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던 이유는 브랜드 Identity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애플의 애플다움은 [Style+Concept+Message+Value]가 압축되어 애플 아이덴티티를 설명한다.
이 정의가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지인 중에 특정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브랜드다움을 물어보자.
예를 들어 테슬라 오너에게는 [테슬라다움]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어보면 전기자동차라고 제품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 비제품의 단어가 나온다. 좋은 것만 나열한다면 엘론 머스트, 선도적, 혁신, 미래 제품 등.
물론. 비싼 전기차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브랜드의 심오함을 알기 위해서 최고의 집단은 할리데이비슨 오너를 강력 추천한다.
참고로 이런 질문을 받는 대상자가 브랜드에 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어야 비제품 정의와 의미를 를 들을 수 있다.
이제 자신의 이름에 [다움]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지인들에게 물어보자. 예를 들어 커피 한잔 사주면서
“권민다움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라고 하면 안된다. 당사자 앞에서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한명도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거짓증언으로 인해 자신에게 극단적 오류를 줄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지인에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레퍼런스 평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 인사평가로 운영하는 360도 평가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지인의 솔직하고 진심어린 조언과 평가를 자신이 정한 다른 사람을 통해 리스트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로 설명한다면 나는 나의 평가를 수집가로 특정인 박운규에게 의뢰해서 나의 지인 10명에게 무기명으로 평가받는다.
박운규는 나의 지인 10명에게 나에 관한 평가를 받고 정리해서 나에게 주는 방식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그 평가서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헛살았다는 자괴감이 마음에 구멍을 만들고 지인들에 관한 증오가 거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일반적이다.
자기도 모르는 자신과 낯선 만남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이렇게 큰 단점이 있는지를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다움의 시작은 내가 모르는 나에서 시작한다.
중장년까지 살아온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이제 앞으로 살아갈 자신에 대해서 희망을 걸면 된다.
하지만 1년 혹은 2년 뒤에 같은 작업을 통해서 내가 자신에게 실망했던 자신의 리스트가 반복된다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자기다움을 한자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資本主義의 아닌 자본주의 自本主義, 말 그대로 자신이 근본이 되는 사상이라고 말하기에 무엇인가 작위적이고 어설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캐피털리즘)에 의해서 자본주의 自本主왠지 자아도취, 자기만족, 자아실현, 자기 몰입, 자기 계발, 자기 편애 쪽에 있는 단어처럼 보인다.
자본주의(資本主義)의 영혼을 가짐으로 정신 승리로 살아가는 자기기만에 가까운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자본주의自本主義는 단어가 주는 그 의미 그대로다.
자기다움은 타인의 복사본이 아니라 자신이 원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원본으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타인의 복사본으로 죽는다.
오늘은 강쇠돌를 만났다. 이 친구는 대기업은 자신이 창업해서 20년 동안 경영을 하다가 3년 뒤에
기업을 정리하고 지금은 주식 투자와 자신의 매장 몇 개를 관리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그림대로 잘살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나오는 이 친구의 모습은 누구나 원하는 은퇴자의 삶이었다.
여행, 와인, 맛집, 동창 만남, 스포츠 등 그의 SNS 내용만 보면 노후설계의 승리자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친구들을 만나서 그들의 노하우 혹은 아쉬운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자기다움? 그거 돈이 되냐? 들어 본 것 같아. 냉장고?”
친구에게 자기다움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강쇠돌은 이렇게 나에게 질문했다. 아마도 친구는 가전제품 브랜드가 사용한 광고 슬로건을 연상 이미지로 떠올라 나온 말이다. 나는 왜 자기다움이 돈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물어보았다.
“자기답게 살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친구의 이런 질문은 50대 중반을 살고 있는 모든 친구에게 진지한 질문이다.
생존의 문제를 매일 당면하는 사람이 자기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저 광고 슬로건으로 사용하는
자본주의 슬로건처럼 보일 것이다. 자기다움의 의미와 결과물이 돈은 아니다.
자기다움은 돈을 벌기 위한 삶이 아니라 의미를 누리는 삶이라는 것을 친구에게 설명했다.
이제 관심이 떨어진 얼굴로 내가 보여주는 노트북 화면에 눈을 돌렸다.
목적과 하나 된 삶, 자기다움을 통한 우리다움, 일자리를 찾는 중장년이 아니라 일터를 세우는 중장년까지.
나는 웹사이트 데모 버전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친구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품을 얼굴 근육으로 이완하면서 3번씩이나 참아냈다. 사실 나도 말하면서 지쳐갔고 시점을 보고 끝내려고 했다.
다행히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나도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종료하면서 차갑게 식어버린 뜨거웠던 커피를 한 번에 마셔버렸다. 친구는 전화를 끊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자기다움을 아는데?”
친구는 졸린 얼굴이지만,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인내하면서 듣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전화받기 직전에 그 부분을 말하려다가 노트북을 껐다.
다시 켜려고 했지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이렇게 해봐. 너의 무덤이 1000년 뒤에 발견이 되었다고 치자.”
“나 화장할 건데, 저번에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장기 기증서도 썼어.” 친구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그거 말고 일단 가정하자고. 너의 무덤에서 너의 가방을 발견했어. 그 가방에는 너를 설명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는 거야. 사람들은 너의 물건을 보면서 너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친구는 아까보다는 재미있어하는 얼굴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다시 설명해 주었다.
“너, 오늘 집에 가서 가방 하나에 너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을 20개 이상 집어넣어 봐. 그것이 너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
“자동차를 어떻게 넣어?”
“그것은 자동차로 집어넣고. 너의 철학을 설명할 수 있는 책도 좋고, 너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넣는 거야. 네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그 제품을 넣는 과정에서 너는 자기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거야.”
무슨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발표 자료를 보는 것보다 더 진지해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X팔…. 이게 뭐야? 어제 가방 싸다가 열받아서 한잠도 못 잤어!”
이 프로그램은 나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할 수 있는 즉각 반응 리트머스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몰라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할 수 있는 제품이 없어서, 막상 제품을 선정하면 그것이 나의 아이덴티티인지 헷갈려서, 진짜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들이 없어서, 혹은 너무 많아서 등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개인 차이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자기다움 교육 과정에서 수강생들이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와서 펼쳐놓고
다른 수강생의 평가를 듣는 교육 과정이다.
자신의 자기다움을 글로 피드백받는 것의 순한 맛에 해당한다.
하지만 내 친구가 고통스러워한 것은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좋아요라고 눌러준 이모티콘의 숫자와 호응으로 자신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SNS의 콘텐츠로 살아가고 있었다.
중장년에 자기다움이 돈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본다면 돈은 쓰지 않는다.
돈을 쓸 때가 별로 없다. 예전에 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 누리기 위해서 지출했던 모든 비용을 사용하지 않는다.
남들이 하니깐 따라 해야 하는 것과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좀 더 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의미 없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자본주의(資本主義)를 역행하는 자본주의 自本主義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장년을 자기답게(나이답게'가 아니다) 살 수 있을까?
일단 돈은 거의 들지 않는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된다. 내 안에 있는 것을 글로 쓰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기다움을 알려면 자신에 대해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소개할 자기다움 글쓰기는 작가가 아니라 과학자로 자신을 연구하는 것이다. 마치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가 50세에 시작해서 92세까지 썼던 파브르 곤충기 같은 글쓰기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곤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연구하고 조사하고 확인하고 관찰하고 분류하는 과학자가 되어서 자신의 자기다움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www.unitas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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