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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인생은 2막 혹은 3막

about/나이듦에서 나듦으로

by chief-editor 2023. 9. 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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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면 자기다워진다고?”
“아니, 어떻게 죽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거야. 죽는 방법을 쓰는 게 아니라고.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2015년. 여름이었다. 20여년 만에 만난 대학교 친구에게 1시간 15분 동안 내가 쓴 [자기다움] 책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책에 이렇게 썼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까를 결정하면 삶은 명확해진다. 단순해진다.
무엇보다도 나머지의 인생이 자기다워지며, 자기답게 죽을 수 있다.
이것은 삶의 지혜다. 자극적이지만 더욱 강도를 높여 보자.

 
그날 만났던 대학교 친구와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대학교 때도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5년 전 대뜸 페이스북 친구 요청이 왔었다. 나이 들어 연락하지 않았던 옛 지인이 불쑥 연락해 오는 경우에 별로 좋은 경험은 없다. 다단계 권유 같은 좋은 않은 사례가 있었기에 나는 친구 페이스북을 살펴보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 기업에서 수십 년 동안 평생 일했던 전형적인 강쇠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디지털 친구가 다시 되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된 친구 강쇠돌은 콘텐츠를 올리지는 않았다. 가끔 내가 올린 내용만 '좋아요'를 눌렀다. 그렇다고 모든 내용에 '좋아요'를 누르지는 않고 나의 일상에 관한 내용에만 '좋아요'를 눌렀다. 대학교 때 강쇠돌과 연관된 기억은 3초 동영상처럼 파편적으로 남아 있었다. 데모할 때 화염병을 들고 같이 뛰어다녔던 것, 도서관 휴게실에서 같이 라면을 먹다가 쏟은 일 그리고 희미한 몇 개의 장면만 남아 있었다. 모두 합쳐보면 5초도 안 되는 기억이다.
 
어느 날 친구에게  [네가 쓴 책을 읽었어. 이번 주에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대뜸 만나자고 해서 의아했다. 보통 인사하고 안부하고 만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한 후에 약속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강쇠돌은 친한 친구처럼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페이스북에 들어가 [소개]를 살펴보았다.
‘XX에서 근무했음.’
 
오른쪽에는 몇 년 전에 누군가 올린 [본부장님 생일 축하합니다.] 글이 보였다. 그런데 본부장님에게 생일 멘트를 올린 사람치고는 너무 적었다. 그전에는 제법  축하 멘트를 올렸다. 아마도 퇴사한 지가 1~2년 된 것 같았다. 강쇠돌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3년 전에 명퇴했다고 말했다.
 
강쇠돌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쓴 책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관해서 계속 물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는 초점이 없었다. 산발적으로 질문을 했고, 말의 끝을 흐렸고, 대답했던 질문을 계속했다. 1시간 전부터 나는 강쇠돌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빨리 미팅을 마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사이트에 나왔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계속 질문했다.
 
“자기다움을 어떻게 알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벌써 3번째 대답을 했었다. 나는 책에서 쓰지 못한 자기다움 자료 주소를 카톡으로 넘겨주고 읽어 본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된 연인이 헤어지기 위해 마지막 만나는 그런 자리처럼 어색했다. 나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친구는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일어서기 위해서 친구를 보고 있었다. 이제 시계를 한번 보고 일어나자고 이야기하려고 할 때, 친구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나 망했어. 그리고 저번 주에 죽으려고 했는데, 책을  보니깐 자기답게 죽는 것이 좀 궁금해서. 자기답게 죽는 것이 무엇일까? 나도 뭔가를 남기고 싶은데.”
 

2번째 인생

인생에 관한 비유로 골프만큼 많이 나오는 것이 연극이다.
책 제목 부제로 [인생은 2막]이라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널리 사용한다. 인생 2막, 2막짜리 인생,
2막은 화려하게 …  그래서 어떻게? 그래서 뭐? 인생은 2막이라고 하지만 항상 ‘어떻게’가 없다.
 
준비 없이 시작하는 인생 2막은 중장년에게는 개미지옥이다. 배우가 갑자기 무대 위에 다시 올라왔는데 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깜깜한 무대 위에 나를 향해 내리찍는 핀 조명, 조용한 객석,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면서 대사를 기다리는 배우들. 그런데 대사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생각해 보니 대본을 받지 않았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데 50대 이후에 갑작스럽게 퇴직하면 인생 2막 무대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극 2막 세트장을 다시 세우기전에 대본을 먼저 써야 한다]
 
중장년의 위기는 자신에게 대본이 없을 때 찾아온다.
50대 이후 퇴직하기 전에는 자기 대본이 있었다. 집에서는 가장으로 대본, 임원으로 대본 등 누구나 자기 역할에 맞는 대본이 있었다. 그런데 퇴직과 동시에 자기 대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무대에 있는데 대본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저 무대의 지문으로 남아 있는 사람을 엑스트라라고 한다. 이제 자신은 무대 위에서 대본이 없는 엑스트라, 지나가는 행인(1)이 되었다.
 
영화 인턴에서 70세 벤 휘태커의 역할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음악가는 은퇴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에 음악이 남아 있어요. 확실해요.”

 
당시 이 역할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의 나이는 1943년생으로 72세로서 자신보다 2살 어린 70세의 벤 휘태커 역할을 했다.
 50대 이후에 퇴임하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일회용품처럼 취급당하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묘하게 자신은 느낀다. 퇴임 전까지는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었든 사람이었는데 막상 몸담았든 조직에 나와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된다. 자신을 기다리는 조직도 없다는 것을 비로써 인정하게 된다.
 
 50대 이후 내가 예전처럼 내 인생 주인공으로 2막 무대 위에 올라서려면 대본을 미리 써야 한다. 퇴직하기 전에는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써준 대본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의 대본을 대신 써주는 구성작가는 없다.
 2막 대본을 쓰는 여러 방법 중에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플랑크는 자신의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이미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살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잘못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그의 말은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할 휴먼 브랜드의 중심축과도 같다.
 
50대 이후의 과거는 설명할 수 없고 어쩔 수 없고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50년(30년이라고 어림잡고)은 과거의 연장선으로 살 것인가?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선입견을 다시 리셋해야 한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방법 중에 하나는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했다면 이제부터 역순으로 나의 역할을 정하고 대본을 쓰면 된다. 다음 단계는 쪽대본을 쓸 것인가? 아니면 완결판 대본을 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시즌제로 방영하는 드라마는 작가가 쓴 완성 대본을 가지고 마지막 화까지 연기한다. 반면에 쪽대본은 매주 작가가 대본을 쓰는 것이다. 시청자 반응과 시청률에 따라서 대본은 바뀐다. 이런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은 캐릭터에 몰입하여 감정을 만들 수도 없다. 드라마 끝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감독과 작가 그리고 배우도 모른다. 대체로 이런 드라마는 시쳇말로 막장 드라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천재적인 작가가 모든 피드백을 받으면서 완성도 높은 드라마 대본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써서 성공한 드라마가 얼마나 있을까?  나는 천재가 아니기에 이런 2막 인생 대본은 쓰지 못한다.
 
  2막 드라마 대본을 시점에 따라서 드라마는 장르가 바뀔 수도 있다. 희극을 썼는데 비극이 되고, 영화 대본을 썼는데 다큐가 될 수도 있다. 퇴임 전에 미리 준비해서 대본을 다 써놓은 사람, 물론 대본대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퇴임 후에 여행하면서 대본을 쓰는 사람, 퇴임과 동시에 대본을 쓰는 사람, 퇴임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면서 대본을 쓰는 사람. 이외에도 여러 부류가 있다. 이 중에 누가 더 완성도 높은 인생 2막 대본을 쓸 수 있을까?
 
 자기다움 교육 프로그램에서 대본을 쓰는 여러  하나를 소개하겠다. 우선 퇴임 이후에 자신의 대본을 쓰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기다움’ 확인이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이 지금까지 속한 곳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이 친한 지인들에게 자신의 장단점을 이야기해달라고 할 때, 제대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이해관계자이기에 좀처럼 정확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자기다움 교육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과격하다. 먼저 독서 모임 혹은 워크숍에서 만난 여러 명에게 냉혹한 피드백을 받는다. 서로 이름도 모른다. 나이, 종교, 거주지와 전화번호도 공유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부분을 기록한다. 그리고 팀이 해체할 때 일주일마다 기록되었던 40여 개의 피드백을 받는다. 너무나 냉정하고 잔인한 피드백을 태연하게 감당하는 교육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 리스트를 가지고 이번에는 지인들에게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번 독서 모임과 워크숍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피드백을 받는다. 이렇게 4단계를 거치면 자신의 실체가 드러난다. MBTI처럼 칭찬하거나 용기를 주지 않는다.  자신의 날 것과 민낯을 거울로 그대로 보게 된다. 이때부터 자기다움 시간을 갖는다. 사전 만들기, 회고록 쓰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자기가 되고 싶은 자신을 정하자.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휴먼 브랜드에서 휴먼 브랜딩 과정이다.
세부적인 액션 프로그램은 아래 주소에서 살펴보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G0-3NofUqE&list=PLBsnYNeJ0UmAKcdMWdpNNzOsQz2CCNt1T 

 

두괄식 인생

장편소설을 읽을 때  마지막화부터 읽기 시작해서 첫 장까지 읽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읽는 모든 소설은 모두 추리 소설이 된다. 모든 장르가 한 장르로 바뀐다. 소설책을 앞에서 읽으면 독자는 주인공은 어떻게 될까?를 궁금해야 한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읽고 책을 읽으면  사건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왜 이런 것이 나왔을까?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복선을 찾을 수 있고 운명적 등장인물이 왜 거기에 나왔는지를 추리하면서 읽는다. 이때부터는 작가가 쓴 대로 읽는 독자가 아니라 작가와 같이 생각하는 (공동) 작가가 된다.
 
뒷장부터 소설 읽기는 마치 자전거 역풍을 맞으면서 앞으로 가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읽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게 된다.
 
소설책 옆에는 수첩을 두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찾아간다.
이렇게 거꾸로 읽는 것이 그냥 읽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눈길에 남겼던 발자국을 되짚어가면서 의도와 의미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작가가 놓친 부분도 볼 수 있다. 작가가 어떤 부분에서 운명이라는 카드를 썼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깐 신의 위치에서 글을 쓴 전지적 작가(신)의 시점으로 주변을 볼 수 있다. 멋진 거실 스튜디오의 뒷 면, 화판으로 세워둔 벽을 보는 느낌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날 것!
 
놀라운 것은 첫 장부터 읽었던 독자와 뒷장부터 읽은 사람이 주인공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비유한다면 연쇄살인 현장에 나온 프로파일러들이 기분이라고 할까? 막막하지만 직감으로 스토리를 구상한다.
사실 이 방법을 쓴 것은 브랜드 리서치와 고객 경험을 통해서 배웠던 방법을 소설 읽기에 적용한 것이다. 생산자의 의도와 소비자의 의미 일치성을 확인하기 위해 고객 관점으로 브랜드 시나리오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인생 대본도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를 결정하는 것은 50대를 60대 이후의 프리퀄로 사는 것이다. 인생이 두괄식이 된다. 영화에서는 본편을 기준으로 그 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른 시리즈는 프리퀄(prequel)이고 본편 이후에 시간 연속성으로 나오는 것을  시퀄(sequel)이라고 한다.
 
요즘 나오는 스타워즈 시리즈는 요다의 인생을 보여주는데 그것을 본편의 이전 이야기를 하는 프리퀄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고 70대부터 역으로 인생의 대본을 써보자.
내 경우에는 [좋은 생태계를 돕는 브랜드 코치]로 80세에 죽는다고 결정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은 브랜드 스토리 구성을 하는 일을 돕는 일이다. 브랜드 운영에 있어서 리더십들과 휴먼 브랜드 워크숍, 사회적 브랜드의 가치 키워드를 세팅, 40대 경영자의 자기다움을 코칭, 방향과 콘셉트 그리고 철학이 일치하는 브랜드를 연결하여 지방에 정착을 돕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
 
그렇다면 80세 그런 모습으로 죽기 위해 퇴직을 준비하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프리퀄로  시작한 것이 더유니타스 미디어, 굿브랜드 굿에코시스템, 유니타스그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행하기 위한 유니타스라이프 웹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
 
내가 죽을 때 사람들은 나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그 호칭을 생각하며 다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서 나에게 이름을 정해준다. 이렇게 휴먼 브랜드는 시작된다.
앞서 자기다움을 알기 위한 충격법을 견디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자신의 대본을 쓰는 일은 회고록 쓰기, 자기다움 소설 쓰기, 다큐멘터리 일기 쓰기 등이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실행 파트에서 계속 다룰 예정이다.
 
 

“뭘 남기고 싶은데?”

친구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왜 나는 이런 질문을 했을까? 그냥 ‘힘내!’하고 그곳을 도망 나왔어야 했는데.
“나 진짜로 열심히 살았어. 그런데 남길 것이 없어.”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어졌고 용기도 없고…”
친구는 자기다움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싶어 했다. 나는 친구에게 나의 왼쪽 손목에 그어져 있는 자살 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친구는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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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목적연합 유니타스 라이프

Unitas Life for Midlife, 중장년의 삶은 나이 듦에서 나듦으로 변화됩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 Life의 라이프L.I.F.E는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입니다. 평생 학습이 아니라 인생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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