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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중장년 프로타지(frottage) 회고록 쓰기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10. 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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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에 관한 책을 읽으면 중장년 삶은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이토록 희망적인 이유는 도대체 어떤 근거일까?

사실, 비극적인 사실을 말하는 책을 누가 발행하고 읽을까?

중장년을 위한 솔루션은 비슷하다.

 

나이에 맞는 운동, 식단, 음식, 새로운 인간관계, 학습 그리고 재정 관리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해외 번역 책 내용과 우리나라 현실은 너무나 다르기에 읽은 후에 마음이 좀 공허하고 허무해진다. 우리나라 대다수 중장년이 맞이하는 시간은 생존 문제로 여전히 비참하고 치열하고 열악하다.

(참고로 중장년층 독서 인구는 다른 연령대보다 현저히 적다)하지만 나도 중장년 희망 고문(?) 책에서 주장하는 은빛 금빛 조언을 생활에 적용했고 성과를 보았기에 희망찬 중장년 삶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순전히 개인 경험에 의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중장년이라는 개념과 시간을 잊어야 한다.

과거 경험과 주변 내 또래 사람을 보면 안 된다. 중장년층이라고 여전히 예전처럼 사회 관념과 타인 기준으로 살 필요는 없다. 개인 편차가 있지만 20대까지는 학생으로 살았고, 30대에서 40대까지는 직장인으로 살았다. 50대가 되면 다시 학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학생은 남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배우는 (이과 / 과학자) 학생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를 배우는(연구하는) 것이 자기다움의 시작이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을 연구하고 내가 50대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의 꼬리표를 달아서 배움의 종류를 구분한다.

 

시간 개념은 물리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화에서 정의되었다.

고대 신화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를 설명했다.아마 50대까지 살았다면 [실제로, 진짜로, 정말로] ‘카이로스’가 자기 인생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내 손목시계에서는 카이로스 시간이 없지만 내 인생에서 그때와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점을 선으로 이어서 그리는 그림이다.

 

 

40대 초반까지 우리의 삶은 숫자 점을 오름차순으로 그려가면서 그림을 완성했다. 1번부터 시작해서 100번까지 점을 선으로 이으면 면이 그려진다. 그 면들에서 코끼리가 나온다. 우리는 그동안 유치원을 시작해서 직장까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두가 원하는 점에서 시작하여 선을 먼저 그어가며 사회가 그려준 밑그림을 그려갔다.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숫자와 이미 그려진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그래서 사회에 순응하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따라서 그리면 모두가 볼 수 있는 그림이 된다. 그런데 그 숫자가 있는 점이 50으로 가면 없어지거나 사라진다. 자기 직장 안에서 50을 넘은 숫자는 없다. 그렇게 마지막 선을 그리지 못하고 덮게 된다.

 

 

퇴임전까지 코끼리같은 내 인생 ... 줄만 잘 서면 된다.

 

 

퇴임 이후에도 사회에 나와서 자신에게 익숙했던  숫자가 옆에 있는 점을 찾으려고 한다. 이미 그려진 미래를 계속 따라 그리려고 한다. 50대가 되면 이제 그 숫자 점을 사회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 그을 기회가 온 시기다. 인생 카이로스 시대가 왔다.

 

 

퇴임 이후, 중장년 코끼리는 번호가 없어졌다. 그 누구도 나에게 선을 이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 인생을 관광했다면 중장년 지금부터는 나를 탐험하는 시간이다.

필요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연필과 종이뿐이다.

 

앞으로 소개할 중장년 나듦 프로그램은 1) 회고록 쓰기, 2) 일기 쓰기 그리고 3) 사전 만들기이다. 글쓰기 목적은 글쓰기가 아니라 내 인생의 카이로스를 찾는 것이다. 책을 읽지도 않는 중장년에서 글을 쓰는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몇 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자신을 관찰하는 글을 쓴다. 누구에게 읽혀주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큰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 어차피 자신만 읽을 글이기 때문에 맞춤법과 문법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글을 배워서 가슴에 있던 아픔과 추억으로 시를 쓰는 것처럼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처음으로 내가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학습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업’, 노동이다.

 

내 인생의 점, 선, 면

카이로스는 자신의 인생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것이 다른 것에 덮여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내 인생에 그런 중요한 사건들을 연결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 삶의 법칙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글쓰기가 아니다.

 자기다움 교육과정에서 100명이 수강하면 끝까지 남는 사람은 없다. 물론 유료일 경우에는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견디고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자원봉사 차원에서 진행되는 무료 강의에서는 거의 남지 않는다. 자기 인생을 말로 하라면 2시간 동안 끊어질지 이야기하지만 글로 쓰라고 한다면 A42 장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은 기억하는 것만 말하지만 글은 기억나지 않는 것을 찾아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만 글을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기에 듣고 생각하는 것도 힘들다. 글로 쓰려고 하면 모든 것이 막막해지고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르는 기괴한 현상이 모두에게 일어난다. 글을 손으로 쓰는 것이 키보드를 눌러 찍어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 글인지 낙서인지 모를 정도로 난잡한 생각으로 중도에 멈추는 것도 일반적인 형상이다.

이 현상은 인생 프로타지(frottage)이다. 

 

 

미술의 프로타지(frottage)

회고록을 쓰는 것은 미술의 프로타지(frottage) 기법과 가깝다. 그러니까 탁본과 비슷하다.  프로타지는 동전이나 나뭇잎 같은 무늬가 있는 표면에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파스텔 등으로 문질러 그 형태와 무늬가 종이에서 솟아나게 만드는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쉬르레알리슴Surréalisme(초현실주의)의 독특한 기법의 하나이다.

 

글을 쓰는 것은 선을 누가 이미 써놓은 숫자에 선을 긋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인생을 글로 비비듯이 쓰면서 인생 양각을 드러낸다. 프로타지 효과는 개인적인 편차가 있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회고록을 쓰고 읽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과 기억을 계속 문지른다. 금속을 문지르면 닳거나 광이 나는 것처럼 인생도 반짝거리는 그 목적이 드러난다. 

 

회고록 글쓰기는 누차 말하지만, 자서전이 ‘절대’ 아니다. 중장년 회고록은 지금 내가 ‘이것을’하고 싶은  이유, 발상, 동기, 근거, 경험, 목적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인생 사건을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일을 계속 ‘문지르면서’ 껍질을 베껴낸다. 수강생 중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회고록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도 못 하는 사람도 과반수다. 회고록은 누가 볼 것이기 아니기에 그냥 기억을 문지르면서 도장 칠한 뒷면의 실제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 그 뒷면의 모습이 바로 자기다움이다. 이렇게 나의 민낯을 내가 보는 것이다.

 

 기억을 꺼내기 위해 낙서도 하고, 단어들을 열거만 해도 좋다. 뭐든 좋으니 계속 기억하고 생각하고 탐색하면 된다. 이렇게 계속하면 과거 뒤에 숨어있는 목적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추할 수 있는 형태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아동기 때부터 부모들이 열심히 문지른 결과로 자신의 뒷면(재능, 관심, 목적)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을 천재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이 평균 이하의 사람이라면 40대 중반에 희미하게 종이(인생) 밑에 숨어 있는 자기다움을 삶의 시행착오 경험을 통해서 ‘문지르면서’ 목적이 드러난다. 경험 없이는 기억도 없고, 기억이 없으면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20대에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남들과 달리 나에게만 끌리는 모든 것을 일단 해보라고 조언한다. 

 

수학 문제 풀면 결국에는 답이 나오는 것처럼 회고록을 쓴다고 모두가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회고록이 추억의 돌려막기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현재 어려움의 가려 막기(shielding)가 될 수 있다. 자기다움과 자기기만은 동전 양면과 같아서 진짜와 가짜의 기준으로 분간할 수 없다. 그래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회의적으로 들리겠지만 어쩌면 불가능할 수 있다. 회고록 교육 프로그램을 하면서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시점과 내용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고록이 주는 효과(?)를 경험하는 몇 가지 방법은 있다. 첫 번째는 먼저 자기 자신이 속이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나처럼 회고록을 쓰고 버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회고록을 쓰면 좋다.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면 갑자기 기억이 왜곡된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악마의 편집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쓰고 버린다는 마음으로 회고록을 써보자.

 

 두 번째는 같은 사건을 여러 번 써보는 것이다. 한번 쓴 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쓰고 다시 덮어쓰고, 또 쓰고 다시 덮어쓰는 방식으로 계속 써야 한다. 나중에 한 번에 볼 때 자신이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보는지를 알 수 있다.

 

중년의 글쓰기(회고록+일기+사전 작성)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을 인생 글쓰기라고 하겠다. 인생 글쓰기를 하면서 지금의 내 생각과 위치가 과거의 사건을 문지르게 되면서 지도의 등고선 같은 연결이 나타난다. 인생 산맥과 계곡 그리고 평지 같은 살아왔던 그 길들이 지도 같은 형태와 같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살아왔던 삶을 이해하고 앞으로 살아야 삶을 예측할 수 있다.

 

내가 살았던 여정의 길뿐만 아니라 앞으로 가야 할 길과 함께 여행할 사람까지도 보이게 된다

기억하는 사건들이 연결되면서 밑그림이라고 하는 운명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김정호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들었던 대동여지도처럼 이런 인생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앞으로 가야 하는 지도를 그릴 수 있다.물론 모두가 이렇게 인생 지도를 얻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길을 잃거나 방향을 잃었기 때문에 프레따주를 통해 지도가 아닌 예상하지 못한 그림을 볼 수도 있다. 동서양 모든 사람이 방향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북극성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회전하지 않는 북극성을 찾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살펴보면서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반복의 반복이지만, 회고록의 목적인 감동적인 글 쓰기가 아니다. 출판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자기 인생을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지르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기억들, 잊고 싶은 감정, 희미한 목적, 답답한 후회, 분노와 같은 것이 생긴다.

어떤 인생 시간은 수년이 통째로 기억나지 않는 당황스러움과 두려움도 느낀다.

내가 잊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포맷당했는지 모르는 블랙아웃의 시간이다.

그때야 내가 회고록을 쓰지 않고, 나의 과거를 글로 문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차피 내가 쓰는 회고록은 누가 보지 않을 글이다.

자신이 마지막에 보고 소각할 글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글이 완성되면 글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는 과거에 숨겨졌던 목적이 프로타주처럼 보이게 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50대가 되어야만 자신의 인생 밑그림이 나온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때야 알 수 있다.

 

  공식(公 드러날 공, 式 법 식)을 한자로 뜻을 파악하자면 숨겨진 법칙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포뮬러(Formula)의 어원 구조도 form(모양) + ule(작은)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공식(Formula)의 의미는 지극히 작아 숨겨진 만물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E=mc2, f=ma와 같은 물리학 공식을 한자로 해석한다면 거대한 자연 질서의 내부 구조와 실체이고, 영어의 의미로는 거대한 본체를 보여주는 본질의 최소 단위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글로 비벼 카이로스의 질감을 보면서 나는 시간이 아닌 내가 지금까지 내가 되었던 운명 공식을 보게 된다.

 

어떻게 난잡하고 목적 없이 살았던 나의 인생을 지도와 공식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또 다른 천재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의 조언을 들어보자.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자기다움과 목적을 깨닫기 위해서 먼저 빼야 한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에서 중장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건과 시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자기다움은 시작한다. 

 

왜 회고록을 써야 하는가?

회고록을 쓰는 것은 작품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대화하면서 50년 넘게 숨어있거나 갇힌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줄기세포같은 기억을 재생하여 자기다움을 깨닫는 치료방식이다. 

하지만 MBTI에서 말하는 덕담해주는 그런 자기다움은 없다. 그 반대다.

원본으로 태어났지만 타인의 복사본으로 살았던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50대, 우리는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던 나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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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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