할 때 시간의 결과 그리고 그 중앙에 나타나고 있는 무늬를 볼 수 있다. 

 

  50대 중장년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길게는 50년 그리고 평균적으로 30년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기억의 망각은 더 자주, 넓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하루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일기]를 써야 한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한 달 회고록, 반기에 한번, 일 년에 한 번씩 회고록을 쓴다. 처음 쓰는 회고록을 쓰고 소각할 마음으로 썼다면, 일기를 기초로 쓰는 회고록은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회고록이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 가면서 자기다움을 이해했는지를 기록하는 회고록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다움을 빨리 이해해서 자기답게 살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죽기 직전까지 모를 수도 있다.

 

나는 내 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을 위해서 기록을 남겼다.

이런 내용이다. 1) 너희가 시간 강박증이 있다면, 2) 너희에게 음악적 취향이 이런 것이 있다면  3) 너희에게 이런 장단점이 있다면 4) 너희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면 등. 이런 것이 DNA로 전달될 수 있을까?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이런 아빠와 같이 살면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이 아닐까? 암튼 나는 그들에게 너에게 이런 부분이 있어서 갈등이 생기면 아빠가 그랬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갖게 된 특이점과 불편한 증상에 대해서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일종의 자녀에게 주는 단점 면죄부라고 할까?

 

 

로카르도의 법칙

20세기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1877-1966)는 로카르의 교환 법칙을 통해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고 주장했다. 100년이 지난 현대 과학수사에서 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회고록을 쓰기 위해 나의 기억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억도 필요하다. 특히 나와 부딪힌(사회관계) 사람을 만나 그때 상황에 이야기를 나눌 때 블랙아웃 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만나면 무조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괜히 만나 악연만 확인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있기에 불편했던 사람을 굳이 찾아가서 만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것은 개인 선택에 달려있다.   

 

 먼저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는 리스트를 적어본다. 그중에서 나에게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 아래 질문에 대답해 본다.

 

나는 왜 분노했을까?

나는 왜 그것을 결정했을까?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 만남은 숙명이었을까?

그와 좋은 관계였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를 통해서 내가 지금 알게 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를 싫어할까?

그 사람이 나와 부딪히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싫어했을까?

만약에 나와 좋은 관계였다면 나는 어떻게 대했을까?

나는 그에게 왜 호감이 있었을까?

나는 그와 다시 일하고 싶을까?

그는 나에게 어떤 점이 불편하였을까?

 

사람에 관한 회고록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너무나’ 솔직하게 써 보는 것을 추천한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도 상관없다. 그러나 조건은 딱 하나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쓴 내용을 시간이 좀 흘러서 다시 읽어 본다. 일주일 혹은 한 달 간격으로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변명이 아니라 설명해 본다. 그럴 때 나 자신이 유치하거나 쪼잔하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메여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회고록은 용서가 목적이 아니라 정리다. 내가 감정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목적을 찾는다. 내가 사람에게 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관계 속에 숨겨진 목적에 반응한 것인지를 찾는다. 분명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는 숙명의 흔적이 존재한다.

 

  악연을 통해서 나에게 남은 흔적은 무엇일까? 나는 유사한 사람에게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나와 그 사람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와의 충돌은 가치관인가? 아니면 이익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떤 것인가? 질문을 멈추면 안 된다. 기분 나쁜 감정에 뭉개지거나 그냥 덮어서도 안 된다. 흔적을 찾아야 한다. 만약에 악인은 내가 주연이 되기 위한 상대역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악인과 악연을 통해서 남겨진 것은 나의 거부(분노) 반응점이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은 직접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회고록을 쓸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직접 만나거나 메일을 교환했다. 그래도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왜 회고록을 쓰는지(우리는 휴먼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를 알려주면 전혀 기억하지 못했거나 의외의 기억을 줄 수 있다. 여기에서도 나의 흔적을 찾는다. 내가 왜 반응했는지 무엇에 기뻐했는지를 확인해 본다.

 

회고록 쓰기 교육과정에서 ‘항상, 언제나, 반복적으로, 이제는 지겹도록’ 당부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지키지 않는 것이 있다. 휴먼 브랜드 회고록 작성을 단순히 자서전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제 없이 기억만으로 일단 글을 쓰는 것은 의미 없다.

 자서전과 중장년 자기다움 회고록은 장르가 다르다. 목적도 다르고 글을 쓰는 방법도 다르다. 자서전은 기록을 위한 글이라고 한다면 중장년 자기다움 회고록은 의미를 찾기 위해 쓰는 글이다.

 

회고록 쓰기가 자기다움과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나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자기다움과 자기기만(self-deception)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중의 하나가 나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다움과 자기기만이 샴쌍둥이처럼 같이 있다는 뜻이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이 아니라 소고기의 마블링처럼 자기다움과 자기기만은 서로 엉켜져 있다. 

 

중장년 자기다움의 글쓰기는 자기다움과 자기기만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그것을 원심분리기(遠心分離機, centrifuge)에서 인사이트를 받아 [자심 분리기自心分離機]라고 했다. (원심분리기는 축을 중심으로 물질을 회전시켜서 원심력을 가하는 장치로 혼합물을 밀도에 따라 분리해 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글을 쓰면 내 안에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을 쓴 나와 글로 쓰인 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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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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